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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레이커스 프랜차이즈 포지션별 랭킹 Top 28 - SG편 (ver.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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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1-04 01:35:50

Prologue

 

안녕하세요, 전편에 이어 이번에는 SG편으로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다른 연재편은 아래 링크해두었습니다. 본 시리즈의 범례 및 프랜차이즈 간단 역사는 이번 편에는 소개를 생략하고요,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PG편에 수록되어 있으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PG편 :  | L.A 레이커스 프랜차이즈 포지션별 랭킹 Top 28 - PG편 (ver.2020.)  |  NBA Maniazine

 

SF편 :  | L.A 레이커스 프랜차이즈 포지션별 랭킹 Top 28 - SF편 (ver.2020.)  |  NBA Maniazine

 

PF편 :  | L.A 레이커스 프랜차이즈 포지션별 랭킹 Top 28 - PF편 (ver.2020.)  |  NBA-Talk

 

C편 :  | L.A 레이커스 프랜차이즈 포지션별 랭킹 Top 28 - C편 (ver.2020.)  |  NBA-Talk

 

본격적인 랭킹 소개에 앞서 28위 밖 선수들 중에서 나름대로 소개해줄 만한 선수들을 5명을 추려서 "Honorable Mention"이란 타이틀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28위 밖 선수들에게도 각각 잠정적인 랭킹은 있지만 여기에서 소개하는 순서는 그 순위와는 무관하며, 그냥 시대순으로 정렬했습니다.)


 

Honorable Mention

 

Dick Garrett

 

 

69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전체 27번으로 지명된 딕 가렛은 그 수비력을 인정받아 주전 2번으로 발탁되어 평균 11.6득점을 올리고 올-루키 퍼스트 팀에도 뽑혔습니다.

 

Brian Winters

 

 

74 드래프트에서 전체 12번으로 지명된 브라이언 윈터스는 평균 11.7득점으로 올-루키 퍼스트팀에 오르며 기대를 모았으나, 카림 압둘-자바 딜에 끼어 1년 만에 밀워키로 이적했습니다.

 

Charlie Scott

 

 

왕년에 올스타 가드였던 찰리 스캇은 보스턴에서 뛰다가 77-78시즌 도중 트레이드로 합류해 평균 11.7득점, 4.9어시스트를 기록하였으며, 시즌을 마치고 다시 덴버로 이적했습니다.

 

Alex Caruso

 

 

언드래프티로 투-웨이 계약을 거쳐 17-18시즌부터 합류한 듀얼 가드 알렉스 카루소는 폭발력 있는 운동능력과 넘치는 허슬 플레이로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Danny Green

 

 

리그에서 대표적인 3 & D 플레이어로 이름 높은 대니 그린은 19-20시즌을 앞두고 2년 30mil에 계약해 합류했으며, 주전 슈팅가드로 뛰며 우승에도 일익을 담당했습니다.

 


Minor Ranking

 

 

SG 28th : #_5 / #_3  Josh Hart

 

 

6-5, 215lbs SG/SF / 2시즌(18-19), 130경기

 

7.9득점, 3.9리바운드, 1.3어시스트, 0.9스틸, 36.1% 3점슛률

 

빌라노바 대학 출신으로 16년도 NCAA 토너먼트 우승 멤버기도 한 조쉬 하트는 17 드래프트에서 전체 30픽으로 유타 재즈의 지명을 받았으나, 드래프트-데이 트레이드를 통해 L.A 레이커스에 합류했습니다. (하트 + 토마스 브라이언트(2라운드 42픽) ⇔ 토니 브래들리(1라운드 28픽)) 그는 시즌 초반에는 범범한 활약에 그치다가 중반 이후 점차 두각을 보이며 간간이 스타팅으로 기용되기도 했는데, 선발 출장한 23경기에선 평균 13.3득점, 6리바운드를 올려주었죠. 그는 운동능력은 평범하지만 다방면에서 활약이 가능한 올-라운드 플레이어이며, 코트 위에서 늘 열정이 넘치는 허슬 가이입니다. 특히 그는 리바운드 가담에 매우 적극적이어서 2번 포지션에서는 최상급의 리바운드 능력을 자랑하죠. 다만 슈팅력에 다소 기복이 있는 편이고, 수비 시에 의욕이 너무 넘치다 보니 간혹 쓸데없는 파울을 범하는 단점도 있습니다.

 

그는 18-19시즌을 앞두고 라스베가스 서머리그에서 MVP를 차지하는 등 기세가 좋았으나 정작 정규 시즌에서는 전년 대비 별다른 향상을 보이지 못했으며, 3점슛 성공률은 되려 크게 떨어졌죠. (39.6% → 33.6%) 한편 뉴올리언즈 호네츠의 간판 스타 앤써니 데이비스가 팀과 불화로 트레이드를 요청하자 레이커스가 데이비스를 영입할 강력한 후보로 떠올랐고, 이에 따라 하트의 이름이 다른 동료 유망주들과 함께 종종 트레이드 카드로 거론되었죠. 결국 그는 오프시즌에 데이비스 영입 딜에 끼어 팀 동료 론조 볼, 브랜든 잉그램과 함께 뉴올리언즈로 이적했습니다. 19-20시즌에 그는 장기인 리바운드 능력을 뽐내며 뉴올리언즈의 주요 로테이션 플레이어로 활약했습니다.


 

 

SG 27th : #_43  Earl Tatum

 

 

6-5, 185lbs SG / 2시즌(77-78), 93경기

 

10.6득점, 3.5리바운드, 2.0어시스트, 1.3스틸

 

고등학교 시절 전미 랭킹 1위에 오르기도 했던 특급 유망주 얼 테이텀은 마켓 대학에 진학한 후 기대만큼의 활약에는 못 미쳤고, 결국 76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전체 21번으로 L.A 레이커스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루키 시즌에 백업 스윙맨으로 뛰며 평균 9.4득점을 기록한 그는 플레이오프에서 주전 가드 루셔스 알렌이 발가락 부상으로 정상 컨디션이 아닌 틈을 타 많은 출장기회를 얻으며 평균 13.6득점을 올렸고, 포틀랜트 트레일블레이저스와 맞붙은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 1차전에서는 32득점을 퍼붓기도 했죠.

 

그는 준수한 슈팅력과 운동능력을 겸비한 솔리드한 스윙맨이었으며, 수비력도 제법 탄탄한 편이었습니다. 심지어 그의 대학 시절 은사인 알 맥과이어 감독은 그의 포텐셜을 높이 사 “흑인 제리 웨스트(Black Jerry West)”라는 거창한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죠. 플레이오프에서 인상적인 활약으로 주가를 높인 그는 77-78시즌에는 당당히 주전 2번으로 자리 잡았고, 25경기를 치르는 동안 평균 14득점을 올려주었습니다. 한편 대 휴스턴 로케츠 전에서 레이커스의 주전 4번인 커밋 워싱턴이 루디 톰자노비치를 가격해 중상을 입히는 사건이 벌어졌고, 이에 팀 분위기 쇄신과 포워드진 강화를 꾀한 레이커스는 테이텀과 제임스 에드워즈를 인디애나 페이서스에 내주는 대신 애드리언 댄틀리와 데이브 로비쉬를 영입했죠. 그는 안타깝게도 79-80시즌 도중에 심각한 무릎 부상을 당해 커리어가 꺾이고 말았으며, 은퇴 후에는 보험업에 종사했습니다.


 

 

SG 26th : #_12  Don Chaney

 

        

6-5, 210lbs SG/SF / 2시즌(77-78), 90경기

 

5.9득점, 3.8리바운드, 3.6어시스트, 1.6스틸

 

70년대에 보스턴 셀틱스에서 명 수비수로 이름을 날렸던 돈 체이니는 75-76시즌에 ABA로 넘어가 스피리츠 오브 세인트루이스(Spirits of St. Louis)에서 1년간 뛰었습니다. 그런데 1976년을 끝으로 ABA가 NBA에 흡수 합병될 때, 스피리츠 오브 세인트루이스는 팀을 존속하지 못한 채 해체를 맞고 말았죠. 이에 일부 선수들은 해산 드래프트를 통해 타 NBA 팀들의 지명을 받았고 체이니를 비롯한 나머지 선수들은 FA가 되었는데, 마침 게일 굿리치의 이탈로 비상이 걸린 L.A 레이커스가 그를 영입했습니다.

 

보스턴 시절 상대 수비수를 꽁꽁 묶는 락다운 디펜스로 정평이 났던 그는 레이커스에서도 여전히 녹슬지 않은 수비력을 선보였죠. 76-77시즌에 그는 팀의 붙박이 주전 2번으로 활약하며 올-디펜시브 세컨드 팀에 올랐습니다. 그는 전문 수비수면서도 그 전에는 어느 정도의 득점력을 보여주었으나, 레이커스에서는 득점 가담은 최소화하고 대신 오프-가드로서 보조 리딩 역할을 좀 더 수행해 냈죠. 한편 그는 77-78시즌 초반에 엄지손가락 부상 등으로 결장이 많아지며 팀 내 입지가 좁아졌고, 결국 시즌 도중 찰리 스캇 영입 딜에 끼어 친정팀 보스턴으로 트레이드되었습니다. (체이니 + 커밋 워싱턴 + 1라운드 픽 ⇔ 찰리 스캇) 보스턴에서 커리어를 마친 후 지도자의 길을 걸은 그는 휴스턴 로케츠, 뉴욕 닉스 등의 감독을 역임했으며, 휴스턴 감독으로 있던 90-91시즌에는 올해의 감독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SG 25th : #_13  Tony Jaros

 

 

6-3, 185lbs SG/SF / 4시즌(48-51), 241경기

 

4.6득점, 2.1리바운드, 1.0어시스트, 70.7% 자유투율

 

※ NBL 시절(58경기)의 어시스트는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아, 평균 어시스트는 NBA에서 뛴 183경기만으로 산출함. 또한 리바운드는 50-51시즌부터 집계되어 총 63경기로 평균값을 산출함.

 

미네소타 대학 출신의 토니 자로스는 46-47시즌에 대학 시절 동료인 돈 칼슨과 함께 BAA(NBA의 전신 리그)의 시카고 스택스에서 뛰었습니다. 한편 1947년에 미네소타의 사업가인 밥 버거와 모리스 챌펜이 미네소타에 농구팀을 만들기 위해 NBL의 디트로이트 젬스(Detroit Gems) 구단을 인수했죠. 연고지를 옮겨 새로이 미네아폴리스 레이커스 구단을 창설한 이들은 흥행을 위해 로컬 스타들의 영입을 추진했습니다. 마침내 자로스와 칼슨에게 손을 뻗친 버거와 챌펜은 스택스 구단에 25,000불을 내주고서 이들을 데려왔죠. (참고로 이들이 디트로이트 젬스 구단을 인수한 금액이 이보다 적은 15,000불이었습니다.)

 

자로스는 센터 외에 그 어느 포지션도 소화할 수 있었던 올-라운드 플레이어였으며, 특유의 빠른 발로 코트 위를 부지런히 누비곤 했습니다. 또한 그는 상대 수비수의 허점을 틈타 사각지대에서 교묘하게 언더핸드 스쿱샷을 올려놓는 재주가 있었죠. 47-48시즌에 레이커스는 조지 마이칸, 짐 폴라드 등을 앞세워 NBL 리그를 제패했고, 이듬해 BAA로 리그를 옮긴 뒤에도 2년 연속 우승을 거머쥐며 당대 최고의 팀으로 군림했습니다. 자로스는 4시즌 동안 주로 벤치 멤버로 활약하며 3차례의 우승을 맛보았고, 51-52시즌에는 독립 리그로 진출해 한 시즌을 더 뛴 뒤 은퇴했죠. 그는 하계 시즌에는 마이너리그에서 야구 선수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 후 그는 고향 미네소타에 자신의 이름을 딴 “토니 자로스 리버 가든”이라는 바를 차려 운영했으며, 1995년에 7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SG 24th : #_15  Don Carlson

 

 

6-0, 170lbs SG / 3시즌(48-50), 170경기

 

7.4득점, 2.2어시스트, 33.6% 야투율, 5.4 윈셰어

 

※ NBL 시절(58경기)의 어시스트, 야투 성공/시도 개수, 윈쉐어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관련 값은 NBA에서 뛴 112경기만으로 산출함

 

미네소타 대학 시절 간판 스타였던 돈 칼슨은 46-47시즌에 BAA(NBA의 전신 리그)의 시카고 스택스에서 주축 선수로 활약했습니다. 한편 1947년에 미네소타의 사업가인 밥 버거와 모리스 챌펜이 NBL의 디트로이트 젬스(Detroit Gems) 구단을 인수한 후 연고지를 미네소타로 옮기면서 새로이 미네아폴리스 레이커스 구단을 창설했죠. 이들은 흥행을 위해 미네소타 지역 출신 선수 스카웃에 열을 올렸고, 결국 스택스 구단에 25,000불이라는 당시로선 거금을 지불하고서 미네소타 대학 출신인 칼슨과 토니 자로스를 영입했습니다.

 

칼슨은 뛰어난 슈터이자 수비수였으며, 특히 훅 슛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했죠. 그는 험 쉐이퍼와 리딩을 분담하며 프론트 코트의 조지 마이칸, 짐 폴라드에게 원활하게 볼을 배급해주었고, 종종 필요할 때 스스로 득점을 해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47-48시즌에 주전 가드로서 평균 8.2득점을 올리며 팀의 NBL 우승에 일익을 담당했죠. 48-49시즌부터 BAA로 리그를 옮긴 레이커스는 당대 최고 센터 마이칸을 앞세워 BAA까지 제패했고, 칼슨은 평균 9.2득점에 3.1어시스트로 꾸준한 활약을 이어갔습니다. 49-50시즌에도 레이커스는 다시 한번 리그를 제패했지만, 그는 슬레이터 마틴, 밥 해리슨 등 젊은 가드들에게 밀려 입지가 많이 줄어들었죠. 결국 그는 오프시즌에 볼티모어 불리츠로 이적했다가 고작 9경기만 뛴 뒤 프로 커리어를 마쳤습니다. 그는 은퇴 후 콜롬비아 하이츠 고등학교에서 코치로 재임했으며, 2004년에 8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SG 23th : #_20  Terry Teagle

 

 

6-5, 195lbs SG/SF / 2시즌(91-92), 164경기

 

10.3득점, 2.2리바운드, 1.2어시스트, 0.6스틸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서 주전급 스윙맨으로 좋은 활약을 펼치던 테리 티글은 90-91시즌을 앞두고 1라운드 픽과 맞트레이드 되어 L.A 레이커스로 이적했습니다. 2-3번을 두루 백업하며 벤치에서 키 식스맨으로 뛴 그는 평균 출전시간이 20분이 채 되지 않았음에도 거의 두 자릿 수 득점을 올려주며 쏠쏠히 활약했죠. 그는 탄력이 제법 좋은 하이 플라이어였으며, 한 번 터지면 못 말리는 폭발적인 득점력을 지녔습니다. 특히 그는 턴어라운드 점퍼가 일품이었는데, 거의 정수리 위에서 릴리즈하는 독특한 슈팅 폼 때문에 상대 수비수가 막기 까다로웠죠. 또한 그는 골든스테이트 시절에는 극단적인 스몰 라인업 하에 종종 4번까지 수비했을 정도로 다부진 체격과 터프함을 자랑했습니다. 90-91시즌에 그는 대 새크라멘토 킹스 전에서 35득점을 퍼붓기도 하였으며, 플레이오프에서는 파이널 무대까지 경험했죠. 91-92시즌에 평균 10.7득점을 올리며 벤치 득점원으로서 활약을 이어간 그는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와 맞붙은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는 평균 17.5득점을 올리며 분전했으나 팀의 1라운드 탈락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그는 오프시즌에 FA가 되자 유럽으로 건너가 이탈리아 리그의 베네통 트레비소(Benetton Treviso)에서 뛰며 소속팀을 유로리그 파이널까지 올렸죠. 그는 92-93시즌 말미에 잠시 휴스턴 로케츠에 합류해 2경기를 뛰기도 했으며, 이후 아르헨티나 리그에서 커리어를 마쳤습니다.


 

 

SG 22th : #_34  Tony Smith

 

 

6-3, 185lbs SG/PG / 5시즌(91-95), 316경기

 

5.8득점, 1.7리바운드, 1.8어시스트, 0.7스틸

 

마켓 대학 출신의 토니 스미스는 90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전체 51번으로 L.A 레이커스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루키 시즌에 백업 가드로 뛰며 플레이오프에서 파이널까지 맛본 그는 90년대 초반에 레이커스 벤치 요원으로 1, 2번 포지션을 두루 백업해 주었죠. 그는 준수한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부지런히 코트 위를 누비며 림으로 달려드는 슬래셔였고, 수비력도 제법 탄탄했습니다. 또한 전반적으로 평범한 리바운드였지만 공격 리바운드 가담에는 제법 적극적이었죠.

 

한편 93-94시즌에 주전 2번인 앤써니 필러가 다리 부상으로 시즌을 조기 마감하자, 스미스는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땜빵 주전으로 기용되며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냈습니다. 시즌 평균 8.8득점을 기록한 그는 주전으로 출장한 31경기에서는 평균 12.3득점에 3.1어시스트를 올려주었죠. 벤치 가드로 한 시즌을 더 활약한 그는 95-96시즌을 앞두고 피닉스 선즈와 계약하며 레이커스를 떠났습니다. 이후 그는 이 팀 저 팀을 떠돌며 저니맨의 커리어를 보냈고, 커리어 막판에는 하부리그와 유럽 등지를 전전했습니다. 위스콘신 토박이인 그는 은퇴 후 밀워키 벅스 경기의 해설을 맡기도 했으며, 현재는 모교인 마켓 대학 경기의 해설자로 활동 중입니다.


 

 

SG 21th : #_12  Shannon Brown

 

 

6-4, 205lbs SG / 3시즌(09-11), 182경기

 

7.9득점, 2.0리바운드, 1.2어시스트, 0.7스틸, 86.1% 자유투율

 

샬럿 밥캐츠에서 벤치를 전전하던 섀넌 브라운은 08-09시즌 도중 애덤 모리슨 ⇔ 블라디미르 라드마노비치 딜에 끼어 L.A 레이커스로 이적했습니다. 그는 정규 시즌에는 평균 7.6분만 나오며 가비지 타임을 전전했으나, 플레이오프에서는 로테이션 플레이어로서 평균 13.1분을 뛰며 팀 우승에 나름 기여했죠. 오프시즌에 그는 레이커스와 2년 4.2mil에 재계약하며 잔류를 택했습니다. 09-10시즌에 전 경기를 출장한 그는 코비 브라이언트의 백업으로 벤치에서 평균 8.1득점을 기록했고, 코비가 부상으로 빠져 선발 출장한 7경기에서는 평균 15.3득점을 올려주기도 하였죠. 그는 올스타 주간에 슬램덩크 컨테스트에도 참가했으나, 아쉽게도 예선 탈락의 고배를 마셨습니다.

 

그는 폭발적인 탄력을 바탕으로 곧잘 멋진 고공 덩크를 터뜨리는 하이 플라이였죠. 또한 키는 그리 크지 않아도 탄탄한 체격을 지녔고, 운동능력을 십분 활용해 상대를 압박하는 수비에도 능했습니다. 다만 BQ가 낮아서 가끔 엉뚱한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으며, 평균에 조금 못 미치는 아쉬운 외곽 슈터였죠. 레이커스의 백-투-백 우승으로 반지를 또 하나 획득한 그는 오프시즌에 옵트-아웃한 뒤 다시 2년 4.6mil에 재계약했습니다. 10-11시즌에 전년도와 비슷한 활약(평균 8.7득점)을 펼친 그는 다시 옵트-아웃해 FA가 된 뒤 피닉스 선즈와 1년 계약(3.5mil)을 맺으며 레이커스를 떠났죠. 이후 그는 리그 여러 팀 및 하부리그를 전전하며 2018년까지 선수 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유명 R&B 가수인 모니카와 결혼했다가 2019년에 이혼했으며, 그의 동생 스털링 브라운은 지난 시즌까지 밀워키에서 뛰다가 이번 오프시즌에 휴스턴으로 이적했습니다.


 

 

SG 20th : #_20  Jodie Meeks

 

        

6-4, 210lbs SG / 2시즌(13-14), 155경기

 

11.8득점, 2.4리바운드, 1.3어시스트, 1.1스틸, 38.1% 3점슛률(통산 7위), 86.7% 자유투율(통산 4위)

 

필라델피아 76ers에서 주전 가드로 활약하던 조디 믹스는 11-12시즌을 마치고 L.A 레이커스와 2년 2.4mil에 FA 계약을 맺었습니다. 12-13시즌에 그는 벤치에서 슈터로 활약하며 평균 7.9득점을 넣어주었죠. 그는 빠른 발을 바탕으로 부지런히 오프-더-볼 무브를 하면서 캐치 앤 샷을 노리는 샤프 슈터입니다. 또한 외곽에서 한 번 터지면 못 말리는 폭발력을 지녔고, 속공 상황에서도 과감하게 3점 슛을 던질 수 있는 강심장이죠. 그는 다소 언더사이즈지만 자기 앞가림은 할 수 있는 부지런한 수비수기도 합니다.

 

13-14시즌에 레이커스는 코비 브라이언트와 스티브 내쉬가 큰 부상으로 거의 내내 빠지며 백코트 전력이 크게 약화되었는데, 믹스는 이 틈을 타서 주전 2번으로서 자신의 입지를 굳혔습니다. 그는 팀에서 가장 많은 평균 33.2분의 출장시간을 소화하며 15.7득점을 올려주었고, 40.1%의 정교한 3점슛을 뽐냈죠. 그리고 대 오클라호마시티 썬더 전에서는 커리어-하이인 42득점을 퍼부으며 팀을 승리로 이끌기도 했습니다. 레이커스에서 인상적인 활약으로 주가를 높인 그는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와 3년 19.5mil에 새로 계약하며 레이커스를 떠났죠. 이후 잦은 부상에 시달리며 조금 주춤한 커리어를 보내던 그는 18년에는 금지 약물 복용 적발로 25경기 출장 정지의 중징계를 당하기도 했으나, 18-19시즌 막판에 토론토 랩터스와 계약하며 행운의 우승 반지를 얻기도 했습니다.

 


 

SG 19th : #_23  Lou Hudson

 

 

6-5, 210lbs SG/SF / 2시즌(78-79), 160경기

 

11.8득점, 2.1리바운드, 2.1어시스트, 1.0스틸, 50.5% 야투율(통산 19위), 82.1% 자유투율(통산 19위)

 

애틀란타 호크스를 대표하던 스타 플레이어였던 루 허드슨은 한창때 평균 25득점 이상을 해주던 엘리트 스코어러로, 6번이나 올스타를 지낸 경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70년대 중반 이후로 부상과 노쇠화로 뚜렷한 하향세를 보였으며, 마침 소속팀 호크스도 리빌딩의 기로에 서게 되었죠. 결국 그는 77-78시즌을 앞두고 올리 존슨이라는 평범한 포워드와 맞트레이드 되어 L.A 레이커스로 이적했습니다. 그는 시즌 초반에는 벤치에서 식스맨으로 출전했으나, 이윽고 주전 2번인 얼 테이텀이 트레이드되자 스타팅으로 올라섰죠. 그는 시즌 도중 찰리 스캇이 합류하자 잠시 벤치로 내려갔지만, 결국 팀에서는 1번도 볼 수 있는 스캇을 전천후 백업 가드로 쓰고 다시 그를 주전으로 올렸습니다. 전성기 시절 최고의 캐치-앤-슈터로 이름을 날린 바 있는 그는 레이커스에서도 간혹 녹슬지 않은 슈팅 감각을 선보이며 득점에서 어느 정도 기여해 주었죠. 그는 시즌 전 경기에 출전해 평균 13.7득점을 기록했으며, 주전으로 나온 41경기에서는 평균 15.3득점을 올렸습니다.

 

그는 이듬해인 79-80시즌에는 론 분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고 벤치에서 나오다가 시즌 중반에 다시 주전으로 복귀했지만, 지난 시즌만한 활약은 보여주지 못하다가 다시 벤치로 내려갔죠. 평균 9.8득점으로 데뷔 이래 가장 저조한 성적에 그친 그는 결국 시즌을 마치고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이후 라디오 해설가, 시의원 등으로 활동한 그는 말년에 뇌졸중으로 고생하다가 2014년에 6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SG 18th : #_18  Frank “Pep” Saul

 

 

6-2, 185lbs SG / 3시즌(52-54), 166경기

 

7.1득점, 2.1리바운드, 1.9어시스트, 26.3분 출전

 

※ 51-52시즌에 레이커스 이적 후 리바운드 개수가 개별 통계로 남아있지 않아, 평균 리바운드는 그해 25경기를 제외한 141경기로 산출함

 

50-51시즌 로체스터 로얄즈의 우승 멤버였던 펩 사울은 벤치에서 뛰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트레이드를 요구했고, 결국 오프시즌에 볼티모어 불리츠로 이적했습니다. 그는 정작 볼티모어에서도 그다지 많은 출전시간을 얻지 못했으나, (평균 18.5분) 51-52시즌 도중 미네아폴리스 레이커스로 이적한 뒤에는 주전으로 중용되는 기회를 얻었죠. 레이커스에서 25경기 동안 8.6득점을 올린 그는 플레이오프에서는 평균 40분 이상 출전에 11.3득점을 올렸고, 뉴욕 닉스와 맞붙은 파이널에서는 평균 13득점에 4.3어시스트를 기록, 우승에 혁혁하게 공헌했습니다. 그는 지난해 로체스터에서 우승을 차지한 데 이어 레이커스로 팀을 옮기고도 연속으로 우승한 셈인데, 리그 역사상 이런 케이스는 그와 스티브 커(97년 시카고→98년 샌안토니오), 패트릭 맥카우(18년 골든스테이트→19년 토론토), 대니 그린(19년 토론토→20년 레이커스)뿐이죠.

 

그는 탁월한 세트 슛으로 외곽에서 쏠쏠히 득점을 올려줄 수 있었고, 보조 리딩을 담당하는 오프-가드 역할도 충실히 해냈습니다. 레이커스에서 두 시즌 더 뛰며 두 번의 우승을 더 맛본 그는 로체스터 시절까지 포함해 4년 연속으로 우승을 경험했죠. 그는 54-55시즌을 앞두고 돈 선더리지와 맞트레이드되어 밀워키 호크스로 이적했다가 이윽고 무릎 부상을 당해 은퇴했습니다. 한편 하계 시즌에는 야구 선수로 활약한 그는 마이너리그에서 투수로 뛴 경력도 있죠. 그는 선수 생활을 마친 후 고향인 뉴저지에서 보험업에 종사했으며, 2019년에 9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SG 17th : #_23  Lou Williams

 

 

6-1, 175lbs SG/PG / 2시즌(16-17), 125경기

 

16.8득점(통산 17위), 2.4리바운드, 2.8어시스트, 1.0스틸, 85.4% 자유투율(통산 6위), 20.3 PER(통산 13위)

 

14-15시즌에 토론토 랩터스에서 “올해의 식스맨” 상을 수상하며 주가를 한층 높인 루 윌리엄스는 오프시즌에 FA가 되자 L.A 레이커스와 3년 21mil의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그는 커리어 내내 주로 벤치에서 나오며 공격형 식스맨으로 활약했는데, 15-16시즌 레이커스에서는 시즌 중반 두어 달 정도 선발 출장하기도 하며(67경기 중 35경기 스타팅) 평균 15.3득점을 올려주었죠. 그는 대 오클라호마시티 썬더 전에서는 4쿼터에만 23득점을 몰아넣으며 44득점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출중한 1:1 능력을 바탕으로 언제든 득점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훌륭한 스코어러로, 특히 한 번 터지면 못 말리는 폭발력을 지녔죠. 다만 기복이 심할뿐더러 수비도 약한 편이라 벤치에서 식스맨으로 나와 조커 역할을 하는 데 최적화된 스타일입니다. 그는 16-17시즌에는 주로 벤치에서 나와 평균 24분 가량을 뛰며 무려 18.6득점을 올려주었는데, 이는 평균 36분 환산 시 27.7득점에 달하는 놀라운 득점력이었죠. 한편 리빌딩 중이던 레이커스 구단은 한창 물오른 활약을 하던 그를 트레이드 데드라인 때 휴스턴 로케츠에 파는 대신, 코리 브루어와 1라운드 픽을 얻어왔습니다. 이후 크리스 폴 영입 딜에 끼어 L.A 클리퍼스로 이적한 그는 클리퍼스에서 2년 연속으로 “올해의 식스맨” 상을 수상하며 리그를 대표하는 식스맨으로 맹활약 중입니다.

 


 

SG 16th : #_12  Pat Riley

 

 

6-4, 205lbs SG/SF / 6시즌(71-76), 296경기

 

7.8득점, 1.6리바운드, 1.7어시스트, 0.8스틸

 

※ 스틸은 73-74시즌부터 집계되어 총 120경기로 그 값을 산출함

 

샌디에이고 로케츠에서 뛰던 팻 라일리는 1970년에 실시한 확장 드래프트에서 신생팀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의 지명을 받았으나, 이후 L.A 레이커스로 현금 트레이드 되었습니다. 그는 70년대 초, 중반에 2-3번을 두루 오가며 레이커스 벤치를 지켜주었고 72 파이널에서 레이커스의 우승으로 반지도 손에 넣었죠. 그는 백인 스윙맨치고 괜찮은 운동능력의 소유자로 골밑에서 터프하게 플레이할 수 있었으며, 수비력과 코트 비전도 제법 좋았습니다. 매 시즌 조금씩 평균 득점을 올리며 입지를 다져간 그는 74-75시즌에 가장 절정의 활약을 펼쳤는데, 대 뉴올리언즈 호네츠 전에서는 커리어-하이인 38득점을 넣기도 하였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해 무릎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46경기 출전에 그쳤고, 물오른 기량도 한풀 꺾이고 말았습니다.

 

그는 이듬해인 75-76시즌 개막 두 경기 만에 존 로체 + 2라운드 픽과 트레이드 되어 피닉스 선즈로 이적했고, 무릎 부상의 여파로 시즌을 마친 뒤 바로 은퇴했죠. 이후 잠시 방송계에 몸담았다가 레이커스 코치진에 합류한 그는 81-82시즌 도중 폴 웨스트헤드 감독이 경질되자 후임 감독을 맡아 바로 그해 레이커스를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그 후로도 레이커스를 3번 더 우승시키며 명장 반열에 오른 그는 뉴욕 닉스와 마이애미 히트에서 코칭 커리어를 이어갔죠. 그는 25년 가까이 마이애미에서 터줏대감 노릇을 하고 있으며, 현재는 마이애미 구단의 사장으로 재임 중입니다.

 


 

SG 15th : #_18  Sasha Vujacic

 

 

6-7, 195lbs SG/PG / 7시즌(05-11), 420경기

 

4.8득점, 1.7리바운드, 1.2어시스트, 0.6스틸, 37.2% 3점슛률, 363개 3점슛, 87.6% 자유투율(통산 2위)

 

슬로베니아 출신의 사샤 부야치치는 04 드래프트에서 전체 27번으로 L.A 레이커스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그는 레이커스 벤치에서 백업 가드로 오랜 기간 활약했는데, 2년차 때인 05-06시즌에는 장신 포인트가드를 선호하던 필 잭슨 감독이 그를 포인트가드로도 기용해보기도 했었지만 대체적으로는 슈팅가드 롤을 많이 맡았죠. 그는 외곽에서 주저 없이 3점슛을 던져줄 수 있는 대담한 슈터로, 이 때문에 “머신(Machine)”이란 별명이 붙기도 했습니다. 또한 운동능력과 민첩성은 별로였지만 상대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곤 했던 근성 있는 수비수였죠. 그는 짧은 시간 동안은 볼-핸들러 역할도 맡아줄 수 있었지만, 주로 빈 공간을 찾아 움직이는 슈터 롤에 제일 적합했습니다.

 

07-08시즌에 그는 평균 8.8득점에 43.7%의 3점슛 성공률을 기록하며 레이커스 입단 후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보스턴 셀틱스와 맞붙은 그해 파이널 3차전에서는 깜짝 20득점을 올리며 팀을 승리로 이끌기도 했죠. 이러한 활약 덕에 그는 오프시즌에 레이커스와 3년 15mil에 재계약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이후 그는 07-08시즌만한 활약은 보여주지 못했지만, 레이커스의 백-투-백 우승 멤버로서 두 개의 반지를 챙겼죠. 그는 10-11시즌 초반에 복잡한 3각 딜을 거쳐 뉴저지 네츠로 트레이드되었고, 시즌을 마친 후에는 유럽으로 돌아가 터키 리그에서 뛰었습니다. 이후 그는 L.A 클리퍼스 및 유럽의 여러 클럽을 전전하다가 다시 리그로 복귀해 뉴욕 닉스에서 두 시즌 간 몸담기도 했으며, 근래에는 이탈리아 리그에서 뛰었죠. 한편 그는 예전에 여자 테니스 스타인 마리아 샤라포바와 교제하여 한창 유명세를 타기도 했습니다.

 


 

Major Ranking

 

 

SG 14th : #_1  Anthony Peeler

 

        

                

미주리 대학 출신의 앤써니 필러는 92 드래프트를 앞두고 여자친구 폭행 혐의를 받으며 주가가 뚝 떨어졌으나, L.A 레이커스는 과감하게 15픽으로 그를 지명했습니다. 루키 시즌에 그는 주로 바이런 스캇의 백업으로 출전해 평균 10.4득점을 올려주었죠. 그는 스캇의 이적으로 이듬해인 93-94시즌에는 일약 주전으로 발탁되어 평균 14.1득점의 준수한 활약을 펼쳤지만 아쉽게도 다리 부상으로 30경기 만에 시즌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정교한 중장거리 슈팅력을 지니고 있었고 어느 정도의 보조 리딩도 가능한 정통파 슈팅 가드였죠. 또한 다부진 체격에 터프함이 넘쳤으며, 성실한 수비수이기도 했습니다.

 

94-95시즌에 그는 루키 에디 존스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고 벤치로 돌아갔지만, 그해 플레이오프에서는 오히려 존스를 밀어내고 주전으로 중용되기도 하였죠. 한편 95-96시즌을 마치고 레이커스 구단은 대형 FA인 샤킬 오닐을 영입할 샐러리를 마련하기 위해 선수단 정리에 나섰습니다. 결국 그는 팀 동료 조지 린치와 함께 2장의 2라운드 픽이 서로 오가는 딜에 껴서 신생팀이나 다름없는 밴쿠버 그리즐리스로 이적했죠. 밴쿠버에서 잠시 주전 가드로 활약하다가 미네소타 팀버울브스로 트레이드된 그는 여러 시즌 동안 미네소타에서 터줏대감으로 활약했고, 말년에는 새크라멘토, 워싱턴을 전전했습니다. 은퇴 후 지도자의 길을 걸은 그는 버지니아 유니온 대학의 어시스턴트 코치 등을 지냈습니다.

           


 

 

SG 13th : #_1  Kentavious Caldwell-Pope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에서 주전 가드로 활약하던 켄타비우스 칼드웰-포프는 16-17시즌을 마치고 루키 스케일 계약이 끝나 FA가 되었는데, 디트로이트와의 재계약 협상이 그만 틀어지고 말았습니다. 이에 비제한적 FA로 풀린 그는 닉 영의 이적으로 주전 2번 자리가 공석이 된 L.A 레이커스와 1년 18mil에 계약했죠. 그는 탄탄한 퍼리미터 수비력을 바탕으로 상대 에이스 가드를 전담 마크할 수 있으며, 공격에서도 어느 때곤 슛을 던져줄 수 있는 전형적인 3 & D 플레이어입니다. 다만 슈팅력에 기복이 심하고 가끔 무리한 공격을 일삼기도 하는 단점이 있죠.

 

그는 17-18시즌에 풀타임 주전 2번으로 활약하며 평균 13.4득점, 5.2리바운드를 기록한 그는 오프시즌에 레이커스와 1년 12mil에 재계약했습니다. 18-19시즌에 그는 주로 벤치에서 식스맨으로 활약했고, 팀의 1번들이 부상으로 줄줄이 빠졌을 때는 간간이 핸들러 롤을 맡아주기도 했죠. 오프시즌에 다시 레이커스와 2년 16.6mil(2년차 플레이어-옵션)에 계약한 그는 19-20시즌에 주전과 벤치를 두루 오가다가, 올란도 버블에서 시즌이 재개된 후로는 팀에 합류하지 않은 에이브리 브래들리를 대신해 붙박이 주전 1번으로 기용되었습니다. 그는 마이애미 히트와 맞붙은 파이널 시리즈에서는 평균 12.8득점을 올리며 우승에 알토란같은 활약을 했죠. 한편 이번 오프시즌에 플레이어-옵션을 포기하고 FA가 된 그는 3년 40mil에 재계약하며 레이커스에 잔류했습니다.

 


 

 

SG 12th : #_40 Mike McGee

 

 

 

미시건 대학 출신의 마이크 맥기는 81 드래프트에서 전체 19번으로 L.A 레이커스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그는 루키 시즌에 팀의 우승으로 일찌감치 반지 하나를 챙길 수 있었지만, 2년차 때까지 변변한 출장시간을 받지 못한 채 가비지 타임을 전전해야 했죠. 한편 83-84시즌을 앞두고 놈 닉슨의 이적으로 주전 가드 자리 하나가 비게 되면서 그에게도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주전 2번 자리를 놓고 루키 바이런 스캇과 경쟁한 그는 45경기에 선발 출장해 평균 9.8득점에 59.4%의 고감도 야투율(리그 3위)을 기록했는데, 특히 주로 선발로 나온 전반기에는 야투율이 63%에 달하기도 했죠. 한편 그는 플레이오프에서 위장병으로 빠지게 된 자말 윌크스를 대신해 주전 3번으로 땜빵 출전해 1, 2라운드에서 평균 17.1득점에 62%의 야투율로 깜짝 활약했습니다.

 

그는 빠른 발과 정교한 슈팅력을 바탕으로 짧은 시간 동안 몰아치기 득점을 할 수 있는 유능한 스코어러였으며, 손끝 감각이 좋아 가드치고 높은 야투율을 뽐냈죠. 다만 뛰어난 슈터임에도 희한하게 자유투는 형편없었는데, 83-84시즌에는 야투성공률(59.4%)보다 자유투성공률(54%)이 5푼 이상 낮기도 했습니다. 이듬해인 84-85시즌에는 벤치에서 2-3번을 두루 백업한 그는 평균 15분대의 출장시간에도 불구하고 두 자릿수 득점을 올려주었는데, (평균 10.2득점 / 36분당 평균 23.8득점) 분 당 득점력으로 따지면 당시 카림 압둘-자바(36분당 평균 23.7득점)를 앞설 정도였죠. 그는 피닉스 선즈와 맞붙은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벤치 출장하고도 평균 19.7득점(팀 내 1위)을 넣는 등 엑스-팩터 역할을 충실히 해내며 팀의 우승에 일조했습니다. 그는 레이커스에서 한 시즌을 더 뛴 뒤 빌리 탐슨의 지명권(86 드래프트 19픽) 등과 트레이드되어 애틀란타 호크스로 이적했고, 이후 리그 여러 팀과 해외 리그 등지를 전전했죠. 은퇴 후 지도자의 길을 걸은 그는 현재 중국의 2부 리그인 NBL에서 감독직을 맡고 있습니다.

 


 

 

SG 11th : #_6  Jordan Clarkson

 

 

 

필리핀계이며 미주리 대학 출신인 조던 클락슨은 14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전체 46번으로 워싱턴 위저즈의 지명을 받았으나, 그의 지명권은 이내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L.A 레이커스로 넘어갔습니다. 그는 루키 시즌 초반에는 D-리그를 들락날락하였으나, 코비 브라이언트가 어깨 부상으로 시즌-아웃되는 바람에 가드진 운용에 비상이 걸리자 기회를 잡게 되었죠. 코비가 빠진 후 38경기에서 내리 주전 포인트가드로 기용된 그는 3월에는 평균 15.8득점, 5.2어시스트를 올리며 서부지구 “이달의 루키”로 뽑혔고, 그해 올-루키 퍼스트 팀에도 선정되었습니다. 2년차 때인 15-16시즌에 그는 79경기에 모두 선발로 나왔는데, 디안젤로 러셀과 함께 뛸 적에는 슈팅가드, 루 윌리엄스와 함께 뛸 적에는 포인트가드로 그 롤을 바꾸어 가며 평균 15.5득점을 올려주었죠. 한편 오프시즌에 FA가 된 그는 레이커스와 4년 50mil에 재계약하면서 나름 2라운더 성공 신화를 썼습니다.

 

그는 듀얼 가드로서 훌륭한 신체 조건과 준수한 운동능력을 겸비했으며, 아이솔레이션을 바탕으로 어떻게든 득점을 창출해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다만 1번으로서 플레이메이킹과 코트 비전은 다소 부족하며, 볼-호그 기질도 강하죠. 그는 미드-레인지에서 풀-업 점퍼 던지기를 즐기는 편이며, 폭발력은 있지만 기복이 심한 외곽 슈터입니다. 한편 16-17시즌에 새로 부임한 룩 월튼 감독은 그에게 식스맨 롤을 부여했고, 그는 벤치에서도 평균 14득점 가량을 올리며 꾸준한 활약을 이어갔죠. 하지만 레이커스 구단은 오프시즌에 대형 FA 영입을 노릴 심산으로 대대적인 샐러리 비우기에 나섰고, 결국 그는 17-18시즌 도중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로 트레이드되고 말았습니다. (클락슨 + 래리 낸스 주니어 ⇔ 아이재이아 토마스 + 채닝 프라이 + 1라운드 픽) 이후 그는 클리블랜드에서 두어 시즌 뛰다가 19-20시즌 도중에 유타 재즈로 트레이드되어 핵심 벤치 자원으로 활약했으며, 이번 오프시즌에 유타와 4년 52mil에 재계약했습니다.

 


 

SG 10th : #_16  Bob Harrison

 

 

 

※ 리바운드는 50-51시즌부터 집계되어 총 243경기, 출전시간과 PER는 51-52시즌부터 집계되어 총 175경기로 그 값을 산출함

 

미국 원주민 혈통으로 위네배고(Winnebago) 부족 출신인 밥 해리슨은 미시간 대학을 졸업하고 49 드래프트에서 미네아폴리스 레이커스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지명 순위는 불분명하며, 2라운더로 추정됨) 루키 시즌에 백업 가드로 뛴 그는 생애 첫 파이널 경기에서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을 선보였죠. 50 파이널에서 레이커스는 시라큐즈 내셔널즈와 맞붙었는데, 1차전 종료를 앞두고 두 팀이 66대 66으로 동점인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공을 가지고 있던 그는 시간이 부족해 40피트 거리에서 냅다 초장거리 슛을 던졌는데, 이것이 그만 림에 그대로 빨려 들어가며 기적같은 버저비터 결승 골이 되었죠. 1차전을 극적인 승리로 장식하며 기선을 제압한 레이커스는 마침내 4-2로 시리즈를 따내면서 우승했고, 1차전에 터진 해리슨의 그 슛은 리그 역사상 최초의 파이널 버저비터 결승 골로 기록되었습니다. 이후 주전급 가드로 중용된 그는 당대 최고의 퍼리미터 디펜더인 슬레이터 마틴과 콤비를 이루며 막강한 백코트 수비 라인을 구축했죠.

 

저돌적인 수비 스타일 덕에 “호랑이(Tiger)”란 별명이 붙은 그는 득점력은 그리 뛰어나지 않았으나 간혹 외곽에서 장거리 슛을 넣어주곤 하였으며, 여러 포지션 소화가 가능한 올-라운드 플레이어였습니다. 그는 52년과 53년에도 레이커스 소속으로 연속 우승을 맛보았지만, 같은 포지션의 펩 사울과 벌인 주전 경쟁에서 점차 밀리게 되었죠. 결국 그는 53-54시즌 도중에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밀워키 호크스로 이적했는데, 호크스에서는 나름 반등하며 주전 포인트가드로 활약했고 나중에는 올스타에 뽑히기도 했습니다. 현역 은퇴 후 지도자의 길을 걸은 그는 케년 대학과 하버드 대학에서 감독직을 역임했죠. 한편 그는 중학교 시절에 한 경기에서 팀의 모든 득점인 139득점을 혼자 몰아넣은 적이 있는데, 이는 미국 농구에서 프로와 아마추어를 통틀어 가장 많은 한 경기 득점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SG 9th : #_20  Myer “Whitey” Skoog

 

 

 

미네소타 토박이로 미네소타 대학의 에이스로 활약하던 마이어 스쿡은 51 드래프트에서 지역 연고픽(1라운드 픽을 사용해 해당 지역이나 대학 출신 선수를 미리 선점하는 지명권)을 통해 미네아폴리스 레이커스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그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백발이었기에 “Whitey(흰둥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죠. 그는 루키 시즌에는 무릎 부상으로 35경기 출전에 그쳤고, 플레이오프에서도 뛰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최강팀인 레이커스의 일원이었기에 데뷔 이래 3년 연속으로 우승을 맛볼 수 있었죠. 그는 대학 시절부터 당대에 드문 점프 슈터로 이름을 날렸는데, 당시만 해도 일반적인 슛 폼은 두 발을 땅에 붙이고 쏘는 세트 슛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를 비롯해 조 펄크스, 케니 세일러스 등 몇몇 선구자들이 점프슛을 주무기로 삼으며 농구의 패러다임을 바꾸기 시작했죠. 그는 5-11의 단신이었지만 탄력이 좋았고 점프슛이라는 독창적인 기술을 지니고 있었기에 막기 까다로운 공격수였으며, 플레이스타일 상 포인트가드라기보단 단신의 슈팅가드에 가까웠습니다.

 

그는 2년차 때까지는 주로 백업 포인트가드로 기용되어 미미한 활약에 그쳤지만, 3년차인 53-54시즌부터는 주전 슈팅가드로 자리 잡으며 점차 두각을 보이기 시작했죠. 그는 54-55시즌에 평균 10.9득점, 3.5어시스트를 올려주었고, 포트웨인 피스톤즈와 맞붙은 서부 디비전 파이널에서는 평균 15.3득점으로 분전했지만 팀의 시리즈 패배(1-3)를 막지는 못했습니다. 그는 55-56시즌에도 평균 11.6득점, 3.5어시스트로 꾸준한 활약을 이어갔으나, 이듬해인 56-57시즌에 그만 불의의 허리 부상으로 쓰러지고 말았고 결국 부상에서 회복하지 못한 채 6년의 짧은 프로 커리어를 그대로 마쳐야 했죠. 은퇴 후 그는 고향 미네소타에 소재한 구스타버스 아돌퍼스 대학(Gustavus Adolphus College)에서 25년간 감독으로 재임했으며, 유능한 골프 코치로도 이름을 날렸죠. 그는 2019년에 9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SG 8th : #_5  Dick Barnett

 

 

 

시라큐즈 내셔널즈에서 뛰던 딕 바넷은 61-62시즌에 신생 리그인 ABL로 진출해 소속팀 클리블랜드 파이퍼스(Cleveland Pipers)를 우승으로 이끌었지만, 파이퍼스 팀은 경영상의 문제로 이내 해체되고 말았습니다. 한편 시라큐즈가 그의 권리를 L.A 레이커스에 현금을 받고 팔아넘김에 따라, 그는 레이커스 소속으로 리그에 컴백하게 되었죠. 62-63시즌에 그는 주로 벤치에서 출전해 평균 18득점을 퍼부으며 리그 탑 클래스 식스맨으로 활약했습니다. 특히 제리 웨스트가 시즌 말 한 달 반 가량을 햄스트링 부상으로 빠지게 되자, 그는 땜빵 주전으로 나와 평균 23.1득점을 올려주며 분전했죠. (24경기 555득점) 그는 몸을 약간 뒤로 젖히면서 두 다리를 나란히 후방에 수평으로 뻗는 고유한 점프슛 폼을 가지고 있었는데, 무게중심이 뒤로 쏠리는 독특한 슈팅 매커니즘 때문에 상대 수비수가 몹시 막기 까다로웠습니다. 이 폼은 당시 폴 백(Fall Back)이라 불렸는데, 이 때문에 레이커스의 전설적인 아나운서 칙 헌은 그에게 “폴 백 베이비(Fall Back Baby)”라는 애칭을 붙여주기도 했죠. 또한 그는 슛뿐만 아니라 돌파력과 포스트 득점력도 고루 갖추고 있었으며, 수비력도 준수했습니다.

 

63-64시즌에 그는 주전과 벤치를 오가며 평균 18.4득점을 기록, 여전한 득점력을 과시했죠. 64-65시즌에도 그는 주전, 벤치 가리지 않고 두루 출전했지만 팀 내 비중이 약간 줄어들며 평균 득점이 하락했습니다. (13.8득점) 한편 그해 플레이오프 도중 엘진 베일러가 심각한 무릎 부상을 당하게 되자, 레이커스는 오프시즌에 포워드 라인 보강에 나섰죠. 결국 65-66시즌을 앞두고 레이커스는 바넷을 뉴욕 닉스로 보내는 대신 1픽 출신 포워드 밥 부저를 영입했습니다. 그는 뉴욕에서 주축 선수로 활약하며 올스타에도 선발되었고, 70년대 뉴욕의 두 차례 우승에도 동참했죠. 은퇴 후 학업에 매진한 그는 포드햄 대학교에서 교육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이후 세인트 존스 대학에서 스포츠 매니지먼트를 강의하였죠. 현재 그는 학생들을 상대로 강연 활동을 하며 여생을 보내고 있습니다.

 


 

 

SG 7th : #_16  Dick Garmaker

 

 

 

54 드래프트에서 미네아폴리스 레이커스는 미네소타 대학의 3학년 에이스인 딕 가메이커를 9라운드(80번)에 깜짝 지명했습니다. 그는 히빙 전문대(Hibbing CC) 졸업 후 미네소타 대학에 진학해 NCAA의 전학 규정에 따라 1년을 쉬었기 때문에 졸업반이 아님에도 나이가 차서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을 수 있었죠. 하지만 그는 4학년까지 마치고 프로에 진출하길 원했고, 결국 1년 후 55 드래프트에서 지역 연고픽을 통해 정식으로 고향팀 레이커스에 입단했습니다. 그는 루키 시즌에는 벤치를 전전하며 미미한 활약(평균 5.7득점)에 그쳤지만, 2년차 때인 56-57시즌부터 두각을 보이며 붙박이 주전으로 자리 잡았죠. 그해 평균 16.3득점, 4.7리바운드에 83.9%의 자유투성공률(리그 3위)을 기록한 그는 올스타와 올-NBA 세컨드 팀에 나란히 뽑히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이후로도 그는 팀의 2-3옵션 득점원으로서 꾸준한 활약을 이어갔고, 4년 연속으로 올스타에 선발되었죠.

 

당대 최고의 점프 슈터 중 한 명으로 뛰어난 슈팅 기술을 자랑한 그는 외곽에서 패스를 이어받아 능숙하게 캐치 앤 슛을 넣을 수 있었고, 수비수를 등지고 위력적인 페이더웨이 점퍼를 날릴 수도 있었죠. 다만 점퍼에 의존하는 스타일이었기에 득점력에는 다소 기복이 있는 편이었습니다. 한편 58-59시즌에 슈퍼 루키 엘진 베일러가 입단했는데, 이 해 레이커스는 정규 시즌에는 5할 미만(33승 39패)의 성적에 그쳤으나 플레이오프에서는 베일러를 앞세워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디펜딩 챔피언 세인트루이스 호크스를 업셋하고 파이널까지 진출했죠. 아쉽게도 레이커스는 파이널에서 보스턴 셀틱스에게 일방적으로 밀리며 스윕패를 당했지만, 가메이커는 두 경기에서 20득점 이상을 올리는 등 평균 19.3득점으로 분전했습니다.

 

이듬해인 59-60시즌에는 유망주 핫 로드 헌들리의 성장과 베테랑 프랭크 셀비의 영입 등으로 팀의 가드진이 포화 상태에 이르자, 그의 출장시간과 득점은 자연히 줄어들게 되었죠. (평균 11.7득점, 27분 출장) 이에 레이커스는 시즌 도중에 그를 뉴욕 닉스로 트레이드하는 대신에 골밑 강화를 위해 6-11의 장신 센터 레이 펠릭스를 데려왔습니다. 고향팀을 떠난 그는 뉴욕에서 한 시즌을 더 뛴 뒤 28살의 젊은 나이에 은퇴했으며, 이후 부동산 중개업자로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냈죠. 그는 올해 6월에 8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SG 6th : #_6 / #_25  Eddie Jones

 

 

                

템플 대학 출신의 에디 존스는 94 드래프트에서 전체 10번으로 L.A 레이커스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루키 시즌부터 일찌감치 스타팅으로 발탁된 그는 올스타 주간에 열린 루키 챌린지에서 25득점을 넣으며 MVP에 뽑혔고, 시즌 평균 14득점의 기록으로 올-루키 퍼스트 팀에도 뽑혔죠. 하지만 그는 시즌 후반에 어깨 부상으로 잠시 주춤했던 것 때문에 플레이오프에서는 베테랑 앤써니 필러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고 벤치를 지켰습니다. 2년차 때인 95-96시즌에도 붙박이 주전 자리를 이어간 그는 닉 밴 엑셀, 세드릭 세발로스 등과 함께 제2기 “쇼타임 레이커스”의 일원으로 활약했죠.

 

호쾌한 탄력과 유연성을 자랑했던 그는 화려한 고공 플레이로 종종 하이라이트 필름을 장식했으며, 핑거-롤 레이업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했습니다. 또한 중장거리 슈팅력도 훌륭해 내외곽에서 두루 득점해 줄 수 있었죠. 그의 최고 장점은 무엇보다도 탄탄한 수비력이었는데, 탁월한 운동능력과 민첩성, 수비 센스를 앞세워 매치-업 상대를 꽁꽁 묶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특유의 빠른 손과 패싱 레인 차단 능력으로 앞선에서 상대의 볼을 가로챈 뒤 번개같이 내달려 속공을 마무리하곤 했으며, 포지션 대비 걸출한 슛 블로커였죠. 다만 득점력이 꾸준하긴 해도 폭발력은 다소 부족했고, 플레이오프 같은 큰 무대에서 종종 슬럼프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본래 등 번호가 #_25였는데 과거 그 번호를 달았던 게일 굿리치가 96년에 영구 결번되자, 자신의 우상인 줄리어스 어빙이 달던 #_6으로 등 번호를 바꿨죠. 96-97시즌에 그는 한층 발전된 기량을 뽐내며 평균 17.2득점, 3.4어시스트, 2.4스틸(리그 4위)을 기록했고, 생애 첫 올스타에도 선발되었습니다. 마침 그해에 고졸 루키 코비 브라이언트가 데뷔했는데, 존스는 아직 애송이였던 그에게 수비 요령을 전수해주는 등 멘토 역할을 훌륭히 해냈죠. 이듬해인 97-98시즌에 레이커스는 개막 후 11연승을 달리는 등 호조의 스타트를 끊었는데, 이때 존스는 11월에만 평균 21.3득점을 넣으며 팀 성적에 일조한 공로로 “이달의 선수”로 뽑히기도 했습니다. 또한 그 시즌에 팀 동료인 샤킬 오닐, 닉 밴 엑셀, 코비와 함께 나란히 올스타로 선발되었고, 올-디펜시브 세컨드 팀에도 뽑히며 그 수비력을 인정받았죠.

 

한편 나날이 기량이 일취월장하는 코비의 존재는 어느새 멘토인 그의 자리까지 위협하게 되었고, 레이커스는 포지션이 겹치는 둘을 한꺼번에 기용하는 데 한계를 느꼈습니다. 결국 레이커스는 98-99시즌 도중에 존스와 엘든 켐벨을 샬럿 호네츠로 보내고 대신 올스타 스몰포워드 글렌 라이스와 J.R 리드, B.J 암스트롱을 영입했죠. 그는 호네츠에서 나름 에이스 노릇을 하며 전성기를 구가했고, 이후로는 마이애미 히트에서 오랫동안 간판선수로 활약했습니다. 그는 말년에는 멤피스, 달라스 등을 전전하다가 2008년을 끝으로 코트를 떠났죠. 그는 우승 복이 없는 선수로도 유명한데, 하필이면 그가 팀을 떠나고 바로 이듬해에 레이커스(00년)와 마이애미(06)가 우승을 차지한 바 있습니다.

 


 

SG 5th : #_4  Byron Scott

 

 

 

애리조나 주립대 출신으로 83 드래프트에서 전체 4번으로 샌디에이고 클리퍼스에 뽑힌 바이런 스캇은 시즌 개막을 앞두고 트레이드를 통해 L.A 레이커스에 합류했습니다. 당시 레이커스는 매직 존슨과 놈 닉슨, 두 명의 걸출한 플레이메이커가 함께 뛰며 볼 소유를 나누고 있었는데, 자신이 풀-타임 포인트가드로서 볼을 독점하기를 바란 매직은 은근히 프런트에 닉슨 트레이드를 사주했죠. 결국 올스타 가드인 닉슨은 오프시즌에 에디 조던, 2장의 2라운드 픽과 묶여서 클리퍼스로 트레이드되었고, 레이커스는 대신 스캇의 지명권과 스웬 네이터를 얻어왔습니다. 스캇은 루키 시즌에 베테랑 스윙맨 마이크 맥기와 치열한 포지션 경쟁을 벌이며 평균 10.6득점을 올렸고, 올-루키 퍼스트 팀에 선발되었죠. 2년차 때인 84-85시즌부터 붙박이 주전 자리를 확보한 그는 평균 16득점으로 한층 향상된 기량을 선보였고, 리그 1위인 43.3%의 3점슛 성공률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6-3의 신장으로 2번 치고는 언더사이즈였지만, 스피드와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매직 존슨 대신 상대의 발 빠른 1번을 전담 수비할 수 있었죠. 그는 공격에서는 정교한 중장거리 슈팅력을 앞세워 팀 내 넘버원 슈터로 활약했으며, 속공에서도 첨병에 나서며 간간이 멋진 슬램덩크를 터뜨리곤 했습니다. 또한 그는 강인한 정신력과 근성 넘치는 마인드를 바탕으로 라커룸에서 팀의 분위기를 다잡는 리더 역할도 훌륭히 해냈죠.

 

80년대 중후반에 그는 3번의 우승(85년, 87년, 88년)을 맛보며 쇼타임 레이커스의 일원으로 톡톡히 제 몫을 다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팀에서 3-4옵션 정도의 입지에 불과했지만 이후 점차 공격롤을 늘려간 끝에 87-88시즌에는 팀 내 1위인 평균 21.7득점을 올려주었죠. 또한 그 시즌 1월 2주차에는 4경기에서 평균 26득점을 올리고 팀을 전승으로 이끌며 “이주의 선수”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이듬해인 88-89시즌에도 그는 평균 19.6득점으로 고공 득점 행진을 이어갔지만, 아쉽게도 파이널을 앞두고 햄스트링 부상으로 쓰러지고 말았죠. 당시 레이커스는 서부지구 팀들을 연달아 스윕하며 파이널에 올라 3연속 우승에 도전했으나, 스캇의 부상 공백을 여실히 느끼며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에게 역으로 스윕 패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90년대 들어 그는 평균 14~15득점 안팎의 평범한 활약에 그쳤으며, 매직 존슨의 갑작스런 은퇴로 팀이 리빌딩에 들어감에 따라 입지도 애매해졌죠. 결국 그는 92-93시즌을 마치고 FA가 되자 인디애나 페이서스로 이적하며 10년간 몸담은 레이커스를 떠났습니다. 그는 인디애나, 밴쿠버를 거쳐 96-97시즌에 다시 레이커스로 컴백해 백업 가드 겸 후배들의 멘토로서 한 시즌을 보냈죠. 이후 그리스 리그에서 1년을 더 뛴 뒤 은퇴한 그는 곧바로 지도자의 길을 걸었으며, 뉴저지, 뉴올리언스, 클리블랜드의 감독직을 역임했습니다. 그는 14-15시즌에는 친정팀 레이커스의 지휘봉을 잡기도 했지만 성적 부진으로 인해 두 시즌 만에 해고되었으며, 현재는 ESPN에서 해설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SG 4th : #_21  Michael Cooper

 

 

 

뉴멕시코 대학 출신의 마이클 쿠퍼는 78 드래프트에서 3라운드 전체 60번으로 L.A 레이커스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루키 시즌에는 출장 기회조차 거의 받지 못한 채 고작 3경기에만 나온 그는 2년차 때인 79-80시즌부터는 수비력을 인정받아 팀의 핵심 벤치 멤버로 자리 잡았으며, 그해 팀의 파이널 우승에도 기여했죠. 80-81시즌에는 첫 디펜시브 팀(세컨드)에 선발된 그는 이어서 8년 연속으로 디펜시브 팀을 수상하며(퍼스트 5회, 세컨드 3회) 80년대에 리그의 대표적인 퍼리미터 디펜더로 명성을 날렸습니다.

 

1, 2, 3번 포지션을 모두 볼 수 있는 올-라운드 플레이어이자 전천후 수비수인 그는 상대편 에이스 가드나 스윙맨을 봉쇄하는 임무를 도맡곤 했죠. 특히 레이커스가 보스턴과 맞붙을 적에는 주로 래리 버드를 전담 마크했는데, 버드는 그를 두고 자신이 상대해 본 최고의 수비수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는 탁월한 운동능력과 민첩성, 근성을 바탕으로 공격수를 압박하곤 했으며, 탄력이 워낙 좋아 신장 대비 뛰어난 샷 블로킹 능력을 자랑했죠. 그는 득점력은 그리 돋보이지 않았지만 종종 속공에 참여해 매직 존슨의 패스를 이어받아 다이나믹한 덩크를 선보이곤 했습니다. 레이커스의 전설적인 앵커 칙 헌은 그의 멋진 앨리-훕 덩크를 두고 “Coop-a-loop”이란 애칭을 붙여주기도 했죠. 또한 그는 3점슛이 그리 보편화되지 않았던 80년대에 대표적인 3점 슈터로도 쏠쏠히 활약했습니다. 그는 커리어 초반에는 3점슛이 그리 좋지 못했지만 중반 이후에는 38%대의 날카로운 성공률을 자랑했는데, 이른바 요즘 유행하는 “3 & D” 플레이어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죠. 거기다가 제법 훌륭한 코트 비전과 패싱 센스도 지니고 있어 매직 존슨의 백업 역할도 충실히 수행해 내곤 했습니다.

 

그는 주로 식스맨으로 벤치에서 출격해 다양한 포지션에서 뛰었는데, 비록 식스맨 상 수상 경력은 없지만 80년대 리그를 대표하는 식스맨 중 한 명이었죠. 또한 86-87시즌에는 벤치에서 평균 27.5분 밖에 출전하지 않았음에도 “올해의 수비왕” 타이틀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그는 80년대 레이커스가 5번의 우승을 차지할 때 마다 늘 핵심 수비 요원으로 많은 기여를 했으며, 12년의 커리어 동안 오로지 레이커스에서만 뛰었죠. 89-90시즌을 마치고 새로운 도전을 위해 팀에 자진으로 방출 요청을 한 그는 이탈리아 리그로 넘어가 한 시즌을 더 뛰고서 커리어를 마쳤죠. 그는 은퇴 후 레이커스 프런트에 잠시 몸담았다가 본격적으로 지도자의 길을 밟았는데, NBA보다는 주로 WNBA의 코치로 오랫동안 활약했습니다. L.A 스파크스(Sparks)를 두 번이나 우승으로 이끌며 여자 농구계의 전설이 된 그는 현재 채드윅 국제학교의 코치로 재임 중입니다.

 


 

 

SG 3rd : #_25 / #_11  Gail Goodrich

 

 

 

※ 블락슛과 스틸은 73-74시즌부터 집계되어 총 229경기로 그 값을 산출함

 

60년대 초중반 존 우든 감독의 무적 군단 UCLA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두 번의 우승을 맛본 게일 굿리치는 지역 간판스타답게 65 드래프트에서 L.A 레이커스에 지역 연고픽으로 지명을 받았습니다. 루키 시즌에는 평균 7.8득점에 그친 그는 2, 3년차 때에는 평균 12~13득점 안팎을 올려주며 벤치에서 식스맨으로 활약했죠. 한편 1968년에 피닉스 선즈와 밀워키 벅스 두 구단의 창설로 인해 열린 확장 드래프트에서 그는 피닉스의 지명을 받아 레이커스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신생팀에서 주전 포인트가드로 활약한 그는 평균 20득점 이상을 올리고 올스타에도 뽑히며 물 만난 고기처럼 활약했죠. 그런데 당시 센터 보강에 열을 올리던 피닉스가 69-70시즌을 마치고 그를 레이커스의 7풋 센터 멜 카운츠와 맞트레이드하는 바람에 그는 2년 만에 친정팀으로 복귀했습니다. 그는 포인트가드로 포지션을 변경한 제리 웨스트와 나란히 백코트 파트너를 이루며 공격형 2번으로 자리 잡게 되었죠. 71-72시즌부터는 좀 더 많은 공격 롤을 부여받게 된 그는 평균 25.9득점(리그 5위), 4.5어시스트를 기록했으며, 레이커스의 33연승을 이끌고 올스타에도 선발되었습니다. 또한 그는 뉴욕 닉스와 맞붙은 72 파이널에서 팀 최다인 평균 25.6득점을 올리며 우승에도 혁혁히 기여했죠.

 

학창시절부터 유달리 작았던 그는 대학 입학 때 5-8에 불과했으며, 프로 데뷔했을 때에도 키는 6-1로 좀 컸지만 170파운드의 빈약한 체격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그가 사이즈 문제로 프로에서는 대학에서만큼 활약하지 못할 것이라고 부정적으로 보았죠. 하지만 그는 작은 키로 어떻게 하면 큰 선수들을 상대로 득점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던 타고난 단신 스코어러였습니다. 그는 코트 어디서든 정확한 슛을 터뜨릴 수 있었던 탁월한 중장거리 슈터였으며, 발군의 돌파력도 지니고 있었죠. 그는 스피드나 운동능력이 최상급은 아니었지만 워낙에 볼-핸들링 기술이 뛰어나 능수능란하게 골밑으로 파고들 수 있었으며, 파울 유도 능력도 뛰어났습니다. 또한 당시로선 보기 드문 왼손잡이 가드라는 점도 그를 더욱 수비하기 까다롭게 만들었죠.

 

이후로도 세 번이나 더 올스타에 뽑히며 전성기를 구가한 그는 73-74시즌에는 평균 25.3득점(리그 4위), 5.2어시스트의 활약으로 올-NBA 퍼스트 팀에도 올랐습니다. 제리 웨스트의 은퇴 후 그는 74-75시즌부터 듀얼 가드인 루셔스 알렌과 호흡을 맞추며 플레이메이킹에 좀 더 집중했는데, 그 결과 어시스트는 조금 늘었지만 득점력은 약간 떨어지게 되었죠. 한편 그는 75-76시즌을 마치고 FA가 되었는데, 레이커스 구단이 이제 33살이 된 그와의 재계약을 주저하면서 서로 관계가 틀어지고 말았습니다. 마침 76년부터 FA 제도 정비를 통해 FA가 되면 타 팀 이적도 가능해졌기에, 그는 레이커스를 뒤로 하고 뉴올리언스 재즈와 새로이 계약을 체결했죠. 또 그때 당시는 자기 팀의 FA가 타 팀으로 이적하면 따로 보상을 받는 제도가 있었기에, 레이커스 구단은 그를 내준 대가로 뉴올리언스로부터 1라운드 픽 두 개(77년, 79년)을 얻어왔습니다.

 

그 당시 레이커스 팬들은 돈 몇 푼 아끼려고 팀의 간판스타를 고작 픽 몇 개에 팔아넘겼다며 구단에 엄청난 비난을 쏟아부었죠. 그는 뉴올리언스에서 피트 마라비치와 호흡을 맞추며 기대를 모았지만 불의의 아킬레스건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 못했고, 결국 78-79시즌을 끝으로 코트를 떠났습니다. 그런데 그해 뉴올리언스가 리그 전체 꼴찌를 하는 바람에 굿리치 영입 때 레이커스에 내준 79년 드래프트 픽이 그만 전체 1픽이 되어 버렸고, 레이커스는 이 픽으로 매직 존슨을 지명할 수 있었죠. 은퇴 후에는 골프 사업을 벌인 그는 현재는 NBA TV에서 해설자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한편 그는 1996년에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으며, 그의 등번호 #25는 같은 해에 레이커스 구단에서 영구결번되었습니다.


 

 

SG 2nd : #_44  Jerry West

 

        

                

※ 블락슛과 스틸은 73-74시즌부터 집계되어 총 31경기로 그 값을 산출함

 

웨스트 버지니아 대학 출신의 제리 웨스트는 60 드래프트에서 1픽 오스카 로벗슨에 이어 전체 2번으로 L.A 레이커스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루키 시즌부터 붙박이 주전으로 자리 잡은 그는 평균 17.6득점, 7.7리바운드, 4.2어시스트를 올려주었고 올스타 멤버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렸죠. 이듬해인 61-62시즌에 대폭 성장한 모습을 보여준 그는 평균 30.8득점(리그 4위)을 올리며 리그 정상급 스코어러의 반열에 들었고, 올-NBA 퍼스트 팀에도 선발되었습니다. 한편 레이커스는 그해 파이널에 진출해 당대 최강 왕조인 보스턴 셀틱스와 7차전 접전을 벌인 끝에 아쉽게 패했는데, 이는 앞으로 이어질 웨스트의 기나긴 우승 도전기의 서막이었죠. 당시 웨스트는 엘진 베일러와 콤비를 이루며 레이커스를 이끌었는데, 각기 30득점이 가능한 이 두 스코어러를 두고 사람들은 “Mr. Inside (베일러)”, “Mr. Outside (웨스트)”라고 불렀습니다.

 

웨스트는 신장은 6-2에 불과한 백인 가드였지만 출중한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사이즈 이상의 포스를 뽐냈으며, 득점, 리딩, 리바운드, 수비 등 코트 위에서 못하는 게 없었던 팔방미인이었죠. 전광석화같은 슛 릴리즈를 바탕으로 먼 거리에서도 정교한 슛을 꽂아 넣곤 했던 그는 3점슛이 없던 시절에 가장 대표적인 중장거리 슈터였습니다. 그는 엘리트 포인트가드 못지않은 플레이메이킹과 패싱 능력을 겸비한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듀얼 가드였으며, 클러치 능력이 워낙 뛰어나 별명이 “Mr. Clutch”일 정도였죠. 또한 그는 불타는 투지와 근성, 운동량을 바탕으로 매치-업 상대를 꽁꽁 묶던 최고의 락다운 디펜더였습니다. 그는 스틸과 블락슛이 공식 집계되지 않던 시절에 주로 뛰었지만, 포지션 대비 최상급 샷 블로커로서 한 경기에 10개의 블락슛(비공인)을 찍기도 했으며 스틸 능력도 당대 최고였죠. 다만 워낙에 몸을 사리지 않는 스타일이다 보니 자주 부상을 당해 결장이 적지 않은 편이었습니다.

 

웨스트와 베일러가 이끄는 레이커스는 60년대에 꾸준히 파이널에 오르며 우승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빌 러셀의 보스턴에게 덜미를 잡혔습니다. 62년에 이어 63년, 65년, 66년, 68년에도 레이커스는 파이널에서 보스턴의 벽을 넘지 못하며 좌절을 겪었죠. (62년과 66년은 7차전 패배) 한편 68-69시즌에 레이커스는 55승으로 서부 1위를 차지했고 보스턴은 동부 4위(48승)에 그쳤는데, 보스턴 왕조 건설 후 레이커스의 정규 시즌 성적이 처음으로 보스턴을 넘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한물갔다는 평을 듣던 보스턴이 관록을 보이며 기어이 다시 파이널에 오름에 따라 레이커스는 파이널에서 5번의 패배를 안겨준 이 지독한 라이벌과 6번째 운명적 대결을 펼치게 되었죠.

 

우승에 목말라하던 웨스트는 파이널 1차전에서 53점을 퍼붓는 등 놀라운 퍼포먼스를 보이며 시리즈를 접전으로 몰고 갔고, 우승의 향방은 운명의 7차전에서 판가름 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7차전에서 무려 42득점, 13리바운드, 12어시스트로 트리플-더블까지 기록하며 최고의 활약을 펼쳤지만, 끝내 승리의 여신은 보스턴의 손을 들어주고 말았죠. 하지만 리그에서는 그의 눈물겨운 분전을 기리는 의미에서 “파이널 MVP”라는 상을 신설해 그에게 수여했습니다. 지금은 으레 우승팀의 최고 선수에게 주어지는 파이널 MVP의 기원이 실은 준우승팀의 최고 선수를 위로하는 차원에서 생긴 상이었던 것이죠. 이처럼 그는 번번이 우승의 문턱에서 좌절을 겪으면서도 “Mr. Clutch”답게 큰 무대에서 늘 놀라운 활약을 펼치곤 했습니다. 볼티모어 불레츠와 맞붙은 65년 플레이오프 서부 디비전 파이널에서 그는 베일러가 부상으로 아웃된 가운데 홀로 팀을 캐리했는데, 시리즈 6경기에서 무려 평균 46.3득점을 퍼부으며 팀을 파이널로 이끌었습니다. 이 기록은 아직까지도 플레이오프 단일 시리즈 평균 득점 최고 기록으로 남아있죠.

 

69-70시즌에 평균 31.2득점, 7.5어시스트를 기록한 그는 이해부터 스탯 리더 기준을 경기당 평균으로 매김에 따라 득점왕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한편 러셀의 은퇴로 보스턴 왕조가 공식적으로 막을 내리자 웨스트는 파이널에서 새로운 팀 뉴욕 닉스를 상대로 7번째 우승 도전에 나섰죠. 그는 3차전에서 연장행을 이끄는 60피트짜리 초장거리 버저비터를 넣는 등 명성에 걸맞는 클러치 활약을 이어갔으나, 이번에도 끝내 7차전의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했습니다. 70년대 들어 포지션을 포인트가드로 완전히 전환한 그는 득점력 좋은 단신 2번인 게일 굿리치와 백코트 파트너를 이루었죠. 71-72시즌에 레이커스는 정규 시즌에 무려 33연승 신기록을 세우고 최종 69승을 거두며 최강팀 포스를 뽐냈고, 웨스트는 리그 어시스트왕(평균 9.7어시스트)에 등극했습니다. 레이커스는 파이널에서 마침내 뉴욕 닉스를 꺾으며 연고지를 L.A로 옮긴 후로 첫 우승을 맛보았는데, 웨스트 입장에서는 무려 8번의 도전 끝에 이뤄낸 눈물겨운 성과였죠. 한편 레이커스는 73 파이널에서도 다시 뉴욕과 맞붙으며 백-투-백 우승을 노려봤지만, 이번에는 되려 앙값음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73-74시즌에는 햄스트링 부상으로 31경기에 출장하는 데 그친 그는 시즌을 마치고 공식 은퇴를 선언했죠. 그는 14년의 커리어 내내 올스타에 뽑혔고, 데뷔 시즌과 은퇴 시즌을 제외하고 12차례나 올-NBA 팀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퍼스트 10회, 세컨드 2회) 또한 9번이나 파이널 무대를 밟았는데 그중 우승은 단 1차례였고 7차전 접전 끝에 아깝게 우승을 놓친 것이 4번이나 되었죠. 한편 리그에서는 68-69시즌부터 디펜시브 팀을 선발했는데, 그는 여기에도 5년 연속 이름을 올렸습니다. (첫 해 세컨드 팀, 이후로는 죽 퍼스트 팀) 만약 그가 데뷔했을 때부터 디펜시브 팀을 뽑았더라면 그는 은퇴 시즌을 제외하고 매년 그 자리에 선발되었을 테죠.

 

은퇴 후 지도자로 변신해 세 시즌 동안 친정팀 레이커스의 지휘봉을 잡기도 한 그는 이후 레이커스 프런트에 합류했고, 82-83시즌부터는 단장으로 부임했습니다. 80년대에 “쇼타임 레이커스”의 전성기를 이끈 그는 90년대에는 샤킬 오닐과 코비 브라이언트 영입에 성공하며 밀레니엄 3연속 우승의 금자탑을 쌓았고 95년에는 올해의 경영인 상을 받기도 했죠. 그는 현역시절 딴 우승 반지는 단 하나에 불과했지만, 경영인으로서는 레이커스에서만 6번의 우승을 맛보았습니다. 그는 2002년부터는 멤피스 그리즐리스의 단장직을 맡았으며, 이후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상임이사를 거쳐 현재는 L.A 클리퍼스의 상임이사를 맡고 있죠. 그는 1980년에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으며, 그의 등번호인 #44는 1983년에 레이커스 구단에서 영구결번되었습니다.


 

 

SG 1st : #_8 / #_24  Kobe Bryant

 

 

 

로워 메리언 고교 시절부터 특급 유망주로 주목받았던 코비 브라이언트는 고교를 졸업하자마자 96 드래프트에 참가해 전체 13번으로 샬럿 호네츠의 지명을 받았다가 이후 L.A 레이커스로 트레이드되었습니다. 애초에 그에게 관심이 있던 레이커스는 팀의 주전 센터인 블라디 디바치를 호네츠에 내주는 조건으로 미리 호네츠가 코비를 뽑게 한 것이었죠. 루키 시즌에는 벤치를 전전하며 평균 7.6득점을 올린 그는 슬램덩크 컨테스트에서 비트윈-더-레그 덩크로 우승을 차지했고 올-루키 세컨드 팀에도 선정되었습니다. 하지만 그해 플레이오프에서는 클러치 상황에서 수차례 에어-볼을 날리는 등 아직은 미숙한 모습이었죠.

 

이듬해인 97-98시즌에 그는 팀의 핵심 식스맨으로 중용되며 한층 성장한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팀에 이미 올스타 2번인 에디 존스가 있었기에 주로 3번 포지션을 소화한 그는 평균 15.4득점을 올리고 팬 투표로 올스타 주전에 뽑히는 영광까지 안았죠. 그는 98-99시즌부터는 본격적으로 붙박이 주전으로 기용되었으며, 시즌 도중에 존스가 트레이드됨에 따라 2번 포지션에 안착했습니다. 당시 샤킬 오닐이라는 당대 최고의 센터를 보유한 레이커스는 코비의 눈부신 성장으로 리그에서 가장 강력한 원-투 펀치를 보유하게 되었고, 이들을 앞세워 99-00시즌부터 내리 3연속 우승의 대업을 이룩했죠. 코비는 99-00시즌에는 처음으로 올-디펜시브 팀(퍼스트)에 이름을 올리며 공수겸장으로 인정받기 시작했고, 00-01시즌에는 평균 득점을 28.5득점(리그 4위)까지 끌어올리며 정상급 스코어러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특히 그는 플레이오프에서 고비 때마다 해결사 노릇을 톡톡히 해내며 리그 최고의 클러치 플레이어로 인정받게 되었죠.

 

그는 탁월한 운동능력과 유연성, 화려한 테크닉을 바탕으로 공수에서 모두 탑 클래스의 기량을 뽐냈습니다. 그는 미드-라인에서 포스트-업으로 수비수를 밀어붙이다가 유유히 턴-어라운드 점퍼를 던지는 것을 즐겼으며, 베이스라인을 파고드는 돌파력도 일품이었죠. 또한 그는 상대의 강력한 마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보란 듯 터프 샷을 꽂아 넣길 즐겼으며, 클러치 상황에서도 전혀 주저함이 없는 강심장이었습니다. 다만 좋지 못한 슛 셀렉션 때문에 야투율이 그리 높지 못한 편이었고 종종 난사를 일삼기도 했죠. 그는 뛰어난 코트 비전과 패싱 센스를 자랑했지만 볼-호그 기질 때문에 좀처럼 패스하지 않는다는 이미지가 있기도 했습니다. 수비에서 그는 발군의 신체 능력과 BQ, 승부 근성을 두루 보유한 최고의 락-다운 디펜더로, 클러치 상황에서 상대의 에이스 가드를 꽁꽁 묶는 데 일가견이 있었죠. 그는 매일 새벽부터 체육관에서 살다시피 할 정도로 지독한 연습벌레로 유명했는데, 이 때문에 국내 팬들 사이에선 “농구 덕후”로 불리곤 했습니다.

 

02-03시즌에 평균 30득점(리그 2위)을 올린 그는 특히 2월에는 9경기 연속 40득점 이상(두 차례의 50득점 이상 포함)을 올리며 한층 절정의 득점력을 과시했죠. 하지만 그의 득점 비중이 점차 높아짐에 따라 기존의 에이스였던 샤킬 오닐과 1인자 자리를 놓고 주도권 다툼이 벌어졌고, 팀워크는 삐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03-04시즌을 마치고 오닐이 마이애미 히트로 이적함에 따라 3번의 우승을 합작한 최강 듀오는 씁쓸한 결별을 맞이했죠. 오닐의 그늘에서 벗어난 코비는 2년 연속 득점왕(05-06시즌 : 35.4득점 / 06-07시즌 : 31.6득점)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는데, 특히 05-06시즌에 대 토론토 랩터스 전에서는 무려 81득점(윌트 체임벌린의 한 경기 100득점에 이어 역대 2위의 기록)을 퍼붓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개인 활약과는 별개로 팀 전력이 뒷받침해주지 못해 그는 원맨팀의 고독한 에이스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죠.

 

그러다가 07-08시즌 도중 트레이드를 통해 파우 가솔이라는 든든한 조력자를 얻게 되면서 다시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였습니다. 그해 그는 평균 28.3득점(리그 2위), 6.3리바운드, 5.4어시스트의 활약에 레이커스를 정규 시즌 서부 1위(57승)로 이끈 덕으로 시즌 MVP를 차지하는 영광을 안았죠. 다만 플레이오프에서 팀을 모처럼 만에 파이널까지 올렸지만, 빅3가 버틴 보스턴 셀틱스에게 우승을 내주고 말았습니다. 이듬해인 08-09시즌에는 절치부심하며 팀을 재차 파이널로 이끈 그는 올란도 매직을 상대로 시리즈 평균 32.4득점을 올리며 우승을 일궈냈고 파이널 MVP도 수상했죠. 그리고 이듬해 10 파이널에서는 보스턴의 빅3를 상대로 리벤지에 성공하며 백-투-백 우승을 해냈고, 재차 파이널 MVP에 올랐습니다.

 

2년 연속 우승 이후 레이커스의 팀 전력은 하향곡선을 그리게 되었고, 그 역시 이런저런 부상에 시달리며 활약이 주춤해졌죠. 레이커스는 12-13시즌에 빅네임인 드와잇 하워드, 스티브 내쉬를 보강하며 반전을 노렸으나 이들의 조합은 그리 신통치 못했습니다. 게다가 시즌 막판에는 코비가 치명적인 아킬레스건 부상을 당해 쓰러지는 악재까지 겪고 말았는데, 이는 그의 커리어 말년을 괴롭힌 부상 악령의 시초에 불과했죠. 이듬해인 13-14시즌에 그는 부상에서 회복해 돌아온 지 6경기 만에 다리 골절로 다시 시즌-아웃되고 말았고, 14-15시즌에도 어깨 부상 등으로 35경기 출전에 그쳤습니다. 그나마 경기에 출전하더라도 아킬레스건 부상 후유증으로 운동능력이 저하된 탓에 경기력이 많이 떨어졌고 특히 슛 난조가 심했죠. 15-16시즌에는 팀 사정에 따라 3번 포지션으로 내려간 그는 시즌을 마치고 은퇴할 것을 공언했습니다. 시즌 최종전인 대 유타 재즈 전에서 커리어 마지막 경기를 치른 그는 무려 50개의 슛을 쏘아 60득점을 쏟아부으며 은퇴 경기마저도 그답게 화려하게 매조지 했죠.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 이후 가장 조던에 근접했던 슈팅가드로 평가받고 있는 그는 20년의 커리어 동안 18차례나 올스타에 뽑혔고 15번의 올-NBA 팀(퍼스트 11회 / 세컨드 2회 / 써드 2회)과 12번의 올-디펜시브 팀(퍼스트 9회 / 세컨드 3회) 경력을 자랑합니다. 또한 통산 5번의 우승과 시즌 MVP 1회, 파이널 MVP 2회의 경력이 있으며, 올스타전 MVP도 4차례 차지해 밥 페팃과 더불어 이 부문 역대 공동 1위죠. 그는 통산 33,643득점으로 카림 압둘-자바, 칼 말론에 이어 역대 득점 랭킹 3위에 올라있기도 합니다. 그는 커리어 전반기 10년 동안에는 등 번호를 #8을 달았다가 후반기 10년 동안에는 #24로 바꾸어 달았는데, 두 번호를 단 기간 동안의 업적이 서로 엇비슷해 결국 2017년에 사상 최초로 한 팀에서 두 개의 번호로 영구결번된 사례가 되었죠. 한편 그의 부친인 조 브라이언트는 7~80년대에 8시즌 동안 리그에서 뛴 바 있습니다.

 

그는 은퇴 후 자신의 농구 일대기를 담은 단편 다큐멘터리 “Dear Basketball”로 오스카 상을 받기도 했고, 각종 자선 사업과 집필 등에 몰두하며 바쁜 나날을 보냈죠. 그러던 중 올해 1월에 딸 지아나를 농구장에 데려다주려 개인 헬기를 탔다가 그만 비운의 추락 사고로 딸과 함께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향년 41세) 당시 충격적인 사고 소식에 전 세계 농구인과 팬들이 큰 충격에 빠졌고, 지금도 그의 안타까운 죽음을 추모하고 있죠. 그리고 올해 4월에는 2020년도 명예의 전당 입성자로 확정되었습니다.

 


Epilogue

 

SG 랭킹 1위는 올 초에 비극적인 사고로 세상을 떠난 코비 브라이언트였습니다. 2019년에 이 글의 대략적인 초고는 다 완성해놓고 개인 사정으로 미처 올리지 못한 채 한 해를 넘겼는데, 그 사이에 코비가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죠. 이번에 연재글을 올리기에 앞서 새로운 내용을 업데이트하면서 코비 글에 그의 죽음을 덧붙이는데 얼마나 가슴이 먹먹했는지 모릅니다. 이럴 줄 알았음 그의 생전에 어떻게든 연재를 해볼 것을...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시리즈 특성상 이미 세상을 떠난 선수의 죽음에 관해 밝힐 때마다 조금씩 먹먹한 심정이 들곤 하는데, 코비 때만큼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순간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천국에서 함께 있을 코비와 지아나의 명복을 다시금 빕니다.

 

랭킹 2위인 제리 웨스트는 여태껏 연재했던 선수 중에서 가장 포지션 구분이 모호했고, 그래서 많은 고민에 빠지게 했던 케이스였습니다. 웨스트는 역대급의 슈팅가드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정작 그가 뛴 포지션을 상고해 보면 포인트가드로도 굉장히 많은 시간을 뛰었죠. 특히나 68-69시즌부터 은퇴할 때까지는 거의 풀-타임 1번 역할을 수행했고요.

 

본 시리즈에서는 명확한 포지션 구분을 위해 전체 시즌 모든 선수의 출전시간을 분석해 빅데이터로 저장해 두는데요, play by play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시절 선수들의 포지션별 출전시간 분석은 다소 까다로운 구석이 있습니다. 그래도 나름대로 객관적으로 데이터를 분석해 정리해보려고 애쓰는데요, 제 분석 결과에 따르면 제리 웨스트는 커리어 동안 오히려 2번이 아닌 1번으로 좀 더 많은 시간을 출전한 것으로 확인이 되었습니다.

 

앞서 밝혔듯 본 시리즈에서 선수의 최종 포지션을 결정하는 기준은 1분이라도 더 많이 뛴 포지션으로 판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준대로 한다면 웨스트는 슈팅가드가 아닌 포인트가드에다가 배치를 해야 하죠. 역대 Top3의 “슈팅가드”로 손꼽히는 선수를, 포인트가드 랭킹에서 소개해야 한다는 그 역설적인 딜레마에서 꽤나 많은 고민을 하다가, 최종적으로는 흔히 알려진 대로 슈팅가드에 배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른바 포지션 결정의 첫 예외 대상이 된 셈인데요, 이에 대해 나름 변명을 해보자면 웨스트는 워낙 예전의 선수라 포지션을 판정하기 위한 객관적 근거 자료가 부족한 편이고, 저의 개인적인 분석 결과 역시 100% 정확하다고 확증하긴 어려우며, 두 포지션 간에 출장시간 차이가 좀 난다면 모르되 웨스트의 경우 5% 이내의 차이여서 오차범위 이내로 볼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거기다가 한 프랜차이즈에서만 뛰면서 널리 특정 포지션으로 인지되는 선수를 뜬금없이 다른 포지션으로 내세운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너무 컸죠. 어쩌면 이는 저의 포지션 결정 방식에 허술함과 한계가 있다는 걸 스스로 입증하는 꼴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들었고요.

 

그래서 이번 제리 웨스트처럼, 한 프랜차이즈에서만 뛰었고 어느 한 포지션의 레전드로 공인된 선수의 경우에는 출장시간 분석에서 조금 다른 결과가 나오더라도 그 격차가 5% 이상을 넘어가지 않는 이상은 공인된 포지션에 배치를 하는 예외 규정을 두고자 합니다. 이른바 “제리 웨스트 룰”로 불러도 될 듯 싶네요.

 

사실 포지션 구분이라는 것 자체가 주관적인 기준과 시각에 다소 좌우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를테면 웨스트와 굿리치만 하더라도 두 선수가 나란히 뛸 때 누구를 1번으로, 누구를 2번으로 보느냐가 갈릴 수 있죠. 저는 70년대 초에 둘이 함께 뛸 때 웨스트를 1번으로, 굿리치를 공격형 단신 2번으로 판단했는데, 오히려 반대로 보는 시각도 있겠죠. 그런 시각 대로라면 웨스트가 1번이냐, 2번이냐를 두고 앞서와 같이 고민할 일도 없어지겠고, 굿리치는 오히려 슈팅가드가 아닌 포인트가드 편에서 소개가 되어야 하겠죠.

 

랭킹을 매기면서 진짜 활약상과 업적이 용호상박이라 쉽사리 판단하기 어려운 케이스가 더러 있었는데, 대표적인 게 바로 4위인 마이클 쿠퍼와 5위인 바이런 스캇이었습니다. 두 선수의 레이커스 내 공헌도를 두고 누가 더 낫다고 우열을 가리기가 참 어려웠는데, 최종적으로는 쿠퍼가 수비에서 기여한 바를 조금 더 높게 보았습니다. 공교롭게도 두 선수는 레이커스 프랜차이즈에서 충분히 영구결번될 만한 업적과 공헌을 남겼는데, “명예의 전당”에 들어야만 영구결번을 해주는 레이커스의 해괴한 기준 때문에 끝내 아직까지도 영구결번되지 못한 게 안타깝기도 합니다. 영구결번이라는 게 워낙 구단별로 그 주관이 천차만별이긴 한데, 명전 입성이 필수 조건인 이 레이커스의 기준이 개인적으로는 가장 맘에 들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마이애미 히트가 똑같은 기준으로 영구결번을 준다면 유도니스 하슬렘은 결코 영구결번되지 못하는 식이죠.

 

7위에 랭크된 딕 가메이커는 레이커스 올드팬들에게도 다소 생소한 이름일 겁니다. 그런데 나름 4번이나 올스타에 뽑힌, 레이커스 초창기의 숨은 스타 플레이어죠. 다만 이때는 팀 개수가 적었기에 올스타에 뽑히는 게 지금보다 더 수월하긴 했습니다. 따라서 그때 올스타 4번과 지금의 올스타 4번은 엄연히 다르죠. 이 때문에 올스타 1번에 그친 에디 존스의 밑에 랭크된 거고요.

 

12위인 마이크 맥기의 경우에도 포지션 구분이 참 모호했는데요, 분석 결과 고작 51분 차이(SG: 2,316 / SF: 2,225)로 슈팅가드로 판정이 되었습니다. 이 정도도 굉장히 근소한 차이인데, 다른 포지션에서는 더 근소한 경우도 있었죠. (불과 2분 차이) 이 케이스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서 간단히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감독과 경영인으로 유명한 팻 라일리가 레이커스에서 주로 선수 시절을 보내며 16위에 랭크까지 된 것도 흥미롭죠. 뭐 선수로선 평범했고 나중에 감독으로서 훨씬 더 많은 업적을 남기긴 했지만요. 라일리도 대학 시절 당한 허리 부상 때문에 프로에서는 기대에 못 미친 케이스인데, 허리를 다치기 전에는 붕붕 날아다니던 하이-플라이어 였습니다. 백인 스윙맨인데 탄력이 굉장히 훌륭했죠. (70년대판 팻 코닝턴?)

 

현역 중에서는 켄타비우스 칼드웰-포프가 분전하며 메이저 랭킹까지 진입했습니다. 지난 시즌 우승 때는 팀의 주전 1번으로 활약하기도 했는데, 그 이전 시즌에 워낙 2번 포지션을 많이 소화한지라... 앞으로도 계속 1번으로 얼마나 나올지는 모르겠으나, 당분간은 계속 2번 포지션으로 랭크될 거 같긴 합니다. 지난 시즌도 스타팅 1번으로 많이 나왔지만, 최종적으로는 1, 2, 3번 포지션에서 두루두루 비슷비슷한 출장시간을 가졌죠.

 

또다른 현역 중엔 “볼드 맘바” 알렉스 카루소가 향후 순위가 기대되는 선수입니다. 앞서 PG편에서 설명드렸듯이, 카루소는 1번으로도 뛸 수 있으나 지난 시즌에는 수비형 오프-가드(보조 리딩을 주로 담당하는 2번)로 많은 출장시간을 소화했고, 그래서 결국 2번 포지션에 배치가 되어 있죠. 다만 아직까진 누적과 스탯이 좀 부족해서 28위 내에는 들지 못하고 현재 34위에 랭크되어 있는데, 그래도 워낙에 팬-페이보릿 플레이어인지라 Honorable Mention에서 따로 소개해 보았습니다. 아마 이번에 1시즌만 더 건강하게 소화하기만 해도 28위 이내 진입은 충분히 가능해 보이는데요, 다만 1번으로도 제법 출장하는 선수라서 팀에서 어떤 역할을 맡느냐에 따라 포지션 변동의 여지도 충분히 있습니다.

 

그밖에도 이번 시즌부터 합류한 웨슬리 매튜스, 시범경기에서 놀라운 활약으로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모으고 있는 테일런 호튼-터커 역시 미래의 순위를 기대해 볼 만 하겠죠. 다만 이 선수들은 3번 포지션도 소화가 가능한지라, 팀에서 어떤 롤을 맡느냐에 따라 포지션이 달리 매겨질 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그럼 이것으로 SG편은 마무리를 하고 다음에는 SF편으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시즌 개막이 얼마 안 남은지라 SF편의 업데이트는 좀 더 빠르게 진행될 것 같습니다.

 

 

 

 

 
이 게시물은 아스카님에 의해 2020-12-23 11:52:13'NBA-Talk' 게시판으로 부터 이동되었습니다.
7
Comments
2020-12-19 23:17:17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재밌게 읽었어요 

2020-12-20 00:36:10

제리 웨스트 실제 플레이를 못봤는데
굉장한 선수였군요. 괜히 로고가 아니었네요.

2020-12-20 00:37:51

그리고 이 랭킹 시리즈 마지막은 센터편일텐데
어마어마한 선수들의 향연이 펼쳐지겠네요.

2020-12-20 16:51:32

 정말 감사합니다

Updated at 2020-12-20 21:58:20

코비의 커리어는 익히 잘 알고 있지만
볼때마다 감탄하네요.
20년 선수 생활 중 18년이 올스타였고
15년은 올NBA팀이었고 그 중 12년은 또 올디펜시브팀이라니.
그리고 수상경력만큼이나 눈에 띄는 것이
97-16 입니다.
실력과 스타성. 원맨팀 조건까지 충족하니
LA 시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스포츠스타일만 합니다.

아울러 이 게시물을 작성한 분에 대한 존경을 표합니다.

2020-12-22 01:56:57

이 글을 어서 매니아진으로...

2020-12-23 21:42:43

KCP가 어디까지 올라갈지 기대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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