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단이 지금 맨유 가지고 결과를 낼 수 있을지는 솔직히 모르겠네요
지단 1기 시절에는 BBC 라인과 크카모 라인의 전성기+마르바할과 라모스의 전성기 등 핵심 선수들의 기량이 압도적으로 우수했던 점도 있고, 이스코라든가, 아센시오라든가, 모라타 같은 준주전급 선수들의 기량도 당시에는 출중했던 점도 있었기 때문에 선수빨 소리 듣기는 했어도, 지단이 저런 선수들의 능력을 극대화시켜주는 능력이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팀적으로나, 지단 개인에게나 매우 잘 맞았다고 봅니다.
2기 시절은 크카모가 서서히 하락세였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던 점+마르셀루가 훅 갔지만, 망디가 이를 어느 정도 대신했고, 카르바할과 라모스, 바란이 건재했죠. 한 마디로 코어 라인이 하락세이기는 했어도 여전히 건재했습니다. CR7이 떠났기는 했지만, CR7이 떠났다고 해서 그걸 보조해주는 기존 코어들까지 떠났던 것은 아니니까요.
사실 지단이 우수한 성과를 냈음에도 평가가 유독 박한 이유는 이런 선수들 가지고 성과를 냈던 게 좋아서 ‘선수빨이다’라는 평가가 따라다녔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아무리 좋은 선수들을 가지고 성과를 못 내는 감독들이 많은데, 선수빨이든, 뭐든 결국 성과를 내는 게 중요하죠. 저는 그런 선수들의 능력을 극대화시켜주는 것이 지단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론이 조금 길었는데, 사실 저는 우리 팀에서 지단이 좋은 성과를 냈던 이유가 압도적인 중원 능력+윙백들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 맨유가 우리 팀만큼 중원이 압도적인가?하면 사실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윙백들의 기량이 마르바할급이냐면 그것도 아니죠.
지단 체제에서 윙백이 중요한 건 여러 이유가 있는데, 첫 번째는 중원에서의 장악력을 윙백들이 도와줬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 마르셀루나, 페를랑 망디 같은 윙백들은 토니 크로스가 빌드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높은 지점까지 올라와서 상대 선수들의 공격을 보호해줬고, 카르바할은 오른쪽 측면에서의 빈약한 공격력을 상쇄해주면서 페널티 박스 안으로 몰려 있는 선수들에게 크로스를 올리면서 헤더를 가져가는 공격 패턴을 가져갔죠. 그런데 지금 맨유가 그럴만한 능력을 가진 풀백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CR7과 폴 포그바가 있으니 괜찮다, 이럴 수도 있지만, 지단은 벤제마 같은 컴플리트 포워드가 있어야 저 선수들을 잘 살릴 수 있는 감독입니다. 그런데 지금 맨유가 저런 선수들이 있는가? 하면 아니죠. 그리고 맨유 팬들이 원하는 도니 판 더 베이크 중용도 지단이 온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저와 친하게 지내는 아약스 팬 분이 한 분 계시는데, 그 분은 아약스 시절에도 판 더 베이크는 절대로 지단과 잘 맞지 않을 것이라고 상당히 논리적으로 이야기하셨던 데다가, 제가 봐도 그럴 것 같더군요.
아마 벤제마가 지금 맨유 소속이라면, 벤제마는 지금 레알 마드리드에서처럼 득점을 노리기보다는 왼쪽 측면에서 공을 운반해주면서 CR7이 더 많은 득점을 노릴 수 있게 해주는 보조자 역할을, 그리고 폴 포그바는 빠르게 하프라인을 넘어가서 페널티 박스 안에 있는 CR7을 보조해주거나, 2대 1 패스 플레이로 공격을 연결하는 구심점 역할을 할 겁니다. 그런데 지금 맨유에게서는 벤제마처럼 포그바의 2대 1 패스 플레이를 완벽하게 해줄 수 있는 보조자가 없죠.
덧붙여서 지단의 가장 큰 약점은 쓸 선수들은 주구장창 쓰는데, 안 쓰는 선수들은 절대로 안 쓴다는 것입니다. 지단하면 관리 잘한다, 로테이션 잘한다 이런 평가가 많은데, 정작 뜯어 보면 상당히 실망스러운 편. 관리에 가까운 감독은 맞으나, 로테이션이 유연한 로테이션과는 거리가 멉니다. A팀, B팀에 가까운, 쉽게 표현하자면, 알렉스 퍼거슨 감독과 같은 유연한 로테이션보다는 라파엘 베니테스 감독처럼 기계적 로테이션 시스템 신봉자에 더 가깝습니다.
2016/2017시즌에 이스코랑 알바로 모라타가 벤치에서 “나는 그럼 에피타이저인가?” “그럼 나는 디저트겠네!”라고 조크했던 장면이 이걸 잘 보여줬던 사례고요. 지단은 “유쾌한 조크였다”고 했지만, 그만큼 선수들이 자기들이 A팀이다, B팀이다 라는 걸 매우 잘 알게 해주는 감독입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선수들이 경쟁심리를 잃어버려서 떠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세바요스 같은 경우 지단이 떠났을 때 대놓고 디스했을 정도였고요.
그만큼 선수들에게 요구하는 기준도 상당히 높은 편. 물론, 맨유에서 달라질 가능성도 있으나, 레알 마드리드에서처럼 높은 기준을 요구한다면, 혹은 레알 마드리드 시절처럼 쓸놈쓸, 안 쓸 놈 안 쓸 성향을 계속 유지한다면, 많이 힘들 겁니다.
당장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교체 카드가 70~75분 사이에 루카스 바스케스나 마르코 아센시오나, 비니시우스 주니오르 넣고, 80~85분 사이에 두 번째 교체 카드를 비슷하게 가져 갔습니다. 세 번째 교체 카드는 안 쓴 적이 더 많았고요.
이런 패턴의 교체가 3년, 아니 5년 가까이 계속 되다 보니까 상대 팀들이 맞춤 대응 전술을 고스란히 가지고 나왔음에도 이걸 극복할 만한 전술적 시도 자체가 거의 없었던 감독입니다. 라리가에서는 아무래도 레알 마드리드 선수단이 그래도 다른 팀들보다 압도적으로 강했기 때문에 이런 카드가 먹혔지만, 맨유에서 이런 패턴을 계속 유지한다면 상당히 힘들 거예요.
물론, 많은 사람이 얘기하듯이, 지단은 결과로 말하는 감독입니다. 그리고 위기 상황에 몰리면, ‘위기 탈출 넘버1 감독’ 소리 들었을 만큼 좋았고요. 이상하게 강팀들이나, 큰 대회 나가면 평소 단점으로 지적받았던 저런 부분들에서 마치 신 들린 것마냥 과감하기 그지없죠. (평소에도 저랬으면ㅠㅠ)
다만, 이 팀에서 했던 축구를 맨유에서도 계속 한다면, 이 팀에서 욕 먹었던 것처럼 비슷하게 욕 먹을 수 있습니다. 사실 지단 축구가 결과가 좋아서 그렇지, 경기 자체는 아마 많은 분이 공감하시겠지만, 재미는 없었죠. 특히, 중원과 윙백들을 중용하다 보니까 나중에는 다른 팀들과 달리 측면 싸움에서 밀리거나, 중원에서 공이 한 번 순환한 이후에 공격을 진행했던 감독이었기 때문에 측면 활용이 많이 아쉬웠고요. 경기가 정말 재미없는 감독이라서 맨유 팬들이 보다가 졸릴 수 있습니다. 실제로 지단 1기나, 2기 시절에 축구가 재밌었던 적보다 재미없어서 졸다가 골 넣는 장면에서 깼던 적이 더 많았고요. (시즌 중반에 부임했던 2015/2016시즌 초반과 2016/2017시즌 B팀 선수들이 나왔을 때는 재밌었습니다. 오히려 B팀 선수들이 A팀 선수들 아닌가 싶을 정도로 경기를 재밌게 잘 했어요)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 부임 전만 해도 이 팀 약점이 ‘측면 공격이 약하다’였는데, 똑같은 선수들 가진 안첼로티 감독 부임 이후 측면에서 레알 마드리드가 상대 팀들 괴롭히는 것만 봐도 지단의 측면 활용에 대해서 많이 아쉬운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전술적으로 유연하다, 이런 평가가 있는데, 이게 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큰 경기나, 큰 대회 한정으로는 맞는 말이기는 하나, 평소에는 속절 없이 당했던 감독에 몰빵 크로스 전술 성향이 매우 강한 감독입니다. 그 몰빵 크로스 전술 때문에 레알 마드리드 팬들 사이에서도 지단의 전술에 대해서는 평가가 상당히 갈리는 편. 전술적으로 유연하기보다는 그 상황에 맞게 대처하는 감독에 더 가깝지 않을까 싶습니다.
무엇보다 지단이 언론한테 지쳤다고 2기 사임한 이유를 공개적으로 밝혔는데, 솔직히 지단의 저 말 보고 저는 의아했네요. 애초에 요즘 언론들 어느 나라 가든 물어뜯기 심합니다. 제가 전직 축구 기자라서 기자 시절 에스파냐랑 영국 등 별별 언론 기사 다 봤는데, 요즘은 어느 팀이든 조금만 못하면 여론 엄청 안 좋습니다.
냄비 성향이 매우 강해진 것은 비단 에스파냐뿐만이 아니라 영국도 마찬가지. 그래도 에스파냐 언론들은 선수들 사생활 가지고는 터치가 비교적 적은 편에 속한데, 영국 언론 얘들은 진짜 가쉽 거리 만드는 것에 도가 튼 지라 지단이 오히려 더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지단은 아무래도 자기가 선수 시절 뛰었을 때 언론을 생각하는 것 같은데, 요즘 언론들은 유튜브 같은 렉카들과도 경쟁해야만 하는 지라 어떻게든 조회수를 뽑아내야만 해서 물어뜯기가 더 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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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유 팬 입장에서 지단을 원하는 이유는
1. 챔스 3연패의 빛나는 위엄
2. 포그바 컨트롤
3. 어찌됐든 솔샤르보단 낫겠지
이 정도였는데 마드리드 팬 입장에선 저런 단점이 보였군요. 묘하게 모반무솔이 겹쳐 보이네요(특히 반무)
그런데 지적하신 지단의 전술적인 부분(윙백과 중원의 중요성)은 변화의 여지가 없을까요? '지단의 전술은 윙백과 중원이 중요하다'가 아닌 '레알이 중원과 윙백이 강하기 때문에 그런 전술을 짜왔다'라고 볼 수는 없는지 궁금합니다. 선수단이 다르면 다른 전술을 짜올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거부하기엔 지단의 이름값이 너무 빛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