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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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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11-30 00:24:09

요즘에 70대인 아버지는 미드 파고에 빠져 있습니다.
실은 몇일전에 웨이브에서 영드인 라인오브듀티를 추천해드렸더니 새벽부터 밤까지 몇날 몇일을 보시더니 또 다른 재밌는 드라마를 보고 싶다고 하셔서 파고를 추천해 드렸습니다.
오늘 전화가 왔는데 너무 많이 봐서 눈이 침침해졌다고 하시더군요.

범죄라는 프리즘을 통해 미국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아주 통찰력있게 그려냈다. 잔인하고 폭력적이지만 대사들이 철학적이고 신학적이라면서 재밌다고 하셔서 기분이 뿌듯했습니다. 웨이브 이력을 보니 벌써 시즌 3로 넘어가셨네요.

아버지와는 묘하게도 문화적 취향이 일치해서 옛날부터 많은 것을 공유했습니다.
제가 중학교때는 영웅문을 같이 빌려다보면서 엄마한테 무협지만 보는 부자라며 비난을 받았고 수능이 끝나고 두달정도 도쿠가와 이에야스34권을 아버지와 같이 독파했습니다.
이제는 할아버지가 되셔서 미드에 빠지셨네요.

오늘 4살인 딸과 뽀로로를 같이 보는데 "엄마는 뽀로로를 잘 몰라. 아빠는 뽀로로를 좋아하니까 아빠랑 같이 보는게 재밌어"라고 하더군요.
뭐 썸네일만 봐도 내용을 알 정도로 꿰고 있긴 합니다.

문득 스친 생각인데 아버지도 이러셨던거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가 추천해주시고 선물해주신 도스토예프스키의 책들을 저는 아직도 읽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좋아하는 대부분의 것들을 좋아하셨죠.

아마도 틀림없이 저는 딸이 더 자라서 케이팝 남자아이돌을 좋아하면 같이 볼 것이고 저는 좋아하지 않는 소설인 찰리윙커 시리즈나 폴 오스터의 뉴욕3부작을 딸이 만약에 읽으면 저도 재밌게 다 읽을 것 같습니다.
Nba는 같이 보고 싶지만 딸에게는 이게 도스토예프스키같은 느낌일 수도 있겠죠.

이렇게 생각해보니 제 일생만큼의 긴세월동안 아버지가 어떤 마음으로 무협지부터 미드를 보아왔는지 조금 반전처럼 다가옵니다.

와이프가 예전부터 오빠랑 아버님은 어떻게 서로 사랑한다는 표현을 평생동안 한마디도 안해? 라며 의아해하면 대부분의 부자는 다 드라이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뽀로로를 같이 보며 제가 딸에게 가지는 마음이 아버지의 웨이브 이력을 보면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물론 저는 딸에게 표현을 훨씬 많이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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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0-11-30 00:14:26

묘하게 따뜻한 글이네요

WR
2020-11-30 06:11:04
감사합니다
2
2020-11-30 00:54:07

부자가 드라이 한 느낌은 있긴 하지만 바뀌어가고 있는거 같아요. 오은영 박사님 만세(?) 제 6살 딸도 젤다 시리즈 좋아합니다. 젤다 대재앙의 시대도 같이 하고 있어영...

2020-11-30 08:53:01

오오 따님이 젤다 시리즈를!
역시 저도 딸아이를 제 취향대로 끌어들여야 겠군요

1
2020-11-30 14:07:12

 따뜻한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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