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틀러가 플옵에서 강한 이유
작년인가에 비슷한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계속 잘하니까 또 쓰고 싶어지네요.
머릿속에 떠오르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걸 나열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안정적인 볼키핑(미친듯이 적은 실책)
- 가속을 붙이는 돌파보다는 상체를 세운 채로 코트를 읽으며 속도의 변주를 주는 돌파(& 리딩)
- 그리고... 그리고.... 돌파 시의 방향변주를 가능케 하는 유려한 투풋스탑 마무리(& 월등한 풋워크)
버틀러의 스탯에서 이상하리만치 잘 언급되지 않는 게 말도 안 되게 적은 실책 비율입니다. 이번 플옵 스탯이 게임당 31.5점, 5.5어시스트인데, 실책이 2.1개밖에 안 되죠. 보통 어시스트와 실책 간 비율을 포인트 가드의 안정성을 볼 때 참고하긴 했으나, 사실 득점 볼륨이 저 정도되면 어떤 슈퍼스타가 와도 게임당 최소 3개 이상은 해야 정상입니다.
위의 세 가지 중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서로 연관되어 있기도 한데요. 플옵의 정규시즌 대비 가장 큰 차이점은 아무래도 히어로볼의 증가라 볼 수 있습니다. 플레이타입상으로도 지난 수년 간의 플옵 데이터에서 정규시즌 대비 확연하게 높은 온볼 히어로볼 유형 공격(아이솔 & 픽앤롤 볼핸들러 마무리) 빈도 증가가 나타난 바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받아먹기형의 쉬운 득점 공간은 잘 만들어지지 않고, 수비를 달고 마무리하는 빈도가 높아진다는 것이겠죠. 이 말은 곧, 플옵에서 잘 하려면 공간이 없어도 득점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걸 말해줍니다. 이게 요키치, 돈치치, 카와이, 버틀러 등 최근 플옵에서 막을 수 없는 퍼포먼스를 보였던 선수들의 공통점이기도 하죠. 이 넷 중 저는 특히 욬, 돈, 버의 플레이스타일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이 셋은 샷로케이션이 정말 비슷합니다. 골밑(RA) 샷 빈도가 압도적으로 높은 건 아닌데, 그보다 살짝 뒤에서 던지는 예컨대, 4~16피트 구간의 이른바 '숏미드레인지' 비중이 엄청나게 높은 선수들이죠. 모리볼 시대의 특징을 반영하는 선수들이 하든, 커리, 르브론이라면, 욬, 돈, 버는 그들과도 또 다른 유형의 선수들입니다. 일반적으로 돌파는 가속 붙일 공간을 필요로 하고, 3점은 어찌되었든 피지컬 컨택을 피하면서 올라가야 하죠. 어쨋든 모리볼 시대의 핵심은 공간 창출(스페이싱)이고, 그 공간 창출을 위해 더 많은 선수들이 3점을 던진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숏미드레인지 구간의 마무리는 다소 독특하죠. 욬, 돈, 버, 그중에서도 특히, 욬과 버는 수비 컨택을 그대로 유지하며 득점하는 장면이 유난히 많은 선수들입니다. 보스턴과의 1차전에서 로버트 윌리엄스를 상대로 버틀러가 슈팅파울을 얻어내는 장면 하나를 보겠습니다.
이 장면에 앞서서 버틀러가 로윌을 미스매치시킨 후 미드레인지 점퍼를 성공시킨 바 있죠. 여기서는 비슷하게 숏점퍼를 올라가려는 듯 펌페이크를 주고, 슈팅파울을 낚았습니다. 버틀러의 이번 플옵 상대팀들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모두 리그 탑 클래스의 샷블로커들이 있는 팀이라는 점인데요. 밀워키는 사실상 리그 최강 림프로텍팅 팀인데 침몰시켰고, 미첼 로빈슨이 있는 닉스도 보스턴의 로윌도 결국에는 돌파 기반 농구를 하는 버틀러를 막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영상을 이어서 더 보겠습니다. 밀워키와의 4차전 장면인데, 로페즈와 야니스 상대로 버틀러가 펌페이크 기반 야투를 성공시키는 장면입니다.
전직 디포이와 현직 디포이 2위가 있는 밀워키는 부덴홀저 체제에서 압도적인 림프로텍팅 팀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둘이 버틀러를 막지 못한 이유는 버틀러의 저 풋워크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높아도, 샷블럭을 할 타이밍을 놓치거나, 상대 선수에게 상체 공간을 빼앗기면 의미가 없어지죠.
버틀러 풋 워크의 시작점은 아무래도 돌파 후 두 발로 서는 투풋스탑이고, 투풋스탑의 장점은 스탑 후 여러 선택지를 가질 수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가 더 있겠죠. 투풋스탑을 하면 무게중심의 안정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 안정성을 기반으로 자기보다 작은 선수들을 헌팅하기도 하는데요. 위 장면 바로 전에 즈루를 상대로 하는 버틀러의 득점을 보도록 하죠. 돌파라기보다는 포스트업에 더 가까운 장면이긴 하지만, 버틀러의 득점 방식은 대체로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번 시즌 버틀러는 정규시즌에서부터 예년보다 점퍼의 안정성이 높아졌습니다. 그 말은 지금의 퍼포먼스가 점퍼감이 운빨로 좋아서 나오는 초단기 퍼포먼스는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겠죠(약간의 점퍼성공률 하락은 있을 가능성이 존재). 풋웤은 원래 좋았는데, 여기에 점퍼가 받쳐주다 보니, 매치업 상대의 사이즈를 보며 본인에게 유리한 선택지를 주도적으로 찾게 되는 게 있는 것 같습니다.
플옵은 히어로볼의 농구가 전개되는 구간이고, 히어로볼의 증가는 결국 에이스들이 수비를 달고 득점해야 할 의무가 커진다는 걸 말해주기도 하죠. 많은 유형의 히어로볼러들이 있습니다. 머레이나 어빙의 경우 히어로볼 형태의 점퍼가 많은데, 컨택을 기반으로 림과의 슈팅 거리를 좁히거나 수비수보다 유리한 공격자세를 창출하면서 만들어지는 슈팅이 아니다 보니, 요컨대 말 그대로 어려운 자세에서 슛을 잫 넣는 유형이지 컨택 스킬로 포지션의 이점을 창출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보니, 아무래도 점퍼감만큼이나 기복이 커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커리도 넓게 보면 그런 점이 있고, 젊었을 때의 르브론이나 지금의 야니스는 림어태커라는 또 다른 면에서 역시 상대 수비를 타는 부분이 있죠. 결국에는 공간이 필요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력에 대한 평가를 떠나 버틀러와 요키치가 상대를 불문하고 잘하는 이유 중 하나는 슈팅의 공간이 충분히 주어지지 않아도 자신에게 유리한 타이밍과 슛자세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겠죠. 돈치치도 비슷한 장점이 있는데, 이 세 선수들의 이번 정규시즌 로케이션별 슈팅 빈도를 리그 평균치와 비교하면서 마무리하겠습니다.
리그 평균 | 버틀러 | 요키치 | 돈치치 | |
0~3 피트 | 24.6% | 32.2% | 30.7% | 17.6% |
3~10 피트 | 20.6% | 34.8% | 41.7% | 25.2% |
10~16 피트 | 9.7% | 15.8% | 9.2% | 14.5% |
16~3점 라인 | 6.4% | 5.6% | 3.8% | 5.4% |
3점 | 38.7% | 11.6% | 14.6% | 37.3% |
욬과 버는 특히 3~10피트에 심하게 몰려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골밑 슛은 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돌파 공간을 필요로 하고, 3점은 수비수와의 거리가 과하게 좁아지면 던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가속 붙일 공간이 없어도, 수비 컨택을 달고도 던질 수 있는 곳이 3~10피트이고, 이 구간이 최근 플옵들에서 에이스들에게 핫존이 되고 있습니다.
볼 때마다 풋워크는 콤파스 돌리는거 마냥 한쪽발은 딱 붙인채 잘 움직입니다. 코어도 좋아서 컨택시 균형 유지도 엄청 잘되구요.
지난시즌 올스타 기점부터 크리스 브리클리라는 트레이너랑 같이 훈련하는데 그때부터 점퍼 기복이 주는 듯 합니다. 그 분께 무한의 감사인사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