저는 젠더 이슈에 대한 글을 매니아에서 금지했으면 좋겠습니다.
현재 매니아에서 언급이 금지되고 있는 주제는 정치와 종교입니다. 뚜렷한 기준에 의해 그렇게 정해졌다기보다는, 그 정도 규모의 사회 이슈는 불가피하게 논란/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다소 현실적인 이유에서 나온 규칙이죠. 다른 커뮤니티에서 저런 주제들이 다뤄질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생각해보면, 나름 이해가 가는 규칙입니다.
저는 지금의 젠더 이슈는 거의 정치/종교와 다를 바 없는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 머리에서 관련 주제에 대한 개념이 어느 정도 굳어졌고, 논의를 해도 의견이 잘 안 바뀝니다. 사회적으로 여러 논란을 형성하기도 하고, 그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의견이 대립중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매니아 내에서 정치/종교와 젠더 이슈가 다르게 취급 받는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매니아가 남초 사이트이기 때문이죠. 무슨 뜻이냐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더라도 매니아 내에서는 논란이 안 된다는 겁니다. 한 쪽 의견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매니아 내 젠더 이슈에 관한 글로 인해 불편함을 느끼는 이용자가 없을까요?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의견을 표할 수가 없을 뿐이죠. 간혹가다 주류 여론에 반하는 의견을 남기면, 비슷한 뉘앙스의 답글이 열 개씩 달립니다. 여론을 등에 업은 댓글은 표현이 과해도 삭제처리되지 않고, 여론을 등진 댓글은 그냥 문제 되는 표현 없이도 삭제되기도 합니다. 이러면 더 이상의 반대 표현은 나오기가 어렵습니다. 다른 생각을 가지더라도, 그냥 보고 참거나, 프리톡을 안 보거나, 매니아 자체를 떠날 수도 있겠죠. 전형적인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상황입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라고 봅니다. 가령, 크리스폴 팬 커뮤니티에 가서 ‘선수 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mvp 여부다. 그래서 폴을 내쉬에 비교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라고 주장해버리면 댓글로 폭격을 맞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죠. 특히 매니아에서 여태까지 주제의 금지 여부는 ‘논란이 되는가’로 따져왔기 때문에, 지금 당장 딱히 갈등이 안 생기는데 주제를 금지할 필요가 있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글을 남기는 이유는, 여태까지 매니아가 추구해온 가치에는 ‘중립성’도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정치라는 주제도, 언급을 허용한다고 해서 천년만년 싸우지는 않습니다. 한동안은 치열하게 싸우다가 어느 한쪽 의견이 우세해지면, 그 의견이 득세하고 그 광경이 맘에 안 드는 사람들은 그 커뮤니티를 떠납니다. 소위 ‘고지전’이라고 부르는 상황인거죠. 그렇게 고지전을 진행할 수도 있음에도 그러지 않고 주제 자체를 금지시킨 이유는, 한 쪽으로 편향됨을 막아서 그런 이유로 커뮤니티를 떠나는 사람이 없게끔 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매니아가 그런 방향성으로 운영이 되어왔기 때문에, 매니아 이용자들도 젠더 이슈를 정치/종교와 마찬가지로 다뤘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해 볼 수 있는 것이죠. 이건 운영에 있어서 어떤 가치를 선택할지에 대한 문제라고 봅니다. 그 가치가 ‘중립성’이나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주제를 피하는 것’이 될 수도 있고, 남초 커뮤니티임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다수의 여론을 따르는 것이 될 수도 있죠.
마지막으로, 최근 젠더 이슈에 대한 공지는 ‘주제를 생산적으로 다루자’는 뉘앙스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이미 커뮤 내 여론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상황에서 어떤 생산적인 토의가 가능할지는 개인적으로 좀 의문이 듭니다. 페미니즘과 그 비스무리한 것들에 대한 비판 또는 비난을 확대 재생산 하는 것 이외에 생산적인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오늘도 수많은 젠더 이슈 글들이 프리톡에 올라왔고 다수가 추천을 많이 받았지만 내용적으로 거의 다른 점이 없다고 느꼈습니다. 직접적인 정치 얘기는 금지됐지만 부동산, 환경, 미국정치, 백신 등 간접적인 사회 얘기가 매니아 내에서 가끔 나오긴 하는데요. 그럴 때마다 여러 가지 시선의 댓글들이 달리고 저도 그것들을 보며 많이 배웁니다. 가끔 나오는 사회 이슈에 대해서 그렇게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 것이 매니아의 장점이자 매니아가 추구하는 방향이라고 생각하는데, 지금 젠더 이슈가 생산해내는 글들의 양상은 여태까지의 방향과는 다소 다르게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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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종교는 답이 없는 문제지만 젠더는 다릅니다. 답이 있어요. 종교와 정치는 절대가치가 존재하고 그 코드를 벗어날수가 없는 주제지만 젠더이슈는 애초에 정체성의 혼돈과 혼동에서 일어나는 이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