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아빠가 너보다 나았어': D. 사보니스의 원동력
'네 아버지가 너보다 나았어':
도만타스 사보니스를 타오르게 한
'가족의 유산들'
Your Dad Is Better Than You:
The N. B. A. Star Fueled by Family
Apr. 6, 2023
By Sopan Deb
Domantas Sabonis는 Arvydas Sabonis의 플레이스타일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아버지의 스타일을 고수하며 올 스타 플레이어가 되었고, 장장 16년 동안 이어지던 Kings의 플레이오프 가뭄을 해소해줄 수 있었다.
그의 플레이를 보고 있으면 NBA 레전드로 손꼽히는 구 시대의 빅 맨이 한 명 떠오른다.
바로 그의 아버지가.
© Alika Jenner via Getty Images
농구는 아주 오래 전부터 Domantas Sabonis의 삶이었다.
“플랜 B 같은 건 가져본 적 없습니다." 사보니스(26)가 답했다.
“제 삶은 ‘Only Basketball’이었죠."
사보니스는 이따금씩 어린 시절의 사진을 보면 농구공을 들고 있는 사진이 굉장히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 돌 갓 지낸 한 살 짜리 아들도 마찬가지다‘라고 했다. 이들에겐 농구가 비단 스포츠가 아니다.
‘가문의 전통‘이다.
사보니스의 부친인 Arvydas Sabonis는 리투아니아 태생의 농구 선수였다. 그는 유럽 무대를 평정하고 난 뒤 NBA에 상륙해 일곱 시즌을 뛰었고, 지난 2011년에는 농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까지 했다.
이제 ‘페인트의 지배자, 사보니스!‘라는 별명은 Arvydas가 아닌 Domantas Sabonis가 이어 받게 되었다.
일곱 번째 시즌에 접어든 도만타스 사보니스는 이미 올 스타에 세 차례나 선정되었다. 올 시즌엔 2006년 이후로 한 번도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아보지 못한 Sacramento Kings의 플레이오프 클린치에 일조했다.
Kings는 북미 4대 주요 스포츠 리그를 통틀어 가장 긴 ‘현재 진행형 플레이오프 연속 탈락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사보니스는 NBA 전체 리바운드 리더인 동시에, NBA 최고의 패싱 빅 맨 중 하나이자, NBA에서 가장 효율이 좋은 스코어러가 되어 팀의 불명예를 끊어냈다.
그의 플레이를 보다 보면, 어딘가 Arvydas가 떠오르는 지점들이 있다.
도만타스처럼 Arvydas 역시 7풋 3인치의 신장을 가진 아주 능수능란한 패서였고, 준수한 포스트 스킬과 무지막지한immense 상체 힘을 가진 선수였다. 이를 바탕으로 Shaquille O’Neal에게도 심심찮게 달려들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wUIWhYOqVs
도만타스 역시 마찬가지다. 그가 림 근처에서 루즈 볼을 잡으려 달려들면, 상대 선수들은 마치 탱탱볼처럼 튕겨져나간다. Arvydas는 아들보다 더 좋은 슛 터치를 갖고 있었던 반면, 도만타스는 부친보다 퀵니스가 더 좋다. 물론, 그 당시의 리그 트렌드로는 빅 맨에게 퀵니스를 기대하기 어려웠지만 말이다. 지난 십여 년간 ‘골밑에 박혀있는 굼뜬 빅 맨‘ 스타일의 느린 센터들은 거의 자취를 감췄지 않은가.
그럼에도 6풋 11인치의 도만타스는 자기 피에 흐르는 이 ‘올드 스쿨 정통 빅 맨‘의 유산을 활용해 킹스의 성공적인 시즌을 도왔다. 어떻게 보면 Arvydas의 스타일을 계승하기 위해 (트렌드에 맞지 않는) 스타일을 고집하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눈짓, 손가락, 손짓 같은 저희만 아는 아버지의 작은 제스쳐들이 있거든요.“
도만타스의 형인 Tautvydas Sabonis가 설명해주었다.
그는 가족들 사이에선 ‘Tuti’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패스를 하고 나면 손가락을 이렇게 해요. ‘아버지 따라하기‘의 기초과정이죠.(웃음)”
리투아니아에서 화상으로 취재에 응해준 ‘Tuti’가 시범을 보이기 위해 손을 쫙쫙 벌려가며 설명해주었다.
Sabonis는 시즌 평균 19.2점과 리그 1위 기록인 12.4 리바운드를 기록하고 있다.
© Frank Franklin Li for Associate Press
“진짜 신기한 건, 화내는 방식도 둘이 똑같다는 거예요.” Tuti가 덧붙였다.
“성격도 똑같고, 성미도 둘이 빼다박았죠. 한 번 뚜껑이 열리면 진짜 불같이 화를 내면서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욕을 다 내뱉어요. 대부분은 리투아니아 말로 욕을 하는데, 잘 들어보면 영어도 조금 섞여있고 스패니쉬도 약간 섞여있습니다.”
올해 30세가 된 Tuti는 유럽 무대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한 뒤, 지금은 리투아니아에서 지도자로 일하고 있다.
‘Zygi’라는 애칭을 가진 둘 째 형, Zygimantas는 올해 31세가 되었는데, 그 역시 Tuti와 똑같은 진로를 거쳤다.
셋 째는 바로 Domantas다. 그는 Arvydas가 Portland Trail Blazers에서 데뷔하던 그의 루키 시즌 때에 태어났다. 그것도 아버지의 플레이오프 기간에 말이다.
여동생도 있는데, 그의 여동생 Ausrine은 이듬해에 태어났다.
도만타스와 Tuti는 지금까지도 Blazers 훈련 시설 안에 마련돼있던 '키즈 룸'이 기억난다고 한다.
키즈 룸에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게토레이드들을 맘껏 맛볼 수 있었고, 두 형제는 아버지의 훈련이 끝날 때까지 ‘바닥에 용암이 흐르니까 밟으면 안 돼!’ 놀이를 하면서 기다렸다고 한다.
부친의 팀메이트였던 Scottie Pippen이나 Rasheed Wallace 등은 3형제를 각각 ‘사보니스 주니어 & 사보니스 주니어 주니어 & 사보니스 주니어 주니어 주니어’라 불렀다고 한다. 한 술 더 떠, Damon Stoudamire는 3형제에게 다가가서 본인의 아프로 펌 머리를 이렇게 설명했다.
‘콘센트 구멍에 손가락을 끼웠더니 머리가 이렇게 됐어‘
Arvydas는 2003년 은퇴했다. 두 번째 은퇴 발표이자, 마지막 은퇴 발표였다. 그가 은퇴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가족은 스페인으로 이사했다.
도만타스가 이번 인터뷰에서 필자에게 이야기해주길, 농구를 시작하고, 스스로 아버지 영상을 유튜브에서 찾아볼 수 있게된 열 살 이전까지는 '아빠가 농구를 잘 하는 사람인지 몰랐다'고 한다.
아버지가 이 가족에게 남긴 ’농구 레거시‘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https://www.instagram.com/p/CqJoOMjvybd/
“농구 선수이신 줄은 알았죠. 근데 저희 눈엔 농구 선수가 아니라 아빠로 보였거든요.”
제 아버지가 그리했듯, 세간의 관심으로 부터 멀어지는 걸 반기는 도만타스의 답변이다.
“아버지가 얼마나 잘 하는 선순지는 몰랐어요.”
그가 말하길, 부친은 4남매 모두에게 던 한 번도 농구를 하라고 강요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건 미스 리투아니아 출신인 그의 아내, Ingrida Sabonis 역시 마찬가지였다.
도만타스는 10대 때부터 스페인 프로 구단인 Unicaja Malaga에서 뛰었다. 그 곳에서 2년간 선수생활을 한 뒤, 미국에 있는 Gonzaga 대학으로 건너갔다. 당시에 도만타스를 Gonzaga로 리크루트한 이는 어시스턴트 코치였던 Tommy Lloyd였다.
Lloyd 코치가 당시를 회상하며 전해주길, ’형인 Tuti와는 상의를 했지만 정작 학부모인 Arvydas와는 아무 상의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입학 허가가 난 후에야 학부모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리크루트 과정에서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 이유에 대해 묻자, Lloyd 코치는 'Arvydas가 저한테 직접 했던 말이 있거든요.'라며 운을 뗐다.
“ '내 아들이 자기 손으로 직접 결정하게 내버려두세요. 그게 맞는 겁니다. 저는 자라면서 단 한 번도 그래보질 못했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에게는 그렇게 해줄 수 있다는 게 기쁩니다.'라더군요.”
Blazers는 Arvydas를 1986년에 드래프트했다. 하지만, 실제 NBA 데뷔까지는 거의 10년이 걸렸는데, 이는 당시의 정치/사회상과 관련되어 있다.
리투아니아는 소비에트 연방의 소속국이었다. 소련 수뇌부에선 1988년 올림픽에 Arvydas를 출전시켜 소련 농구팀의 경쟁력을 강화시키고자 했기 때문에 그를 아마추어 신분으로 남겨놓고자 했다.
그렇게 올림픽을 치른 후, Arvydas는 다수의 아킬레스 부상 이력을 가진 선수가 되었다. 그 과정을 거치며 자신의 경쟁력이 NBA 무대에 진출하기에 충분한지 의심하게 되었고, 이내 NBA 진출을 뒤로 미루게 되었다.
하지만 1990년이 되면서 리투아니아는 소련으로 부터 독립하였고, Arvydas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선 ‘소련 대표팀’이 아닌 ‘리투아니아 대표팀‘ 소속으로 출전해 조국에 동메달을 안겨주었다.
1992년 올림픽의 주인공은 단연 ‘드림 팀‘이었지만, 리투아니아 선수들이 웜 업용으로 입고 나온 Great Dead 사의 물빠진 유니폼 역시 화제를 모았다.
Domantas는 슛 레인지가 제한적이지만, 그가 가진 뛰어난 페인트 스킬은 Kings에 대단히 중요한 무기가 되어주었다.
© Thearon W. Henderson via Getty Images
Arvydas Sabonis는 1990년 중반, Trail Blazers 소속으로 일곱 시즌을 뛰었다.
© Doug Pensinger via Getty Images
한편, Blazers는 Arvydas를 미국 무대로 데려오기 위해 오랜 기간 공을 들였다. 미 의회까지 나서서 수년 간 구애를 보낸 끝에, 결국 Arvydas가 마음을 정했다.
“지금이 아니면 앞으로 NBA에서 뛸 수 있는 기회는 없겠지요.”
당시 30세였던 Arvydas가 내놓은 소감이다.
“Last Chance인 겁니다."
Arvydas는 이번 인터뷰 요청에는 고사의 뜻을 전해왔다.
그는 1995년에서 2003년까지 NBA 선수로 활약했지만, 그중 한 시즌을 통째로 건너뛰어야 했다. 사유는 ‘정신과 육체 모두의 탈진 상태‘였다.
요즘에 그는 도만타스의 시합이 끝날 때마다 아들에게 문자를 보낸다. 새크라멘토와 리투아니아 간에는 10시간의 시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합이 끝난 아들과 늘 문자를 주고 받으면서 소통한다. 도만타스의 경기가 없는 날에는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는 다른 자녀들에게 문자를 보내며 자녀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한다.
“저희 모두 아버지가 베스트 프렌드인 것 같아요.”
Tuti가 말한다.
“아버지는 대단한 분이세요. Domas-도만타스의 애칭-경기를 하나도 빠지지 않고 전부 다 챙겨보시거든요."
"근데 경기 보시다가 꼭 저한테 전화를 하신단 말이죠.. 그럼 받아서 ‘아버지.. 저 내일 출근해야 돼요..’라고 말씀드립니다. (웃음)"
Arvydas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아들들을 코칭하지 않았다. 그 대신, 가끔 가다 아주 짧은 ‘원 포인트 레슨‘만 던져준다.
“ ‘항상 상대 포인트 가드를 잘 다뤄야 돼.’ ”
Tuti가 필자에게 아버지의 원 포인트 레슨이 어떤 방식인지 알려주었다.
“ ‘슈팅 가드는 신경 안 써도 돼. 걔는 코트에 슛만 하러 나오는 선수니까. 그런데 포인트 가드는 그런 녀석들이 득점을 할 수 있게 볼을 건네주는 역할이지. 반드시 묶어놔야 하는 녀석이 있다면 그건 바로 포인트 가드들이야.'라고 말씀해주셨어요."
도만타스에게는 De’Aaron Fox가 바로 그런 존재다.
이 번개처럼 빠른 25세의 포인트 가드는 올 시즌 도만타스의 파트너로 호흡을 맞추며 새크라멘토의 대 약진을 이끌었다. Fox는 본인의 NBA 커리어 6년 내내 새크라멘토에서 뛴 반면, 도만타스는 Indiana와 트레이드를 통해 지난 시즌에서야 합류했는데도 불구하고.
“구단과 팀원들은 제가 팀의 메인 피스 중 하나가 되어주길 바라더군요. 발언권을 가지고 팀을 이끌고, 변화를 만들어내주길 바랐죠.”
도만타스가 말한다.
“그게 동기부여가 됐습니다.”
올 시즌 처음으로 킹스에 부임한 Mike Brown 감독은 도만타스의 패싱 스킬에 의존하는 형태의 오펜스를 짰다.
결과는 대 성공이었다. 그리함으로써 Fox에게 더 많은 공간을 열어줄 수 있게 되었고, 코트밸런스가 더 좋아질 수 있었다. 새크라멘토는 NBA 1위 오펜스 팀이 되었고, Fox는 커리어 첫 올 스타에 선정되었다.
Fox는 도만타스가 ‘리그 최고의 피니셔 중 한 명이자, 리그 최고의 패서 중 하나‘라고 말한다. 그리고 ‘강력한 스크린 스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주 성가시게 구는 디펜더들을 떨쳐낼 수 있었다’고 평한다.
“그런 선수가 팀에 있으면 오펜스 디자인은 아무렇게나 해도 상관없죠. 다 알아서 풀립니다.” Fox가 말한다.
도만타스의 첫 째 형인 ‘Tuti’ Sabonis의 현역시절 모습. 그는 유럽에서 선수 생활을 했고, 지금은 모국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다.
© Robertas Dackus for Euroleague Basketball via Getty Images
킹스의 팀메이트들과 코칭 스탭들은 도만타스의 몸을 사리지 않는 플레이에 금세 매료되었다. 그리고, 합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는 이른 바 '팬 페이버릿'으로 등극했다.
도만타스는 올 시즌 대부분을 엄지 부상을 당한 채로 소화했지만, 포스트 내에서의 거친 플레이나 리바운드 싸움에 수반되는 컨택을 조금도 피하지 않았다.
Brown 감독은 “한 번은 도만타스가 (부상 여파로) 배드 턴오버를 하고 나서 저한테 ‘죄송하다‘면서 사과를 하더라고요.”라며 그 부상과 관련한 한 일화를 소개해주었다.
“이렇게 말했죠. ‘네가 그렇게 열심히 뛰어주고 있다는 걸 내가 알고 있는데, 턴오버 하나 했다고 내가 너한테 화낼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라고요.”
“그래서 ‘그냥 나와서 좀 쉬어.’하고 끝냈죠.”
너무 유명한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가야(넘어서야) 한다는 사실이 그에게 부담이 되지는 않았을까? 특히 NBA 처럼 휘황찬란한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고, 미디어의 이목이 집중되는 곳에서는 그 부담이 더욱 가중될 테니까.
하지만, 도만타스는 아버지가 농구계에 남긴 레거시들이 자신에게 '조금도' 부담으로 다가오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는 비슷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늘 같은 대답을 했다.
아버지 때문에 부담을 느끼기는 커녕, 아버지의 레거시를 자랑스러워 한다. Gonzaga 대학과 Indiana Pacers에서 등번호 11번을 달았던 것도 아버지의 등번호를 물려받기 위해서였다. Sacramento에서는 11번이 영구결번이라 별 수가 없었지만 말이다.
“어렸을 때부터 늘 들었던 말이 있어요. '네 아버지가 늬들보다 더 잘 했어', ‘너희 아버지는 말이지..’ ‘늬들 아버지가 말이지..’”
“자라면서 늘 그 말들을 들었죠. 매 시합마다, 매 시간마다 그 소리를 들으면서 지내야 했습니다.”
도만타스가 말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말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겁니다. 이 자리에 서있지 못했을 거고요. 다른 어떤 것도 제게 동기부여가 되지 못했을 겁니다. 아버지와의 비교를 ‘더 나은 선수가 되기 위한 연료'로 사용했죠.”
그 모습을 지켜본 Mike Brown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어쩌면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버지보다 더 좋은 선수, 더 영향력이 큰 선수가 되겠다'고 다짐하고 있을 수도 있지요. 그런 모습을 아버지에게 증명해보이고 싶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아버지 아들이 이런 것도 해낼 수 있다고요!’하는 마음으로요.”
도만타스를 Gonzaga로 리크루트한 Lloyd 코치는 이제 University of Arizona의 남자 농구부 감독으로 일하고 있다.
그가 도만타스를 지도하던 시절에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형들을 우러러봤기 때문에 더 많이 발전할 수 있었다'는 말을 도만타스로 부터 많이 들었다고 한다.
“본인의 손에 <Sabonis Basketball>의 명맥이 달려있다고 느끼는 녀석이었어요." Lloyd 감독이 말한다.
"그 사실을 굉장히, 굉장히 진중하고 무겁게 받아들였지요. 가문의 명성에 먹칠을 할까봐 두려워 했다는 말이 아닙니다. Sabonis 가문의 명성을 더 드높이기를 원했던 그의 간절한 소망이었던 것이죠."
Arvydas Sabonis는 본인의 최전성기를 NBA가 아닌 유럽 무대에서 보내야 했다. 그렇기에 NBA 커리어만 놓고 보자면 'Sabonis 주니어 주니어 주니어'는 이미 아버지의 성취를 넘어섰다.
올 시즌, 도만타스는 Kings 프랜차이즈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다. 다시 메인 스테이지에 돌아가기를 목이 빠져라 간절하게 기다리던 Kings였다.
“아버지가 참 좋아하세요.” Tuti가 말한다.
“당신 아들이 전성기를 구가하는 모습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계시니까요. 수상실적 같은 건 아버지껜 아무 상관없습니다. 지금 아버지께서 느끼고 계신 행복은 그런 데서 나오는 행복이 아니예요.”
“그냥 TV 앞에 앉아서 ‘내 아들'의 농구를 맘껏 즐기는 겁니다. 아버지는 그저 그 모습을 즐기시는 거예요."
-끝-
오늘 올라온 뉴욕 타임즈의 스포츠/문화 필진, Sopan Deb의 아티클입니다.
농구 관련해서 유익한 아티클을 많이 쓰시는 분이라 저도 참 좋아하는데요, 모자란 실력이지만 공부삼아 한 번 옮겨보았습니다. 번역이나 가독성 등의 피드백은 언제나 감사히 받고 있습니다.
원문입니다.
https://www.nytimes.com/2023/04/06/sports/basketball/domantas-sabonis-sacramento-kings.html?smid=nytcore-ios-share&referringSource=article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