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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을 타고 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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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3-06-23 21:23:46

https://mania.kr/g2/bbs/board.php?bo_table=freetalk&wr_id=5150443&series_page=5

1년 전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었죠.

 

그땐 그저 책 내용을 읽고 감상평을 적었지만, 정작 제가 무엇을 가지고 태어났는지는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최근에 일련의 고민들 속에서 제가 타고난 것은 무엇인가 시간을 들여 생각해봤습니다. 아래는 그 생각에 과정들을 풀어놓았고요. 사실 별 말을 하고 싶다기 보다는 그냥 일기 느낌이네요.


가장 처음 생각난 건 언어지능이었습니다. 부모님이 두 분 다 교육자시고, 각자 확연하게 다른 분야로 발달된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아버지는 논리적 추론이 뛰어나시고, 한 자리에 앉아서 몰두하시는걸 굉장히 잘하십니다. 적성에 맞으시는건지는 몰라도, 결국 이공계열 쪽 교육자가 되셨죠. 어머니는 아버지와는 반대로, 폭넓은 지식에 뛰어난 기억력과 추진력으로 지금은 언어+국제 계열 쪽 교육자십니다. 제가 물려받은건 어머니쪽이고요. 

 

어렸을 때부터 남들보다 말을 잘하고, 글을 잘 썼다는 것이 기억납니다. 더불어 언어습득이 빠른 편이라 관련 학원 하나 안 다니고 한국어와 영어가 동일한 수준까지 올라왔죠. 솔직히 지금도 일본어에 크게 노력을 안 들이고 일상대화는 부족하지만 가능한 수준입니다. 수업 대충 듣는거치고는 효율이 꽤나 괜찮은거죠. 다만 이걸로 살면서 한 번도 으스대지 않았던 이유는, 저를 포함한 가족 구성원 (심지어 삼촌까지) 전원이 최소 2개국어가 자유롭기 때문에 크게 빛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 생각난건 적응력입니다. 자주 이사를 다니거나 한건 아니지만,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을 못 해서 힘들었던 기억은 없습니다. 새로운 환경에 노출됐을 때, 제 나름대로 생활패턴을 정립하려는 습관이 어렸을 때부터 있었던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떠올린건 사교성, 이거 하나만큼은 지금도 나름 자부심이 있는 부분입니다. 어디 가서 한 번도 못 어울린 적 없었고, 별다른 노력없이 제 성격을 드러내면 처음 보는 사람도, 10년지기도 다 잘 어울릴 수 있었죠. "영업 쪽으로 가면 잘하겠"라고 들은적도 많고요. 초등학교 때부터 담임선생님들이 하나같이 사교성이 좋다고 해주신거보면 아마 실제로 사교적이긴 한가봅니다. 주변에 사람이 자주 모이는 성향이라고 말도 많이 들었고, 저도 실제로 그렇다고 생각해요.

 

이 얘기를 어머니께 했더니, "인복을 타고났나 보다~" 하셨습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진짜로 그런 것 같았어요. 최근에 내가 가진 능력에 대해 생각을 했는데, 제 힘으로 이뤄낸 것은 거의 없더군요. 용광로에 불 키는 것부터 철을 제련하는 과정까지 다 남의 도움을 받았으면서 마치 내가 제조한 칼인 것마냥 허리 춤에 차고 있었던거죠.

 

그러다가 문득, 예전부터 남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했던게 기억났어요. 어색하지 않게, 공손하고 예의바르게 부탁하면 거절 당했던 적 없고, 주변에는 항상 제게 도움을 줄 사람이 있었죠. 지금까지 만나서 관계를 맺은 사람 한 명 한 명의 존재 자체가 제 자산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소중하더라고요. 살아오면서 이 사람들 없었으면 내가 뭘 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네요. 

 

제가 타고난 건 남들보다 언어를 조금 더 빨리 습득하는 것도 아니고, 큰 노력 없이도 사람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성격도 아니고, 언제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친구들과 존경할만한 부모님과 선생님들, 그리고 주변 어른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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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3-06-23 21:39:48

와... 언어능력 하나만으로도 부럽습니다. 거기에 사교성 까지...
비루한 언어능력에 상황에 따라 격하게 떨어지는 참을성과 눈씻고 찾아볼 수 없는 사교성.
하지만 전 일 복을 타고 난 것 같습니다. 어디가나 터지네요. 근데 뒤에서 하고 KPI로는 티도 안나는 없이 무한 반복하는 거라 제가 떠나면서 알아채는 것들이죠. 그냥 그러려니 삽니다.

2023-06-23 22:24:56

다른 것보다 사교성 좋은건 공사를 통틀어서 제일 큰 장점 아닐까요?

혼자 살수 없는 세상이다보니 사교성이 좋으면 절대 좋으면 좋았지 나쁠수는 없다고 생각해서요 


2023-06-23 22:40:38

남들이 기꺼이 도울 수 있는 분이라니 정말 멋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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