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브론과 허재
03년은 제가 결혼한 해이면서, 르브론이란 선수가 NBA에 입성한 해이기도 합니다. 와이프는 르브론을 인생의 라이벌(?)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제가 NBA에 빠져 지내는 것을 못마땅해하던 와이프는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해탈한 상황이고, 대학원을 심리학과를 나왔는데, 성격유형에 대한 분석이론인 애니어그램 상 르브론과 제가 비슷한 9번에 해당한다고 하더군요. 애니어그램 9번은 장형(2~4번의 가슴형, 5~7번의 머리형, 8,9,1번의 장형으로 3대별되더군요)으로 균형을 중시하고 반석과 같은 안정감을 지닌 유형이라고 합니다.
제가 3명의 자식들을 둔 아재인데, 아들 2명은 저처럼 농구에 푹 빠져서 엄마의 속을 썩이고 있고, 막내 딸도 오빠들 2명 덕분에 많은 NBA선수들을 알고 있습니다.
어제 가족들과 저녁에 치킨을 시켜 먹으면서 아이들과 자연스레 NBA 이야기를 했는데, 초등학교 6학년인 둘째아들이 어쩌다가 골스 센터에 엠비드는 어떠냐고 이야기를 하자, 초등학교 3학년인 막내 딸이 "조엘 엠비드?" 하고 대뜸 이야기 하더군요. 애 엄마는 기가막혀하고 저도 놀랍기도 하고 기가막히기도 해서 박장대소하였습니다. 우리나라 초등학교 3학년 여학생 중 조엘 엠비드를 아는 여자아이가 몇명이나 될지.
르브론 팬으로서 굉장히 행복한 시즌이었습니다.
제가 르브론 이전에 가장 좋아했던 농구선수는 우니라나의 농구 레전드 허재였습니다.
NBA의 조던, 매직, 피펜, 가넷 등 다수의 선수를 좋아했지만, 당시 지금처럼 직접 경기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대상들이 아니어서 차이가 있었고, 지금의 르브론처럼 온갖 감정이입이 되어 희노애락을 함께 하면서 응원했던 선수는 단연 허재였던 것 같습니다.
제가 대략 초등학교(그 이전일수도 있습니다) 때부터 실업농구를 TV로 접하여 보기 시작하였는데, 농구라는 경기가 너무 재미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실업무대는 현대와 삼성의 양대 라이벌이 좋은 선수들을 독점하면서 양강체제로 군림하였는데, 당대 최고의 선수였던 고려대학교의 이충희 선수가 현대로 가면서 현대쪽으로 좀더 균형이 기울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삼성쪽을 응원했는데 박인규 선수에게 호감을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다가 농구대잔치가 시작되고 현대와 삼성의 양강체제가 계속되던 중, 중앙대 돌풍이 일어났고, 그 중심에 허재라는 올어라운더가 있었습니다.
중앙대는 한기범-김유택의 트윈타워 체제로 대학무대를 평정했고, 이어 용산고 출신의 농구천재 허재가 중앙대에 합류하면서 실업무대 강자들과 자웅을 겨룰 만한 우승전력의 강팀으로 급부상하였습니다.
허재는 당시까지 외곽슈터 위주의 우리나라 농구계에서 보기 힘든 올어라운더 유형의 슬래셔로 강한 힘과 체력, 운동능력과 테크닉을 겸비한 선수였습니다.
80년대 당시 풍토에 188센티의 허재는 빅맨을 볼 수 있는 체격이었고, 그러한 선수가 뛰어난 드리블로 돌파에 의한 림어택을 즐겨하면서 타점높은 3점슛을 구사하고, 뛰어난 패싱센스와 코트비젼을 갖추고 리바운드 능력도 뛰어난데다가 심지어 수비마저 잘했습니다.
당시 허재는 르브론과 가장 흡사한 유형의 선수였던 것 같습니다.
1~3번을 오갔고, 빅맨들과도 힘과 높이에서 밀리지 않으면서 리바운드를 따내고, 포인트 가드처럼 경기를 조율하고 패스를 하였으며, 막강한 림어택능력을 갖추고 있었죠. 농구대잔치 통산 누적으로 허재가 득점2위, 어시스트1위, 리바운드 3위인가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90년대 연세대 농구 돌풍이 일어나면서 190대 장신선수들이 포워드를 맡으면서 우리나라 농구가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장신화가 이루어졌는데, 이후 허재는 슈팅가드포지션으로 가장 많은 활약을 하였지만, 97년 프로농구 원년에도 '휠라배 프로농구대회 스몰포워드상'을 수상할 만큼 188센티의 신장에도 불구하고 SF포지션을 커버할 수 있는 힘과 신체능력을 갖추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실제 중앙대시절 센터 포지션을 맡은적도 있고, 국대에서도 SF나 PF포지션에서 활약하기도 했습니다(물론 당시 우리나라 농구가 NBA처럼 이러한 포지션 구분이 없었고, 가드-포워드-센터 정도로 포지션이 구분되었지만, 지금 기준으로 당시를 재해석한 견해라 생각되며 나무위키의 견해를 참조한 부분입니다)
90년대는 우리나라 농구팬들에게 특별한 시기이고, NBA에서는 조던의 1차 쓰리핏, 국내농구에서는 농구대통령 허재를 중심으로 한 기아왕조에 도전장을 던지고 돌풍을 일으킨 서장훈, 이상민, 문경은, 우지원 등의 연세대 농구단, 그리고 그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린 현주엽과 전희철의 고려대 농구단, 그보다는 조금 못해도 큰 인기를 누린 김영만, 김승기 등의 중앙대 농구단 등 농구인기의 최절정기였고, 드라마 마지막 승부가 빅히트를 치는 등, 여성팬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농구선수들에 열광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농구대잔치와 프로농구무대를 거치면서 통산 9번의 우승을 차지한 허재는 농구천재라는 별명에 더해 농구대통령의 칭호를 받으면서 한국의 조던과 같은 존재로 많은 팬들에게 각인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제게 있어서 허재는 르브론 이전의 르브론과 같은 존재로 두 선수간 많은 유사성을 느끼고 있고, 이번 시즌 우승으로 한층 위상이 높아져 역대2위 선수로 위치를 공고히 한 르브론이기에 리그 수준차를 잠시 제쳐두고 리그내 상대적인 위상을 비교할 만한 상태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농구대잔치와 프로농구 무대를 통틀어서 허재 선수의 커리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하 나무위키의 내용을 참조하였습니다)
시즌 MVP 2회 (농구대잔치만 2회)
우승 9회 (농구대잔치 7회, KBL 2회)
베스트5상 10회 (농구대잔치 9회, KBL 1회) - NBA로 치면 All NBA 1st팀에 해당하겠죠.
챔피언결정전 MVP 1회
84년도 농구대잔치 어시스트상
93년도 농구대잔치 수비상
대략적으로 위와 같습니다.
NBA식으로 치환하여 보면
MVP 2회, 우승9회, 퍼스트팀10회, 파이널MVP 1회(실업농구시절에는 없는 제도여서)
정도의 커리어라 볼 수 있겠습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허재는 이충희, 김현준과 같은 슈터로 득점기계라기보다는 포인트 가드에 가까운 올어라운더였고, 국내선수로서 매우 특출난 파워와 운동능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저는 미드레인지에서 뛰어난 테크닉으로 공간을 만들과 페이드웨이 점퍼를 적중시키면서 고감도 슈팅능력으로 60득점, 50득점 경기를 밥먹듯이 한 슛도사 이충희 선수가 좀더 조던에 가까운 스타일의 선수라 생각하고, 올어라운더로 포인트 가드의 코트비전과 패싱능력, 림어택 능력의 허재는 르브론과 스타일상 더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충희 선수도 선수들의 평가에 의하면 당시 수비력이 굉장히 뛰어나다고 칭찬을 받고 있어 공수겸장의 슈퍼스타였습니다.
허재는 커리어에 있어 르브론과 비슷한 점들이 많은데,
첫째는 코트 밖에서 언행으로 구설수에 오르면서 골수팬인 제마음을 아프게 했었다는 점입니다.
허재의 최대 약점이라면 술일텐데, 음주운전으로 문제가 된 일들(국대에서 영구제명되기도 했었죠), 코트위에서 폭력사태에 휘말린 일(혼혈스타였던 현대 김성욱 선수에게 강펀치를 맞고 턱에 골절상을 당하기도 했죠), 그리고 고려대와 연세대 출신의 농구인들이 주축이 된 농구계에서 중앙대 출신으로 다소 튀어서 그런지 이단아로 낙인이 찍히고 많은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학연지연의 풍토하에 억울한 희생자라는 평도 있고, 그럴만한 문제를 일으켰다는 평도 있었습니다. 르브론의 디시전쇼 등의 문제는 잘 알려져 있겠구요.
두번째는 준우승한 시즌 파이널에서의 엄청난 활약상입니다.
97년도 프로농구가 생기고, 외국인 선수들이 함께 활약하면서 당시 기아자동차의 최인선 감독은 허재의 올어라운드한 능력보다 강동희라는 확실한 포인트 가드의 리딩과 김영만의 득점력, 외국인 선수의 능력의 조화가 더 팀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는지 97년 기아의 원년우승 과정에서 허재가 코트에 서지 못하고 벤치에서 우승을 보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였습니다.
본래 허재는 실업무대인 농구대잔치에서 전성기를 보내면서 이룰 것을 다 이룬 선수였고, 프로농구가 출범한 당시에는 동기부여도 잘 되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허재가 65년생이니 프로농구가 출범한 97년도에는 만32세의 나이였죠. 허재는 정상에 있을 때 은퇴하고 싶다는 의사를 언뜻 언뜻 비치고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던 중 기아에서 우승과정에서 벤치에 앉게 되자, 허재의 자존심에 큰 상처가 났던 것 같습니다. 이후 허재는 기아를 떠날 결심을 하고 다른 팀에서 우승하겠다는 목표가 생겨 다시 동기부여가 되었으며 결국 39세까지 선수생활을 하게 되었고 원주TG 구단에서 우승을 하여 목표를 달성하였습니다.
기아를 떠날 결심으로 하고 기아소속으로 마지막 우승을 차지하고자 하는 의지는 동기부여가 약해진 허재에게 다시 불을 붙였고, 당시 신흥 강자로 떠오른 이상민-조성원-추승균의 이조추 트리오와 맥도웰이라는 최고의 용병이 결합하여 뛰어난 명장 신산 신선우 감독의 지도하에 새로운 왕조를 열어가던 현대와 명승부를 벌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아는 용병 저스틴 피닉스라는 선수가 태업을 하여 인사이드에서 열세에 놓였고, 전력에서 현대에 뒤쳐지는 것으로 평가되었는데, 허재는 오른 손등이 부러지고 눈밑이 찢어지는 부상가운데 용병을 포함하여 양팀 통틀어 최고의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기아를 이끌면서 7차전의 대접전 승부를 펼쳤으나, 결국 우승은 현대가 차지하여 현대시대를 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허재는 준우승팀의 에이스였지만 챔피온결정전 MVP를 차지하면서, NBA의 제리웨스트와 비슷한 사례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당시 여러 구설수에 오르면서 많은 비판을 받던 허재였지만 이 시리즈에서의 놀라운 투혼과 압도적인 기량, 불굴의 정신력으로 팬들의 심금을 울리면서 다시 농구대통령으로 팬들에게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허재의 분투와 아쉬운 준우승은 마이애미에서 클블로 이적한 14-15년의 르브론과 겹쳐보이는 부분이 많습니다.
르브론 또한 어빙, 러브가 부상으로 이탈한 가운데 새롭게 떠오르는 신흥 강자 커탐그 트리오의 골든스테이트를 맞아 자신의 모든 것을 불사르면서 엄청난 투혼을 발휘했고, 준우승에 그쳤지만, 파엠투표에서도 몇표를 득표하고, 르브론을 잘 수비한 이궈달라가 파엠을 수상하게 되었죠.
당시 현대는 NBA 골스와 겹쳐보이는 점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팀 스타일은 다르지만, 이상민이라는 허재의 뒤를 잇는 최고의 인기스타를 중심으로 캥거루 슈터 조성원과 만능 포워드 추승균의 3인방은 커탐그를 연상시키는 면이 있고, 신산 신선우 감독의 놀라운 전술과 지도력은 스티브 커 감독을 연상시키는 면이 있습니다. 기아를 이기고 우승한 98년도를 시작으로 현대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골스와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만일 허재가 농구대잔치에서 이룰 것을 다 이루고 프로농구 원년에 우승하면서 정상에서 30대초반에 은퇴하였다면 더욱더 한국의 조던으로 커리어가 많이 겹쳐보였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기아의 얼굴로 농구계를 제패해 온 허재로서 기아의 원년우승에 벤치로 밀려났다는 모멸감은 그에게 엄청난 동기부여가 되었고, 39세까지 선수생활을 이어가면서 새로운 도전을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세번째는 원주 나래(TG)로 이적한 후 김주성을 만나고 노장으로서 다시 우승을 차지한 시즌이 이번시즌 AD와 만나고 레이커스에서 우승을 한 르브론과 겹쳐보이는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허재는 원주 나래에서 주로 포인트 가드로 활약하면서 30대의 노장이면서도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었지만, 우승하기에는 전력이 충분하지 못하였죠.
그러던 중 2003년에 용병급 특급 빅맨인 김주성 선수가 드래프트로 TG에 입성하게 되고, 허재는 우승기회가 왔음을 감지하고 더욱 동기부여가 되어 활약한 결과, 김승현과 힉스의 동양을 꺾고 드디어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만38세의 나이였습니다. 통산 9번째 우승의 대위업이었죠.
말년의 허재는 전성기 당시 주무기 중 하나였던 타점높은 3점포가 고장나다시피하여 3점슛 성공률이 매우 하락하였고, 특유의 돌파 후 림어택 능력도 상당히 감퇴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허재의 또다른 농구천재로서 능력인 코트비젼과 패싱센스는 여전히 살아있었고, 포인트 가드로서 경기를 조율하면서 우승에 큰 공헌을 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허재의 오랜 골수팬으로서 정말 이번 시즌 르브론 우승 못지 않게 기뻐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허재가 마지막으로 우승하면서 목표를 이루던 2003년, NBA에서는 르브론이 데뷔를 하게 되어 저는 2004년 은퇴한 허재를 이어 르브론을 응원하게 되었고 지금에 이르게 되었네요.
제게 있어서 허재는 한국의 조던이라기보다 한국의 르브론이고, 르브론은 NBA의 허재입니다.
두 선수 모두 특별한 최고의 올어라운더이고, 포인트 가드로서도 뛰어난 코트비젼과 패싱능력을 갖추고 있고 뛰어난 신체능력을 보유했죠. 제가 이런 스타일의 선수에게 굉장한 매력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애니어그램으로 보면, 허재는 8번(조던도 8번이라고 하네요), 르브론은 9번으로 같은 장형이지만 성격과 리더십은 좀 다른 유형인 것 같기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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