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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형님] 이수근의 초딩시절.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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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8 22:5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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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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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7-28 23:42:46

제 아버지의 말씀을 들어보면 (아버지의 경우는 이수근씨보다 훨씬 더 전이긴 했지만) 

아버지가 어릴때 시골 동네에서 전화기나 티비 같은걸 가지고 있는곳이 

드문 케이스였기 때문에 간혹 설치한곳( 혹은 집)에서 사용료 같은걸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흔하지 않았던만큼 당시의 기준으로는 가격대도 꽤 나가는 편이었기 때문에 

그만큼의 본전을 뽑기 위해 사용료를 비싸게 받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주인이 딱히 사용료를 받지 않고 싶어도 받지 않거나 가격대가 저렴하면 

사람들이 너도 나도 시도때도 없이 이용을 하려해서 그런것도 있었을거라고 하셨고요  

정말 급한 경우는 그렇게 비싸게 주고라도 사용을 해야했을거라고 하셨습니다 

 

제 아버지의 경우는 할아버님이 정미소를 운영하셔서 아주 어릴때부터 전화기가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거저 이용하려고 했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었습니다 

전화는 어찌어찌 있었지만 티비까지는 꿈도 못꾸던 시절이라 

멀리 잘사는 집까지 원정 가서 한 프로정도 보고 오시고는 했다고 하시네요   

 

근데 이수근씨의 경우는 시골이라고는 해도 시대적으로 약간 애매하기는 하네요

시기상으로만 보면 딱 논란이 생길만한 시기인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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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7-29 00:34:33

제 어머니가 충남시골 출신이어서,

어릴 때 방학 때마다 2주 정도씩 외가집에서 자고 왔는데요..

제가 1986년에 초1이니..대충 

1980년대 후반의 농촌은 좀 안다고 할 수도 있을 텐데...

 

1.짚신은 없었습니다..

  노인들은 대부분 하얀 고무신을 신었고..

  젊은 사람들도 고무신을 신기는 했는데..

  메이커는 아니지만,어찌 운동화 신고 있었음..

 

2.전화기는 집마다 있었습니다..

  자석식 아니고,다이얼 식...

 

3.동네가 완전은 아니지만 살짝 저희 외가의 집성촌같았고,

  주민의 30%정도가 제 외가 친척들...

 

  제 또래의 6촌 형제들이 좀 있었는데..

  보자기 쓰는 사람과 

  현대식 가방 쓰는 사람이 섞여 있었습니다..

  

4.가마솥이 있었습니다..

  정말 장작으로 불을 지펴서,

  큰 솥에 밥과 국을 해먹었습니다..

  무지 맛있었음...

 

5.화장실은 대부분의 집이

 푸세식이었습니다..

 나무 위에 양발 올리고,

 그 틈으로 소변,대변 보는...

 휴지가 잘 없었고,

 휴지 있을 자리에 신문지가 있었던...

 

6.TV가 있기는 했는데, 

  리모콘은 생각도 못하고..

  버튼 식도 잘 없었어요..

  전원,채널,볼륨 다 다이얼 식...

  (이건 저희 가족 서울 집도 마찬가지..)

  

  안테나가 안 좋아선지..

  나오는 날은 잘 나오는데..갑자기 안 나오기도 하고..

  너무 안 나와서,결국 포기했던 기간도 있는데..

  외가집 있는 동안엔 매체와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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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9 01:21:19

읍니다 로 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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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9 11:23:21

4번이 인상깊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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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9 01:30:33

이건 지역마다 다 달랐던거 같아요.

마을마다 사정이 달라서 좀 사는 동네와 그렇지 못한 동네의 차이가 심했습니다.

자주 놀러가던 고모댁인 괴산과 외갓집인 음성에 대한 기억만 놓고보면

제가 서장훈, 이수근씨보단 연배가 좀 낮아도 분명히 실제 저 전화기를 사용하던

고모님 동네에 대한 기억이 있습니다.

게다가 외갓집은 그때도 머슴이 있었기 때문에!!

(티비에 나오던 그런 머슴과는 조금 다릅니다.) 

실제 지방이라도 그나마 도시쪽인 청주에 살던 제게는 매우 이질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어요.

게다가 전 서울에 살다가 청주로 이사를 온거라 더 그렇게 느낀건지도...

짚신은 모르겠고 책보도 분명 제 고종사촌형은 메고 다녔던걸로 압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고모댁은 꽤 여유가 있던 집이었지만

고모부가 당시에 국민학교 다닐땐 그런건 안 사줬다고 하시더라고요.

지금처럼 부모가 아이에게 관심을 기울이던 시절도 아니고 

세째 아들이라 그런지 딱히 교육에 신경쓰는 분위기도 아니였는가 봐요.

다들 어려운데다 학교 끝나면 집안일을 해야 하던 시기라

없다고 눈치 볼 상황도 아니었기도 하고

중학교 올라가서는 그래도 쌕(?)을 메고 다녔다 하시네요.

제가 저 장면 볼때 좀 놀란건 오히려 서장훈씨가 말도 안된다고 확신하는게 어색하더라고요.

진짜 서울사람이라 지방에 대해 전혀 모르는건가 싶기도 하고 좀 놀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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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7-29 18:28:27

저래보여도 서장훈은 소위 표현하는 모태 강남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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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7-29 05:47:34

제가 서장훈과 동갑인데, 서울 살았어서 그런지 이수근 얘기는 믿어지지않아요. ^^
85년이면 까발로, 타이거 운동화 신던 시기인 것 같은데... 매월 소년중앙 사서 읽고.

1
2020-07-29 06:43:29

서장훈은 70년대에도 아파트에
살았다고 하니 더 공감을
못하는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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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9 06:33:32
도시에서 살았던 분들과 시골에서 살았던 분들은 정말 체감이 다를겁니다
전 80년대는 아니고 90년대 국민학교로 입학해서 초등학교로 졸업했고
학습지가 안들어오는 시골에 살았었는데
 
1. 전화기는 다이얼...무선 전화기 있는 집은 동네에서 손에 꼽을 정도였고요
2. 티비는 버튼식이 아닌 돌려서 쓰는 다이얼 있었고요
3. 배달이 안되는 지역이어서 짜장면은 동네 간판도 없는 아저씨네가 해주시는 거 먹고
   피자랑 햄버거는 중학교 들어가서 처음 먹어봤고요
4. 겨울이면 집집마다 그날 썼던 연탄 길가에 깨부셨었고 비료포대 가지고 눈썰매 탔습니다
 
그래서 대학교 처음 갔을 때 동기들이 다 도시에서 살다 왔고 저랑 다른 동기 한 명만 시골에서 왔는데
저랑 그 친구가 하는 얘기를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2
2020-07-29 09:59:06

비료포대 눈썰매
진짜 재밌었습니다.

겨울에 외갓집 내려갈 때는
6촌 형들하고 그거 타는 기대로
맘이 설레였을 정도..

1
2020-07-29 12:15:57

경력이 쌓인 친구들은 비료포대를
반으로 접어서 서서 타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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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7-29 09:15:00

음 전 안내양 있던 시절에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그때 도시라고 집집마다 전화기가 흔하지 않았고(물론 다이얼 돌리는)80년대 넘어와서 칼라TV가 집집마다 조금씩 배급되던 시기 입니다.
전화 교환원 애기는 저보다 조금 더 위세대분들은 경험 했다고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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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9 10:13:57

어린 시절 합천 친가 생각하면 저럴만도 할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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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7-29 11:25:38

의외로 다이얼식 TV는 꽤 있었죠. 국민->초등학생이던 90년대에 저희 집은 거실에 버튼식, 안방에 세컨용으로 다이얼식 TV가 있었습니다. 가요톱텐이나 판관포청천, 심지어 꼬비꼬비나 스파이더맨 TV판 만화까지 봤던 기억이 남은 거 보면 생각보다 오래 썼던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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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9 11:27:47

브랜드는 지금은 잊혀진
Gold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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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9 17:15:15

이수근씨 고향이 양평군 개군면(양평하고 여주사이 지역)으로 알고 있는데,

충분히 저 시대에 그럴수도 있는 지역인게... 우리가 양평은 나름 수도권이고, 용문산 관광지도 있고,

지금은 여행장소로 유명해 져서 깡촌이 아닐거라 생각하는데 정확히는 양평서부와, 양평읍, 용문면쪽이

그렇고 양평 동부랑 남부는 2~3년전에 방문해 봤지만 건물과 도로만 현대식 재료로 바뀌었지

지금도 전형적인 농촌, 산촌이거든요. 개군면은 면 소재지 지역빼면 거의 논, 밭, 산이 다일정도니...

이수근씨 어릴때면 우리가 생각하는 중소도시의 80년대 와는 10여년 이상 실생활의 갭이 있는게 맞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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