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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중세~근대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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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31 11:03:20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 (사르데냐 왕국, 사보이 공국)

아메데오 8세 디 사보이아(대립교황 펠릭스 5세)가 신성로마제국 황제로부터 1416년 사보이 공작 직위(빨간색)를 받음으로써 성립됨


300년 후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의 결과로 스페인령이었던 시칠리아 국왕 자리를 얻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스페인으로부터 다시 빼앗김

이후 오스트리아가 시칠리아를 점령하고 사보이 공국에게 사르데냐 국왕직(파란색)을 넘겨줌으로써 사르데냐 왕국이 됨


나폴레옹 전쟁때 국토 대부분을 빼앗겼으나 나폴레옹이 몰락한 뒤 빼앗긴 영토는 물론 리구리아 지방(회색)을 추가로 얻음

그 후 피에몬테(보라색)를 얻어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을 성립하고 프랑스와 동맹을 맺어 오스트리아를 공격, 롬바르디아 (초록색)을 얻음

프랑사의 도움을 얻은 댓가로 프랑스에게 접경지역 일부를 할양함 (진한 빨간색)

그리고 중부 이탈리아(하늘색)에서 국민투표를 통해 왕국과 병합할 것을 요청하자 이를 승낙하고 1761년 이탈리아 왕국을 선포함

 


교황령

원래는 동로마 황제의 봉신으로써 로마 (빨간색)을 지배하고 있었음

그런데 751년 동로마 제국이 이탈리아 북부의 랑고바르드 왕국에게 이탈리아 대부분을 상실함


결국 동로마와 교황간의 관계가 단절되고 교황은 랑고바르드를 견제하기 위해 프랑크 왕국의 피핀 3세에게 지원을 요청함

754년과 756년 피핀 3세는 랑고바르드 왕국을 무찌르고 교황령에게 이탈리아 중부를 증여함 (연두색)


피핀의 손자였던 카롤루스 대제가 프랑크 제국을 성립하며 교황령은 프랑크 제국의 산하로 들어갔다가 신성로마제국에 속하게 됨

그러다 1177년 베네치아 조약으로 로마는 교황이 단독으로 통치하게 됨


그 후 여러 교황을 거치며 13세기 초 인노첸시오 3세때 전성기를 맞음 (참고로 4차 십자군이 이때)

이때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인정되기 위해선 교황의 대관이 필요하다는 법을 만들고 이는 교황령 전체를 돌려받는 결정적인 요인이 됨


13세기 말 합스부르크 가문 최초로 황제에 오른 루돌프 1세는 교황의 대관을 받는 대신 교황령 전체를 돌려주는 합의를 맺게 됨

이로써 교황은 신성로마제국으로 부터 완벽한 독립을 이룸


14세기 프랑스가 교황을 굴복시키고 교황청을 아비뇽으로 옮김으로써 아비뇽은 교황령에 속하게 됨 (하늘색)

하지만 그 기간동안 교황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고 그 어떤 교황도 이를 회복하지 못함


교황은 간신히 프랑스를 따돌리고 로마로 돌아왔지만 프랑스는 새로운 교황을 추대함(1378)

결국 공의회가 교황보다 우위에 있으며 교황을 폐위시킬수 있다는 공의회 수위설까지 만들어지고

이를 바탕으로 기존 교황을 모두 폐위, 마르티노 5세를 새로 선출함 (1417)


이후로 세속적인 물리력으로 교황의 위세를 회복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대부분 실패로 끝남

대표적으로 알렉산데르 6세, 율리오 2세가 바로 이때였음


16세기 교황이었던 클레멘스 7세는 신성로마제국을 견제하려 했지만 실패하고

결국 당시 황제였던 카를 5세에 의해 로마가 약탈당하고 교황이 피난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함

참고로 이때 스위스 근위대가 최후까지 저항하며 전멸했고 이후 교황청은 영원히 스위스 근위대를 쓰기로 서약함


그렇게 18세기 후반까지 존속하다가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서 아비뇽을 뺏기고 혁명에 반대한 댓가로 나폴레옹은 교황청을 무너뜨리고 로마 공화국을 세움

하지만 나폴레옹은 얼마 지나지 않아 무너졌고 교황령 다시 본래의 영토를 획득함


그러다가 사르데냐, 이탈리아 왕국에 의해 로마를 제외한 영토를 모두 뺏기고 프랑스의 보호를 받음

하지만 프랑스-프로이센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자 프랑스군은 본국으로 돌아갔고 그 사이 이탈리아 왕국은 로마를 빼앗음


그렇게 모든 세속적인 영토를 잃고 계속해서 베드로 성당에서 지내다가 비오 11세와 무솔리니가 라테라노 조약을 체결하며 최종적으로 지금의 바티칸 시국이 됨


*교황령 : 교황이 통치하던 영역 *교황청 : 가톨릭의 최고 기관 *공의회 : 성직자들과 신학자들이 모여 교리, 의식, 규범에 대한 문제를 논의하는 회의


밀라노 공국

전통적으로 밀라노의 참주 노릇을 했던 비스콘티 가문이 1395년 Wenceslaus 4세에게서 밀라노 공작 직위를 사들임으로서 공국으로서의 역사가시작됨 (검정선 안 초록색)

하지만 20년 후 후계자가 암살당했다가 그 남동생이 다시 공국을 부활시키고 여러 영토(검정선 밖 녹색깔)를 점령하면서 전성기를 열게 됨


하지만 1447년 비스콘티 가문의 부계 혈통이 단절되자 밀라노 정부는 공화정을 선포하고 당시 용병이었던 스포르차 가문의 프란체스코 스포르차에게 도움을 요청함

하지만 프란체스코는 비스콘티 가문의 여식과 결혼하고 밀라노를 공격, 공화정을 무너뜨리고 1450년 밀라노 공작에 오름


1466년 프란체스코 스포르차가 죽고 그 후계자까지 암살당하자 권력투쟁이 벌어지고 프란체스코의 넷째 아들인 루도비코가 새로운 공작위에 오름

하지만 권력투쟁으로 인해 주변국가, 특히 나폴리와 사이가 안좋아졌고 루도비코는 나폴리를 약화시키기 위해 프랑스를 끌어들임

그런데 프랑스는 루도비코의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오히려 계승권을 주장하며 밀라노를 침공해 점령, 루도비코는 연금당하고 결국 죽음


신성로마제국 황제였던 카를 5세는 프랑스와 전쟁을 해 승리하고 밀라노 공작위를 다시 루도비코의 아들인 프란체스코 2세에게 수여함

프란체스코 2세가 후계자 없이 죽자 이를 스페인 합스부르크가 소유했고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이후로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 소유함


1797년 나폴레옹에 의해 정복되어 멸망, 나폴레옹의 괴뢰국의 일부에 속했지만 나폴레옹이 몰락한 뒤 사르데냐 왕국에게 흡수되어 역사속으로 사라짐


-통치 가문-

1395 ~ 1447 : 비스콘티 가문

1447 ~ 1450 : 공화정

1450 ~ 1535 : 스포르차 가문

1540 ~ 1706 : 스페인 합스부르크

1706 ~ 1796 :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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