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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레이커스 프랜차이즈 포지션별 랭킹 Top 28 - SF편 (ver.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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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12-28 21:30:30

Prologue

 

안녕하세요, 이번에는 SF편으로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다른 연재편은 아래 링크해두었습니다. 본 시리즈의 범례 및 프랜차이즈 간단 역사는 아래 PG편에 수록되어 있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PG편 :  | L.A 레이커스 프랜차이즈 포지션별 랭킹 Top 28 - PG편 (ver.2020.)  |  NBA Maniazine

 

SG편 :  | L.A 레이커스 프랜차이즈 포지션별 랭킹 Top 28 - SG편 (ver.2020.)  |  NBA Maniazine

 

PF편 :  | L.A 레이커스 프랜차이즈 포지션별 랭킹 Top 28 - PF편 (ver.2020.)  |  NBA-Talk

 

C편 :  | L.A 레이커스 프랜차이즈 포지션별 랭킹 Top 28 - C편 (ver.2020.)  |  NBA-Talk

 

본격적인 랭킹 소개에 앞서 28위 밖 선수들 중에서 나름대로 소개해줄 만한 선수들을 5명을 추려서 "Honorable Mention"이란 타이틀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28위 밖 선수들에게도 각각 잠정적인 랭킹은 있지만 여기에서 소개하는 순서는 그 순위와는 무관하며, 그냥 시대순으로 정렬했습니다.)


 

 

Honorable Mention

 

Jack Dwan

 

        

48년과 49년에 NBL과 BAA에서 잇달아 우승할 적의 멤버였던 잭 드완은 코트 위에서 주로 골밑의 조지 마이칸에게 공을 연결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Jim Holstein

 

 

52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은 짐 홀스타인은 2-3번 포지션을 두루 백업하며 세 시즌 동안 벤치에서 활약했고, 두 번의 우승을 맛보았습니다.

 

Corky Calhoun

 

        

70년대 중반에 두 시즌 동안 활약한 코키 칼훈은 탄탄한 수비력으로 정평이 났으며, 74-75시즌에 캐지 러셀이 부상으로 빠졌을 적에는 종종 스타팅으로도 출전했습니다.

 

Tom Abernethy

 

                

76 드래프트에서 3라운드 전체 43번으로 지명된 톰 애버네씨는 두 시즌 동안 백업 포워드로 뛰며 궂은일을 도맡았습니다.

 

Caron Butler

 

                

마이애미 히트에서 뛰다가 샤킬 오닐의 트레이드 맞상대로 합류한 커론 버틀러는 04-05시즌에 주전 3번으로 활약하며 평균 15.5득점, 5.8리바운드를 기록했습니다.

           


Minor Ranking

 

 

SF 28th : #_15  Bob Boozer

 

 

6-8, 215lbs SF/PF / 1시즌(66), 78경기

 

12.2득점, 7.0리바운드, 1.1어시스트, 48.4% 야투율

 

59 드래프트 전체 1픽 출신인 밥 부저는 신시내티 로얄즈, 뉴욕 닉스에서 활약하다가 64-65시즌을 마치고 L.A 레이커스로 이적했습니다. 65 파이널에서 보스턴 셀틱스에게 무릎을 꿇은 레이커스는 골밑 강화를 위해 슈팅가드 딕 바넷을 뉴욕에 내주는 대신 전천후 포워드인 그를 영입했죠. 그는 본 포지션은 4번이었지만 65-66시즌에 엘진 베일러가 무릎 부상의 여파로 제 컨디션이 아니었기에, 3번 포지션에서 베일러를 백업하는 역할을 주로 맡았습니다. 그는 탁월한 중거리 슈팅 능력과 포스트 득점력을 자랑했으며, 특히 러닝 훅슛이 일품이었죠. 또한 그는 골밑 수비와 리바운드 부문에서도 제 몫을 다하는 터프가이였습니다. 다만 코트 비전이 좋지 못해 좀처럼 패스를 하지 않는 단점도 있었죠.

 

정규 시즌에는 팀의 핵심 식스맨으로 제 몫을 다한 그는 플레이오프에서 베일러가 완전 부활함에 따라 롤이 다소 줄어들었습니다. 레이커스는 66 파이널에 다시 진출해 보스턴과 리벤지 매치를 벌였으나, 또다시 무릎을 꿇고 말았죠. 한편 그는 66-67시즌을 앞두고 신생팀 시카고 불스의 창단으로 인해 치러진 확장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으며 본의 아니게 레이커스를 떠나야 했습니다. 그는 초창기 시카고에서 에이스로 활약하며 올스타에도 뽑혔고, 커리어 마지막 해인 70-71시즌에는 밀워키 벅스에서 우승을 맛보기도 했죠. 그는 은퇴 후 통신회사인 벨 시스템에서 오랫동안 근무했으며, 2012년에 뇌동맥류로 인해 7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SF 27th : #_11  Wesley Johnson

 

 

6-7, 215lbs SF / 2시즌(14-15), 155경기

 

9.5득점, 4.3리바운드, 1.6어시스트, 0.8블록슛, 36.0% 3점슛률

 

10 드래프트에서 전체 4픽으로 뽑힌 바 있는 웨슬리 존슨은 버스트라는 평가를 받으며 루키 스케일의 4년차 옵션도 보장받지 못한 채 12-13시즌을 마치고 FA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L.A 레이커스가 1년 미니멈이라는 싼 금액으로 그를 쉽사리 영입할 수 있었죠. 13-14시즌에 그는 처음에는 벤치에서 시작했으나, 9경기 만에 스타팅 라인업에 올라서며 붙박이 주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는 걸출한 운동능력과 준수한 사이즈를 바탕으로 수비에서는 제 몫을 해주며, 특히 스윙맨 치고 블락슛 능력이 탁월하죠. 그는 중장거리에서 평균 정도의 슈터이긴 하나, 전반적으로 득점 가담이 떨어지는 편이고 다소 1차원적인 공격수입니다.

 

그는 오프시즌에 다시 FA가 되었지만 타 팀의 관심은 그리 받지 못했고, 결국 레이커스와 다시 1년 미니멈 계약을 체결했죠. 그는 14-15시즌에도 주로 주전 3번으로 기용되어 전년도와 엇비슷한 활약을 보여주었습니다. 한편 당시 하위권에 허덕이며 리빌딩에 기로에 놓인 레이커스는 그를 딱히 미래 플랜에 넣지 않았고, 결국 다시 FA가 된 그는 L.A 클리퍼스와 1년 미니멈 계약을 체결했죠. 그는 이후 클리퍼스에서 세 시즌을 뛴 뒤 뉴올리언즈, 워싱턴을 전전했으며, 최근에는 그리스의 파나티나이코스(Panathinaikos) 팀에서 뛰었습니다.

 


 

 

SF 26th : #_10  Vladimir Radmanovic

 

 

6-10, 227lbs SF/PF / 3시즌(07-09), 166경기

 

7.1득점, 3.1리바운드, 1.4어시스트, 40.0% 3점슛률(통산 1위)

 

세르비아 국적의 블라디미르 라드마노비치는 시애틀 슈퍼소닉스에서 여러 시즌 활약한 뒤 잠시 L.A 클리퍼스에 몸담았다가 05-06시즌을 마치고 FA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L.A 레이커스와 클리퍼스, 두 L.A 소재의 구단이 그를 두고 계약 쟁탈전을 벌였는데, 결국 레이커스가 5년 31mil으로 그를 잡았죠. 06-07시즌에 주로 벤치에서 백업 포워드로 뛴 그는 시즌 도중에 어깨 부상을 당했는데, 스노보딩을 타다가 다쳤음에도 이를 숨기려고 거짓말을 했다가 들통이 나서 망신을 당했습니다. 결국 그는 농구 외에 다른 위험한 스포츠를 금하도록 한 계약 조항을 위반한 것으로 간주되어 50만불의 벌금을 물어야 했죠.

 

07-08시즌에는 심기일전하며 루크 월튼과 치열하게 주전 3번 경쟁을 벌인 그는 41경기에 스타팅으로 출전했으며, 40.6%의 고감도 3점슛을 뽐냈습니다. 시즌 막판에는 주전 3번 자리를 굳힌 그는 플레이오프에도 전 경기에 선발 출장하며 팀의 파이널 진출에 일익을 담당했죠. 3-4번을 두루 볼 수 있는 장신 포워드인 그는 한 번 터지면 못 말리는 폭발력을 지닌 슈터였으며, 특히 코너 3점슛이 정확한 편이었습니다. 다만 슈팅 기복이 좀 심했고, 수비력과 리바운드 능력은 다소 떨어지는 편이었죠. 그는 08-09시즌에도 주전과 벤치를 오가며 활약하다가 시즌 도중에 애덤 모리슨 섀넌 브라운과 맞트레이드 되어 샬럿 밥캐츠로 이적했습니다. 이후 그는 여러 팀을 떠돌며 저니맨 커리어를 보내다가 12-13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습니다.

 


 

SF 25th : #_50 / #_70  Ed Fleming

 

 

6-3, 189lbs SF/SG / 3시즌(58-60), 170경기

 

7.4득점, 5.1리바운드, 1.6어시스트, 19.0분 출전

 

로체스터 로얄즈에서 뛰던 에드 플레밍은 57년 드래프트-데이 때 클라이드 로벨렛 딜에 끼어 미네아폴리스 레이커스로 이적했습니다. 50년대 초반 리그를 제패했던 레이커스는 조지 마이칸의 은퇴 이후에는 부진한 성적에 머물렀고, 결국 리빌딩을 위해 로체스터가 보유하고 있던 전체 1픽을 얻는 댓가로 팀의 간판스타인 로벨렛까지 파는 대형 딜을 단행했죠. (로벨렛 짐 팩슨 ⇔ 57 드래프트 1픽(핫 로드 헌들리 지명) 플레밍 밥 버로우 몽크 마이니키 아트 스포엘스트라) 57-58시즌에 주전과 벤치를 두루 오가며 전천후로 활약한 그는 평균 8.8득점, 6.8리바운드를 기록했습니다.

 

그는 당대에 아직 드물던 흑인 선수로, “도약하는 캥거루”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놀라운 탄력의 소유자였죠. 덕분에 그는 6-3의 키에도 불구하고 대학 시절 센터로 뛴 경험이 있었고, 인사이드에서 득점하는 요령도 갖추었습니다.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였던 그는 자신보다 더 큰 선수를 상대로 종종 리바운드를 채가기도 했죠. 이후 그는 레이커스 벤치에서 두 시즌 더 활약했으며, 59년에는 파이널 무대를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NBA를 떠난 후 EPBL이라는 리그에서 커리어를 보냈으며, 은퇴 후에는 윌킨스버그(Wilkinsburg) 고등학교에서 오랫동안 농구 코치를 지냈죠. 그는 2002년에 심장마비로 인해 6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SF 24th : #_23  Ed Kalafat

 

 

6-6, 245lbs SF/PF / 3시즌(55-57), 209경기

 

7.1득점, 5.7리바운드, 1.5어시스트, 20.9분 출전

 

미네소타 대학 출신인 에드 캘러팟은 54 드래프트에서 전체 9번으로 미네아폴리스 레이커스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그는 크로아티아계 이민자였는데, 같은 크로아티아계인 레이커스의 스타 조지 마이칸이 그를 고교 시절부터 눈여겨보고 후견인을 자처했죠. 마이칸은 그를 미네소타 대학으로 진학하도록 알선하고 후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레이커스가 그를 드래프트하는 데에도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는 루키 시즌에는 4-5번을 두루 오가며 평범한 백업 빅맨으로 활약했으나, 55-56시즌부터는 은퇴한 짐 폴라드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더러 3번으로도 기용되며 출장시간을 늘려갔죠. 대학 시절에 죽 센터를 봤던 그는 림 주변에서 플레이하는 정통 빅맨에 가까웠는데, 당시에는 3번과 4번 포지션 간의 역할 구분이 별로 없어서 아마추어 시절 센터였던 선수들이 프로에서는 더러 3번까지 커버하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그는 주전과 벤치를 두루 오가며 골밑 득점과 리바운드에서 적잖은 기여를 하였으며, 플레이오프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죠. (56년과 57년 플레이오프 총 8경기에서 평균 12득점, 52.6% 야투율) 한편 56-57시즌을 마치고 레이커스는 간판스타 클라이드 로벨렛을 트레이드하며 대대적인 리빌딩에 들어갔고, 그 역시 코키 데블린과 맞트레이드 되어 포트웨인 피스톤즈로 이적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레이커스 외의 구단에서는 선수 생활을 이어갈 마음이 없었던 그는 곧바로 은퇴를 선언하고 군에 입대했죠. 그는 육군 대위까지 임관했고 제대한 후에는 은행원으로 일했으며, 2019년에 8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SF 23th : #_24 / #_30 / #_34  George Lynch

 

 

6-8, 218lbs SF/PF / 3시즌(94-96), 203경기

           

6.5득점, 4.0리바운드, 1.0어시스트, 1.0스틸

 

노스 캐롤라이나 대학이 93년에 NCAA 토너먼트에서 우승할 때 멤버였던 조지 린치는 93 드래프트에서 전체 12번으로 L.A 레이커스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그는 시즌 초반에는 벤치에서 나왔지만, 시즌 중반부터는 덕 크리스티를 밀어내고 스타팅 3번으로 기용되었죠. 루키 시즌에 평균 9.6득점, 5.8리바운드를 올린 그는 공격 리바운드(평균 3.1개)를 수비 리바운드(평균 2.7개)보다 더 잡아내는 등 에너지가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듬해인 94-95시즌에 그는 세드릭 세발로스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고 벤치로 돌아갔으며, 시즌 도중 발 부상에 시달리며 56경기에 출전하는 데 그쳤죠.

 

포지션 대비 뛰어난 리바운더였던 그는 마치 빅맨처럼 적극적으로 보드 싸움에 나섰으며, 근성과 허슬이 항상 철철 넘쳤습니다. 그는 공격력은 다소 부족했지만 대인 수비력 하나만큼은 뛰어났으며, 특히 빠른 손을 바탕으로 한 스틸 능력이 출중했죠. 그는 공격 리바운드 후 풋백이나 간간이 던지는 중거리 슛 등으로 주로 득점을 올리곤 했습니다. 95-96시즌에도 벤치에서 묵묵히 뛴 그는 오프시즌에 밴쿠버 그리즐리스로 트레이드되고 말았는데, (린치+앤쏘니 필러+2라운드 픽 2개 ⇔ 2라운드 픽 2개) 당시 레이커스는 거물 FA였던 샤킬 오닐을 영입할 샐러리를 비우기 위해 린치와 필러, 두 롤 플레이어를 밴쿠버에 그냥 넘겨주다시피 한 거였죠. 이후 그는 필라델피아, 뉴올리언즈 등지에서 커리어를 보냈으며, 01년 파이널에서는 필라델피아 소속으로 친정팀 레이커스와 맞대결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은퇴 후 대학 무대에서 지도자의 길을 걸은 그는 현재 클락 애틀란타(Clark Atlanta) 대학의 감독으로 재직 중입니다.

 


 

 

SF 22th : #_3  Trevor Ariza

 

 

6-8, 215lbs SF / 2시즌(08-09), 106경기

 

8.3득점, 4.1리바운드, 1.7어시스트, 1.5스틸(통산 6위)

 

07-08시즌에 올란도 매직 소속으로 뛰던 트레버 아리자는 시즌 초반에 브라이언 쿡 + 모리스 에반스와 맞트레이드 되어 L.A 레이커스로 이적했습니다. 그는 평범한 벤치 멤버로 기용되다가 24경기만에 발 부상을 당해 잔여 시즌을 결장해야 했으며, 플레이오프 도중에 겨우 돌아왔지만 미미한 활약에 그쳤죠. 이듬해인 08-09시즌에도 그는 벤치에서 시즌을 시작했지만 점차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출전 기회를 늘려갔습니다. 당시 블라디미르 라드마노비치와 루크 월튼이 번갈아 가며 주전 3번으로 출전했으나, 정작 비중은 아리자가 제일 컸죠. 결국 시즌 막판에는 아리자가 확고하게 주전 3번으로 올라섰으며, 플레이오프까지 그 기세를 이어갔습니다. 그는 훌륭한 체격조건과 출중한 운동능력, 넘치는 에너지를 바탕으로 수비에서 돋보이는 활약을 펼쳐주었죠. 게다가 그는 당시만 해도 외곽슛 능력이 다소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었지만, 정작 플레이오프에서는 47.6%의 고감도 3점슛 감각을 뽐내기도 했습니다.

 

그는 플레이오프 내내 공수에서 기대 이상의 임팩트를 보여주며 팀 우승에도 혁혁하게 공헌했고, 플레이오프를 통해 한 단계 스텝-업한 모습을 보여준 덕분에 오프시즌에 FA가 되자 주가가 급등했죠. 레이커스 구단은 그와 재계약을 희망했지만 협상 과정에서 난항이 계속되었고, 결국 그는 휴스턴 로케츠와 새로이 5년 34mil의 계약을 맺으며 레이커스와 결별했습니다. 그를 놓친 레이커스는 그 대안으로 휴스턴 소속이었던 론 아테스트를 FA로 영입했는데, 플레이오프 컨퍼런스 세미-파이널에서 치열한 접전을 벌였던 두 팀이 서로 주전 3번을 맞바꾼 셈이었죠. 이후 그는 뉴올리언즈, 워싱턴, 휴스턴 등지에서 뛰며 리그의 대표적인 3 & D 플레이어로 명성을 날렸습니다. 그는 이번 오프시즌에만 세 차례 트레이드를 거치며 현재 오클라호마시티 썬더 소속으로 있는데, 이 때문에 커리어 동안 가장 많이 트레이드된 기록(10번)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종전은 크리스 개틀링과 데일 엘리스의 8회)

                          


 

 

SF 21th : #_42  Connie Hawkins

 

                               

6-8, 210lbs SF/PF / 2시즌(74-75), 114경기

 

11.0득점, 6.3리바운드, 4.4어시스트(통산 9위), 0.9블록슛, 1.4스틸(통산 11위)

 

60년대 말~70년대 초반에 ABA와 NBA 두 리그를 주름잡던 코니 호킨스는 피닉스 선즈를 대표하던 간판스타였으나, 73-74시즌 초반에 키스 에릭슨 + 2라운드 픽과 맞트레이드 되어 L.A 레이커스로 이적했습니다. 그는 이전 시즌까지도 올스타 포워드였으나 근 몇 년 간 꾸준히 하향세를 겪던 중이었고, 마침 윌트 체임벌린이 떠난 레이커스에서는 또 다른 스타급의 네임 밸류가 필요했죠. 그는 팀의 주전 3번으로 뛰며 평균 12.8득점, 7.4리바운드, 5.3어시스트를 기록했는데, 이름값에 비하면 다소 아쉬워도 다방면에서 올-라운드한 활약이었습니다.

 

그는 한창때 폭발적인 운동능력과 현란한 개인기로 코트를 뒤흔들었으며, 당대 최고의 아이솔레이션 공격수 중 한 명이었죠. 그는 아마 시절에 억울하게 승부 조작 가담 누명을 뒤집어쓰는 바람에 한창때인 20대 초반에 프로로 뛰지 못하고 길거리와 묘기 농구단을 전전해야 했으나, 그로 인해 뉴욕 길거리 농구의 전설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ABA의 출범으로 뒤늦게 프로로 진출해 첫 시즌에 시즌 MVP+플레이오프 MVP+우승까지 석권했고 NBA로 옮긴 후에도 평균 20득점 이상의 득점력을 자랑했지만, 레이커스로 올 무렵에는 고질적인 무릎 문제로 운동능력을 많이 잃은 상태였죠. 게다가 타고난 재능을 지녔음에도 워낙 자기 관리가 엉망이었기에 기량 하락이 눈에 띄게 빨랐습니다. 그는 74-75시즌에 무릎 문제로 43경기에 출장하는 데 그쳤고 평균 득점도 8점대까지 떨어지고 말았죠. 결국 그는 시즌을 마치고 고작 3라운드 픽 하나를 받는 조건으로 애틀란타 호크스로 트레이드되었고, 호크스에서 한 시즌을 더 보낸 뒤 은퇴했습니다. 그는 1992년에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으며, 말년에는 대장암으로 투병하다가 2017년에 7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SF 20th : #_0  Orlando Woolridge

 

 

6-9, 215lbs SF/PF / 2시즌(89-90), 136경기

 

11.1득점, 3.3리바운드, 1.1어시스트, 0.8블록슛, 51.4% 야투율(통산 16위)

 

80년대 초중반에 시카고 불스에서 마이클 조던과 함께 원-투 펀치로 활약한 바 있는 올란도 울리지는 뉴저지 네츠 소속이던 87-88시즌 도중에 코카인 복용이 적발되어 시즌을 접고 약물 재활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는 오프시즌에 FA가 되었는데, 마침 L.A 레이커스가 마약 문제로 주가가 떨어진 그를 비교적 헐값인 50만불에 영입할 수 있었죠. 그간 커리어에서 주로 스타팅으로 출전했던 그는 2년 연속 우승팀인 화려한 레이커스 스쿼드에서는 벤치 식스맨으로 롤을 바꿨습니다. 그는 탁월한 사이즈와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종종 4번까지 소화할 수 있었으며, 득점 본능이 돋보이는 공격형 포워드였죠. 그는 레이커스의 런 & 건 오펜스에서 속공 피니셔 역할을 잘 수행해 냈으며, 화려한 슬램덩크로 팬들의 이목을 즐겁게 해주었습니다. 다만 기럭지와 탄력을 앞세운 블락슛 능력은 돋보였으나 그 외 전반적인 수비력은 약점투성이였죠. 그는 본래 멘탈이 다소 들쭉날쭉한 선수였으나, 레이커스 시절에는 그나마 팀에 잘 적응하며 비교적 성실하게 뛰었습니다.

 

88-89시즌에 벤치에서 평균 9.7득점을 올려준 그는 그해 파이널 무대까지 밟아보게 되었지만, 레이커스는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에게 스윕패를 당하며 3연패 달성에 실패하고 말았죠. 이듬해인 89-90시즌에 그는 평균 12.7득점에 55.6%의 야투율(리그 5위)을 기록하며 팀의 벤치 득점을 이끌었으나, 시즌을 마치고는 미래의 2라운드 픽 2개와 맞트레이드 되어 덴버 너게츠로 이적했습니다. 이후 그는 덴버에서 평균 25.1득점을 넣으며 반짝 활약한 뒤, 디트로이트, 필라델피아 등을 전전하다가 이탈리아 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마쳤죠. 그는 은퇴 후에 하부 리그와 WNBA에서 코치직을 지냈고, 말년에는 심장병으로 고생하다가 2012년에 5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SF 19th : #_18  Arnie Ferrin

 

 

6-4, 180lbs SF / 3시즌(49-51), 178경기

 

5.8득점, 4.0리바운드, 1.6어시스트, 68.6% 자유투율

 

※ 리바운드는 50-51시즌부터 집계되어 총 68경기로 평균값을 산출함

 

유타 대학 1학년 시절인 1944년에 팀을 NCAA 토너먼트 우승으로 이끌고 파이널 포 MOP를 차지한 바 있는 아니 페린은 48 드래프트에서 미네아폴리스 레이커스의 지명을 받으며 프로 무대에 데뷔했습니다. 전에는 NBL 소속이었다가 48-49시즌부터 BAA로 팀을 옮긴 레이커스는 당대 최강 센터 조지 마이칸을 앞세워 리그 우승을 거머쥐었죠. 팀의 주전 포워드 롤을 맡은 페린은 마이칸을 도와 골밑을 지키며 평균 7.3득점을 올려주었습니다. 대학 시절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이름을 날린 그는 양손을 모두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테크니션이었죠. 그는 특히 원-핸드 슛에 능했는데, 언더핸드로 던지는 스쿱 샷이 주무기였습니다. 그는 레이커스에서는 주로 리바운드, 수비 등 궂은일을 도맡으며 묵묵히 팀의 승리에 기여했죠.

 

49-50시즌에 그는 루키 번 미켈슨에게 주전 포워드 자리를 내주고 백업으로 내려갔으며, 팀의 연속 우승으로 재차 반지를 손에 넣었습니다. 이듬해인 50-51시즌에 그는 벤치에서 평균 5.2득점, 4리바운드를 올리며 꾸준히 활약했으나, 레이커스는 서부 디비전 파이널에서 로체스터 로얄즈에게 일격을 당하며 3연패에는 실패했죠. 그는 시즌을 마치고 3년의 짧은 프로 경력을 뒤로 한 채 은퇴하였으며, 이후에는 골프 선수로 활동했습니다. 훗날 그는 ABA 소속의 유타 스타스(Utah Stars)에서 단장직을 역임하였으며, 모교인 유타 대학에서 스포츠 관리직으로 여러 해 근무하기도 하였습니다.

 


 

 

SF 18th : #_0  Nick Young

 

 

6-7, 210lbs SF/SG / 4시즌(14-17), 220경기

 

13.1득점, 2.3리바운드, 1.0어시스트, 0.6스틸, 37.7% 3점슛율(통산 9위), 465개 3점슛(통산 7위), 84.6% 자유투율(통산 9위)

 

워싱턴 위저즈에서 한창 활약하다가 이후 클리퍼스, 필라델피아를 전전한 풍운아 닉 영은 13-14시즌을 앞두고 L.A 레이커스와 1년 미니멈 계약을 맺었습니다. 처음 레이커스가 그를 영입했을 때 그리 큰 기대는 없었으나, 그는 벤치에서 특급 식스맨으로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주었죠. 13-14시즌에 그는 팀 내 최고이자 본인의 커리어-하이인 평균 17.9득점을 기록했고, 벤치에서 나왔음에도 두 차례나 40득점 이상을 넣기도 하였죠. 기대 이상의 성과로 레이커스 프런트에 믿음을 보여준 그는 오프시즌에 4년 21.5mil의 쏠쏠한 계약을 따냈습니다.

 

그는 외곽에서 줄기차게 슛을 던져줄 수 있는 대담성과 폭발력을 겸비한 슈터죠. 다만 슛 기복이 심하고 난사 기질이 있으며, 본인의 슛 이외에 다른 플레이에는 무심한 1차원적인 캐릭터입니다. 14-15시즌에 무릎 부상 등으로 42경기 출전에 그치며 주춤했던 그는 급기야 15-16시즌에는 최악의 부진에 허덕이고 말았죠. (평균 7.3득점, 야투율 33.9%) 당시 그는 팀 동료인 루키 디안젤로 러셀이 그의 외도 사실을 일반에 부주의하게 공개하는 바람에 약혼자인 유명 래퍼 이기 아젤리아와 결별하고, 이 사건 때문에 트레이드 루머까지 도는 등 악재에 시달렸습니다. 본 포지션은 2번인데 레이커스에선 그간 사정상 3번을 많이 보았던 그는 16-17시즌에는 주전 2번으로 스타팅 라인업에 발탁되며 평균 13.2득점에 40.4%의 고감도 3점슛 성공률로 반등을 이뤄냈죠. 그는 오프시즌에 다시 FA가 되자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와 1년 계약을 맺으며 레이커스를 떠났고, 17-18시즌에 워리어스의 우승으로 반지를 손에 넣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18-19시즌에 덴버에서 잠시 뛰다가 방출된 것을 끝으로 리그를 떠났습니다.

 


 

 

SF 17th : #_14  Brandon Ingram

 

 

6-8, 190lbs SF/SG / 3시즌(17-19), 190경기

 

13.9득점, 4.7리바운드, 2.9어시스트, 0.6블록슛

 

듀크 대학 출신의 브랜든 잉그램은 16 드래프트에서 벤 시몬스에 이어 전체 2번으로 L.A 레이커스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그는 호리호리한 체격에 스코어러로서 충만한 포텐셜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으며 “제2의 케빈 듀란트”로 기대를 모았으나, 너무 몸이 말라서 NBA 수준의 바디를 갖추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받았죠. 루키 시즌 초반에 그는 어린 나이 탓인지 다소 헤매는 모습이 역력했으나, 팀에서는 시즌 중반부터 그를 붙박이 주전으로 내보내며 전적으로 밀어주었습니다. 이에 한층 경기력이 나아진 그는 시즌 후반기 21경기에서 평균 13.2득점을 올려주었고, 올-루키 세컨드 팀에도 선정되었죠. 2년차인 17-18시즌에 그는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며 평균 16.1득점, 5.3리바운드를 올려주었고, 특히 3점슛을 전년 대비 1할 가까이 향상시켰습니다. (29.4% → 39%) 다만 시즌 후반에 불의의 고관절 부상과 뇌진탕 증세로 여러 경기 빠지면서 총 59경기에 출장하는 데 그쳤죠.

 

그는 가드처럼 볼을 잘 다룰 수 있어 레이커스 시절엔 가끔 포인트가드로 기용되기도 했으며, 사이즈와 핸들링을 바탕으로 한 골밑 돌파가 위력적입니다. 또한 그는 수비 시에 자신의 신체적인 장점(포지션 대비 큰 키와 긴 윙스팬)을 잘 활용할 줄 알며, 엘리트 퍼리미터 디펜더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죠. 한편 18-19시즌에 슈퍼스타 르브론 제임스가 팀에 합류하자 그는 본연의 포지션인 3번보다 가드 포지션을 더 많이 소화면서 조금 주춤했으나, 시즌을 소화할수록 페이스가 점점 올라오며 2월부터 3월 초까지 출전한 11경기에서 평균 22.5득점, 6.1리바운드를 올려주었습니다. 하지만 폼이 한창 올라왔을 때 아쉽게도 팔 부위에 혈전이 발생하며 시즌을 접어야 했죠. 그리고 오프시즌에는 앤써니 데이비스 트레이드에 핵심 카드로 쓰이며 론조 볼, 조쉬 하트 등 동료들과 함께 뉴올리언즈 펠리컨즈로 이적했습니다.

 

그는 이번 시즌 뉴올리언즈에서는 에이스로 우뚝 서며 평균 24.3득점을 올리고 올스타에도 선발되었으며, 자유투와 3점슛 등 레이커스 시절 아쉬웠던 몇몇 부분에서는 눈부신 향상을 이뤄내며 (자유투율 : 66.2% → 85.1% / 3점슛률 : 32.9% → 39.1%) MIP(기량발전상)를 수상하기도 했죠. 또한 이번 오프시즌에 뉴올리언즈와 5년 158mil의 맥시멈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SF 16th : #_32 / #_33  Cazzie Russell

 

 

6-5, 218lbs SF/SG / 3시즌(75-77), 196경기

 

14.5득점, 3.0리바운드, 2.3어시스트, 0.8스틸, 47.4% 야투율, 87.7% 자유투율(통산 1위)

 

66 드래프트 전체 1픽 출신으로 70년대 초반에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서 스코어러로 활약하던 캐지 러셀은 73-74시즌을 마치고 FA가 되자 워리어스를 떠나 L.A 레이커스에 새로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FA 제도 도입 초장기라 그의 이적은 네임-밸류 있는 스타가 FA로 팀을 옮긴 거의 첫 번째 케이스였죠. 또 그때만 해도 FA 보상 제도가 있었기에 레이커스는 그를 영입하는 대가로 76년 1라운드 픽(훗날 8픽이 되어 로버트 패리쉬 지명)을 워리어스에 넘겨주었습니다. 74-75시즌에 그는 불의의 무릎 부상으로 시즌 전반을 날려버리는 통에 40경기 출전에 그쳤으며, 주전과 벤치를 오가면서 평균 15.7득점을 올려주었죠. 이듬해인 75-76시즌에 그는 루키 포워드 돈 포드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고 주로 벤치에서 식스맨으로 활약하면서 평균 11.8득점을 넣었고 89.2%의 고감도 자유투 성공률(리그 3위)를 기록했습니다.

 

그는 당대 최고의 미드-레인지 점프 슈터 중 한 명이었으며, 자유투도 매우 정확했죠. (프랜차이즈 통산 자유투 성공률 1위) 특히 그는 한 번 불이 붙으면 못 말리는 핫-핸드였기에 짧은 시간 코트에 나와서도 소나기 득점을 퍼부을 수 있었습니다. 다만 걸출한 득점력에 비해 수비력은 다소 부족했으며, 여러모로 식스맨 롤에 적합한 스타일이었죠. 76-77시즌에 다시 스타팅 라인업으로 복귀한 그는 평균 16.4득점을 올리며 팀의 2옵션 역할을 그럭저럭 수행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오프시즌에 레이커스 구단이 떠오르는 신예 포워드 자말 윌크스를 FA로 영입함에 따라 33살이 된 노장 슈터의 입지는 다소 불투명해졌죠. 결국 그는 77-78시즌을 앞두고 레이커스에서 방출되고 말았고, 이후 시카고 불스에서 한 시즌을 더 뛴 뒤 하부 리그를 전전하며 커리어를 마쳤습니다. 은퇴 후 지도자의 길을 걸은 그는 고등학교와 대학, 하부 리그 등을 오가며 코칭을 했고, 애틀란타 호크스에서 두 시즌 간 어시스턴트 코치를 지내기도 했죠. 현재 그는 플래글러 칼리지(Flagler College)에서 여자 농구팀 감독을 맡고 있습니다.

 


 

 

SF 15th : #_4  Adrian Dantley

 

 

6-5, 208lbs SF/PF / 2시즌(78-79), 116경기

 

18.3득점(통산 12위), 6.4리바운드, 2.8어시스트, 1.1스틸, 51.5% 야투율(통산 15위), 82.5% 자유투율(통산 16위), 19.1 PER(통산 17위)

 

신인왕 출신의 2년차 젊은 포워드 애드리언 댄틀리는 인디애나 페이서스에서 뛰던 77-78시즌 초반에 평균 26.5득점의 고감도 득점 행진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카림 압둘-자바를 보좌할 2옵션 공격수를 찾던 L.A 레이커스가 그에게 손을 뻗치며 시즌 도중에 2 : 2 딜을 통해 레이커스로 이적했죠. (댄틀리 + 데이브 로비쉬 ⇔ 제임스 에드워즈 + 얼 테이텀 + 현금) 그해 남은 56경기에서 평균 19.4득점, 7.2리바운드를 기록한 그는 종종 4번 포지션까지 소화하며 골밑에서 분전했습니다.

 

그는 유연한 풋워크와 번개 같은 퍼스트 스텝을 앞세워 골밑으로 파고들어 득점을 올리는 데 도사였죠. 특히 그는 출중한 파울 유도 능력과 정확한 자유투를 바탕으로 77-78시즌에 리그 자유투 성공과 시도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680개 시도, 541개 성공, 79.6% 성공률) 그는 6-5의 그리 크지 않은 키에도 골밑에서 상대와 부딪히는 걸 꺼리지 않았고, 중거리 슛도 정확해 수비하기 까다로운 공격수였죠. 다만 공격력에 비해 수비는 많이 아쉬웠고 볼-호그 기질도 강했습니다.

 

한편 이듬해인 78-79시즌에 그는 전년보다 조금 주춤한 성적(평균 17.3득점)에 그쳤고, 그와 포지션이 같은 자말 윌크스가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며 그의 입지를 위협했죠. 압둘-자바를 보좌할 빅맨 자원은 부족한데 주전급 3번을 둘씩이나 데리고 있는 데 부담을 느낀 레이커스는 오프시즌에 그를 유타 재즈로 보내는 대신 왕년의 올스타 4번 스펜서 헤이우드를 영입했습니다. 그런데 헤이우드는 불성실한 태도로 트러블만 일으키다가 한 시즌 만에 방출된 반면, 댄틀리는 유타에서 6번의 올스타, 2번의 득점왕에 오르며 둘의 명암이 완전히 엇갈렸죠. 은퇴 후에는 지도자의 길을 걸은 그는 덴버 너게츠에서 어시스턴트 코치로 재임했는데, 조지 칼 감독이 암으로 투병한 09-10시즌에는 잠시 임시 감독직을 맡기도 했습니다. 그는 2008년에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으며, 현재는 일선에서 물러나 조용히 아이들에게 농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Major Ranking

 

 

SF 14th : #_41  Glen Rice

 

                       

                               

90년대를 대표하는 공격형 3번으로, 올스타에도 세 차례 뽑힌 바 있는 샬럿 호네츠의 글렌 라이스는 98-99시즌 도중에 트레이드를 통해 L.A 레이커스로 이적했습니다. 당시 레이커스는 에디 존스와 코비 브라이언트를 나란히 2, 3번 주전으로 기용하고 있었는데, 두 선수 모두 본 포지션이 2번이다 보니 다소 동선이 겹치는 부분이 있었죠. 그러자 레이커스는 더 젊은 코비를 미래의 주전 2번으로 낙점하고는 존스와 엘든 캠벨을 묶어서 샬럿의 올스타 3번 라이스를 영입하는 과감한 딜을 단행했습니다. (존스 + 캠벨 ⇔ 라이스 + B.J 암스트롱 + J.R 리드) 이 딜로 인해 레이커스는 포지션 간 균형을 맞추며 우승을 위한 마지막 퍼즐을 완성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죠.

 

팔꿈치 부상으로 개막 이전부터 빠져있다가 트레이드 후 레이커스 소속으로 코트에 복귀한 라이스는 27경기에서 평균 17.5득점을 올려주었는데, 샬럿에선 부동의 에이스였지만 레이커스에선 샤킬 오닐, 코비에 이어 3옵션 롤을 맡았기에 평균 득점이 전년 대비 5점 가까이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레이커스의 성적 역시 라이스 영입 후 오히려 하락했고 (영입 전 15승 6패 ⇒ 영입 후 16승 13패) 플레이오프에서도 2라운드에서 샌안토니오 스퍼스에게 스윕패를 당하고 말았죠. 라이스는 안정적인 슈팅으로 팀의 득점을 도왔지만 약한 수비력 때문에 상대에게 점수를 내주는 일도 많았고, 이 때문에 레이커스 팬들은 탄탄한 수비력과 화려한 플레이스타일을 자랑했던 전임자 에디 존스를 그리워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오프시즌에 레이커스 구단은 1년 7mil의 팀 옵션을 행사하며 라이스를 1년 더 붙잡았는데, 내심 레이커스가 팀 옵션을 포기하고 자신에게 거액의 장기 계약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했던 그는 큰 실망감을 표시했죠. 99-00시즌에 그는 전년보다 더 하락한 평균 15.9득점에 그쳤으나 레이커스는 그해 파이널에서 인디애나 페이서스를 꺾고 드디어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시즌 종료 후 라이스는 FA가 되었지만 그와 레이커스 구단 모두 재계약에 회의적이었기에, 결국 그는 복잡한 4각 딜에 끼어 사인 & 트레이드의 형태(4년 36mil의 계약 체결)로 뉴욕 닉스로 이적했죠. 이후 줄곧 내리막을 걸은 그는 휴스턴, 클리퍼스를 전전하다 03-04시즌을 끝으로 은퇴했습니다. 현재 그는 지포스 파이츠(G-Force Fights)라는 MMA(종합격투기) 팀의 구단주로 있죠. 한편 그의 아들인 글렌 라이스 주니어 역시 리그에서 두 시즌을 뛴 경력이 있습니다.

                          


 

 

SF 13th : #_3  Devean George

 

 

 

3부 리그 소속인 옥스버그(Augsburg) 대학 출신의 데빈 조지는 99 드래프트에서 전체 23번으로 L.A 레이커스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그는 2년차 때까지 미미한 출전시간에 그쳤으나, 밀레니엄 레이커스의 일원인 덕분에 연달아 우승 반지를 획득하는 행운을 안았죠. 그는 3년차 때인 01-02시즌부터 평균 20분 이상 기용되며 로테이션 멤버로 중용되었고, 그해 레이커스가 3연패를 달성함에 따라 데뷔이래 3년 연속 우승을 맛보았습니다. 그는 3번으로서 꽤 좋은 신체 조건을 바탕으로 종종 4번까지 수비할 수 있었고, 간간이 외곽에서 3점슛을 던져줄 수 있었죠. 그는 전형적인 3 & D 플레이어로서 늘 수비와 궂은일에 앞장서며 묵묵히 제 몫을 다했습니다.

 

한편 그가 01-02시즌을 마치고 FA가 되자 레이커스 구단은 그의 꾸준함과 성실성을 높이 사 4년 18.5mil에 재계약을 체결했죠. 그는 02-03시즌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주전 3번인 릭 팍스가 발목 부상으로 아웃되자 이후 경기부터 땜빵 주전으로 활약했습니다. 이듬해인 03-04시즌에도 팍스가 지난 시즌 부상의 여파로 자주 결장하자, 그는 스타팅으로 48경기를 대신 출전하며 그 공백을 메웠고, 플레이오프에서도 주로 선발 라인업으로 출장했죠. 그는 당시 지나치게 화려했던 레이커스의 선발 라인업(샤킬 오닐-코비 브라이언트-게리 페이튼-칼 말론)에서 유일하게 인간미 넘치는 롤 플레이어였습니다. 한편 그는 04-05시즌을 앞두고 발목이 좋지 않아 수술을 받는 바람에 내내 부상자 명단에 있다가 시즌 말미에 겨우 복귀해 고작 15경기를 뛰었죠. 05-06시즌을 마치고 다시 FA가 된 그는 이번에는 달라스 매버릭스와 계약을 체결하며 레이커스를 떠났습니다. 이후 무릎 부상에 시달리며 내리막 커리어를 걸은 그는 09-10시즌까지 리그에서 활약했으며, 11-12시즌을 앞두고 리그 복귀를 추진했다가 무산되자 은퇴했죠. 현재 그는 고향인 미네아폴리스에서 임대주택 관련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SF 12th : #_4  Luke Walton

 

 

 

레전드 센터 빌 월튼의 아들로 유명한 루크 월튼은 애리조나 대학을 졸업하고 03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전체 32번으로 L.A 레이커스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그는 루키 시즌에 벤치에서 미미하게 10분 남짓 출전했으나,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와 맞붙은 그해 파이널 2차전에서 8개의 어시스트로 승리에 기여하는 깜짝 활약을 펼치기도 했죠. 이후 서서히 출장시간을 늘려간 그는 05-06시즌 막판부터 주전 라인업에 올라갔고, 그해 플레이오프에서 평균 12.1득점, 6.4리바운드를 올리며 선전했습니다. 이듬해인 06-07시즌에 그는 풀-타임 주전 3번으로 중용되며 평균 11.4득점, 5리바운드, 4.3어시스트를 기록했고, 38.7%의 정교한 3점슛 성공률을 자랑했죠. 이러한 인상적인 활약 덕에 그는 오프시즌에 레이커스와 6년 30mil의 장기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07-08시즌에 그는 몸값에 못 미치는 실망스러운 활약에 그쳤고, 주전 자리도 블라디미르 라드마노비치에게 내주고 말았죠. 3-4번을 오가는 트위너 포워드인 그는 아버지에 비하면 사이즈와 운동능력은 지극히 평범했지만, 농구 센스 하나만큼은 아버지로부터 제대로 물려받았습니다. 그는 웬만한 포인트가드 못지않은 코트 비전을 바탕으로 종종 날카로운 어시스트를 찔러주곤 했으며,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 성실한 팀 플레이어였죠. 다만 종종 신체 능력이 두뇌를 따라가지 못하는 한계를 보여주곤 했으며, 외곽슛 능력도 꾸준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08-09시즌에도 라드마노비치와 치열한 주전 경쟁을 했으나, 결국 주전 자리는 트레버 아리자의 몫이 되었죠. 그래도 그해 레이커스의 우승으로 반지를 손에 넣음에 따라 리그 역사상 부자(父子)가 반지를 획득한 3번째 사례가 되었습니다. (1번째 : 맷 구카스 시니어-주니어, 2번째: 릭 배리-브렌트 배리) 이듬해인 09-10시즌에 그는 허리 부상에 시달리며 29경기 출전에 그쳤지만, 레이커스의 백-투-백 우승으로 인해 2번 이상 우승을 맛본 첫 부자가 되었죠. (아버지 빌 월튼은 77년에 포틀랜드, 86년에 보스턴 소속으로 우승 경험함. 또 다른 사례는 마이클 탐슨-클레이 탐슨)

 

이후 로테이션에서 밀려나 벤치를 달구던 그는 11-12시즌 트레이드 데드라인 때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로 트레이드되며 9년간 몸담은 레이커스를 떠났고, (월튼+제이슨 카포노+1라운드 픽 ⇔ 라몬 세션즈+크리스챤 에옌가) 한 시즌을 더 뛴 뒤 커리어를 마쳤습니다. 은퇴 후 곧바로 지도자의 길을 걸은 그는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서 어시스턴트 코치로 재직하던 15-16시즌에는 스티브 커 감독이 허리 수술로 장기 결장하자 임시 감독직을 맡아 시즌 최다승 신기록(73승) 달성에 일조하기도 했죠. (임시 감독 재임 중엔 39승 4패 기록) 그는 이듬해인 16-17시즌에 친정팀 레이커스의 감독으로 전격 부임했으나 세 시즌 동안 팀을 끝내 플레이오프에 올리지 못한 채 경질되었습니다. 현재 그는 새크라멘토 킹스의 감독으로 재직 중입니다.

 


 

 

SF 11th : #_15 / #_24  Dick Schnittker

 

 

 

딕 슈니트커는 50-51시즌에 워싱턴 캐피탈즈(Washington Capitols)에서 프로 데뷔를 했으나, 소속팀 캐피탈즈는 그해 경영난으로 시즌 도중 파산하고 말았습니다. 이에 그는 군에 입대해 한국전에 참전했고, 그의 권리는 파산 드래프트를 통해 미네아폴리스 레이커스로 넘어갔죠. 1953년에 제대한 그는 마침 플레이오프 기간 도중에 레이커스에 합류했다가 그해 레이커스가 우승함에 따라 행운의 반지를 얻게 되었습니다. 리그 역사상 정규 시즌에 뛰지 않은 채 플레이오프만 뛰고서 우승을 맛본 사례는 그가 유일하죠. 53-54시즌에는 주로 백업 4번 롤을 맡은 그는 레이커스의 연속 우승으로 인해 또 하나의 반지를 추가했습니다. 이후 조지 마이칸이 은퇴하면서 레이커스의 우승 신화도 막을 내렸지만, 슈니트커는 점차 출장시간이 늘어나며 팀 내 입지가 커졌죠.

 

대학 시절에는 미식축구 선수로도 유명했던 그는 특유의 빠른 발과 다부진 피지컬을 앞세워 속공에서 주로 첨병 역할을 맡았습니다. 특히 그는 정확한 자유투 능력을 앞세워 적극적으로 골밑으로 돌진해 파울을 얻어내는 플레이를 즐겼죠. (통산 자유투성공률 82.5%) 그는 55-56시즌에는 팀의 주전 3번으로 기용되어 평균 11.3득점, 4.1리바운드에 85.6%의 자유투성공률(리그 3위)을 기록했으며, 플레이오프에서는 평균 14.3득점, 5리바운드, 56.5%의 야투율로 분전했습니다. 56-57시즌부터는 다시 벤치로 내려간 그는 이듬해인 57-58시즌까지 현역으로 뛰다가 은퇴했죠. 그는 올해 1월에 9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SF 10th : #_23  Cedric Ceballos

 

 

 

피닉스 선즈에서 주전 포워드로 활약하던 세드릭 세발로스는 93-94시즌을 마치고 트레이드를 통해 L.A 레이커스로 이적했습니다. 당시 주전 3번감을 찾고 있던 레이커스는 피닉스에 미래의 1라운드 픽을 내주고 그를 영입했죠. 전형적인 공격형 포워드인 그는 2년차 포인트가드 닉 밴 엑셀, 루키 가드 에디 존스와 함께 레이커스의 런 & 건 오펜스를 훌륭히 이끌었고, 팬들은 이들을 두고 “제2기 쇼-타임 레이커스”라며 기대를 걸었습니다. 94-95시즌에 그는 평균 21.7득점, 8리바운드를 올리며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고, 12월 한 달 동안은 평균 27.8득점, 9리바운드에 대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전에서 50득점을 퍼붓는 등의 활약으로 “이달의 선수”로 뽑히기도 했죠. (팀 성적은 9승 3패) 그는 이 시즌에 커리어 유일의 올스타에도 선발이 되었지만, 아쉽게도 엄지손가락 부상으로 올스타전에는 출장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정규 시즌의 훌륭한 활약에 비해 플레이오프에서는 심한 기복을 보이며 아쉬움을 남겼죠. (그해 플레이오프 평균 14.2득점, 야투율 38.1%)

 

그는 출중한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오픈 코트에서 뛰어난 득점력을 과시했으며, 팬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화끈한 인게임 덩커였습니다. 그는 돌파와 포스트-업 등 확률 높은 림 어택을 즐겼기에 필드골 성공률이 높은 편이었고, (커리어 통산 50%) 포지션 대비 엘리트 리바운더였죠. 다만 그는 화려한 공격력에 비해 수비력은 그야말로 형편없었는데, 수비에 대한 의지가 전혀 없었기에 90년대 대표적인 최악의 수비수로 꼽히곤 했습니다. 또한 운동능력을 앞세운 피지컬한 플레이를 즐기다 보니, 원체 잦은 부상에 시달리는 유리몸이기도 했죠.

 

그는 95-96시즌에도 평균 21.2득점, 6.9리바운드의 준수한 스탯을 기록했지만, 팀에 불만을 품고 무단이탈을 해 징계를 받는 등 불성실한 태도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급기야 그는 96-97시즌 초반에 실망스러운 몸 상태로 나타나 8경기에서 평균 10.8득점을 올리는 데 그쳤고, 설상가상으로 무릎 부상까지 당해 장기 결장하게 되었죠. 결국 팀은 시즌 도중에 그와 루밀 로빈슨을 피닉스 선즈로 트레이드하면서 대신 로버트 오리와 조 클라인을 데려왔습니다. 이후 그는 여러 팀을 전전하며 부상으로 얼룩진 커리어를 보냈고, 00-01시즌을 끝으로 NBA를 떠난 뒤로는 해외와 하부 리그를 전전하면서 2011년까지 현역으로 뛰었습니다.

 


 

 

SF 9th : #_15 / #_37 Metta World Peace (aka. Ron Artest)

 

 

 

리그의 대표적인 악동 캐릭터로 2004년 관중 폭행 사건의 주동자였던 론 아테스트는 08-09시즌에 휴스턴 로케츠에서 뛴 후 오프시즌에 FA로 풀렸습니다. 한편 당시 디펜딩 챔피언이었던 L.A 레이커스는 주전 3번 트레버 아리자와의 재계약을 추진했으나 실패로 돌아가자, 대신 아테스트와 5년 34mil에 계약을 맺었죠. 당시 그의 영입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도 높았는데, 원체 멘탈이 불안정한데다가 바로 직전 플레이오프에서 코비 브라이언트 등 레이커스 선수들과 강한 신경전을 벌인 경력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팀에 잘 녹아들며 별다른 케미스트리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고, 예의 탄탄한 수비력으로 아리자의 공백을 어느 정도 잘 메워주었죠.

 

그는 이해 플레이오프에서 두 번의 인상적인 클러치 플레이를 펼치기도 했는데, 서부 컨퍼런스 결승에서는 위닝 버저비터 풋백 득점을 하기도 했고, 파이널 7차전 종료 1분여를 남기고 레이커스가 3점 차로 불안하게 리드하던 중에는 회심의 3점슛을 넣으며 백-투-백 우승에 방점을 찍기도 했습니다. 이후로도 그는 계속 팀의 주전 3번으로 활약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공수에서 경기력은 점차 떨어져 갔죠. 그는 빠른 손과 발, 타고난 피지컬과 악착같은 근성까지 두루 갖춘 덕에 가드부터 빅맨까지 상대할 수 있는 전천후 수비수였습니다. 공격에서도 적극성이 돋보이고 가끔 3점슛도 넣어주곤 했으나, 기술이 투박하고 슈팅 기복이 심해 공격 효율은 다소 떨어지는 편이었죠.

 

그는 2011년에는 지역사회에 헌신한 선수에게 주는 월터 케네디 시티즌쉽 상을 타며 이미지를 개선하는듯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메타 월드 피스”라는 요상한 이름으로 개명을 하더니 파업으로 11-12시즌 개막이 지연되는 사이 몸 관리를 엉망으로 해 시즌 개막 후 19경기 동안 징계성으로 벤치에 앉기도 했죠. 그는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와 맞붙은 그해 플레이오프 2라운드 5차전에서는 제임스 하든의 뒷통수를 팔꿈치로 고의 가격하며 간만에 거하게 사고를 쳤고, 결국 7경기 출장 정지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12-13시즌에 평균 12.4득점, 5리바운드를 올리며 레이커스 이적 후 가장 좋은 수치를 기록했지만, 오프시즌에 레이커스 구단은 사치세 절감 차원에서 사면 룰을 적용해 그를 방출하고 말았죠.

 

이후 그는 뉴욕 닉스에서 잠시 뛰다가 다시 중국, 이탈리아 리그를 전전했으며, 15-16시즌에 다시 NBA로 컴백하여 친정팀 레이커스에서 백업으로 두 시즌을 더 뛴 뒤 커리어를 마쳤습니다. 그는 은퇴 후 1년간 레이커스 산하 G-리그 구단인 사우스베이 레이커스에서 선수 육성 코치로 재임하기도 했죠. 현재 그는 부인인 마야 샌디포드와의 결혼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메타 샌디포드-아테스트”란 이름으로 개명한 상태입니다.

 


 

 

SF 8th : #_24  Keith Erickson

 

 

 

UCLA 대학 출신으로 시카고 불스에서 뛰던 키스 에릭슨은 68-69시즌을 앞두고 어윈 뮐러와 맞트레이드 되어 L.A 레이커스로 이적했습니다. 2-3번 포지션에서 주전과 벤치를 두루 오가며 활약한 그는 탁월한 수비력을 앞세워 종종 상대 에이스 스윙맨을 전담 마크하곤 했죠. 그는 69년과 70년에 연속으로 파이널을 맛보았지만, 아쉽게도 레이커스는 보스턴 셀틱스와 뉴욕 닉스에게 모두 7차전에서 패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한편 70-71시즌에 엘진 베일러가 아킬레스 건 부상으로 시즌의 대부분을 빠지게 됨에 따라, 그는 주전 3번으로 활약하며 평균 11.3득점, 5.5리바운드를 올려주었고 시즌 막판에는 무릎 부상으로 빠진 제리 웨스트를 대신해 주전 가드로 기용되기도 했죠. 그는 그해 플레이오프에서 평균 15.6득점을 올리며 선전했으나,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 1차전을 치른 뒤 불의의 맹장 수술을 받으며 플레이오프를 접어야 했습니다. 그는 이듬해인 71-72시즌에는 두 차례나 무릎 수술을 받는 악재 속에 15경기에 출전하는 데 그쳤고, 플레이오프도 통으로 뛰지 못했죠. 하지만 레이커스가 그해 파이널에서 뉴욕 닉스를 꺾고 우승을 차지함에 따라 그는 행운의 반지를 챙길 수 있었습니다.

 

아마추어 시절에 배구 국가대표로 올림픽도 뛴 경력이 있는 그는 백인임에도 놀라운 탄력의 소유자였는데, 그의 대학 시절 은사인 존 우든 감독은 그를 두고 자신이 코치한 선수 중에 가장 뛰어난 운동능력의 소유자라고 평하기도 했죠. 탁월한 운동능력뿐만 아니라 터프한 수비 마인드까지 겸비한 그는 당대에 엘리트 퍼리미터 디펜더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또한 그는 포지션 대비 뛰어난 리바운더였으며, 특유의 점프력을 앞세워 종종 놀라운 샷 블락킹을 선보이기도 했죠. 그는 또 볼-핸들링과 코트 비전도 우수해 포인트가드 역할도 어느 정도 수행할 수 있을 정도로 다재다능했습니다.

 

한편 그는 72-73시즌에 건강히 복귀해 벤치에서 꾸준한 활약을 펼쳐 주었으나, 73-74시즌을 앞두고 팀과 재계약 협상이 틀어지고 말았죠. 결국 그는 시즌 초반에 피닉스 선즈의 올스타 포워드 코니 호킨스를 얻기 위한 트레이드 카드로 쓰이며 레이커스를 떠났습니다. 이후 피닉스에서 네 시즌을 더 뛴 뒤 은퇴한 그는 레이커스 지역 방송에서 해설가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습니다.

 


 

 

SF 7th : #_5  Jim McMillian

 

 

 

아이비 리그의 콜롬비아 대학 출신인 짐 맥밀리언은 70 드래프트에서 전체 13번으로 L.A 레이커스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그는 루키 시즌에 주로 벤치에서 출전했으나 시즌 막판에 제리 웨스트가 무릎 부상을 당하며 주전 라인업에 구멍이 생기자 스타팅 3번으로 발탁되었고, 플레이오프에서는 평균 15.1득점, 5.4리바운드의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죠. 한편 원래 주전 3번이었던 엘진 베일러는 아킬레스 건 부상으로 70-71시즌을 거의 날렸다가 이듬해 겨우 복귀했는데, 마침 그의 포지션에 유망주 맥밀리언이 한창 물오른 기량을 선보이고 있었습니다. 결국 베일러는 젊은 후배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해 9경기 만에 무관의 커리어를 뒤로 하고 은퇴를 택했죠.

 

베일러의 바통을 이어받은 맥밀리언은 정규 시즌에 평균 18.8득점, 6.5리바운드로 눈부신 향상을 보여주었으며, 밀워키 벅스와 맞붙은 플레이오프 컨퍼런스 파이널에서는 2차전에서 42득점을 올리는 등 시리즈 평균 22.7득점, 7리바운드로 분전하며 팀을 파이널로 견인했습니다. 결국 레이커스는 파이널에서 뉴욕 닉스를 꺾고 우승의 감격을 맛보았죠. 그는 15피트 언저리에서 던지는 베이스라인 점프슛이 일품이었으며, 빠른 발을 바탕으로 속공에도 적극 가담해 주었습니다. 또한 그는 탄탄한 수비력과 이타적인 마인드, 걸출한 리더쉽을 두루 갖춘 훌륭한 팀 플레이어였죠. 그는 72-73시즌에도 평균 18.9득점 5.5리바운드를 올리며 꾸준한 활약을 이어갔지만, 팀은 아쉽게도 파이널에서 뉴욕에게 리벤지 패배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한편 시즌을 마치고 윌트 체임벌린이 ABA로 진출하며 팀을 떠나자 그 대체자를 물색하던 레이커스 구단은 버팔로 브레이브스의 주전 센터인 엘모어 스미스를 영입하기 위해 맥밀리언을 트레이드 카드로 썼죠. 그는 이후 버팔로, 뉴욕 등지에서 뛰다가 말년에는 유럽으로 건너가 이탈리아 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마쳤습니다. 그는 은퇴 후 의류업체를 운영했으며, 2016년에 심장마비로 인해 6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SF 6th : #_17  Rick Fox

 


                               

90년대 초중반에 보스턴 셀틱스에서 주전급 3번으로 활약하던 릭 팍스는 96-97시즌을 마치고 FA가 되자 L.A 레이커스에 합류했습니다. 농구와 배우 생활을 병행 중이던 그는 타 구단의 더 좋은 오퍼들을 뿌리치고 할리우드에서 가까운 L.A를 선택했죠. 그는 97-98시즌에 주전 3번으로 전 경기에 선발 출장해 평균 12득점 4.4리바운드를 올려주었습니다. 이듬해인 98-99시즌에는 코비 브라이언트가 스타팅 라인업에 올라섬에 따라 그는 벤치로 내려갔고, 시즌 중반 이후에는 중도에 합류한 글렌 라이스의 백업 롤을 수행했죠. 그는 99-00시즌을 앞두고 레이커스와 6년 25mil의 장기 계약을 맺었으며, 그해 플레이오프에서는 쾌조의 슛 감각(플레이오프 3점슛 성공률 46.2%)으로 팀의 우승에도 쏠쏠히 공헌했습니다.

 

한편 오프시즌에 라이스가 팀을 떠나자 다시 주전 3번 자리에 복귀한 그는 밀레니엄 레이커스의 3연패 멤버로서 01년과 02년의 우승에도 일익을 담당했죠. 뛰어난 외곽 슈터이자 끈덕진 수비수였던 그는 운동능력은 다소 떨어졌지만 피지컬이 탄탄했으며, BQ가 높은 지능적인 플레이어였습니다. 그는 눈에 띄지 않는 더티 플레이로 매치-업 상대의 신경을 잘 긁었으며, 오펜스 파울 유도와 플랍성 플레이에도 능했죠. 또한 패싱 감각이 뛰어나 골밑의 샤킬 오닐 등에게 안정적으로 엔트리 패스를 공급해 주었습니다.

 

02-03시즌에도 주전 3번으로서 꾸준한 활약을 이어가던 그는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심각한 발 부상을 당하며 시즌-아웃되고 말았죠. 그는 부상의 여파로 03-04시즌도 거의 절반 가까이 결장해야 했으며, 느려진 스피드 때문에 기량도 눈에 띄게 하락했습니다. 결국 그는 시즌을 마치고 게리 페이튼 딜(페이튼 + 팍스 + 1라운드 픽 ⇔ 쳐키 앳킨스 + 크리스 밈 + 쥬메인 존스)에 끼어 보스턴 셀틱스로 이적했으나, 더 이상 뛸 몸 상태가 아니라며 곧바로 은퇴를 선언했죠. 바하마 혈통의 라틴계 미남으로 평소 연기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현역 시절에도 영화와 TV에 종종 모습을 비쳤으며, 은퇴 후에는 본격적으로 배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는 유명 배우이자 가수인 바네사 윌리엄스의 남편으로도 유명했으나, 2004년에 이혼했죠. 그는 이스포츠 사업에도 뛰어들어 에코 팍스(Echo Fox)라는 팀을 창설하기도 했으나, 2019년에 해체되었습니다.

                          


 

 

SF 5th : #_23  LeBron James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의 슈퍼스타 르브론 제임스는 17-18시즌을 마치고 1년 남은 그의 계약을 옵트-아웃하며 FA가 되었습니다. 그의 거취를 두고 클리블랜드 잔류 또는 L.A 레이커스나 필라델피아 76ers 행 등 수많은 루머가 돌았으나, 결국 그는 자녀 교육 등의 이유로 대도시 L.A에 정착하는 길을 택하여 L.A 레이커스와 4년 154mil(3년 후 플레이어-옵션)에 계약했죠. 당시 레이커스는 순조롭지 못한 리빌딩 탓에 그리 강한 전력은 아니었으나, 르브론 영입 효과 덕분인지 여러 베테랑들(켄타비우스 칼드웰-포프, 라존 론도, 저베일 맥기 등)이 속속들이 합류하면서 전력을 제법 구축했습니다.

 

18-19시즌에 레이커스는 르브론을 앞세워 첫 34경기에서 20승 14패의 호성적을 달렸고, 르브론은 대 마이애미 전에서 51득점을 퍼붓는 등 이름값을 톡톡히 해냈죠. 하지만 그는 불의의 사타구니 부상을 당하며 1달 넘게 빠지게 되었고, 레이커스의 성적도 따라서 주춤해졌습니다. 타고난 강골인 그는 이때 17경기나 빠지면서 커리어 최초로 부상으로 장기 결장을 하고 말았죠. 복귀 후에도 그는 사타구니 통증의 재발로 어려움을 겪다가 결국 3월 말에 시즌-아웃 판정을 받게 되었고, 레이커스의 플레이오프 꿈도 물 건너가고 말았습니다. 55경기에 출장해 시즌 평균 27.4득점, 8.5리바운드, 8.3어시스트의 성적을 남긴 그는 올-NBA 서드 팀에 드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죠.

 

한편 오프시즌에 레이커스는 뉴올리언즈 펠리컨즈에서 앤써니 데이비스를 데려오며 르브론의 뒤를 받쳐줄 스타 플레이어 보강에 성공했습니다. 전년도의 실패를 딛고 절치부심한 그는 19-20시즌에는 플레이메이커 롤에 좀 더 치중하며 포인트가드스러운 플레이도 자주 보여주었고, 지난 시즌 다소 아쉬웠던 수비 폼도 많이 회복했죠. 레이커스는 르브론과 데이비스를 앞세워 정규 시즌에 서부 지구 1위(52승 19패)에 등극했고, 르브론은 평균 25.3득점, 7.8리바운드, 10.2어시스트(리그 1위)의 기록을 올리며 올-NBA 퍼스트 팀에 복귀했습니다. (통산 16회의 올-NBA팀 선발로 역대 단독 1위에도 등극) 특히 평균 10.2어시스트는 그의 커리어-하이이자 첫 두 자릿수 어시스트기도 하죠.

 

한편 코로나-19 사태로 리그가 중단되었다가 올란도 버블에서 재개되는 등 어수선한 상황에서 플레이오프가 치러졌는데도 르브론은 레이커스를 안정적으로 이끌며 파이널에 진출시켰습니다. 파이널에서 지미 버틀러의 마이애미 히트와 맞붙은 그는 평균 29.8득점, 11.8리바운드, 8.5어시스트에 59.1%의 야투율이라는 고효율 농구를 펼치며 4승 2패로 마이애미를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고 파이널 MVP에도 선발되는 영예를 안았죠. 4차례 우승에서 4번의 파이널 MVP를 석권한 그는 3개 이상의 팀에서 모두 파이널 MVP를 경험한 유일한 사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오프시즌에 레이커스와 2년 85mil의 연장계약을 체결함으로써 레이커스에 오래 남을 것을 천명했죠.

 

기록의 사나이로 이름 높은 그는 현역임에도 통산 득점에서 카림 압둘-자바, 칼 말론에 이어 역대 3위(34,241점)에 랭크되어 있습니다. 또한 이번 플레이오프를 통해 역대 플레이오프 출장 경기에서도 데릭 피셔(259경기)를 앞지르며 1위(260경기)에 올랐고, 득점ㆍ출전시간ㆍ야투 및 자유투 성공 개수 등 여러 플레이오프 통산 지표에서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SF 4th : #_52  Jamaal Wilkes

 

 

 

UCLA 대학 시절 빌 월튼과 함께 무적 군단을 이끌었던 자말 윌크스는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서 데뷔해 세 시즌을 뛴 뒤 76-77시즌을 마치고 FA가 되자 친정팀인 L.A 레이커스에 합류했습니다. 당시는 FA 보상제도가 있어서 레이커스는 그를 영입한 대가로 1라운드 픽 하나를 워리어스에 내줬죠. 나름 워리어스에서 우승 및 올스타, 디펜시브 팀 경력도 있었던 그는 레이커스에 갓 합류한 77-78시즌에는 손가락 부상에 시달리며 51경기에 출전해 평범한 활약(평균 12.9득점)에 그쳤습니다. 하지만 이듬해인 78-79시즌에 그는 평균 18.6득점, 7.4리바운드를 올리며 워리어스 시절 못지않은 기량을 선보였고, 79-80시즌에는 평균 득점을 20득점까지 끌어올렸죠. 그해 파이널에서 레이커스는 필라델피아 76ers와 맞붙었는데, 승부의 고비였던 6차전에서 슈퍼 루키 매직 존슨이 부상당해 빠진 에이스 카림 압둘-자바를 대신해 42득점을 퍼부으며 팀을 우승으로 견인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매직에게 가려져서 그렇지 윌크스 역시 37득점 10리바운드를 올리며 매직 못지않은 훌륭한 퍼포먼스를 보여줬죠.

 

워낙 유연한 플레이스타일 덕분에 “Silk”라는 별명이 붙었던 그는 매우 독특한 슛 폼으로 유명했는데, 보통 일반 슈터들과 달리 오른쪽 귀 부근에서부터 공을 들어 올려 머리 너머로 릴리즈해 슛을 쐈습니다. 이처럼 머리 옆에서 던지는 괴상한 폼에도 불구하고 그의 중거리 슛 성공률은 50%를 웃돌 정도로 훌륭했으며, 워낙에 독특한 슈팅 매커니즘 덕에 상대가 그의 슛을 블락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죠. 레이커스의 전설적인 캐스터인 칙 헌은 그의 정교한 중거리 슛을 두고 “20피트에서 던지는 레이-업”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이런 슛 폼이 자연히 몸에 밴 탓에 자유투도 똑같이 괴상한 폼으로 쐈는데, 그 성공률은 70%대로 범범했죠. (통산 75.9%) 그는 부지런한 움직임과 탁월한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속공 및 컷-인 플레이 시에 피니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곤 했습니다. 또한 신장 대비 뛰어난 리바운더였으며, 긴 팔을 바탕으로 매치-업 상대를 꽁꽁 묶을 수 있는 탄탄한 수비수였죠.

 

그는 80-81시즌에 평균 22.6득점(커리어-하이), 5.4리바운드를 올리며 올스타에 선발되었고, 이듬해인 81-82시즌에도 평균 21.1득점으로 꾸준한 활약을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필라델피아 76ers와 맞붙은 그해 파이널에서는 팀 내 최다 득점(19.7득점)을 기록하며 우승에도 일익을 담당했죠. 82-83시즌을 앞두고 레이커스와 6년 5.3mil에 재계약한 그는 그해 평균 19.6득점을 올리며 다시금 올스타에 뽑혔습니다. 하지만 그는 83-84시즌에는 바이러스성 장염에 시달리며 슬럼프에 빠졌고, 플레이오프에서는 2라운드에 겨우 복귀했으나 복통이 가시지 않아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죠. 결국 그는 벤치를 전전하며 평균 4.5득점의 미미한 활약에 그쳤고, 그 틈을 타 2년차 포워드 제임스 워디가 두각을 보이며 그의 자리를 대체했습니다. 급기야 84-85시즌에 그는 워디에게 주전 자리를 완전히 내주어야 했고, 설상가상으로 심각한 무릎 부상까지 당하며 시즌-아웃되고 말았죠.

 

그는 레이커스와 계약이 3년이나 남아 있었지만 워낙 부상이 심각했던 탓에 결국 방출되고 말았고, 이후 L.A 클리퍼스와 계약하며 재기를 노려봤지만 몸 상태가 여의치 않아 13경기만 뛴 뒤 은퇴했습니다. 이후 그는 재무설계사로 변신해 성공적인 커리어를 걸었으며, 2000년에는 잠시 하부 리그인 ABA의 L.A 스타스(Stars) 팀의 농구단 사장직을 맡기도 했죠. 그는 2012년에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으며, 이후 곧바로 그의 등번호 #52도 레이커스에서 영구결번되면서 레이커스에서 영구결번되려면 명예의 전당 입성이 필수임을 여실히 증명해주었습니다.

 


 

 

SF 3rd : #_17  Jim Pollard

 

 

 

※ NBL 시절(59경기)의 어시스트, 야투 성공/시도 개수, 윈쉐어는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아, 관련 값은 NBA에서 뛴 438경기만으로 산출함. 또한 리바운드는 50-51시즌부터 집계되어 총 319경기, 출전시간 및 PER는 51-52시즌부터 집계되어 총 265경기로 그 값을 산출함.

 

스탠포드 대학이 1942년에 NCAA 토너먼트에서 우승할 때 핵심 멤버였던 짐 폴라드는 시즌을 마치고 군에 입대해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습니다. 연안경비대 소속으로 4년간 복무한 뒤 1946년에 제대한 그는 대학으로 돌아가지 않고 아마추어 리그인 AAU 소속으로 2년간 뛰며 2년 연속 리그 MVP와 득점왕에 올랐죠. 한편 1947년에 창설된 NBL의 미네아폴리스 레이커스 구단은 로스터 강화를 위해 아마추어 최강자인 그에게 스카우팅의 손을 뻗쳤습니다. NBA의 전신 리그인 BAA에서도 그를 영입하기 위해 3개 팀(시카고 스택스, 세인트루이스 보머스, 필라델피아 워리어스)이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했으나, 그는 이를 뿌리치고 NBL의 레이커스에 합류했죠.

 

그는 프로 데뷔 해인 47-48시즌에 팀 동료 조지 마이칸과 함께 레이커스를 NBL 우승으로 이끌었으며, 올-NBL 퍼스트 팀에도 선발되었습니다. 이듬해인 48-49시즌에 레이커스 구단은 BAA로 리그를 옮겼는데, 그는 새로운 리그에서도 팀을 우승으로 이끌고 평균 14.8득점을 올리며 올-BAA 퍼스트 팀에도 등극했죠. 한편 49-50시즌에 루키 번 미켈슨이 가세하자 레이커스는 마이칸-미켈슨-폴라드라는 당대 최강 프론트 코트 진을 구축하며 다시금 리그를 제패했고, 평균 14.7득점을 올린 폴라드는 2년 연속 올-NBA 퍼스트 팀에 올랐습니다. (BAA는 49-50시즌부터 NBL을 완전 흡수하고 NBA라는 명칭을 쓰기 시작함.)

 

그는 “캥거루 키드”라는 별명에 걸맞게 어마어마한 탄력으로 코트를 누볐는데, 심지어 6-4의 키로 백보드 상단 터치가 가능했으며, 프리드로우 라인에서 뛰어 덩크도 할 수 있었죠. 당대 최고의 운동능력 괴물이었던 그는 덕분에 그리 크지 않은 키로도 골밑에서 많은 리바운드를 잡아냈고, 수비에서도 매치업 상대를 꽁꽁 틀어막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는 코너에서 던지는 정교한 점프슛을 바탕으로 득점에서도 쏠쏠히 기여해 주었으며, 패싱 감각도 수준급이었죠. 이타적인 팀 플레이어였던 그는 늘 헌신적인 자세로 궂은일을 도맡으며 팀을 위해 희생을 아끼지 않았기에, 당대에 동료들은 주저하지 않고 그를 가장 존경하는 선수로 꼽곤 했습니다.

 

50-51시즌에 처음 올스타전이 열리자 그는 초대 올스타에 뽑혔으나 평균 득점이 11.6득점으로 하락하는 바람에 올-NBA 팀에서 탈락했고, 소속팀 레이커스도 서부 디비전 파이널에서 로체스터 로얄즈에게 일격을 당하며 리그 3연패의 꿈을 접고 말았죠. 한편 당시 레이커스의 독주를 고깝게 보던 리그 사무국은 마이칸을 견제하기 위해 51-52시즌부터 파울 레인의 폭을 6피트에서 12피트로 크게 늘렸습니다. 이 때문에 마이칸의 골밑 플레이가 제한을 받으며 그의 평균 득점은 다소 하락했지만, (평균 28.4득점 → 23.4득점) 대신 레이커스는 마이칸이 탑으로 나와 골밑으로 쇄도하는 폴라드, 미켈슨에게 양질의 패스를 찔러주는 작전을 썼죠. 덕분에 평균 득점이 4점 가까이 상승한 폴라드는 평균 15.5득점, 9.1리바운드로 올-NBA 세컨드 팀에 이름을 올렸고, 레이커스는 다시금 챔피언 자리를 석권했습니다. 이후로도 레이커스는 두 차례 더 우승하며 마침내 3연패의 위업을 달성했고, 팀 내 최고참인 폴라드는 노장임에도 꾸준히 올스타급 기량을 과시하며 우승에 공헌했죠.

 

한편 53-54시즌을 끝으로 마이칸이 은퇴하자 레이커스는 더이상 챔피언 자리를 지키지 못했고, 54-55시즌을 끝으로 폴라드마저 코트를 떠났습니다. 은퇴 후 곧바로 지도자의 길을 걸은 그는 라 살 대학의 감독직을 지내다가 59-60시즌 도중에는 잠시 친정팀인 미네아폴리스 레이커스의 지휘봉을 잡기도 했죠. 당시 팀 성적은 그리 좋지 못했으나,(정규 시즌 25승 50패) 플레이오프에서는 컨퍼런스 파이널까지 진출해 한 수 위 전력인 세인트루이스 호크스와 7차전 접전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이후 그는 시카고 패커스의 감독직을 맡았다가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었으며, 60년대 후반에는 ABA에서 여러 팀의 감독직을 역임했죠.

 

그는 NBL 시절까지 합쳐 레이커스 소속으로 무려 6차례나 우승을 맛보았으며, 5번의 올-리그 팀(퍼스트 3회, 세컨드 2회 / 퍼스트 1회는 올-NBL 팀)과 4번의 올스타 선발이라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그는 1978년에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으며, 1993년에 7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죠. 한편 레이커스 구단은 2002년에 그의 등번호 #17을 비롯해 마이칸, 미켈슨 등 과거 미네아폴리스 시절 레전드들의 등번호를 결번보다 한 단계 낮은 아너드 넘버(Honored Numder)로 지정한 바 있습니다.

 


 

 

SF 2nd : #_42  James Worthy

 

 

 

마이클 조던과 함께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을 82년 NCAA 우승으로 이끈 대학 최고의 포워드 제임스 워디는 82 드래프트에서 전체 1번으로 L.A 레이커스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레이커스는 81-82시즌에 이미 우승을 차지한 디펜딩 챔피언임에도 1픽을 쥐는 행운을 얻었는데, 79-80시즌에 돈 포드를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로 보내면서 받아온 미래 1라운드 픽이 클리블랜드가 81-82시즌에 리그 꼴찌에 머물면서 1픽으로 둔갑한 것이었죠. 우승팀이 1픽을 먹는 이 아이러니한 사태로 인해, 1라운드 픽을 2년 연속으로 팔 수 없다는 “테드 스테피언 룰”(스테피언은 당시 무분별한 픽 장사로 악명높았던 클리블랜드의 구단주)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워디가 데뷔했을 때에는 그의 포지션에 이미 올스타 3번인 자말 윌크스가 있었기에, 그는 루키 시즌에는 주로 벤치에서 4번 포지션으로 출전하며 평균 13.4득점, 5.2리바운드를 올려주었고 올-루키 퍼스트 팀에도 뽑혔죠. 다만 시즌 말미에 다리 골절상을 당하는 바람에 플레이오프에서는 뛰지 못했습니다. 83-84시즌에는 주전 포워드로도 종종 기용된 그는 보스턴 셀틱스와 맞붙은 84 파이널에서 평균 22.1득점에 63.8%의 야투성공률을 기록했는데, 이는 정규 시즌 성적(평균 14.5득점)에 비하면 거의 8점 가까이 상승한 수치였죠. 비록 레이커스는 7차전 접전 끝에 보스턴에게 패배했지만, 워디의 활약은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급기야 이듬해인 84-85시즌부터는 윌크스를 벤치로 밀어내고 주전 3번 자리를 완전히 꿰찼죠.

 

탄탄한 사이즈와 피지컬, 운동능력을 겸비한 워디는 80년대 “쇼-타임” 레이커스에서 매직 존슨의 현란한 패스를 이어받아 화려하게 속공을 마무리하는 피니셔 역할을 충실히 해냈습니다. 6-9의 장신임에도 매우 잘 달렸던 그는 속공 시 누구보다 빠르게 치고 나가 특유의 원-핸드 토마호크 덩크로 림을 뒤흔들곤 했죠. 그는 하프 코트에서도 뛰어난 포스트-업 스킬을 바탕으로 페인트 존에서 능숙하게 득점을 올려줄 수 있었고, 턴-어라운드 점프슛 또한 정확했습니다. 이처럼 그는 받아먹기에 능하고 확률 높은 골밑 득점력을 자랑했기에 야투율이 상당히 준수했죠. 특히 그는 플레이오프와 같은 큰 경기에 워낙 강해서 “빅 게임 제임스”라는 별명이 있었는데, 정규 시즌보다 플레이오프 때 득점과 야투율이 오히려 비약적으로 상승하곤 했습니다. (통산 평균 : 정규 시즌 17.6득점, 52.1% 야투율 ⇒ 플레이오프 21.1득점, 54.4%) 플레이오프가 되면 타이트해진 수비와 집중 견제로 인해 선수들의 득점력이나 야투율이 떨어지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는 오히려 반대였죠. 또한 그는 수비에서도 운동능력과 터프함을 앞세워 매치업 상대를 잘 틀어막았으며, 빠른 발과 훌륭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여러 포지션을 두루 막을 수 있었습니다. 또 플레이스타일 자체가 이타적인데다가 코트 비전도 훌륭해 동료들에게 양질의 패스를 찔러줄 수도 있었죠.

 

보스턴과 다시 맞붙은 85 파이널에서 평균 23.7득점을 넣으며 팀 우승과 리벤지에 일조한 그는 85-86시즌에는 평균 20득점, 5.2리바운드, 57.9%의 야투 성공률(리그 4위)을 기록하며 첫 올스타에도 뽑혔습니다. 이후로도 그는 여러 시즌 동안 꾸준히 19~20득점 안팎을 올려주었고 올스타에도 7년 연속으로 선발되었죠. 한편 86-87시즌을 앞두고 그를 달라스로 보낸다는 트레이드 루머가 돌기도 했으나 성사되지 않았고, 그는 87 플레이오프에서 팀 최다 득점(평균 23.6득점)을 올리며 팀을 우승으로 견인했습니다. 디트로이트 “배드 보이즈”와 맞붙은 이듬해 88 파이널에서 그는 그야말로 “빅 게임 제임스”라는 이름값을 제대로 증명해냈죠. 우승을 놓고 펼쳐진 운명의 7차전에서 그는 36득점, 16리바운드, 10어시스트에 야투율 68.2%(15-22)라는 놀라운 퍼포먼스를 펼치며 팀을 2년 연속 우승으로 이끌었고, 급기야 파이널 MVP까지 차지했습니다. 그는 디트로이트와 리매치로 펼쳐진 이듬해 89 파이널에서도 평균 25.5득점을 올리며 분전했으나, 매직 존슨과 바이런 스캇이 부상으로 신음한 레이커스는 디트로이트에게 스윕패를 당하고 말았죠. 89-90시즌에 그는 평균 21.1득점, 6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올-NBA 서드팀에 뽑혔고, 이듬해인 90-91시즌에도 평균 21.4득점(커리어-하이이자 팀 내 1위)을 올리며 2년 연속 올-NBA 서드팀 선발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하지만 그해 플레이오프에서 그는 발목 부상에 시달리며 고전했고, 시카고 불스와 맞붙은 파이널 시리즈에서 다시 발목을 다치는 불운을 겪었죠.

 

한편 91-92시즌을 앞두고 매직 존슨이 HIV 바이러스 양성임을 밝히며 충격적인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그는 매직이 떠난 레이커스 호를 이끌며 고군분투했지만 결국 무릎 부상으로 54경기만에 시즌-아웃을 당하고 말았죠. 발목과 무릎의 잇단 부상은 그의 최고 장점이었던 기동력과 운동능력을 갉아먹고 말았고, 92-93시즌에 복귀한 그의 모습은 더이상 예전의 “빅 게임 제임스”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93-94시즌에는 아예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벤치로 물러났으며, 결국 시즌을 마치고 은퇴를 선언했죠. 이후 그는 방송 해설가로서 새로운 커리어를 걸었으며, 2015년에는 레이커스의 코칭 스탭으로 참여해 선수 육성 파트를 맡기도 했죠. 그는 12년 동안 레이커스에만 몸담으며 7번의 올스타, 3번의 우승, 2번의 올-NBA 팀, 1번의 파이널 MVP라는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의 등번호 #42는 1995년에 레이커스에서 영구결번되었으며, 2003년에는 명예의 전당에도 입성했습니다.

 


 

 

SF 1st : #_22  Elgin Baylor

 

 

 

엘진 베일러는 고교 때부터 이름난 유망주였지만 성적 부진으로 인해 메이저 대학에 입학하지 못하고 겨우 아이다호의 앨버트슨 칼리지에 진학했으나, 학교에서 1년 만에 농구 장학생 제도를 없애는 바람에 시애틀 대학으로 전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이때 미네아폴리스 레이커스가 은근슬쩍 그를 56 드래프트 14라운드에서 지명하며 프로 진출을 권했으나, 베일러는 학업을 이어가기로 결정했죠. 시애틀 대학을 NCAA 토너먼트 준우승까지 이끈 그는 58 드래프트에서 전체 1번으로 지명되었는데, 하필 그를 뽑은 팀이 또 레이커스였습니다. 레이커스는 50년대 초, 중반까지 리그를 제패했던 초강팀이었으나 조지 마이칸의 은퇴 이후 전력이 급하락했고, 급기야 57-58시즌에 리그 최하위에 그친 덕에 드래프트에서 얻은 1픽으로 그를 다시 뽑을 수 있었죠.

 

이미 루키 시즌부터 팀의 확고부동한 에이스로 자리 잡은 그는 평균 24.9득점, 15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신인왕에 올랐고, 올-NBA 퍼스트 팀에도 등극했습니다. 플레이오프에서 레이커스는 그의 하드 캐리에 힘입어 당시 서부 최강팀 세인트루이스 호크스를 꺾고 파이널에 진출했으나, 보스턴 셀틱스를 맞아 스윕 패를 당하고 말았죠. 이때의 패배는 앞으로 그의 눈물 나는 파이널 우승 도전기의 서막에 불과했습니다. 이듬해인 59-60시즌에 평균 29.6득점(리그 3위), 16.4리바운드를 올린 그는 대 보스턴 전에서 64득점을 넣으며 조 펄크스가 기록한 당시 한 경기 최다 득점(63점) 기록을 경신했죠. 그는 60-61시즌에 평균 34.8득점(윌트 체임벌린에 이어 리그 2위), 19.8리바운드로 놀라운 스탯 행진을 이어갔으며, 대 뉴욕 닉스전에서는 71득점 25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자신이 세운 한 경기 최다 득점 기록을 다시 경신했습니다. (이 기록은 1962년에 체임벌린이 100득점을 넣으며 깨지게 되죠.)

 

한편 그는 61-62시즌을 앞두고 군에 입대해 워싱턴 주에서 1년간 복무를 했는데, 이 때문에 정규 시즌 경기를 다 뛰지 못하고 겨우 주말에만 홈 경기 위주로 근근이 출전해야 했죠. 이 때문에 시즌 48경기 출전에 그친 그는 일단 경기에 나오면 놀라운 득점력을 과시하며 평균 38.3득점을 올렸는데, 이는 역대 평균 득점 2위 중에 가장 높은 수치입니다. (당시 평균 득점 1위는 무려 50.4득점을 올린 체임벌린이었죠. 다만 베일러의 기록은 경기 수 미달로 인해 공식 2위는 아닙니다.) 그해 레이커스는 베일러가 자주 빠졌음에도 제리 웨스트의 활약에 힘입어 정규 시즌 서부 1위를 차지했고, 파이널까지 진출해 보스턴과 맞붙었죠. 두 팀이 2승 2패로 치열한 공방을 벌이는 가운데 맞이한 5차전에서 베일러는 무려 61득점을 퍼부으며 레이커스를 승리로 이끌었는데, 이 61득점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은 파이널 한 경기 최다 득점 기록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레이커스는 7차전 연장까지 가는 혈투 끝에 패배하고 말았고, 베일러는 우승의 문턱 바로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했죠. 62-63시즌에 평균 34득점(리그 2위), 14.3리바운드를 기록한 그는 팀을 2년 연속 파이널로 올렸지만, 숙적 보스턴을 넘는 데 또다시 실패했습니다.

 

그는 탁월한 운동능력에 기반한 고공 플레이를 앞세워 정적(靜的)이던 농구의 패러다임을 동적(動的)으로 바꾼 선구자였죠. 그는 리바운드 수치가 특출나게 높긴 했지만 골밑 보다는 외곽에서 플레이하기를 즐겼으며, 15피트 안팎에서 던지는 미드-레인지 슛이 주무기였습니다. 그는 점프슛을 할 때 남다른 탄력 덕분에 체공 시간이 길어서 상대 수비수의 블락을 피해 반 박자 늦게 슛을 던질 수 있었는데, 이는 그의 시그내쳐 슛으로 이른바 “행잉 점프슛(Hanging jump shot)”이라 불렀죠. 또한 그는 유연성과 바디 발란스, 스피드를 앞세워 종종 림으로 돌진해서 파울을 얻어내거나 레이업 또는 덩크로 마무리하곤 했습니다. 그는 또 웬만한 가드 못지않게 볼을 잘 다루었으며, 오픈된 동료를 찾는 코트 비전도 뛰어났죠. 이러한 그의 공격 스타일은 줄리어스 어빙, 마이클 조던 등 후대에 리그를 대표하는 스윙맨들의 플레이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득점뿐만 아니라 리바운드에 대한 집착도 대단했던 그는 6-5로 그리 크지 않은 신장임에도 더 큰 선수들과의 보드 경쟁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았으며, 덕분에 스몰포워드임에도 놀라운 리바운드 수치를 뽐냈죠. 다만 수비에서는 그리 높은 집중력을 보여주진 못했는데, 그래도 워낙 운동능력과 보드 장악력이 뛰어났기에 수비 시의 영향력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한편 63-64시즌 들어 그는 평균 득점이 10점 가까이 하락하며 (34득점 → 25.4득점) 주춤했는데, 나이가 서른 줄에 접어든 데다가 무릎까지 서서히 망가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죠. 급기야 그는 65 플레이오프 첫 경기에서 치명적인 무릎 부상을 당하며 플레이오프를 통째로 날리고 말았고, 그의 공백을 여실히 느낀 레이커스는 파이널에서 또다시 보스턴에게 맥없이 패하고 말았습니다. 이듬해인 65-66시즌에 그는 부상의 여파로 평균 16.6득점에 그치며 데뷔 시즌부터 7년 연속으로 이어오던 올스타와 올-NBA 퍼스트 팀 행진의 막을 내려야 했죠. 하지만 시즌 말미에 다시 기량을 회복한 그는 플레이오프에서 평균 26.8득점, 14.1리바운드를 기록하며 분전했지만, 레이커스는 파이널에서 보스턴과 7차전 접전 끝에 또다시 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67-68시즌에 다시금 파이널 무대를 밟았으나 또다시 보스턴에게 6번째로 무릎을 꿇고 말았죠.

 

진저리나는 패배에 신물이 난 레이커스는 68-69시즌에 윌트 체임벌린까지 데려오는 초강수를 두었는데, 마침 그해 보스턴이 완연한 하락세를 보임에 따라 전에 없던 호기를 만났습니다. 두 팀은 다시 파이널에서 만나 7번째 대결을 펼쳤는데, 레이커스가 객관적 전력에서 앞선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죠. 하지만 레이커스는 제리 웨스트가 놀라운 퍼포먼스까지 펼쳤음에도 다시 7차전 끝에 보스턴에게 패하고 말았으며, 베일러도 세월의 무게는 어쩔 수 없는 듯 아쉬운 활약(평균 18득점)에 그쳤습니다. 69-70시즌에 무릎 통증으로 54경기 출전에 그친 그는 36살의 나이임에도 평균 24득점, 10.4리바운드, 5.4어시스트로 마지막 불꽃을 태웠죠. 빌 러셀, 샘 존스의 은퇴로 지긋지긋했던 보스턴 왕조가 막을 내림에 따라 베일러 입장에서는 이제야말로 우승의 적기나 다름없었습니다. 하지만 보스턴 대신 파이널 맞상대로 나선 뉴욕 닉스는 윌리스 리드의 부상 투혼을 앞세워 7차전을 승리로 이끌었고, 칠전팔기란 말이 무색하게 베일러의 8번째 우승 도전은 또다시 실패로 끝나고 말았죠.

 

30대 후반의 나이에 무릎도 성치 않던 베일러는 70-71시즌에 설상가상으로 아킬레스 건 파열까지 당하며 커리어가 완전히 꺾이고 말았습니다. 그는 71-72시즌에 겨우 복귀했으나 더이상 예전의 기량을 회복할 수 없었고, 결국 후배들에게 짐만 된다고 판단하여 9경기 만에 은퇴를 선언했죠. 그런데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레이커스는 그해 정규 시즌 33연승을 질주하며 파란을 예고하더니 급기야 우승까지 차지해 버렸습니다. 하지만 베일러는 이미 시즌 초에 은퇴를 선언한 상태였기에 우승 멤버에 포함될 수 없었고, 결국 그는 무관의 제왕으로 쓸쓸히 커리어를 마쳐야 했죠. 은퇴 후 그는 처음엔 지도자로 활동하며 뉴올리언즈 재즈의 감독직 등을 지냈으며, 1986년부터는 22년간 L.A 클리퍼스의 단장으로 재임했습니다. 그는 06년에는 올해의 경영인 상을 받기도 했지만, 고약한 구단주 도널드 스털링 밑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며 나중엔 법정 분쟁까지 벌였죠.

 

그는 14년의 커리어 동안 11번의 올스타, 10번의 올-NBA 퍼스트 팀 선발 경력을 남겼으며, 통산 평균 득점 부문에서 마이클 조던, 윌트 체임벌린에 이어 역대 3위(27.4득점)에 올라 있습니다. 하지만 커리어 동안 8번의 우승 도전에 모두 실패하면서 우승을 맛보지 못한 최고의 레전드로 남아있기도 하죠. 그는 1977년에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으며, 그의 등번호 #22는 1983년에 레이커스에서 영구결번 되었습니다.

 

 


 

Epilogue

 

SF 랭킹 1위 엘진 베일러는 등번호도 그렇고 무관의 제왕답게 각종 기록들에서도 통산 2위에 그치는 것이 많아 간혹 “콩진 베일러”라 불리며 슬픈 유머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SF 랭킹에서는 당당히 1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우승 빼고 다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가 레이커스에서 남긴 업적이 워낙 어마어마하기에, 그의 1위 자리를 위협할만한 경쟁자는 앞으로도 나오기 어려워 보이네요. (르브론이 좀 더 일찍 레이커스에서 왔더라면?)

 

SF 랭킹은 Top 4까지가 명예의 전당 레벨일 정도로 최상위권이 쟁쟁한 편인데요, 5위에 올라있는 르브론 제임스 역시 이번에 우승이라는 놀라운 업적을 이루었고 앞으로도 더 많은 업적을 세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가 됩니다. 단 두 시즌 간 122경기 출전한 것만으로 쟁쟁한 후보들을 뚫고 Top 5에 오르며 자말 윌크스의 턱밑 자리까지 추격한 것으로도 새삼 대단하다고 볼 수 있겠네요. 과연 르브론이 남은 선수 생활 동안 레이커스에서 얼마나 더 많은 업적을 남기며 명전 선배들의 자리를 위협하게 될런지도 흥미롭습니다. 1위야 넘사벽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2위인 제임스 워디까지도 새삼 긴장해야 할런지 모르겠네요.

 

이번 SF편에서도 앞서 SG편과 같이 포지션 구분이 애매했던 케이스가 더러 있었는데요, 상위 랭커 중에서는 2번과 3번을 두루 오간 8위 키스 에릭슨 외에는 별다른 사례가 없으나 하위권에서는 좀 특이 케이스가 있었습니다. 바로 24위에 랭크된 에드 캘러팟인데요, 그는 사실 신체 사이즈나 스타일로 보면 사실 영락없는 빅맨에 가깝습니다. 실제로도 그는 빅맨 포지션에서 더 많이 출전했음에도 정작 3번으로 분류가 되었는데요, 출전시간을 상세하게 분석한 결과 3번에서 1,791분, 4번에서 1,789분, 5번에서 778분으로 뛴 것으로 나왔기 때문이죠. 그 2분이라는 차이가 너무나도 미미해서 과연 그를 3번으로 배치하는 게 합당한가에 대해 스스로도 의문에 휩싸이긴 했지만, 일단은 5개 포지션 중 1분이라도 더 많이 뛴 포지션으로 정한다는 본 시리즈의 기본 설정을 따랐습니다. 근데 저의 출장시간 분석 결과가 100% 정확하다고 할 수도 없고 그 차이가 워낙 미미하다보니... 그가 4번+5번으로 더 많이 뛴 것은 확실하다는 점을 감안하여 그 포지션을 4번으로 설정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았지만, 예외 기준을 여러 가지로 두면 좀 복잡해질 것 같아 일단 단순하게 판정을 했습니다.

 

이렇게 빅맨에 가까운 그가 3번 포지션을 많이 소화했던 것은 그가 뛰던 50년대만 해도 3번과 4번 포지션 간에 역할 차이가 별로 없었기에 현대적 시각으로 보면 4번에 가까운 선수들이 더러 3번 포지션에서 뛰며 빅맨과 유사한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죠. 요새는 스페이싱이 강조되다 보니 3번의 역할과 기능이 오히려 4번쪽보다는 2번쪽에 가까워졌지만, 스페이싱 개념이 별로 없이 선수들이 골밑에 빡빡하게 밀집했던 과거에는 3번은 그야말로 포워드 중에 좀 “작은” 쪽에 불과했었죠. 지금도 올스타 선발 시에 3-4-5번을 두루 “프론트 코트”로 묶는 것도 바로 이러한 전통적인 시각에 입각해서입니다. (뭐 근래에는 또 스몰볼이 유행하다보니, 3번이 4번으로 뛰는 케이스가 많이 생기면서 3번과 4번의 간격이 조금은 좁혀진 것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요.)

 

이밖에도 캘러팟 정도는 아니지만 바로 그 아래 25위인 에드 플레밍 역시 고작 83분 차이로 2번이 아닌 3번으로 분류되었습니다. 루키 시즌에 팀 사정상 3번으로 많이 출장했고 그 이후로는 죽 2번으로 뛰었는데, 루키 때 출전시간 비중이 가장 크다 보니 이런 결과가 나왔네요.

 

현역 중에는 3번 포지션 중에 르브론을 제외하고는 마땅히 랭킹에 든 선수가 없는데요, 카일 쿠즈마는 그간 4번으로 대부분 뛰었기에 웬만해서는 3번 포지션으로 진입이 불가능해 보이고, 오히려 최근 시범경기에서 돌풍을 일으킨 테일런 호튼-터커가 향후 뉴페이스로 진입할 가능성이 커 보이네요. 다만 호튼-터커는 2, 3번을 두루 오가는 선수라서 과연 어느 포지션으로 많이 나오게 될 지는 정규 시즌에 로테이션이 어떻게 돌아가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요.

 

그럼 이것으로 SF편은 마무리를 하고 다음에는 PF편으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이 게시물은 아스카님에 의해 2020-12-23 11:52:13'NBA-Talk' 게시판으로 부터 이동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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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0-12-21 02:29:34

르브론이 쓰리핏한다면 엘진베일러자리넘을수있을까요?

WR
Updated at 2020-12-21 03:10:54

단순히 우승 횟수만 가지고 베일러의 어마어마한 누적을 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우승은 제임스 워디도 3회를 했으니까요.

 

오히려 르브론이 베일러에게 도전장을 내밀기에 더 유리한 카드는 시즌 MVP에 추가로 선정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누적 쌓기를 위해 가급적이면 앞으로의 커리어를 레이커스에서 마무리하는 것도 필요하죠.

 

더 많은(추가 2회 이상) 우승과 시즌 MVP의 추가, 그리고 앞으로 이 페이스를 4~5년 가량 유지하며 계속 레이커스에서 커리어 보내기 등등 어려운 미션들을 해내야만 베일러 앞에 명함 좀 내밀어 볼 수 있겠죠. (베일러는 우승과 시즌 MVP가 없다는 큰 아킬레스가 있으니...)

 

말마따나 르브론이 역대 SF 랭킹 1위긴 하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역대 SF 랭킹 5위 안에 드는 레전드를 커리어의 1/4정도 소화한 기간의 업적만으로 뛰어넘기는 어렵다 봐야죠. 현실적으로 노릴 수 있는 건 제임스 워디의 2위 탈환까지라고 봅니다.

2020-12-21 11:56:25

좋은 의견감사합니다 글너무잘써주셔서 잘읽었습니다

2020-12-21 03:33:51

오랜만에 이 대단한 시리즈가...
이번에도 너무 잘봤습니다
엘진베일러는 정말

2020-12-21 04:43:34

 잘 보았습니다~!!

2020-12-21 06:04:00

 pg편 부터 sf편 까지 정독했습니다. 레이커스가 역사가 긴 만큼 정말 분량도 많고 읽는 동안 여러가지로 흥미로웠네요. 모르는 선수들에 대해 새롭게 알게되는 점이나, 알고 있던 선수들은 기지의 정보들을 정리된 자료로 재차 확인하면서 느껴지는 재미도 있는 만큼 정말 긴 글들입니다만 잘 읽었습니다. 

2020-12-21 09:15:29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다음은 프랜차이즈에서 가장 아쉽다고 평가받는 파워포워드 포지션이네요. 오히려 가장 기대되는 면도 있네요.

2020-12-21 10:47:37

미래에 르브론 최종순위가 상당히 궁금해집니다

2020-12-22 02:07:02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이 글을 어서 매니아진으로~

2020-12-26 20:11:09

레이커스 역사를 읽게 되는거 같아서 참 좋았습니다. 양질의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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