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최고의 선택
그만큼 선택이라는 것이 삶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하고, 어쩌면 전부일 수도 있는 중대한 무언가인데, 오늘은 제가 지금껏 제가 한 선택 중 최고의 선택에 대해 한 번 적어볼까 합니다. 자주적인 선택을 많이 한 것도, 할 수 있는 나이도 아니지만, 이것만큼은 제가 내린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서요.
그 선택은 바로 입대입니다.
국방의 의무가 왜 선택이었는지 자세하게 설명하자니 설명거리가 별로 없네요. 그냥 시민권이 하나 더 있을 뿐입니다. 부모님은 두 분 다 한국인이시고, 두 분 다 박사과정을 미국에서 밟으시는 중에 제가 태어났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에 이바지 한 점이 단 하나도 없지만, 태어나 보니 시민권이 하나 더 있던거죠. 정부에서 코로나 재난지원금은 꼬박꼬박 주던데 그건 감사하네요
얘는 뭐가 좋다고 입대한다는 선택을 내린건지 이제 설명이 됐으려나요. 어렸을 때 아버지가 "00이는 군대 갈거야?" 물어보면 뭣도 모르고 당연히 간다고 했습니다. 제가 가게 될 때 쯤에는 통일이 될거라는 초딩 특유의 발상도 가지고 있었고요. 문화적 정체성의 혼란이 있었냐고 물으신다면, 단언컨대 한 번도 그런 혼란을 겪지 않았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성격이라 그런건지는 모르겠네요.
이야기가 딴길로 샜네요. 여튼 입대 전날까지 군대를 간다는 제 선택에 후회는 없었습니다. 업무 펑크를 내서 선임에게 혼나는 그 순간에도요. 한국에서 살았으니 군대에 간다는 선택지 외에는 제 머릿속에 없었거든요. 주변에서는 남들은 어떻게든 빼려는거 뭐하러 가냐고 했지만, 전역한 지금은 남들에게 최고의 선택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닙니다. 잃은 것보다 얻은게 굉장히 많거든요.
군대에서 무엇을 얻었을까
전부 서술하기에는 너무 길어질 것 같아 그냥 나열하겠습니다.
1. 내 자신에 대해 더 알게 되었다
평일 기준으로 핸드폰은 3시간가량 사용 가능했습니다. 하루 24시간 중에 취침시간, 일과 시간, 핸드폰 사용하는 시간을 제외해도 시간이 꽤나 많습니다. 그럼 일도 안 하고 잠도 안 자고 폰도 안 하는 시간에는 무엇을 하냐,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그동안 '나'라고 생각했던 모습과, 실제 '나'의 모습이 사뭇 다르더군요. 작은 예시를 들어볼까요?
중학교 2학년 때 음악 수업 과제의 일환으로 어쿠스틱 기타를 시작했습니다. 억지로 시작한 것이었으니 연습은 거의 안 했죠. 그러다가 재미가 붙더니 고등학교 3년 동안은 제법 열심히 쳤습니다. 학교에서 가끔 치면 친구들이 "오~ 좀 치는데?" 해줄 정도로요. 그런데 졸업 후 코로나가 시작되니, 기타를 쳐도 옆에서 좋아해줄 사람이 없어졌습니다. 그러다가 입대를 했고요. 가만 생각해보니 기타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기타 그 자체가 아니라, 옆에서 사람들이 칭찬해주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었더라고요. 그래서 거의 2년 동안 그만뒀습니다.
이렇게 자잘한 생각들이 모이고, 같은 부대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자주 하다보니, 생각의 폭이 넓어졌습니다. 제 자신을 바라보는 건 물론이고,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도 바뀌게 되었고요.
2) 성격 변화
고등학교 선생님을 어쩌다 오랜만에 뵀는데, 많이 능글맞아졌다고 하시더라고요. 이건 저도 느꼈습니다. 전에도 사교적인 편이었는데, 군대 가서 사람들과 더욱 더 많이 얘기하다보니 더해졌습니다. 이젠 가끔 영업직 해보라는 소리도 듣습니다. 사람을 안 만날 수도 없고, 만나서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요. 광대가 된 느낌
그리고 훨씬 적극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어떤 모임에서 누군가 나서야 하거나 의견을 내야 하는 상황이라면, 예전에는 높은 확률로 마지막까지 말을 아꼈을 겁니다. 지금은 웬만하면 적극적으로 나서네요. 이런 상황에서 눈치 보는 것이 답답해졌습니다. 근데 부작용으로 화도 많아진 것 같아요. 감정기복이 심해진 느낌?
3) 인간 관계(처세술)
이건 뭐 전역자라면 다들 비슷하겠지만, 항상 간부와 티격태격대는 것이 일상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인간 관계에서 처신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존중할 사람은 존중하고, 다가오는 사람은 잘 받아주는 그런 능력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은데 다행히 잘 장착된 것 같습니다.
4) 일처리...?
제 보직은 일반 소총수가 아니라, 계원 행정병이었습니다. 그것도 제일 행정병 중에 제일 많이 불려다니는 작전병이었죠. PX병과 작전병 중 고를 기회가 있었는데, 기왕 하는거 내가 조금 더 성장할 수 있는 작전병을 선택했습니다. 당연히 체계적인 업무는 경험해본 적도 없고, 성격도 꼼꼼하지 못한 편이라 초반에는 엄청 털렸습니다. 상급부대에서 전화를 할 때 가끔은 무서워서 안 받을 정도로요. 그런데 다 지나고 보니, 작전병을 한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액셀 기초는 기본적인 전자기기 조치방법부터 재부팅 만세! 계획을 세우고 차분히 접근하는 방법까지 배웠습니다.
덤으로 청소, 요리 같은 생활 부분까지도 군대 덕을 크게 보았다고 생각해요.
5) 다양한 경험
점심시간에 밥 먹다가 신원 미확인자 잡으러 출동하는 것부터, 한미 합동훈련 통역 파견까지, 정말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지나고 보니까 참 다양한 경험을 했었네요. 지금은 재밌는 이야깃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럼 반대로 나는 무엇을 잃었을까?
당연히 시간이죠. 코로나가 한창인 시절이라 손해는 조금 덜 봤지만, 군휴학 18개월, 입대 시기가 꼬여서 한 일반 휴학 6개월, 도합 24개월 즉 20대 초반의 2년을 군대에서 보냈습니다. 당연히 뼈가 아프긴 합니다. 대학교 가서 신나게 놀 줄만 알았는데, 코로나 + 군대라니... 옛날보다 많이 나아졌다지만, 여전히 돈은 얼마 주지도 않으면서 시간까지 가져가니까요. 동기들이 그러더군요, 18개월 동안 알바를 대충 뛰어도 군대 월급보다 많이 받는다고. 그럼 논리적으로 제가 알바를 하는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는게 다음 순서입니다. "군대에 가지 않은 나는 18개월 동안 성실히 알바를 했을까?" 답은 NO입니다. 지금은 그만뒀지만, 아마 공부는 하는 둥 마는 둥 게임만 했겠죠.
같은 시간 동안 자유라는 가면을 쓴 나태에 시달릴 바에는, 차라리 군대를 갔다 오는게 나은 선택이라고 보입니다. 사회에서 자유롭게 1년 반이라는 시간을 보낸다? 하기 나름이지만 그 사이에 자발적으로 성장하는건 굉장히 힘듭니다. 최소한 그 때의 저에게는 힘든 과제였을 거에요. 그리고 어차피 가야하는거, 빨리 가는게 더 낫고요.
부록: 관상은 과학이다
그리고 군대 가서 관상을 믿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외모로 평가하는건 아니지만, 신병이 왔을 때 얼굴을 딱 보면 뭔가 쎄한 느낌이 드는 경우가 있어요. 그리고 대부분 그런 쎄한 느낌은 맞더군요.
"000 상병님!"
"왜 그러누?"
"저번 주에 온 그 쎄한 신병있지 않습니까? 들으셨습니까?"
"엥? 뭔데? 무슨 일이여?"
"군생활 힘들다고 대대장실 바닥에 엎어져서 땡깡 부렸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말했지"
다 쓰고 읽어보니 너무 혼잡하네요 글이. 대충 이런 군생활을 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천성 군인이자 병사들과 애증의 관계를 유지하셨던 저희 행보관님의 명언을 남깁니다.
저는 힘들 때마다 무의식 중에 생각나네요.
"세상에 힘든 일은 없다. 힘들어하는 나만이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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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좋은 글 추천하고 갑니다.
아! 가기전에 봄시리즈 엔딩은 언제 나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