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케로 그렇게 쓰는 거 아닌데...
프리시즌이 드디어 드디어 드디어 개막했습니다. 말 그대로 프리시즌이어서 한 경기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오프시즌 동안 선수들의 습관이 얼마나 개선되었는지 그리고 팀이 추구하는 전략이 어떤지 개략적으로 엿볼 수 있는 기회임은 분명했습니다.
올랜도 매직의 자말 모슬리 감독은 트레이닝 캠프를 통해 빅 라인업에 대해서 이야기해왔고, 선수들도 관련해서 인터뷰를 해왔습니다. 감독이나 선수들은 프런트코트 선수들이 다재다능하다고 포장하겠지만, 빅 라인업 실험을 해보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프런트코트 대비 백코트의 전력이 형편없이 열세이기 때문입니다.
프란츠 바그너를 2번으로, 파올로 밴케로를 3번으로 쓰는 빅 라인업은 그나마 바그너와 밴케로가 공격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을 선수들이기 때문에 말이라도 꺼낸다고 봅니다. 안 그래도 열악한 백코트 전력에서 마켈 펄츠와 개리 해리스까지 부상으로 이탈한 영향도 적지 않을 겁니다.
어제 경기의 문제점은 빅 라인업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중에 팀 오펜스의 조립 역할을 맡아줄 수 있는 두 선수가 모두 결장하는 것에서 비롯됐습니다. 펄츠는 부상으로, 바그너는 유로 바스켓 참여로 인한 휴식으로 결장했었습니다.
콜 앤서니는 공격을 조립하는 유형의 가드가 아니고, 제일런 석스는 팀 오펜스를 지휘하기에는 기량 미달이며, 밴케로나 웬델 카터 주니어는 메인 퍼실리에이터들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웬카주를 제외하면 어느 정도 공을 요구하는 데다가, 공이 없는 상황에서는 움직임이 적은 선수들입니다. 볼러와 스크리너를 제외하면 나머지 세 선수들은 멀뚱멀뚱 서있었고, 스크린마저 없을 때는 넷이서 가만히 볼러만 보는 장면들이 이어졌습니다.
그렇다고 개인 공격력으로 상대 수비를 뭉갤 정도의 선수들은 또 아니니, 공간을 스스로 좁혀 자력으로 공격을 어렵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런 구도에서 모슬리 감독은 밴케로에게 탑에서부터 공을 쥐어주며 픽앤롤을 시켰고, 밴케로는 밴케로대로 숙련도가 떨어지니 나 한번 너 한번 컨테스트를 달고 풀업점퍼만 주야장천 던지는 극악의 장면들을 난립시켰습니다.
밴케로는 역할이 익숙하지 않은지 스크린을 받고 거의 곧바로 공을 잡을 때가 많았고, 석스는 볼러의 움직임에 맞추지 못해 늦게 움직이며, 앤서니는 반대쪽 윙에 서있다가 공 오면 던지기 바빴습니다. 밤바는 코너 망부석이었습니다. 이처럼 팀 오펜스가 매우 정적이었고 그래서 답답했으며 점수를 얻지 못했습니다.
굳이 이런 상황에서 투빅까지 올려둘 이유마저 없었습니다. 밤바를 빼고 추마 오케이케이를 넣는 것이 맞았습니다. 아니, 웬카주-밤바의 투빅 라인업은 원래 쓸 필요 자체가 없는데, 밤바 활용을 위해서 고육지책으로 좀 쓰는 느낌이 큽니다.
아무튼, 주전 대결 구간의 고구마 팀 오펜스는 기량의 영역을 떠나서 조합의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오프더볼무브가 활발했던 벤치 선수들은 마땅한 메인 볼핸들러 없이도 팀 오펜스를 유기적으로 진행했기 때문입니다.
모 바그너의 스크린과 탑 리딩을 중심으로 오케이케이와 테렌스 로스가 활발하게 움직여주고, 이에 RJ 햄튼도 무리하지 않고 보조를 맞춰주니 결과를 떠나서 오펜스가 예쁘게 전개됐습니다. 그리고 흐름도 만들어져서 벤치 대결 구간에서 점수를 버는 모양새였습니다.
로스를 제외하면 특출한 공격 역량을 갖춘 선수가 없음에도 같은 팀에서 오펜스 전개가 차이가 크다는 것은 역량보다는 조합의 문제에 가깝다고 봅니다.
다행히 모슬리 감독은 후반을 시작하면서 웬카주에게 엘보우 위치를 맡기거나 밴케로를 스크리너로 활용하는 장면을 늘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늘려갔다는 것은 밴케로가 여전히 픽앤롤 볼핸들러를 수행한 장면도 제법 되었다는 뜻이기는 하나, 어쨌든 전반의 문제점들을 인지하고 개선해보려는 모습이었습니다.
못미덥기는 하나 후반전 들어 석스가 메인 볼핸들러 역할을 맡으면서 공격을 지휘했고, 앤서니가 이를 보조하면서 밴케로를 스크리너로 활용하는 장면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제가 고대하던 밴케로의 숏롤을 몇 번 볼 수 있었고, 확실히 볼핸들러를 맡을 때보다 빠릿빠릿하고 여유로운 모습이었습니다.
빠른 힙턴과 동시에 림으로 들어가며 수비의 혼선을 야기하거나, 숏롤로 공을 받고 위크사이드로 공을 전환하는 패스 등 빅맨스러운 역할이 자기에게 맞다는 것을 잘 보여줬었습니다. 밴케로는 이렇게 써야 합니다. 밴케로가 다재다능하기는 하나 그렇다고 퍼리미터에서부터 공을 쥐게할 것이 아니라, 안쪽에서 공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밴케로가 탑에서 볼핸들러를 수행할 때는 빨리 공을 잡는 것에 반해, 스크리너로서는 스위치된 선수를 골밑까지 끌고가면서 수비 시선에 한번 빼앗아주는 장면입니다. 오펜스 리바운드 상황이 나왔다면 밴케로가 공을 잡아 풋백으로 연결했을 가능성도 크고, 위크사이드로 공을 전환하지 않고 로우 포스트업을 주문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현재 가드들이 못미덥기는 하나, 그럼에도 볼핸들러는 가드들에게 맡기는 것이 그나마 주전 선수들을 조합하는 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위 장면처럼 3빅 세워두고 가드들끼리 픽앤롤하다가 사이드 전환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긴 한데, 그래도 밴케로는 공을 일찍 잡고, 앤서니는 공을 받자마자 묻지마 풀업점퍼를 던지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어찌보면 그나마 석스와 콜을 엮는 방법일 수도 있겠습니다.
프란츠 바그너가 다음 경기에 복귀한다면 바그너가 볼핸들러 역할을 많이 수행할 것이고, 자연스레 밴케로도 스크리너로서 역할 비중이 늘어날 겁니다. 두 선수의 콤비 플레이도 좀 나올 겁니다. 또한 바그너가 공을 잡지 않을 때도 오프더볼무브가 적극적인 만큼, 현재의 정적인 오펜스에 기름 역할을 해줄 수도 있겠습니다.
주전 구성이 좋지 못할 때 전방 압박 강도가 높고 갭 디펜스가 뛰어난 멤피스 그리즐리스를 만나 밴케로의 볼핸들러 실험을 해보기에는 좋은 환경이 아니기는 했습니다. 그럼에도 아닌 건 아닙니다. 밴케로는 빅맨입니다.
첫경기는 너무 어지럽고 호흡도 안맞는 모습도 보이면서 제 기대를 처참히 박살내줬는데, 다음경기에선 서로 역할 정리좀 해서 나왔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