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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지능적인 동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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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3 08:39:33

예전부터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박쥐에 대한 인식은 좋지 못했습니다. 배신을 일삼으며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기회주의적 인물에 박쥐가 비유되었고, 흉물스러운 모습 때문에 혐오감이 더해졌습니다.


박쥐가 날아다니는 모습은 얼핏 새처럼 보이지만 박쥐는 결코 새가 아닙니다. 포유동물인 박쥐는 알이 아니라 새끼를 낳고 날개나 깃털도 없습니다. 박쥐의 날개처럼 보이는 것은 손가락 사이의 물갈퀴 같은 피막(皮膜)입니다. 박쥐의 손가락이 점점 길어지면서 손가락 사이의 피부가 늘어나서 날개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피막 끝에 갈고리 같은 손이 있어 그걸로 제법 빠르게 기어다닐 수도 있습니다.

 


박쥐가 날아다니는 방법은 새와는 많이 다릅니다. 새는 박쥐에 비하면 유연성과 비행기술이 많이 부족합니다. 특히 절벽에 둥지를 틀고 사는 새들의 경우 둥지에 돌아오는 과정에서 곧잘 절벽에 부딪히기도 하고, 심지어는 둥지 안에 있는 알을 발로 차서 절벽 밑으로 떨어뜨리기도 합니다. 새에 비해 박쥐는 빠를 뿐 아니라 급정지, 급출발, 급회전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습니다. 박쥐는 같이 공기 흐름이 조금만 변해도 감지할 정도로 민감한 대응 세포를 피막에 나 있는 미세한 털 안에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박쥐의 피막은 새의 날개에 비해 훨씬 유연하기 때문에 피막을 완전히 뒤집어 올린 채 뒤로 이동시켜 몸이 수직으로 급상승할 수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새들은 시력이 엄청나게 좋습니다. 반면에 깜깜한 밤중에 날아다니는 박쥐는 시력이 매우 나쁩니다. 박쥐는 어두운 동굴 속이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만 살다 보니 시력이 퇴화되었습니다. 새처럼 시력에 의존하는 대신 박쥐는 입과 코로 초음파를 내보낸 다음 레이더처럼 생긴 큰 귀로 그 소리가 물체에 부딪혀 돌아오는 메아리를 듣고 방향을 설정해서 길을 찾고 먹이를 잡아먹습니다.


박쥐가 곤충을 사냥하는 모습은 신비롭습니다. 박쥐는 자기가 내보낸 높은 주파수의 소리가 곤충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것을 듣고 먹이를 향해 날아갑니다. 그런데 나방 등 곤충은 대부분 박쥐가 내는 소리를 먼저 듣고 피합니다. 곤충 종류에 따라 피하는 모습이 전부 다릅니다. 박쥐의 초음파를 듣자마자 어떤 곤충은 땅으로 떨어져 풀 속에 숨고, 어떤 것은 공중으로 솟구치고 어떤 종은 뱅글뱅글 돌면서 박쥐에게 혼란을 줍니다. 이렇게 먹잇감의 곤충이 피신을 하기 때문에 박쥐가 단순히 초음파에서 읽은 위치로 나간다면 먹이는 벌써 사라지고 없을 겁니다. 그래서 박쥐는 곤충에 부딪혀 소리가 반사된 위치로 향하지 않고 곤충이 움직일 방향을 예측하여 그리로 날아갑니다. 예측이 항상 들어맞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곤충과 박쥐는 치열한 먹고 먹히기 수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박쥐는 입으로 곤충을 잡는 것이 아니라 손처럼 유연한 피막으로 잡습니다. 대충 곤충의 근처까지만 가면 손으로 감아서 입에 집어넣습니다. 실제로 많은 박쥐들이 모기 등 해충을 잡아먹거나 꽃가루를 옮기며 수분을 도와주는 등 인간에게 이로운 행동을 합니다. 


그런데 박쥐는 2003년 중국을 덮친 사스(SARS)와 2014년 아프리카에 공포를 가져왔던 에볼라 그리고 2015년 중동과 한국을 휩쓴 메르스(MERS) 등 21세기의 주요 감염병을 일으킨 바이러스의 근원입니다.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도 아직 연구가 더 필요하지만, 중국의 박쥐가 유력해 보입니다. 박쥐는 몸속에 다양한 바이러스를 지닌 상태로 멀쩡히 생존하는 능력 면에서 포유류 가운데 최상위입니다. 


인간은 박테리아나 바이러스 등 병원체가 침입하면 면역체계가 작동해서 체온을 올립니다. 생존을 위해 고온에 취약한 병원체의 활동을 막기 위한 필수 반응이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의 몸도 피해를 감수해야 합니다. 그런데 박쥐는 바이러스를 죽이지 않고 몸 안에 키웁니다. 바이러스도 박쥐를 죽이지 않고 얌전히 지내다 다른 동물에게 옮겨가 번식합니다. 박쥐와 사람은 진화의 계통이 다르기 때문에 이런 바이러스의 대부분은 사람에게 옮겨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돌연변이가 발생하면 사스, 에볼라, 메르스 같이 사람에게도 옮게 되고, 보통의 인체 바이러스보다 훨씬 골치아픈 상황을 만듭니다.


대부분의 박쥐는 오래 동안 일상생활에서 사람과 접촉할 특별한 일이 없이 현재까지 지내왔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 이후 우리에게 너무 잘 알려진 2011년 영화 컨테이젼(Contagion)의 엔딩신처럼 사람에 의해 서식지가 파괴되고 먹이가 없어지자 박쥐는 점차 사람이 사는 곳까지 드나들며 경작지나 과수원의 곤충과 과일을 먹게 되면서 인간과 접촉이 늘어났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원인이 박쥐라고 밝혀진다 해도 사실 박쥐에게는 큰 책임이 없습니다. 박쥐의 잘못이라기 보다 인간이 박쥐에게 다가간 게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 환자가 계속 늘어나는 가운데, 최초로 인류에게 이 병을 전파한 것으로 추정되는 동물인 박쥐에 대한 연구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과학저널 사이언스(Science)는 이번 주 (2020년 7월 10일자) 박쥐에 대한 새로운 연구를 표지논문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연구팀은 GPS 장치와 연동한 박쥐 이동정보시스템 ATLAS를 사용해서 이집트과일박쥐들의 동선을 추적했습니다. 박쥐가 그들이 서식하는 동굴의 주변 지형지물과 먹이가 많은 지역의 정보를 얼마만큼 비행에 활용하는 지능을 갖추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한 연구입니다. 


연구팀은 박쥐 서식지 주변 19,000헥타아르(882㎢) 내 박쥐의 주 먹이인 과일이 달린 14,314그루의 과일나무가 포함된 상세한 지도를 만든 후 여기에 박쥐 172마리가 4년 동안 남긴 3449회 비행과 1800만 개의 위치 정보를 표시했습니다.

 



연구 결과 박쥐들은 서식지 동굴 주변의 특징, 과일이 많이 열린 나무 등을 비롯한 여러 랜드마크를 활용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무작위로 탐색하며 비행하는 대신 목표를 분명히 설정하고 지름길로 비행해 먹이를 찾는 동선을 보인 것입니다. 박쥐는 머리 속에 인지지도를 갖추고 있었고, 그동안 인간들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지능이 발달한 동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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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WR
1
2020-07-13 10:43:31

https://teezela.com/wp-content/uploads/2019/10/I-AM-IRON-MAN-Tony-Stark-Endgame.jpg

2020-07-13 08:52:09

교수님 박쥐학 전공이셨군요
수 싸움 한다는 게 참 신기하네요. 재밌게 잘 읽고 갑니다~

WR
2020-07-13 10:41:53

고맙습니다.

2020-07-13 08:55:48

오늘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항상 좋은 글 감사드려요 

WR
2020-07-13 10:42:09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2020-07-13 09:20:48

저래도 해결책은 개발을 중지하고 과거의 자리로 돌아가기보단 박쥐를 없애는 쪽으로 가겠죠

WR
5
2020-07-13 10:38:18

이번 코로나바이러스도 야생 박쥐를 덜 익힌 채로 먹는 일부 중국인의 식습관이 원인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2020-07-13 10:55:23

박쥐가 지능적인지 먹는게 문제였던건지 신경쓰기보다는 그냥 없애는 방향으로 갈거란 말이었습니다

WR
2020-07-13 10:56:40

물론 무슨 말씀을 하신 건지 알고 있습니다. 

2020-07-13 11:43:37

예상보다 지능적인 박쥐 대 예상보다 더 비지능적인 중국인인거네요

WR
2020-07-13 18:45:36

중국과 동양에서는 희한한 동물들을 식재료나 약재료로 써왔습니다

1
2020-07-13 16:08:55
 SARS, MERS 둘다 박쥐에서 시작해서 사향 고양이, 낙타로 전이된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옮겼다고 하죠.
COVID-19도 예상은 천산갑이 중간숙주일거라고 추정하지 아직 확정은 아닌듯하고 박쥐로 직접 전이는 아닌걸로 보더군요.
WR
1
2020-07-13 18:44:40

박쥐에서 바이러스가 옮겨진 천산갑을 먹어서 일 가능성이 높고, 박쥐에 있던 바이러스가 천산갑으로 옮겨간 뒤 다시 박쥐로 되돌아와 유전자 재조합으로 코로나가 만들어졌고 그 박쥐를 사람이 먹어서 옮겨졌을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2020-07-13 09:34:46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중국 남부에는 박쥐가 참 많습니다. 농구장에 라이트를 켜면 박쥐가 새처럼 저공으로 많이 날아다닙니다. 특히 농구장 근처에 산이 있으면 더욱 개채수는 많아집니다. 한번 잡아볼까도 했는데 잡았었다면 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닐수도 있었겠군요.

WR
2020-07-13 10:33:46

이렇게 하고도 멀쩡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https://youtu.be/GeuW4Smf9PI

2020-07-13 12:27:13

오지오스본... 어릴때 충격적이었죠.
제 기억에 병아리 밟으면서 노래하는 뮤비를 봤던 것도 같은데(너무 충격적이어서) 확실하지않습니다.

WR
2020-07-13 12:29:58

저한테는 오스본과 동시대인 이 사람이 더 충격이었습니다.

https://youtu.be/-O4Kq3vLacE

2020-07-13 16:10:47

박쥐는 샌안토니오에 많아서 지노빌리가 한번 잡은적도 있고 마스코트 코요테나 경기 진행 인력들은 아예 채집망을 준비하더군요.

WR
2020-07-13 18:39:44

어제 밤에 올렸습니다

https://mania.kr/g2/bbs/board.php?bo_table=multimedia&wr_id=1004084

 

그리고 오스틴에는 박쥐가 정말 많습니다. 저녁에 주청사 앞 박쥐들의 비행이 장관이죠

2020-07-13 09:55:25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 태국에서 박쥐동굴을 찾아갔던 적이 있는데 신기하게 잘 봤지만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위험할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박쥐를 연구하는 분들이 폐쪽이 많이 안 좋으신 경우가 많다고 하더군요. 동굴의 환경 + 박쥐 바이러스로 인해 동굴 탐사를 하면서 병에 걸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고 합니다.

WR
2020-07-13 10:38:41

맞습니다.

2020-07-13 13:53:51

박쥐에 대해 잘 알아갑니다 . 영화 컨테이젼이 너무 잘 맞아서 소름인 요즘 일상입니다.

WR
2020-07-13 18:48:59

컨테이젼은 박쥐에서 돼지로 옮겨진 바이러스가 도축과정에서 사람에게 유입되었죠. 끔직하면서도 시사점이 많은 장면이었습니다.

1
2020-07-13 17:01:28

박쥐들의 서식지와 활동반경을 차지한 인간의 무분별한 자연파괴와 개발이 재앙을 불러올수 있다는 사실을 알수 있네요. 박쥐는 바이러스와 동거하지만 숙주동물이나 인간에게는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으니까요.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인식하는 메카니즘을 가진 박쥐가 지능적인 동물이기 까지한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WR
2020-07-13 18:47:07

곰감합니다.

2020-07-13 17:38:32

동서를 막론하고 박쥐를 꺼리던 이유가 전염병 탓일 수도 있겠군요.

WR
2020-07-13 18:46:56

21세기에 들어와서 박쥐가 근원인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퍼진 것이지 전에는 그럴 줄 몰랐을 겁니다.

2020-07-13 18:56:45

드라큘라 전설이 그냥? 나온 것은 아니군요. 역사적 팩트는 모르겠지만 박쥐떼에게 잠깐이라도 덮쳐지면 어떤식으로든 죽을 확율이 높겠어요

WR
2020-07-13 19:07:04

박쥐떼가 사람을 공격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그게 흡혈박쥐떼라면 광견병으로 죽을 확률이 높습니다.

24-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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