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티 피펜의 연봉계약 불만 표출 방식에 대해서
103
8485
2020-05-22 23:47:06
1990년대 자신의 연봉계약에 불만을 표현한 선수들 중에서 몇 가지 경우만 예로 들겠습니다. 당시 상황을 직접 경험했던 저는 지금 피펜에게 조금 가혹한 평가가 내려지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1. 1983-84 시즌 개막 직전 보스턴 셀틱스는 래리 버드와 7년 동안 1260만 달러라는 미국 스포츠 역사상 가장 큰 금액으로 계약합니다. 인센티브를 포함하면 7년간 1500만 달러입니다. 데뷔 후 4년 동안 형편없는 보수를 받은 후 84-85 시즌에 자유계약 선수가 되는 래리 버드를 그냥 놓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에는 샐러리캡이 없었습니다. 그 계약으로 래리 버드는 7년간 각종 인센티브를 포함해서 평균 180만 달러의 연봉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버드가 큰 부상에서 회복되어 코트로 복귀한 1989년 그의 연봉은 리그 최상위급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바로 그 해인 1989년 셀틱스와 버드는 계약을 1년 연장했습니다. 연장된 계약에 따르면 91-92 시즌 버드가 받게 되는 연봉은 약 7백만 달러였습니다.
그 금액은 당시까지 미국의 4대 스포츠 최고연봉(패트릭 유잉의 320만 달러)의 두 배가 넘는 액수였기에 모두들 경악했습니다. 팬들과 미디어는 그 연봉을 오랫동안 버드가 보스턴에게 공헌한 것에 대한 보상으로 여겼습니다. 향후 10년 동안 절대 깨지지 않을 연봉기록이라는 기사가 공공연히 나올 정도로 그 당시 7백만 달러 연봉은 파격적이었습니다.
2. 1983년에 4년 동안 평균연봉 30만 달러로 NBA에 입성한 클라이드 드렉슬러는 87-88 시즌 도중에 7년 동안 인센티브 포함 9백만 달러의 금액으로 장기계약을 하게 됩니다. 1988년에 마이크로소프트의 공동창업자 폴 앨런은 포틀랜드 구단주로 취임한 이후 구단과 NBA에 큰 애정을 보였고, 드렉슬러와 가까운 사이로 지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드렉슬러는 자신의 계약에 불만을 나타냈고, 포틀랜드가 NBA 결승에 진출한 1990년 폴 앨런은 드렉슬러와 1년 계약연장에 합의합니다. 계약연장은 셀틱스와 래리 버드의 케이스와 아주 유사했습니다. 연장된 계약에 따르면 94-95 시즌 드렉슬러가 받게 되는 연봉은 9백만 달러를 넘었습니다. 이 계약 역시 드렉슬러의 상대적으로 낮은 연봉에 대한 보상으로 이해되었습니다.
3. 1987-88시즌 데뷔 3년차를 맞는 유타 재즈의 칼 말론은 82게임에 모두 출전해서 평균득점 27.7과 평균 리바운드 12를 기록하며 NBA 최고의 파워포워드로 떠오릅니다. 1988-89 시즌이 시작됨과 동시에 칼 말론은 유타 재즈와 10년 동안 1800만 달러라는 장기 계약을 성사시킵니다. (아래 기사 참조)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칼 말론은 자신의 계약에 불만을 표출하고 거의 매년 구단주 래리 밀러에게 계약 파기 후 재계약을 요구합니다. 게다가 지역 언론들까지 합세해서 칼 말론과의 계약을 수정할 것을 집요하게 요구했습니다. (아래 링크 참조)
한편 유타의 구단주 래리 밀러는 독실한 모르몬교 신자로 자수성가한 사업가이고 원칙을 아주 중요시하는 인물입니다. 밀러 구단주는 칼 말론에게 기존 계약을 그대로 두고 거의 연봉 수준에 이르는 인센티브를 매년 따로 주겠다고 제시했습니다. 그럼에도 칼 말론의 불만이 수그러들지 않자 밀러는 자신이 운영하던 수십 개의 자동차 딜러쉽 중에서 몇 개의 도요타와 혼다 딜러쉽을 칼 말론과 스탁턴에게 양도하여 그들을 사업적 동업자로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밀러-말론-스탁턴은 농구 외에도 사업적으로 가까운 사이가 되었고, 말론은 연봉 외 인센티브도 많이 받았을 뿐 아니라 도요타 매장을 운영하며 큰 수익을 얻었습니다. 2003년 칼 말론이 우승반지를 위해 15분의 1의 연봉을 받고 레이커스로 이적했을 때 밀러 구단주가 받은 충격은 어마어마했습니다. 칼 말론은 밀러 구단주 사망 후 몇 개의 딜러쉽을 청산했지만 여전히 도요타 딜러쉽을 성황리에 운영중입니다. (아래는 홈페이지)
https://www.malonetoyota.com/
4. 스카티 피펜은 NBA 선수들 중에서도 유난히 다년계약을 선호했습니다. 피펜과 불스의 신인계약은 이례적으로 기간이 6년이었습니다. 요즘에는 아예 불가능하고, 그런 제약이 없던 당시에도 매우 드문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피펜은 3년차가 되는 시절부터 자신의 계약에 불만을 나타냈습니다. 시카고 불스의 구단주 제리 라인스도르프는 대부분의 다른 구단주들과 달리 구단주 역할이 부업이 아닌 본업이었습니다. 그가 소유한 화이트삭스와 불스가 라인스도르프의 가장 큰 캐시카우인데다 구단을 인수 운영하면서 쌓인 빚도 있어서 구단을 알뜰하고 경제적으로 운영하는 것에 큰 방점을 두었던 인물입니다. (1990년대 불스를 통해 큰 돈을 벌어들였고 그 이후에는 부동산 가격이 폭등해서 노년인 현재 라인스도르프의 경제적 상황은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습니다.)
1991년 우승 직후 라인스도르프는 당시 피펜의 숙원이던 재계약 요구를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피펜은 라인스도르프의 불스와 7년 동안 1800만 달러라는 장기 계약을 성사시킵니다. 각종 인센티브가 제외된 금액입니다. 앞서 언급한 다른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피펜은 바로 다음해부터 자신의 계약이 또 실수인 것을 알게 됩니다. 피펜은 우승. 올스타 선발, 올 디펜스팀, 올 nba, MVP 셰어 등을 통해 적지 않은 인센티브를 받아서 그가 7년 동안 불스에게 받은 액수는 1800만 달러를 가뿐히 넘어섭니다. 하지만 다들 아시는 것처럼 1997-98 시즌이 시작되었을 때 피펜의 연봉은 nba에서 122번째였습니다. 그런데 피펜은 다른 선수들처럼 구단에 대놓고 재계약이나 연봉인상을 요구하거나 태업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자신의 낮은 연봉에 대해서 피펜이 보인 반응은 당시 다른 선수들과 비교해서 가장 온건한 방식이었고 라인스도르프는 끝까지 원래 계약대로 밀고 나간 아주 드문 경우였습니다.
5. 대학농구를 거치지 않고 NBA에 입성한 숀 캠프는 4년간의 루키 계약이 끝나던 1994년에 시애틀과 7년 동안 2000만 달러, 200만 달러의 사인 보너스와 각종 인센티브를 받기로 계약했습니다. 그는 계약 첫해인 95-96 시즌에 사인 보너스를 포함해서 480만 달러를 받았고, 96-97년에는 3백만 달러를 받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바로 그 96-97 시즌에 시애틀이 짐 매킬베인과 7년 동안 3300만 달러에 계약하자 켐프는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하는 것을 넘어서 고의적으로 시범경기 5게임에 출전을 거부했고, 트레이닝 캠프를 무단이탈한 후 팀에서 자신과 재계약을 하지 않으면 1년 동안 쉬겠다고 협박했습니다.
켐프가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팀에 공헌이 많은 선수가 더 많은 연봉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연봉 재협상을 요구하는 선수들이 너무 많아서 리그에서는 계약 후 3년이 지난 선수에게 공식적으로 불만을 표현할 기회를 주겠다는 룰까지 만든 상태였습니다. 계약 후 1년 남짓 지난 켐프가 그런 불만을 공공연히 표현하는 것 자체가 규정 위반이었습니다.
결국 시즌 종료 후 숀 캠프는 클리블랜드로 트레이드 되었고, 클리블랜드는 켐프의 요청을 받아들여 그와 97-98시즌부터 7년 동안 1억 7백만 달러의 초대형 계약을 맺었습니다. 켐프는 그 7년 중에서 마지막 3년을 포틀랜드에서 보냈고 그 이후 곧바로 은퇴했습니다. 포틀랜드 시절 켐프는 NBA 전체에서 연봉 대비 최악의 활약을 보였습니다. 팀에 공헌이 많은 선수가 더 많은 연봉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하던 캠프는 (당연한 말이지만) 자신의 연봉을 반환하지 않았습니다.
이 게시물은 아스카님에 의해 2020-05-26 16:08:57에 'NBA-Talk' 게시판으로 부터 이동되었습니다.
29
Comments
글도 잘 읽었지만 무엇보다 오랜만에 올려주셔서 반갑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