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에 관한 재밌는 사실들
1. 3점슛은 NBA의 아이디어가 아니다.
- 1961년, The American Basketball League (ABL)가 프로페셔널 리그 최초로 3점 슛을 도입했다.
2. NBA 역사상 첫 3점 슛은 래리 버드의 데뷔 경기에서 나왔다.
- 1979년 10월 12일, 보스턴 셀틱스와 휴스턴 로켓츠의 경기였다. 래리 버드의 NBA 데뷔 경기이기도 했던 이 날, 팀 동료 Chris Ford가 NBA 역사상 첫 3점 슛을 성공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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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FIBA 출범 당시, 미국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리고 FIBA는 국제 핸드볼 연맹을 겸했다.
- 농구는 미국에서 개발됐지만, 미국은 FIBA 출범국이 아니다. FIBA는 1932년 6월 18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창설됐고, 아르헨티나, 체코슬로바키아, 그리스, 이탈리아, 라트비아, 포르투갈, 루마니아, 그리고 스위스, 이렇게 8개국이 모여 출범했다.
- 또, FIBA는 International Amateur Handball Federation (IAHF), 즉 '국제 아마추어 핸드볼 연맹'의 산하 기관이었다. '손으로 공을 다루는 스포츠'였기 때문에 그랬다.
4. 농구가 올림픽 종목으로 처음 채택된 것은 1936년 여름 올림픽 때였다.
- 야외에서 펼쳐졌다. 테니스 코트를 개조한 경기장에서.
5. 농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중 키가 160cm인 이가 있다.
- 1926년에 할렘 글로브트로터라는 구단을 창설했던 Abe Saperstein이 그 주인공이다. 남성 헌액자들 중에선 가장 작다.
6. 정규 시즌 경기에서 한 경기에 가장 많은 슛을 놓친 선수는 누구일까.
- 필라델피아 워리어스의 포워드였던 Joseph "Jumping Joe" Fulks다. 한 경기에 42개의 필드골을 놓쳤다. 총 55개의 필드골을 시도했으니, 그래도 13개는 넣은 셈이다.
7. 그렇다면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가장 많은 슛을 놓친 선수는 누구일까.
- 이 역시 Joe Fulks. 38개의 슛을 미스했다.
8. 그렉 포포비치 감독은 NBA 최단 시간 퇴장 기록을 갖고 있다.
- 63초만에 퇴장당했다.
9. NBA 역사상 가장 길었던 경기는 78분 6초 동안 진행됐다.
- 1951년 1월 6일에 열린 인디애나폴리스 올림피언스와 로체스터 로열스 간의 경기는 6차 연장까지 가는 혈투 끝에 올림피언스가 75:73(!)으로 승리했다.
10. NBA 우승 반지와 MLB 우승 반지를 모두 갖고 있는 선수가 있다.
- Gene Conley는 셀틱스 소속으로 세 개의 우승 반지를, 밀워키 브레이브스 소속으론 한 개의 월드 시리즈 우승 반지를 갖고 있다. NBA와 월드 시리즈 챔피언쉽을 모두 갖고 있는 유일한 선수다.
11. NBA와 WNBA에서 모두 우승한 감독이 있다.
- Paul Westhead는 LA Lakers와 Phoenix Mercury에서 모두 우승했다.
12. 1966년 전까지는 '지역 출신 인재'가 있었다.
- 구단 연고지에서 반경 50마일 이내 출신인 선수를 지명하면 구단이 가진 1라운드 픽 순위와 상관 없이 선수를 지명할 수 있었다.
13. NBA 경기장 바닥의 목재는 모두 통일되어있다. 한 곳만 빼고.
- 모든 NBA 구장들은 3/4 인치 두께로 가공된 검단풍나무 (학명 Acer saccharum)로 바닥을 만든다. TD Garden만이 유일한 예외 케이스로, 루브라 참나무 (Red Oak / Quercus section Lobate)를 사용한다.
14. NBA 규정집에는 골대 그물에 대한 조항도 있다.
- "모든 네트는 30수에서 120수 사이의 실로 직조되어야 한다."
15. 덴버 너겟츠의 홈구장은 해발 1,600미터 높이에 위치해있다.
- 이와 관련된 연구가 진행됐는데, 너겟츠 뿐만 아니라 덴버 지역의 모든 프로 스포츠 구단들이 이 지리적 특성으로 경기력 면에서 어드밴티지를 얻고 있다고 한다.
16. 동부 선수들이 서부 선수들보다 스트레스를 더 받는다.
- 2017년에 실시한 케이스 스터디 결과, 동부 컨퍼런스 팀들이 서부로 원정을 떠날 때 받는 스트레스가, 서부 컨퍼런스 팀들이 동부 원정을 떠날 때 받는 것보다 큰 것으로 나타났다. 주된 요인은 생체 리듬의 변화로, 지구의 자전 방향을 거스르는 방향으로의 여정이기 때문에 생체 리듬에 더 큰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이것이 선수들 개개인의 정신적 스트레스, 피로도 증가로 나타났다.
17. 17년간의 메디컬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NBA 선수들이 가장 자주 당하는 부상은 발목 인대 부상이었다.
- 하지만 가장 결장을 많이 유발한 부상은 무릎 부상이었다.
18. 역사상 퀸더플-더블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쿼드러플-더블은 네 번 있었다.
- 워리어스 레전드 네이트 써몬드가 최초였다. 1974년, 22-14-13-12 블락으로 리그 역사상 첫 쿼드러플-더블을 기록했다. 다음 두 번은 모두 스퍼스 선수가 차지했는데, 1986년에는 앨빈 로버트슨이 20-11-10-10 스틸로 기록했고, 1994년에는 데이빗 로빈슨이 34점과 10블락을 곁들이며 기록했다. 하킴 올라주원은 역사상 유일한 2회 기록자가 될 수 있었으나, 끝내 어시스트 하나를 채우지 못했다.
19. Twitter 사의 새 모양 로고는 래리 버드에게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 이 파란 새의 정식 명칭은 "Larry T Bird"이다.
- 트위터의 창업자는 보스턴 출신이다. '보스턴'은 '보스턴 셀틱스'를 뜻하고, '보스턴 셀틱스'는 '래리 버드'를 뜻한다. 유년기에 래리 버드의 전성기를 목도하며 자란 그의 우상은 늘 래리 버드였다.
20. 커리의 언더 아머 계약은 한 나이키 직원이 계약 연장 미팅에서 커리를 '스테프'가 아니라 '스테픈'이라 부른 탓에 급물살을 탔다.
- 커리는 나이키가 성의를 보이지 않는다 느꼈고, 언더 아머와 계약했다.
21. 멤피스 그리즐리스는 최초로 "씨-쓰루 샷클락"을 도입했다.
- 골대 뒤에 앉은 팬들도 샷클락을 볼 수 있도록 뒤에서도 보이는 샷 클락 전광판을 최초로 설치했다. 현재는 전 구단이 이 전광판을 사용하고 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한 것인지, FedEx Forum에서는 '씨-쓰루 티켓', '씨-쓰루 나쵸', '씨-쓰루 농구공' 등을 판매하고 있다.
22. 피닉스 선즈는 최소 50시즌 이상을 치른 구단들 중 유일하게 우승을 못해본 구단이다.
23. 역사상 가장 낮은 확률을 뚫고 1픽을 차지한 팀은 1993년의 올랜도 매직이다.
- 직전 시즌에 올랜도 매직은 41-41이라는 나쁘지 않은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지만, 1.52%라는 확률을 뚫고 1순위 픽을 가져갔다. 그 전 시즌 1픽도 매직이 행사했다.
24. NBA 치어리더들의 평균 연봉은 $56,000 정도다.
25. NBA 역대 득점 1위인 카림 압둘-자바의 커리어 통산 3점 슛 성공 갯수는 단 한 개다.
26. NBA 선수들의 60% 가량이 은퇴 후 5년 이내에 파산한다.
27. 키가 7풋이 넘는 미국 청소년들 중 17%가 NBA 선수가 된다.
28. 윌트 체임벌린과 빌 러셀의 라이벌리는 대단했다.
- 1965년, 체임벌린이 NBA 역사상 최초로 연봉 10만 달러를 받는 선수가 되자, 러셀이 자신의 연봉을 10만 1 달러로 올려달라고 구단에 요청했다. 그리고 받아들여졌다.
29. 코비가 처음 계약서에 싸인할 때, 연령 제한 때문에 아버지가 대리 서명했다.
30. NBA 역사상 가장 키가 작았던 먹시 보그스는 총 39개의 블락샷을 기록했다.
- 7푸터인 패트릭 유잉도 그에게 블락 당한 적이 있다.
31. 아마레 스타더마이어는 유대인이었다.
- 그래서 경기에 들어가면 히브리어를 중얼거렸고, 코트 위의 누구도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32. 샤크는 하킴 올라주원에게 서면으로 1:1 대결을 신청했다.
- 22세의 샤크는 올랜도 매직을 1995년 파이널 무대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상대 팀 센터였던 하킴 올라주원은 매 경기 30 득점 이상을 퍼부으며 모든 면에서 그를 압도했다. 시리즈는 스윕으로 끝났고, 화를 삭이지 못한 샤크는 올라주원에게 1:1로 붙자며 서신을 보냈다.
"하킴, 시리즈는 인정하지, 하지만 우리 둘 사이엔 아직 겨뤄볼 게 남았어. 넌 팀 경기 땐 꽤 잘해, 하지만 팀 없이 1:1로 붙어보자고."
후에 Taco Bell이 후원사로 붙어 100만 달러의 상금을 내건 'One-on-One Challenge'를 기획했다. 날짜가 잡혔고, TV 광고까지 전파를 탔지만, 결국 무산됐다.
33. 역대 최악의 드래프트는 2000년 드래프트다.
- 60명의 드래프티들 중 단 9명의 드래프티만이 커리어 평균 10 득점을 넘겼다.
34. 마누트 볼의 통산 득점보다 통산 블락이 더 많다.
35. NBA 역사상 토론토 랩터스의 2019년 우승 반지가 가장 크고 비싸다.
- 주장인 카일 라우리가 사재를 털어 특수 제작해서 그렇다.
36. 초기엔 드리블이 허용되지 않았다.
- 선수들이 공을 들고 이동하고 싶으면 공을 가고 싶은 곳으로 던져야 했다. 1897년 예일 대학 농구팀이 최초로 드리블을 시도했고, 이후 4년이 지나 드리블이 허용됐다. 하지만 한 포제션에 한 선수만 드리블이 가능했다.
37. 더 많은 선수들이 코트에 있을 수 있었다.
- 네이스미스 박사는 최대한 많은 이들이 추운 겨울에도 스포츠를 즐겼으면 했다. 하여, 누구든지 코트 위에 들어와서 플레이 할 수 있도록 했다. 최초의 정규 경기에선 각 팀 9명씩, 총 18명이 코트 위에 있었다.
38. 심판들은 축구 심판들처럼 시계를 차고 있었다.
- 심판들의 주 임무가 파울 콜이 아니라 경기 시간 준수였기 때문이다.
39. 마이애미 히트는 서부 컨퍼런스 소속이었다.
- 마이애미 히트는 사우스이스트 디비젼인 지금과는 달리 미드웨스트 디비젼 소속이었다. 1987년, NBA가 리그를 27개 구단 체재로 확장하면서 샬럿과 미네소타, 마이애미가 새 프랜차이즈로 합류했다. 마이애미는 1989-90 시즌에 애틀랜틱 디비젼으로, 그 후에 사우스이스트 디비젼으로 편입됐다.
40. 드와잇 하워드가 벤 시몬스보다 더 나은 3점 슈터다.
- 드와잇 하워드는 통산 16개의 3점 슛을 시도하여 17.4%의 확률을 기록하고 있다. 벤 시몬스의 친정팀인 식서스에서 뛸 때는 커리어 하이인 5개의 3점 슛을 성공시켰다. 시몬스의 커리어 전체 3점 슛과 같은 숫자다. 시몬스는 14.7%의 확률을 기록하고 있다.
41. 케빈 듀란트의 3점 슛 커리어 하이 게임보다 드레이먼드 그린의 커리어 하이 게임이 더 높다.
- 그린은 8개, KD는 7개다.
42. 새크라멘토 킹스의 플레이오프 시리즈 승수보다 지금은 사라진 시애틀 슈퍼소닉스의 플레이오프 승수가 더 많다.
- 연고지를 OKC로 옮기기 전, 슈퍼소닉스의 마지막 플레이오프 시리즈 승리는 2005년이었다. 공교롭게도, 상대는 킹스였다. 킹스는 2004년 4월 이후 한 번도 플레이오프 시리즈를 가져간 적이 없다. 슈퍼소닉스가 리그에서 사라진 지는 어언 15년이 다 되어간다.
43. 1979년 이후 서부 컨퍼런스에서 나온 우승팀들은 모두 텍사스 주와 캘리포니아 주 팀들이었다.
- 두 주는 컨퍼런스를 지배해왔다. 레이커스, 스퍼스, 로케츠, 매버릭스, 워리어스가 그들이다. 슈퍼소닉스의 1979년 우승 이후, 두 주 외의 도시에서는 우승 팀을 배출하지 못했다.
44. 잭 라빈은 8년차가 될 때까지 4연승을 해본 적이 없다.
45. 하킴 올라주원은 한 달에 쿼드러플-더블을 두 번 할 뻔 했다.
- 34-10-10-13으로 첫 쿼드러플-더블을 기록한 후에 29-18-10-11을 기록했으나, 후에 어시스트 하나가 취소되었다. NBA 사무국에서 해당 기록을 로켓츠 구단의 '스탯 뻥튀기'로 보고 철저히 들여다 본 탓이다.
46. 말콤 브록던은 '이 달의 루키' 상을 한 번 밖에 수상하지 못했지만 '올해의 루키' 상을 수상했다.
- 36번 픽으로 입성한 그는 10.2-4.2-2.8의 스탯을 남기며 1966년 이후 처음으로 비 1라운드 출신으로 신인상을 수상한 선수가 됐다. 더불어, 그는 NBA 역사상 최초로 이 달의 신인상을 한 번 밖에 수상하지 못했음에도 올해의 루키상을 거머쥐었다. 그는 20.2-7.8을 기록한 조엘 엠비드를 누르고 올해의 루키가 되었다. 엠비드는 31경기 밖에 출장하지 않았다.
47. 드웨인 웨이드의 커리어 통산 50득점 경기보다 코비의 '일주일간' 50득점 경기가 더 많다.
- 웨이드는 열여섯 시즌의 커리어 동안 단 세 번의 50 득점 경기를 펼쳤다. 그러나 2007년, 코비는 일주일동안 4번의 50+ 득점 경기를 펼쳤다. 나머지 한 경기에선 43 득점을 기록했다.
48. 등번호 69번을 달고 뛴 NBA 선수는 아직 아무도 없다.
- 왜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