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연민 덕에 살아난 사람이거든요.
저번 글에서 연민, 봉사 뭐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사실 제가 그 연민의 덕에 삶이 변화된 사람입니다.
돌이켜보면 더 많을 수도 있지만, 3명 정도가 떠오릅니다.
저는 미국으로 16살때 넘어갔었습니다. 언어도 안되고, 문화도 모르는 상태로 간 그 곳에서 고등학교 1학기하고 간 미국은 한인들도 없는 동네였고 저는 거기서 생존을 해야 했지요.
언어도 안되, 문화도 몰라, 쉽지 않더군요. 친구가 없어서 외로웠던 시절이었습니다. 정말 1년동안 혼자 밥먹었었지요. 모든 친구들이 자기만의 그룹이 있고, 비슷한 친구들과 어울리는데, 저만 친구가 없었던것 처럼 느껴졌었습니다. 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중 '자살'이라는 단어를 생각해보았던 유일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던 저에게 츤데레 같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주면서 친구가 되준 미국친구가 있습니다.
이 친구는 절 도와줄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친구는 우리학교에서 제일 인기가 많았던 미식축구 스타였거든요. 저 같이 동양에서 온 영어도 못하고, 친구도 없는, 왜소했던 저와 어울릴 이유가 전혀 없는 친구니까요.
연민이었겠죠.
절 도와주던 그 친구가 아니었으면 전 이세상에 없었을까 요즘도 그때를 떠올려보곤 합니다. 당시 전 인생에서 최악의 불행한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렇게 불행했던 시절 남의 도움으로 외로움이라는 구렁텅이에서 올라왔습니다. 그 친구가 한것은 생각보다 단순했습니다. 저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줬던겁니다.
"너 그림 되게 잘그린다." 나를 좀 도와줄래?
그때 느꼈죠, 제 아무리 운동 잘하는 애도, 나보다 못하는것도 있네? 내가 좀 도와줘볼까?
난 그친구의 그림 그리는것을 도와줬지만, 그 친구는 제게 여러 친구들을 소개시켜줬었습니다. 물론 그렇게 소개받은 친구들과 절친이 되거나 하진 않았지만, 외롭다. 라는 생각해서 벗어날 정도는 됐었습니다.
저를 도와줬던 친구는 미식축구와 농구를 잘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미식축구와 농구를 좋아하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친구는 제게는 롤모델이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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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절 도와줬던 이 친구는 USC까지 가서 미식축구부 주장을 하고 NFL까지도 가지요. USC는 University of Spoiled Children이라고 돈많은 부자 자녀들이 가는 학교라고 비아냥 조롱을 듣기도 하는 학교입니다.만 뭐 제겐 두번째로 좋아하는 학교가 되버렸죠.
전 그 친구가 USC라는 미식축구명문대에서 주장까지 한게 우연히 아니라 생각합니다. 저를 돕던거 처럼, 거기서도 도우면서 리더로서 인정 받았을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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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학시절에도 또다른 고마운 친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우연히 만나서 운동을 그냥 가르쳐주겠다던 친구 덕분에 헬스를 배웠구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테니스도 친구들한테 배웠어요.이 친구도 저와 친구가 되서 가르쳐주고 할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훗날 알게된 사실이지만 백인친구의 아버지는 옆 주의 연방상원의원이더라구요.)
그렇게 배운 테니스로 지금은 서울 중심에서 테니스 클럽을 운영하면서 나름 봉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클럽 회원님들과 모아서 연탄 봉사도 해보았죠. 난다긴다하시는 대단한 회원님들이 많지만, 대부분의 분들이 봉사를 잘 안하고 있더군요. 기우와는 다르게 다들 봉사하면서 너무 즐거워 했던 기억입니다. 봉사도 좋은 사람들과 하면 즐겁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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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나왔을 때 또 도움을 크게 받은적이 있습니다.
고시원 살다가 돈이 떨어져서 밥, 김치, 라면만 먹던 시절도 있었는데요. 나중에 고시원에서 잘 돈도 없어서 재정적으로 힘든 순간 자기집 땅바닥에서 한달 반을 묶게 해준 미국친구도 있었습니다.
강남역 5번 출구에 있는 도씨에빛 이라는 곳인데, 그곳을 지나갈때마다, 저는 아무것도 없던 시절 도움 준 그 친구가 떠오릅니다.
그 때 도와주는 친구가 없었다면 제 인생은 나락으로 갔겠지만, 한달 반동안 신세를 지면서 제 상황을 개선 시키고자 노력했기에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왔고, 직업을 구했지요. 그 당시 그 친구의 무료 숙박제공은 제게는 엄청난 큰 도움이었습니다.
저는 그 때 기억 때문인지,집에서 지인들이 갈곳없는 상태가 되는 경우는 재워줍니다.
가장 최근은 북경에서 온 아는 동생이 사업이 망해서 해골이 되서 나타나자 2달 가까이 제 집에서 재워줬습니다. 전 밥도 좀 사먹였지요.
고맙다고 은혜는 꼭 갚겠다고 하길래, 나한테 안돌려줘도 되니까, 나중에 잘되면 도움 필요한 사람을 도와. 라고 말했던 기억이 있네요. 뭐 지금은 연락이 끊겼지만 잘 극복해서 잘 살고 있을련지 궁금하네요.
아무쪼록 저는 힘든 시절 운이 좋게도 옆에서 도와주던 사람을 많이 만날수 있었습니다. 운이 좋은게 아니죠. 51%가 봉사하는 사회에서는 그냥 또 누군가가 도와주는 사람을 만날 확률이 8.4%까지 떨어져 버린 사회보다는 높을 겁니다.
봉사가 아니더라도 남을 도와주세요. 그리고 give and take에라고 주입하는 사회에서 벗어나세요. 저는 그냥 맘편히 give and give하고 살라고 합니다. 다만 도와주던 사람에게 그 말은 꼭 해라고 하죠, 너가 도와줬던 사람은 언젠가 또 어디선가 누구 돕고 있을거라고. 그리고 도움을 받는 사람에게는 꼭 말합니다. 너가 나중에라도 잘되면, 그래서 자리 좀 잡으면 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와주라고.
인간은 다 연결되어있습니다.
다 안돕는다면, 내가 도움이 필요할때 날 돕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겁니다.언제 그렇게 연결된, 모르는 사람이 나를 돕는 일이 분명 일어날겁니다. 우리가 다 함께 돕는다면요.
아래 영상은 제가 참 좋아하는 영상입니다. 품앗이라는 한국 정신은 한국만의 것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https://youtu.be/7HSIMOhsIU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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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의 마지막을 달리고 있는 시점에서 다시 한번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