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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품 시계 시장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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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9-28 18:35:46


보통 명품 시계라고 많이 칭하지만 영어는 훨씬 직설적입니다. Luxurious Watch 라고 칭하죠 - 사치품의 영역입니다.

손목 시계 역사를 이해하시려면 쿼츠 파동을 먼저 이해하셔야 합니다.

손목 시계를 만들기 위한 시계 구동계, 즉 무브먼트는 크게 수동 (매뉴얼 와인딩) 과 자동 (오토매틱, 쿼츠 등) 무브먼트로 나뉩니다.
수동은 손으로 감아서 시계에 동력을 주는 형태이고, 자동은 시계에 로터가 달려 있어서 일상생활하면서 지속적으로 동력이 공급되거나 (오토매틱 무브먼트) 아니면 쿼츠같이 배터리로 작동하면서 시계로 동력이 공급되는 형태가 있습니다. 물론 그 외에도 여러 하이브리드 형태들이 존재하지만 (스프링 드라이브, 태양광 / 빛 충전, 손목의 움직임으로 배터리를 충전하는 방식 등) 이건 상대적으로 주류에서 떨어져 있으므로 여기서는 제외하겠습니다.

원래 손목 시계는 상류층의 전유물이었습니다. 회중 시계를 소형화하여 만든 것이 손목 시계이고, 시계의 구동계 (무브먼트) 는 스위스에서 독점하다시피 생산했으며, 장인들이 매우 공 들여서 섬세하게 가공해서 만들어야 하고 따라서 그 가격도 매우 비쌌습니다.

그러다가 점차 많은 회사들이 뛰어들면서 손목 시계가 천천히 대중화되고 있었지만, 여전히 손목 시계는 어느 정도는 사치품 카테고리에 속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1960년대 후반에 세이코에서 쿼츠 무브먼트를 만들고, 이 무브먼트로 아주 저렴한 가격에 수동 또는 오토매틱 (수동 + 로터 장착으로 자동으로 동력 충전) 구동계보다 훨씬 정확한 시계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쿼츠 손목시계가 등장하면서 시계 시장을 빠르게 잠식해나갔고, 스위스 손목시계 업체들은 대부분 도산 위기에 처했고, 살아 남은 업체들도 서로 인수 / 합병해 가며 간신히 목숨만 붙어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스위스 시계 업계의 몇몇 선구자들은 이렇게 가다가는 다 죽는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들의 상품 포지셔닝을 변화시킵니다.

시간의 정확성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시계가 가지고 있는 예술성과 정밀성, 그리고 한계까지 가공된 아름다움 등에 초점을 맞춰 마케팅하기 시작합니다. 대신 이렇게 하려면 단가가 올라가니까 가격 또한 급속도로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에 최신 기술과 계산기, 각종 추가 기능이 들어간 세이코, 카시오 등의 쿼츠 전자시계가 10달러 정도였습니다. 당시 롤렉스는 950달러였으니 그 가격 차이 정도를 짐작하실 만 합니다. 파텍 필립이나 오데마 피게 등 최고 하이엔드 브랜드는 자사 컴플리케이션 (복잡한 구동계) 시계들을 2 - 3천 달러 정도까지 올리기도 했습니다.

결국 고급화와 사치품화를 성공적으로 해내면서 스위스 시계업계는 살아남고 또 성장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쿼츠 파동에 의해서 약 70 - 80퍼센트의 업체가 도산하거나 팔려나갔으며 남은 업체들도 합병 / 인수를 거쳐 큰 업체의 산하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루이 비통 그룹 (LVMH) 산하에는 불가리 / 쇼메 / 태그 호이어 / 제니스 / 프레드 / 위블로 등이 속해 있습니다.

세계 최대 시계 그룹인 스워치 그룹에는 오메가, 블랑팡, 브레게, 해리 윈스턴, 론진, 자케 드로즈, 티쏘, 라도, 미도, 해밀턴, 글라슈테 오리지날 등이 속해 있습니다.

물론 쿼츠 파동을 겪어도 잘 살아남은 단일 브랜드 회사들도 존재하지만 (롤렉스, 바쉐론 콘스탄틴, 오데마 피게 등) 살아남지 못한 회사들이 훨씬 많았죠.

이제 원자시계 전파 수신, 위성 수신, 자동 오차 보정 동기화 등이 있는 시계 시장에서 오토매틱 / 수동 구동계 (무브먼트) 시계가 갖는 의미는 그냥 사치품 / 심미적 아름다움 / 부의 과시 / 개인적 만족 / 남성의 팔찌, 악세서리로의 기능 / 타인에게 자신의 신분을 즉시 알리는 매개체 등의 기능만 있을 뿐, 시간의 정확도를 논하는 건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중력이 시계 구동계에 미치는 영향력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에서 출발한 투르비용 무브먼트를 탑재한 시계는 1 - 2억 가량 하지만, 이게 애플 워치보다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애플워치는 시간을 서버에서 실시간으로 동기화하거든요.

이제 시계업계는 제 2의 쿼츠 파동을 맞았습니다. 애플 워치가, 단일 회사의 스마트 워치에 불과한데, 모든 스위스 시계를 다 합친 것보다 많이 팔리고 있죠.

심지어 앞으로 수동 / 오토매틱 구동계를 탑재한 시계 브랜드는 파텍 필립, 롤렉스, 오데마 피게만 살아남는다는 전망도 있습니다.

시계 시장이 이 제2의 쿼츠 파동에 대응하는 방식은 다양한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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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1-09-28 18:36:56

잘 읽었습니다

2021-09-28 18:41:24

롤렉스 좋지만 저는 오메가 하나 사고 싶습니다

WR
Updated at 2021-09-28 18:45:12

전통 오토매틱 / 수동 손목 시계 시장 (스마트워치 등 제외) 마켓 쉐어입니다. 2020년 9월 기준이고 매출액 기준입니다.
50만불 (5억) 이상 하는 시계만 파는 브랜드 리샤르 밀 (리처드 밀) 이 눈에 띄네요.

2021-09-28 19:02:00

오메가 롤렉스 차이가 생각보다 크네여.
태그호이어,티쏘는 많이 차는듯 하는데, 가격이 비교적 저렴해서 마켓 쉐어는 적은거 같구요.

Updated at 2021-09-28 21:22:18

역시 롤렉스 인가요.

2021-09-28 19:04:28

오! 재밌네요!

2021-09-28 19:11:18

시계 이야기는 언제 봐도 재밌네요.

1
2021-09-28 19:19:08

사치품(luxury goods)이 정확히 맞는 표현인데 명품(named goods?)이라고 포장하는게 썩 보기 좋지 않은데 정확히 찝어 주셔서 잘 읽어보았습니다. 아마 평생 내건 없을 걸로... 

WR
5
2021-09-28 19:22:17

저는 개인적으로 명품이라는 단어를 싫어합니다.
품질이 따라와 줘야 명품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가격만 높여 놓고 저 카테고리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브랜드들이 너무 많거든요.

사치품 시계 외에도 훌륭한 시계 만드는 장인 회사 (Fine Watchmaking Company) 같은 표현이 있는데, 이런 표현은 어지간한 기술력 또는 역사 (헤리티지, 혈통) 가 받쳐주지 않으면 못 씁니다.

WR
2
2021-09-28 19:24:03

2020년 9월 기준 스위스 시계업계 전체 매출이 약 100억 스위스 프랑 (10 billion swiss francs) 인데, 이미 2019년부터 애플 워치가 단독으로 이 매출을 뛰어넘었습니다.
가히 사회 현상이라 부를 만 합니다.

2
Updated at 2021-09-28 19:41:21

쿼츠 시계의 대세속에서도 기계식 시계가 생존하고 인기를 누릴수 있었던데에는 스와치 그룹의 스와치 시계가 효자노릇을 했었죠. 스위스 시계 최초로 쿼츠를 탑재해 다양한 디자인과 마케팅으로 저가에 대중들을 사로잡았죠. 스와치를 필두로 스와치 그룹내에 있는 기계식 시계를 만드는 브랜드들의 상승세까지 이어지면서 기계식 시계는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거죠. 이제 기계식 시계는 손목의의 예술품 내지는 악세사리 정도라고 봐야죠. 시간이야 스마트폰으로 볼수도 있고, 더 정확한 저가형 쿼츠시계도 많으니까요. 오차를 상쇄하는 뚜루비용이라고 해봤자 원자시계보다 정확하지 않을테고, 점차적으로 오차를 0.1초라도 줄이기 위해 지속적인 R&D가 이뤄진다는것은 보잘것 없는 작은 변화임에도 불구하고 자동차로 말하자면 연비가 점차적으로 상승하고 전기차가 나오고 자율주행이 나오는 혁신과 동일한 수준으로 관심사가 될수있죠. 순수 기계식으로 만드는 시계에서 그만큼 혁신이 나오기 힘드니까요(그만큼 한계가 뚜렸하죠). 이전에 제가 썼던 글링크입니다

https://mania.kr/g2/bbs/board.php?bo_table=freetalk&wr_id=4129500

WR
1
2021-09-28 20:51:34

좋은 댓글 감사드립니다.

2021-09-28 20:28:21

평생 시계 안차고 살았는데 확실히 앞으로도 찰일은 없을거 같습니다. 욕구가 전혀 동하지 않는데, 시장에 어필하는 코드에 동의하는 부분이 전혀 없더라구요. 글 읽으면서 한번 더 느끼게 되네요.  

2021-09-28 20:40:29

오래간만에 오토매틱 시계를 차봤는데, 이제 무거워서 못차겠더라구요.

2021-09-28 20:40:53

롤렉스는 사고 싶은데 줄 서긴 싫고 또 프리미엄 주고 사긴 싫고 해서 몇 년째 같은 상태 입니다. 과연 손에 쥘 날이 올지…허허허

WR
1
2021-09-28 20:47:31

저는 얼마 전에 아부 다비에서 운 좋게 손에 넣었습니다. 누가 예약했다가 취소했다고 하네요.  제가 예약 취소 후 15분만에 들어가서 샀습니다.  운이 아주 좋았네요.

https://mania.kr/g2/bbs/board.php?bo_table=freetalk&wr_id=4969203&sca=&sfl=mb_id%2C1&stx=gonzo83&page=2

2021-09-28 21:10:16

부럽습니다… 오스틴님은 해외에 계셔서 괜찮지만 제 경우는 이것저것 따져보니 해외에서 구매하더라도 귀국 때 관세를 내야하는 처지라 결국 국내 정식수입 사는게 낫더군요. ㅠ

2021-09-28 22:09:25

재밌는 내용이네요.
전 개인적으로 시계는 비지니스용으로만 사용하고 있네요..
IWC 랑 예거 사용중인데 비지니스 클래식 디자인으로 괜찮은거 같습니다

2021-09-29 12:30:23

해말턴 째마 처음 구매해서 차다가 애플워치 나왔길래 한 참 차다가 왠지 족쇄 같은 느낌이 들어서 다시 해밀턴 차고 있네요.

오메가 하나 정도 추가 하고 싶음. 오메가 구매해놓으면 가격이 크게 떨어지진 않겠죠?

1
2021-09-29 13:20:25

매니아에 시계 이야기를 보니 반갑네요 :)
조금 참견하자면,
태엽으로 구동하는 기계식 시계가 다시 수동과 자동식으로 나뉘며, 전기를 동력으로 하는 쿼츠는 자동식이라 하지 않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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