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브룩 트레이드에 대한 소고
충격의 러셀 웨스트브룩 트레이드가 일어났는데요.
솔직히 최적, 최고의 조합이냐고 묻는다면 저도 아니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슛팅이 약한 빅3 조합이 얼마나 강력할 것인지, 또 얼마나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의문부호가 붙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셀 웨스트브룩 트레이드를 나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레이커스는 AD를 활용할 플레이 메이커가 필요했음
부상 제외하고 지난 시즌 레이커스의 가장 큰 문제점을 꼽으라면 저는 슛팅이 아니라 빅맨, 특히 AD를 활용할 줄 아는 가드가 없었다는 점을 꼽습니다. 데니스 슈로더가 분명히 잘해준 지점도 있었지만 (스위치 시 미스매치 헌팅, 미드레인지 점퍼 등 독자적 공격력과 특히 수비는 생각보다 더 끈끈하게 잘해줬음) AD와 해럴을 활용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낙제점에 가까웠다고 평가합니다.
일례로 10일 계약으로 들어온 데미안 존스에게 슈로더가 앨리웁 패스를 날리자 AD는 슈로더에게 왜 이거 할 줄 알면서 그 동안 안 했던 거냐고 슈로더를 장난스레 면박줬던 일화가 있는데, 그게 슈로더와 AD 사이의 합이 얼마나 별로였는가를 나타내주는 일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론도가 AD 에게 던지던 스핀 새우깡, 슈로더가 AD에게 던지는 걸 기억하시는 분 혹시 계신가요? 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p/B5ecmyQgE-J/?utm_source=ig_embed&utm_campaign=embed_video_watch_again
아래 트위터에 의하면 이번 시즌 슈로더와 AD 가 뛴 30경기 동안 둘 간의 앨리웁은 1회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반면 23경기 같이 뛴 웨스트브룩과 개포드는 7개의 앨리웁을 합작했고요. 보시면 지지난 시즌과 지난 시즌 사이 AD의 앨리웁 갯수가 확연히 줄어든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건 단지 AD의 몸상태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AD를 활용할 패서의 부재가 더 큰 원인이었죠.
https://twitter.com/LALeBron23/status/1421501461868032002
레이커스가 역대 최고 레벨의 랍 캐쳐인 AD를 그냥 놀리는 것은 AD를 절반, 어쩌면 그 이하로 밖에 활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역대급 재능을 데려왔으면 그에 걸맞는 조종수(핸들러)를 데려오는 게 당연하고, 이게 버디 힐드 트레이드보다 웨스트브룩 트레이드가 더 시급했다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리그에서 뛰어난 슛터를 구하는 것보다 뛰어난 핸들러를 구하는 게 훨씬 어렵다는 것도 생각해봐야 할 지점입니다.
아래는 볼인덱스닷컴의 매트릭스가 평가한 지난 시즌 웨스트브룩의 플레이 메이킹 등급입니다.
전 부문 최고 등급인 A로 가득 차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플레이 메이커 중 하나였고, 이제 러스는 아담스, 로페즈, 개포드가 아닌 앤써니 데이비스와 투맨 게임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러스가 아니었다면 대안이 누구였는지?
일단 첫번째 타겟이었던 크리스 폴은 선즈가 사트를 해주기 싫어했고 폴도 선즈와 새로 계약을 맺을 의향이 있었기 때문에 패스.
제가 가장 원했던 라우리는 랩터스가 레이커스 자원에 딱히 관심이 없었던 것 같고, 또 라우리 본인도 우승보다 돈을 원한다는 뉴스로 봐서 힘들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레이커스가 사트로 라우리를 받으면 하드캡에 갇히게 되는데, THT 와 카루소의 재계약까지 생각해야 했던 레이커스 입장에서 많은 연봉을 주고 라우리를 데려오기가 현실적으로 힘들었을 겁니다. 러스를 데려오면서 레이커스가 취한 최고 이득 중 하나는 소프트캡을 유지해 샐러리 규모를 확장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세번째로 이야기가 많이 나왔던 데로잔은 페이컷도 가능하다고 했으니 사트를 하더라도 라우리보단 여유가 있었을지 모릅니다. 다만 저는 데로잔이 웨스트브룩보다 더 나은 핏인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레이커스는 AD를 활용할 플레이 메이커가 시급했습니다. 데로잔이 스퍼스에서 플레이 메이킹이 늘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패스는 킥아웃이었고 롤맨에게 연결하는 투맨 게임은 그다지 뛰어나진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패스 퀄리티 자체도 러스보다 많이 떨어진다고 보고요. 미드레인지 게임을 할 줄 아는 데로잔이 해줄 역할도 분명히 있습니다만 그게 AD 활용보다 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결국 플레이오프에서 공간 겹침 문제와 스페이싱 문제는 러셀이 있든 데로잔이 있든 큰 차이는 없을 거라고 판단합니다.
레이커스는 첫째도 둘째도 수비
프랭크 보겔 감독 체제에서 아무리 공격력을 강화시킨다고 해도 중요도 1순위는 무조건 수비일 겁니다.
그런 측면에서 데로잔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면, 지난 시즌 데로잔은 매치업 난이도에서 최하의 수비수들을 막으면서도 좋은 수비력을 보여주진 못했습니다.
https://twitter.com/The_BBall_Index/status/1367610808419512329
다시 말해서, 스퍼스가 데로잔의 수비적 약점을 알고 최대한 쉬운 매치업을 붙여주고 약점을 가려주려고 했던 겁니다. 데로잔의 수비가 약하다는 걸 팀적으로 인지하고 있었다는 뜻이죠. 이러면 어떤 분들이 데로잔은 원래 2번인데 3번 막아서 수비를 못했다고 하시는데, 제 생각은 완전히 반대입니다. 데로잔은 느려진 스텝으로 인해 이미 수비시 3번이 적합한 선수이고 스퍼스도 3번으로 인지하고 로스터를 꾸렸다고 생각합니다. 3번인 마커스 모리스의 이탈로 어쩔 수 없이 3번을 봤다는 이야기가 많은데, 마커스 모리스는 이미 몇년 전부터 4번으로 뛰던 선수죠. 모리스의 대체자로 데려온 선수도 스트레치 4번이었고요. 즉, 데로잔은 스퍼스에서 이미 3번 적합 판정을 받은 선수입니다. 2번으로서 데로잔은 요새 유행하는 멀티 핸들러들의 스피드를 따라잡지 못하고 또한 스크린 대처 능력이 매우 약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단점들은 2-3번을 떠나서 수비가 첫번째 덕목인 레이커스에서 데로잔을 주요 타겟으로 삼지 못하는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러스 역시 매우 뛰어난 수비수가 아닐 수 있습니다만, 적어도 최근 시즌 러스는 다른 면을 보여줍니다.
https://twitter.com/The_BBall_Index/status/1405216845498552324
볼인덱스닷컴의 평가에 따르면 이번 시즌 디펜시브 써드팀에 러스가 포함됨
https://twitter.com/The_BBall_Index/status/1392910013199388673
Point of Attack (대략 포인트가드) 수비롤을 갖는 선수 중 가장 멀티 포지션 소화 능력이 뛰어난 선수들 중 하나로 꼽힌 웨스트브룩
다음 시즌 레이커스는 정규시즌은 몰라도 플옵에선 필연적으로 원빅 비율이 높아질 수 밖에 없을 텐데, AD-르브론 스몰라인업이 가지는 최고의 강점은 5-4번 빅맨진이 스몰라인업 같으면서 스몰라인업 같지 않은 스몰라인업이라는 겁니다. 센터인 AD 부터가 오바 좀 보태서 1번부터 5번까지 견딜 수 있는 수비 괴물이고, 르브론 역시 집중모드에서 1-5 수비가 여전히 가능한 선수입니다. AD와 르브론으로 인해 레이커스는 리그 최고의 스위치 디펜스 팀이 될 수 있고, 이러한 능력은 19-20 시즌 우승을 할 수 있던 원동력 중 하나였습니다. 여기에 1번 수비수 중 멀티포지션 수비 능력이 가장 뛰어난 러셀 웨스트브룩이 합류한다? 일단 레이커스의 기조에는 잘 어울립니다.
러스는 팀 디펜스에서 가끔 볼 왓칭을 하며 멍 때리다 수비수를 놓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기본적으로 맨투맨 디펜스는 상당히 괜찮다고 봅니다. 공홈의 트랙킹에 따르면 지난 시즌 러스의 아이솔 수비는 76.5 PERCENTILE 이었고 (야투 허용률 28%, 다만 자유투는 다소 많이 내준 편 -_-;;;) 포스트업 수비는 79. PERCENTILE 이었습니다.
또한 웨스트브룩은 50경기 이상 뛴 선수들 중 디플렉션 19위, 루즈볼 리커버리 4위에 랭크되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간에 정리하면, 멀티포지션 수비 소화 능력이 뛰어난 웨스트브룩의 합류는 레이커스의 수비 컨셉과도 잘 맞으며 레이커스의 정체성인 수비력을 계속해서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겁니다.
결론
지난 시즌 중반으로 돌아가 봅시다. 아마 많은 레이커스 팬분들 중 슈로더와 재계약 해야 된다는 분들 많으셨을 겁니다. 저 역시도 그랬고요. 그리고 슈로더가 부족한 플레이메이킹 능력과 슛팅 능력을 가졌음에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던 이유는 레이커스의 컨셉 자체가 허슬과 수비로 상대를 찍어누르는 것이었고, 적어도 슈로더가 허슬과 꽤 괜찮은 수비력을 갖춘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러셀 웨스트브룩은 어떨까요? 러스 역시 허슬과 수비력을 갖춘 선수이고 거기에 훨씬 뛰어난 플레이메이킹을 더한 선수입니다.
슛팅이 문제라구요? 맞습니다. 그런데 슈로더의 지난 시즌 와이드오픈 3점 성공률은 35.1% 그리고 웨스트브룩의 와이드오픈 3점 성공률은 35.3% 였습니다. 적어도 둘 간의 슛팅력 차이, 그리고 스페이싱을 제공하는 수준의 차이는 없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피닉스와의 플옵 1라운드에서도 슈로더는 시리즈 내내 새깅을 당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이커스는 AD 부상 전까지 시리즈를 리드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정규시즌 내내 레이커스는 강력한 우승후보 중 하나로 꼽혔습니다.
많은 선수들이 낮은 연봉에도 불구하고 줄서서 레이커스에 들어오려 한다는 뉴스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가지 가정을 해봅시다.
"만약 쿠즈마+KCP+해럴+22픽에 준하는 전력을 FA와 슈로더 사트로 수급할 수 있다면", 결론적으로 레이커스는 슈로더를 러셀 웨스트브룩으로 업그레이드 하는 효과를 누리게 됩니다. 그리고 슈로더와 웨스트브룩의 클래스는 누가 뭐래도 차이가 많이 납니다. 특히 레이커스가 가장 필요로 하던 플레이 메이킹에 있어선 천지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레이커스는 샐캡을 아득히 넘어설 예정이었던지라 팀 페이롤이 얼마가 늘어나든 그건 다른 선수를 영입하는하는데 별 의미가 없습니다. 오직 구단주 지갑에서 몇십, 몇백억이 더 나갈 뿐입니다. 슈로더에게 25밀 주는 것이나 웨스트브룩에게 44밀 주는 것이나 그 19밀 차이는 어차피 다른 선수 영입에 쓸 수 없다는 말이죠.
그렇다면 딱히 더 좋은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르브론의 시간이 남아 있을 때 최대한 우승을 노리는 레이커스가 슈로더를 웨스트브룩으로 업그레이드 한 것은 합리적인 선택 아니었을까요?https://twitter.com/The_BBall_Index/status/1404106293627875333
(볼인덱스닷컴에 따르면 20-21 시즌 올느바 써드팀급 활약을 한 러셀 웨스트브룩)
물론 장점만큼이나 단점도 많은 선수라서 호불호가 갈리고 논쟁이 많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잘 압니다. 앞으로 로스터 구성도 단점을 매우는 식으로 (슛터 보강) 펠린카 단장이 신경써서 잘 해야 할 겁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이커스에 가장 부족했던 부분을 최상위 수준으로 해낼 수 있는 선수로 채워냈다는 것은 분명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잘 봤습니다. 르브론이 클블을 두번째로 떠날 때부터 가졌던 생각인데, 이제 나이가 든 만큼 4번롤에 정착해서 리딩을 내려놓고 득점에 주력하는게 남은 플레잉타임 동안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자기 스타일을 고수하며 우승을 해냈고, 능력이 여전함을 증명했지만 체력적인 한계가 뚜렷하게 드러나기도 했었죠.
이제 커리어 동안 한번도 만나지 못했던 최고급 1번과 함께 뛰게 되네요. 시즌 동안의 부담이 크게 줄어들 것은 확실하고, 클러치에서 이 뛰어난 슬래셔 두 명이 어떤 시너지를 보여줄지 크게 기대가 됩니다. AD뿐만 아니라 르브론이 롤맨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