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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과 장량 중 누가 더 뛰어난 인물이라고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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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27 19:03:14

일단 둘다 레전드급 이죠... 윌트체임벌린이냐 조던이냐 이정도의 1, 2위를 다투는 지략가 들인텐데요

누가더 뛰어난 인물이라고 보시나요?

한신을 천거했고, 유방에게 나라의 큰틀을 마련해주고, 항우를 천도 시키고, 순간순간 번뜩이는 전략으로

천리밖의 승부를 결정지었다고 칭찬받기도 했던 장량

신야성하나 가지고 있던 유비를 촉한을 건국하게 만드는 큰 틀을 짰고, 척박한 촉나라 땅을 토대로 몇번이나

북벌을 행했던 촉한의 자존심이었던 제갈량

누가 더 뛰어난 인물이라고 보시나요?

(P.S/만화책 창천항로에서는 제갈량을 거의 귀신 취급 하던데 그정도로 조조와 접촉했던적이 없었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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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10-05-27 19:07:32

통일을 이룬 책사와 단 한번이라도 북벌을 성공하지 못한 책사는 다르지 않을까요?

WR
2010-05-27 19:10:50

음 그렇겠죠..? 근데 확실히 장량이 유리한 측면도 있지 않았을까요? 일단 유방은 소하, 장량, 한신이 분업적으로

머리 역할을 하면서 장량은 무언가에 집중할수 있는 상황이었고, 제갈량은 촉이라는 척박한 땅을 가지고

황하지역과 중원지역을 갖고 있던 위나라를 상대로 북벌을 벌였고 만만히 싸웠다는게 참 대단해 보여서요..

물론 저도 장량이 한수 위라곤 생각합니다만...방통이 살아서 한신의 역할을 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네요

2010-05-27 19:21:06

뭐 제갈량이 좀 더 불리한 환경이긴 했습니다만.. 장량 또한 촉에서 군사를 길렀죠.

우선 유방과 유선이라는 군주의 차이는 엄청난 넘사벽이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그것도 다 제갈량의 운명이죠. 그리고 한신도 장량이 등용했고 팽월이나 영포를 움직이게 한 것도 장량의 능력이었

으니까요.

그리고 결국 장량은 범증을 넘어섰고, 제갈량은 사마의를 넘어서지 못했으니까요.

2010-05-27 19:09:41

시대적 차이가 있다지만, 장량과 제갈량은 어느 정도 그 갭이 있다고 보네요.
역대급과 당대급의 차이랄까요?

WR
2010-05-27 19:12:22

음 그렇겠죠? 근데 제갈량은 그렇게 뛰어난 인물이었나요? 제가 제갈량을 약간 낮게 평가하는게 아닌지 모르겠는데

사실상 연의에서나오는 제갈량vs사마의의 엄청난 스토리들이나 적벽대전 같은 건 대부분 뻥아닌가요..? 적벽대전은 사실상 주유가 주인공이라고 보고... 사마의와의 대결은 아예 거의 없었고,. 조진등의 인물과 붙었었고... 실제로 제갈량은 군략적으로 뛰어난 사람은 아니라고 그러더군요..? 정치가 주특기라는..

2010-05-27 19:26:46

사마의가 아닌 조진, 장합과 대결한 건 맞는데 그 조진이 소설에 나오는 것 보다 훨씬 대단하고 뛰어난 인물이었습니다. 오히려 사마의는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소설에서 제갈량의 라이벌로 낙점되면서 철벽의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었죠. 오장원의 철벽방어가 있기는 했지만, 제갈량의 수명이 다하는 바람에...

WR
2010-05-27 19:36:50

근데 사실상 제갈량의 북벌은 실패했고.. 또 연의나 이런데서 제갈량을 뛰어난 인물로 포장하기 위해서 써있는 것들이

대부분 거짓이라는게 약간 저는 걸리는 지라... 동남풍을 예측했는지는 잘모르겠지만.. 이런 것도 그렇고

실제로 군략적으로 딱히 몇개 역대급 임팩트를 남긴 전투도 없는것 같고..

2010-05-27 19:44:07

오히려 그런 거짓말 같은 이야기들 때문에 제갈량의 능력이 과소평가 받고 있는게 요즘 추세입니다. 님께서 말씀하신 "제갈량은 군략적으로는 뛰어난 사람은 아닌 것 같다"고 말한게 바로 삼국지를 쓴 진수인데요, 진수도 제갈량의 재상으로서의 면모는 극찬을 했습니다. 삼국지의 전 인물을 통틀어서 진수가 제갈량 보다 확실히 좋은 평가를 내렸다고 할 만한 인물은 조조 한 사람 밖에 없습니다.

2010-05-27 19:49:06
진수가 내린 평의 뉘앙스를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모든 부분에서 칭찬 칭찬 칭찬 칭찬 하다가 그래도 아쉬웠던 점을 굳이 찾아 내자면 군략적인 부분은 그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이런 뉘앙스입니다.
2010-05-27 19:39:34

저역시 군략적으로는 오히려 조조가 더 뛰어나지 않나하고 생각합니다.

연의에서야 제갈량에게 매번 처참하게 패배하지만
사실 왠만한 전투(특히 세력이 달리는전투) 에서 치밀한 전략으로 승리로 이끄는 경우도 많았죠.

뭐 이건 어디까지나 쓰여진 역사를 근거로 하기때문에 실질적인 증거는 없지만요.

WR
2010-05-27 19:41:37

근데 실제로 조조랑 제갈량은 직접적으로 만난 전투가 거의 없지 않나요..?

창천항로라는 조조를 주인공으로 한 만화책에서는 제갈량을 무슨 귀신같은 사람으로 취급해 버리더군요..

현실에 없는 사람으로... 시대적으로 안겹친 면도 있겠습니다만 개인적으로 제갈량은 군략적인 재능은 굉장히 과대평가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방통이 죽은 후에도 유비의 군략가는 제갈량이 아니라 법정이었던 걸로 압니다..

2010-05-27 19:15:02

장량이 제갈량보다 나은점이 2가지가 있는 것 같아요.

1. 중국통일

2. 통일후 현명한 몸처신으로 숙청당하지 않음
- 만약 제갈량이 중국을 통일하였더라도, 내부에 정적을 꽤 많이 만드는 행보를 보였기에
숙청을 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을 듯 함
- 아니 어쩌면, 내부의 힘을 하나로 모으지 못하였기에 통일을 못했을 수 도 있다고 생각됨

WR
2010-05-27 19:17:10

근데 통일후 현명한 몸처신이라는게 딱히 장점이라고 볼순 없지 않을까요?

물론 최후가 좋았다는건 있겠지만 통일후 계속 자신의 능력을 세상에서 쓸수 있음에도 쓰지 않고 하야했다는점이

굳이 장점일까 하는생각이 드는군요.. 한신이 끝이 않좋긴했지만 그렇다고 장량이 잘한거라곤 생각이 안듭니다..

사실상 굳이 정적이 만들어지지 않더라도 통일이 되고나면 1등공신들은 많이 제거되는게 역사의 보편적인 과정아닌가요..?

이순신도 선종이 죽였다는말이 있듯이... 또 유방이 한신을 죽였듯이.. 광종이 공신들을 숙청했듯이

2010-05-27 19:35:04

말씀하신대로 2인자의 보편적 운명이 숙청을 당하는 것 같은데요..

달리 생각해 보면, 1인자를 도와 천하를 통일하는 것 이상으로 어려운게

천하를 통일한 후에도 숙청을 당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이 들어서

저는 이 능력을 아주 크게 생각합니다.

WR
2010-05-27 19:38:28

숙청당하지 않는것을 능력으로 칠려면 계속해서 1인자 밑에서 업무를 담당하고 자신의 재능을 통일후에서 쓸 경우에 능력으로 쳐야 하는게 아닐까요..?

장량같이 권력 다 포기하고 그냥 산속으로 들어가 도사가 되겠다는데 유방이 죽일 명분이 없죠..

이건 잘한행위라고 보긴 좀 그렇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물론 장량이 유방밑에서 끝까지 명군사 역할을 하면서 숙청을 당하지 않았다면 능력으로 저도 치겠습니다만..

2010-05-27 19:56:14

통일이 된 이후에는 군사가 필요없죠..
오히려 1인자의 입장에서는 본인보다 전략적으로 훌륭한 군사는 불안감만 가중되죠..

역대로 통일 후에 재상은 계속 업무를 수행했지만,
대부분의 군사는 숙청을 당했죠..

장량은 군사이기 때문에, 도피가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봅니다.

역사상으로 볼때 강태공처럼 재상과 군사를 동시에 했던 사람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숙청을 당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동일한 시기에 오를 흥하게 했던 오자서와 월을 흥하게 했던 범려..
이 둘을 비교해 보면, 살아남는 능력도 매우 중요한 듯 합니다.

2010-05-27 19:16:48

장량이라고 봅니다.

2010-05-27 19:19:09

소하라는 존재가 공명과 장량의 행보를 가르는 결과를 낳았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커리어 자체가 장량이 더 뛰어난걸 이를 어쩝니까.



개인적으로 중국사상 최고의 사기급 책사는 강태공이라고 생각합니다.

2010-05-27 19:21:02

어차피 정치사에서 능력치라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세계대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을 승리로 이끈 아이젠하워 장군이 세계 최고의 장수는 아니죠... 장수는 스포츠와 달리 절대적인 능력치 평가 자체가 불가능 합니다..


단지 그들이 세운 업적으로 평가할 뿐이죠.


솔직히 제갈량은 삼국지연의를 빼고 중국역사책만으로만 본다면.... 그다지 내세울만한 업적이 없죠. 그냥 중국의 많고 많았던 지방국가의 유능한 재상이었을뿐..... 그 업적에서 장량과 비교될 레벨이 아니요...


뭐 실제 능력(이라는 말도 웃기지만)은 제갈량이 더 위였을지도 모르지만요. (저는 모르겠습니다만)

2010-05-27 19:35:00

글 쓰는 이로는 두 사마(사마상여, 사마천?사마광?)가 뛰어나고, 경세제민에는 제갈량 한 사람이 있을 뿐이란 말을 본 적이 있는데 누가 했던 말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전 그 말을 보고 제갈량이 살던 시절이야 장량, 여상, 관중, 소하 이런 사람들이 명재상의 대명사였겠지만, 그 후세 사람들에게는 제갈량이 명재상의 대명사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WR
2010-05-27 19:40:14

근데 중국사람들도 제갈량을 명재상의 대명사로 보는데는 물론 정사를 바탕으로 한것도 있겠지만 삼국지 연의의 힘이 굉장히 크지 않았을까요..? 물론 정치적으로 뛰어나긴 했습니다만은 제가 보기엔 삼국지 연의가 거의 역사책 이상급의 인기를 끈지라

그 덕분에 제갈량의 능력이 조금 과대평가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지라..(예를들어 웨이드가 조던급의 평가를 받는정도..?)

2010-05-27 19:47:50

제갈공명의 정치능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실제로도 엄청 청렴했고, 진수조차도 정치적인 능력으론 공명을 까지 못했어요.

정치적인 식견으로는 소하와 같은 줄에 있지 않나 생각 될 정도로 제갈공명의 정치적인 능력은 말도 안되는 수준입니다.


군사적인 재능이 논란을 자꾸 낳고 있지 위의 10분의 1도 안되는 국력으로 위를 상대로 공세행동을 취할 수 있었다는건 위와 촉의 치안과 발전 상황을 어느정도 유추할 수 있는 증거가 되죠. 사실상 조조가 원소를 관도에서 제압했을때, 누가 이길지는 이미 결정이 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 시기가 언제냐는게 문제였는데, 제갈량 혼자서 몇십년을 늦춰버린 겁니다.

WR
2010-05-27 19:52:30

사실상 조조가 원소를 관도에서 제압했을때 누가 이길지는 결정난것이나 다름없었듯이

유방이 관중에 들어간 이후에 항우에게 굴복해 파촉으로 쫓겨났을때는 이미 누가 이길지는 결정난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다만 장량은 이 것을 뒤집었고 제갈량은 늦추는것 밖에 못한거죠..

제가 보기엔 오나라라는 변수가 있었던 촉이 오히려 유방보다 유리해 보이는경향이 있습니다.

한신, 소하 이런 사람들을 배제하고 그당시 상황만보면 유방이나 유비나 거기서 거기 였다고 봅니다.

당시 촉땅에서 동진을 시작할 당시 항우와 기타 왕들vs 유방의 싸움이었죠. 기타 왕들을 유방의 편으로 만들게 한것도 장량이었고 항우가 다른곳으로 시선을 돌리게 한것도 장량입니다.

2010-05-27 19:59:29

애초에 장량이 항우를 조종할 수 있었던게, 장량이 유방을 파촉에 놓아두고 나올 수 있어서 입니다.

첫째로, 유방은 자기 영지가 있었고,

둘째로, 유방에게는 소하라는 희대의 재상이 있었습니다.


무릇 전쟁이란 군략가가 전부가 아니죠. 군략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더 중요한게 내정, 즉, 정치입니다.

"범장은 전략을 논하고, 명장은 군수를 논한다"는 말이 있듯이 병참 조달과 보급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인데, 유방은 이 부분에서 어느정도 기반이 잡혀있었죠.


공명의 커리어에서 아까운건, 법정이 일찍 죽었다는 겁니다.

법정이 군략의 부분을 맡아주었다면, 공명이 꾸준히 병참을 지도할 수 있었겠지요.

공명이 오버레이트 되었다는 점엔 동의 합니다.

공명의 군략가적인 측면에 대한 과대포장을 벗기는 것은 좋으나, 그것 때문에 공명이 그린 큰 그림과, 그의 정치적인 식견은 결코 폄하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2010-05-27 20:28:47

그렇게 생각하면 장량이야 말로 딱 정사에 의해서만 평가 받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장량에 대해서 말 할 수 있는 사람 중에 사마천의 유후세가와 고조본기, 항우본기 등을 제대로 읽어 본 사람은 손에 꼽을 거라고 봅니다.

2010-05-27 19:42:59

정확하게 말해서 장량이 군략가로서 내어놓은 계책은 사실 거의 없다시피하다고 봐도 무방할 겁니다.

장량은 합세할때 이미 유방에게는 소하라는 희대의 재상과, 조참이라는 희대의 보좌관, 번쾌라는 명장이 모두 갖추어진 상태에, 유방은 진을 멸망시킨 1등 공신으로 명망도 높았으며, 시작부터 파촉을 가져갔죠.

사면초가라는 정말 항우에게 있어 크리티컬이 되는 계책을 냈긴 했지만, 사실 대부분의 전투수행은 이좌거의 도움을 받은 한신이 대다수 수행했고, 한신이 활개치고 다닌 데에는 팽월과 영포가 항우를 뒤에서 잡고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던 만큼, 그들의 존재 역시 주효했죠.

문제는 그 한신을 장량이 데리고 왔고, 팽월도 장량이 데리고 왔고, 영포를 꾀어내라는 것도 장량이 계획한 것이었으며, 항우 본인이 아닌 장한으로 하여금 유방을 맡게 한 것도 장량이고, 항우로 하여금 제를 공격하여 촉땅에 거주하던 유방이 수월하게 진격하게 만든 것 또한 장량이죠.

소하가 있기에 장량이 유방을 떠나 자유로이 이동하면서 실질적인 밑그림은 다 그리고 다녔습니다.

유방과 유비는 비슷한 위치에서 시작했지만, 장량과 제갈량은 비슷한 위치라고 말하기가 힘듭니다.

말하자면, 장량과는 시작점이 다르다는 이야기인데, 그 파란만장한 유비 인생에서도 첫 손꼽히는 최악의 상황일때 유비군에 합세합니다. 따라서 장량의 합류지점과 제갈량의 합류지점은 같은 위치에 놓을 수 없다는 거죠.

그 상태에서 유비군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가이드를 내고, 기반을 마련하고, 내정을 안정시키고, 북방의 교두보를 확보하며, 이후에 동오에 패배한 국가를 추스리고, 인재를 선발하고, 후방을 든든히 하였으며, 일곱차례의 북진을 가능하게 할 만큼 국력을 크게 성장시켰습니다. 홀로 해냈다고 보기에 믿을 수 없는 말도 안되는 업적이긴 하죠.




..................하지만,

장량은 유방을 인도하여 항우와의 싸움에서 승리했고,

제갈량은 유비를 인도하여 조조와의 싸움에서 승부를 내지 못했으며, 뒤를 이어 유선을 인도할때에도 사마의를 넘어서진 못했습니다.


한 행위가 다르므로 단순비교는 불가능하지만, 누구의 업적이 뛰어났냐 라고 물으면 장량의 손을 들 수 밖에 없겠네요.

다만, 제갈량이 일개 지방의 군주의 보좌역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지모의 대명사로 불리며, 이상적인 군략/정치가로 다섯손가락안에 꼽히는 것을 보면 대단하긴 대단한 것 같습니다.

WR
2010-05-27 19:49:27

근데 사실상 유방역시 최악의 상황중 하나 아니었나요..? 장량이 없었다면 항우가 천도하는 일도 없었을것이고 유방은 계속 구석

에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으며, 영포를 꾀자고 하지 않았다면 계속해서 영포와 항우 연합을 막아야 했고 팽월이 없었다면 항우의

뒤를 치지 못했겠죠

제가 보기엔 장량과 제갈량은 출발점이 다른게 아니라 출발점은 같으나 장량이 자신이 출발점을 제갈량 보다 앞에 다시 출발점을
만든 느낌입니다. 사실상 장량이 처음 유방밑으로 들어갔을때는 유비와 조조만큼 유방과 항우가 세력적으로 차이가 났던걸로 압

니다. 사실상 항우의 신하에 가까운 유방이었구요.

2010-05-27 19:54:12

유방의 시기적 상황으로는 최악이었지만, 유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유방의 시작점은 유비와 동일한 길바닥에서 시작했으나 장량이 들어왔을때는 항우의 지시로 파촉으로 들어가는 무렵이죠. 유방의 입장에선, 승승장구해서 진을 괴멸시켰으나, 항우의 세력에 밀려 파촉으로 쫒겨난 상황이니 최악의 상황이 맞지만, 손바닥 만한 땅한 곳 없이 여기저기 떠밀려다니는 유비에 비할 바가 아니죠.

유비의 장수를 제외한 책사진의 주요한 인재들도 공명 영입 이후에 들어왔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정말 당시 유비의 상황은 유방은 경험해보지도 못한 시기입니다.

그 차이점과, 소하의 유무가 공명과 장량을 가르는 결정적인 라인이라고 봅니다.

제갈공명이 들어왔을때 유비는 그야말로 패배자에 가까운 수준이었습니다. 아예 자기 영지가 없죠.

WR
2010-05-27 20:01:19

글쎄요. 아예 자기영지가 없었던건아니죠. 자기 영지가 아예 0 이었으면 군량도 안모였고 군대도 안모였으니 형주를 먹지도 못했겠죠. 제가보기엔 유방이나 유비나 별차이 없어보입니다. 유비는 오히려 그당시 떠돌때만해도

유표와 손권 장로와 유장 마등 등 어느정도 갈려져 있었고 상호적으로 견제하는 상황이었고 유방은

영지가 있긴했지만 가장 척박한 땅이었고 항우의 군사 범증이 계속 죽이라고 했던 사나이가 공격할거라 생각도 못할만큼 꽤나 척박한 땅에서 시작했습니다. 더군다나 유방은 항우라는 큰 땅을 가진 거대한 나라와 싸운 것이었구요.

실제로 땅이 분할되있긴했지만 대부분 항우를 따르고 있었죠. 이점으로 보면 오히려 유방이 더 불리해 보입니다

2010-05-27 20:10:09

아니죠.

사실상 당시 조조는 그 시절 항우와 거의 동등한 위치에 섰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조조가 원소를 제압하면서 사실상 통일을 이룩했다는건 당대 역사가들도 거의 동의하는건데;;;

차이점이라면 손권의 있고 없음이고, 조조와 적대적으로 대립하고 있던 세력도 마등정도 밖에 없었죠. 한중의 장로나 파촉의 유장은 오히려 조조에 호의적인 태도였습니다.

적벽전 장소와의 설전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며, 조조를 제외하면 가장 거대세력이라 할 수 있는 손권이 흔들릴정도로 말도안되는 국력차였습니다.

유비는 영지가 없던게 맞죠. 신야 자체도 빌려쓰고 있던 형편이고, 더군다나 신야는 매우 작은 성입니다. 후일 발전하긴 했지만 그건 조조 통치 하에서 발전을 한 것이고, 당시로 치면 장사만도 못한 정말 작은 도시이며, 그 또한 자기 것이 아니었죠.

항우의 경우에는 이전 주나라의 방식을 따라 본국과 제후국의 역할로 갈라섰으며, 사실상 패자로 군림했지만 강제력은 없었습니다. 조조의 경우와는 좀 다르죠. 그 때문에 장량이 뒤흔들 수 있었던 것이구요.

유방은 기반이 있었다는 점에선 많이 우월한게 사실이었습니다.

아마 당시 항우와 유방의 관계는 조비와 유선 정도의 차이로 볼 수 있겠군요.


말씀하신대로 이 상태에서 제갈공명은 뒤집지 못했고, 장량은 뒤집었죠.

그래서 제갈공명보다 장량이 뛰어나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제갈공명이 유비를 서촉의 제왕으로 만들어 놓은 공로는 결코 폄하되어서는 안된다는게 제 요지구요.

WR
2010-05-27 20:16:34

아 물론 저도 제갈량을 심하게 폄하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만.. 제 요지는 유방이나 유비의 차이가 심각하진 않았다는거죠.

님이 말씀하신것처럼 결정적인 차이는 오나라의 유무, 마등, 유장, 유표등 꽤나 건재했던, 조조와는 별개의 조조의 영향력을 아예 받지 않는 나라들이 존재했었다는거죠. 실제로

촉나라가 조조를 오나라가 없었다면 견제할수 있었을까요? 오나라와 동맹을 맺은것도 있었고 오나라가 있었고 어느정도 조조와 반대세력이 있었던 상황이 오히려 유방보다 유리한 상황으로 보인다는거죠..

실제로 유방이 처음 동진을 시작할때 유방말고 항우를 반대하는 세력..? 없었죠..

다들 유방이 세력이 커지면서 유방에게 오게 되었고 장량이 설득해서 유방의 세력으로 만든거였죠..

이런 상황으로 볼때 오나라같은 제 3자(제3자라고 하긴 그렇지만) 가 있다는 것만으로 전 오히려 유방보다 유비가 더 유리한 상황이었다고 봅니다. 장량은 제3자가 없이 항우의 나라안에서 외교적인 면을 발휘해 천도를 시키고 전체적인 대응 방법을 짠 반면 제갈량은 밖에서 같이 공공의적 조조를 상대로 손을 잡을 사람들이 있었다는거죠.

또 강제력은 없었지만 사실상 항우 아래의 제후국 같은 형식이었죠. 쉽게 말해서 유방밑에 제의 임시왕이었던 한신과 유방같은 사이였죠. 사실상 항우의 세력이었다고 보는게 맞습니다. 그래서 구강왕 영포 등등도 유방의 세력이 커진 후에 편입되 들어온 것이구요. 유표나 마등, 손권은 아예 조조에게 소속되있지도 않았고 꾸준히 전쟁으로 막을려고 했다는점이 다르죠..

2010-05-27 20:23:01

음?

유방이 동진을 시작할 수 있게 만든 계기를 제공한게 장량입니다.

주변 제후국이 항우로부터 반발을 하게 만들었죠.

삼국지에 빗대어 말하자면 오나라 화(化)시켰다는 겁니다. 결국 유방이 나올 무렵에는 이미 제후국들의 전쟁터가 되어버린 시점이죠. 말하자면, 반발하는 국가가 없었을뿐, 대항할 세력자체는 있었다는거죠.

마치 적벽 전의 오나라같은 분위기였습니다. 이 분위기를 표면으로 끄집어 낸게 장량이죠.

마찬가지로 오나라가 위와 다른 노선을 걷게된 것 또한 제갈공명의 공입니다.

참 재미있는게, 장량과 소하 / 공명은 거둔 업적이 비슷합니다.


어찌되었거나 당시 유비의 상황은 진짜 절망적이었습니다. 대륙의 3인자 정도되는 유표 부인 눈치볼 정도면 말 다했죠. 유방은 어찌되었든 간에 최소한 2인자긴 했거든요.

더군다나 항우의 세력과 정면으로 맞붙을 무렵에는 국력상 앞서고 있었죠. 뭐, 장량느님과 소하느님의 힘이긴 했지만, 상황 자체는 항상 유비보다 좋았습니다.

WR
2010-05-27 20:30:55

그러니까 오나라화(化) 시킨게 장량이라는 것이죠. 오나라라는 나라가 아예 굳건히 있었던 것하고 다른 배경이라는 겁니다. 반발을 하게 하는건 그 사람의 능력의 범주에 들어가야죠...

물론 유비의 상황만 놓고 보면 유방보다 절망적인건 저도 동의합니다.

다만 시대적으로 크게 놓고 보면 유방이 유비보다 그렇다고 희망적인 상황도 아니었다는것이죠.

반발을만든것도 한나라의 작품이죠. 한나라가 처음 동진을 시작했을때? 구강왕영포나 기타등등 모든 제후들이 다 항우 편이었습니다. 한나라가 계속해서 동진에 성공했기 "때문에", 장량이 외교술을 잘 펼쳤기 "때문에" 오나라화 된거죠.

2010-05-27 20:39:37

예, 맞습니다.

상황을 좋게 만든게 장량의 능력이구, 이건 정말 위대한 능력이죠.

다만, 오나라도 적벽을 거치기 전에는 위에 공격적인 형태는 아니었으며, 사실상 마등정도가 중립적인 관계였고, 그나마 원소군과의 교전으로 종요와 마초은 임시적인 동맹군을 형성했던 것을 보면 마냥 대립했다고만 볼 수 없었다는걸 말씀드리고 싶었을 뿐입니다.

따라서 당시 조조는 이미 항우에 비견될 세력이고, 다만 의외로 오나라가 강경하게 부딫혀왔다는 거죠. 마치 항우가 제나라 터는데 의외로 강경해서 본인이 직접 나선 것과 비슷하다 볼 수 있겠습니다.

고로, 적벽전 유표 산하 - 적벽전 손권 산하의 객장시절의 유비는 역사상 유레없는 최악의 상황이었다는 것을 말씀드리는겁니다. 유비가 끝내 지역 패자로 삶을 마감했지만 영웅으로 추앙받는건 괜한 것이 아니죠.

WR
2010-05-27 20:44:03

음.. 제 지식이 정확한지는 모르겠는데 제나라는 역이기가 가서 항복을 받았는데 한신이 무력으로 정복해 버린 나라 아닌가요..? 항우가 자신이 군사를 끌고 제압하러 갔던 나라는 제나라가 아니었던걸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것도 다 유방이 쎄지면서 유방쪽으로 붙으려는 기미가 보였기 때문이죠. 동진 당시부터 항우에게 등을 돌렸던 것이 아니죠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것역시 장량이 만든계책입니다. 장량의 이간책으로 유명한 상황이죠. 덕분에 그 나라는 항우가 직접처들어갔고 그덕분에 시간을 벌은 한나라는 한신의 북벌이 진행될수 있었던 걸로 압니다.

반면 오나라는 유비가 있건 없건 항상 위나라와 대적하는 나라였으며

마등도 역시 항우에 속해있는 나라가 아니었다는것이죠. 동맹단계였지 조조가 오환족 처리 당시 마등을 죽였을정도로 동맹이 굳건하지 않았습니다. 언제든 촉나라와 손잡을 만한 상황이었구요. 결코 제나라완 다른 상황입니다.

2010-05-27 20:53:07

맞을걸요?

제는 항우가 정복하고 난 이후에 다시 항우가 영포에 신경쓰는 사이 한신이 재정복했죠.


그리고 으음....; 연의랑 혼재하시는 것 같은데 손권은 손책 사후에 장굉을 볼모로 위나라에 보낼정도-원소 제압직전에 다시 손권에게로 돌아오지만-로 조조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이건 뭐 마등을 제외한, 다른 제후들의 거의 공통적인 상황이구요.

하지만 적벽전에 조조가 손권을 공격하면서 완전히 적대노선을 걷게 되지요. 그 전에는 사실상 조조에 우호적인 관계라고 보는 게 맞을겁니다.

흔히 손제리라고 표현하는게, 손권은 또 합비로 나아가다 장료에 깨지고 조조에 2차로 깨진 이후에 조조와 유비, 양쪽을 거스르지 않는듯한 모양새를 취했죠.

WR
2010-05-27 20:58:29

우호관계랑 상하관계는 완전 다른 상황입니다. 우호관계란 대등한 위치에서 동맹을 말하는것이죠.

오와 위가 우호적이었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우호적이란 법은 없죠. 잠깐 이나마 오와 위가 동맹을 후에 다시 맺었던것처럼요. 상호적으로 견제하는상황이죠. 제나라와는 다른 상황입니다. 그전에 제나라가 반대를 하긴했지만 그렇다고 독립적인 세력이라고 보긴어렵습니다. 유방처럼요. 항우가 제나라를 정복했었나요..? 흠 ... 제 지식이 너무 짧네요 ㅠ 잘 모르는 부분이 있어서.. 전 연나라 였던 걸로 기억하거든요..? 장량이 연나라 비밀서찰을 이용해서 둘의 관계를 악화시키고 항우가 격노해 직접 다시 정복하려고 본군을 이끌고 간사이 한신이 북벌을 재개 했던걸로 기억하거든요..? 다른 사례인가 이건 ㅠ

WR
2010-05-27 20:59:52

중립국이라고 할지라도 그 존재는 굉장히 큰 힘이 되는거죠. 곧 잠정적인 적임을 암시하는겁니다. 더군다나 그런 난세에서는요. 항우와 같이 유방을 제외한 나머지를 대등한 위치가 아닌 제후국으로써 포괄하고 있던 상황이랑 오나라와 위나라의 상황은 다르다고 봅니다..

2010-05-27 21:05:00

뭐, 명분상은 제후국이니까요. 항우의 초도.

더군다나 유비는 당시에 패배자였던건 부인할 수 없는걸요. 당시 유방을 항우의 부하로 친다면, 유비도 당시 유표의 부하였으니까요. 유비가 성지를 보유한건, 유표의 객장으로서 유표가 준 영지죠. 마치 황조같은 입장이었습니다. 유표를 거역할 입장이 안되죠.

개인적으론 별로 논쟁거리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원 주제에서도 상당히 벗어나기에 더이상의 답글은 안달겠습니다.

하지만, 당시 유방의 상황을 그만큼이나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는 참 신선해서 좋았습니다.


제가 아는 바로는 당시 유방의 상황은 강자아 시절의 주와 비교되지, 신야시절의 유비와 비교되는 경우는 단 한번도 본적이 없어서요. 군웅이 난립하던 황건란의 의용군 시절보다 더 암울한 상황이라고 해석하거든요.

WR
2010-05-27 21:07:12

제 지식이 너무 짧아서 너무 제 식으로 논리를 풀어나가서 엉터리로 보이지 않았을까 걱정했습니다 ㅠㅠ

앞으론 좀더 공부하고 이런 토론을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ㅠ

유방의 상황이 물론 유비보다 좋았다는덴 동의하지만 제 생각엔

견제 할만한 대등한 나라가 없는 상황에서 전력차이 보다는 견제할수 있고 동맹 관계가 형성될수 있는 상황이 전력차이를 극복하기 그나마 더 유리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ㅠ

WR
2010-05-27 20:32:18

상황자체가 항상 유비보다 좋았다라기 보다는

상황을 계속 좋게 만들었다가 정답일듯합니다.

제갈량이 북벌을 성공했다면 상황을 "유방만큼 좋게" 만들었겠죠

2010-05-27 21:06:05

촉땅이 척박하다고 하셧는데 아닙니다. 사마천의 화식열전에 의하면 파와 촉은 땅이 기름지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사천지방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냥 넓은 평야죠. 단지 사방이 막혀있어서 잔도로만 통할 수 있다고 했죠. 진나라도 한나라도 관중지방과 촉지방의 부유함으로 인해 통일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항우라는 큰 땅을 가진 거대한 나라와 싸웠다고 하셨는데, 그 땅이 모두 항우의 영지였던 건 아닙니다. 항우는 팽성 주변의 서초지역을 다스렸고 나머지는 지방 군벌들이 다스렸죠.(물론 항우의 영향력 아래 있었지만요). 위가 강북을 차지하고 앉은 개념과는 조금 다르죠. 유방이 군사를 일으키자마자 영포, 팽월을 비롯한 많은 군벌들이 한으로 귀순하고 제나라, 조나라가 반란을 일으킨 것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WR
2010-05-27 21:10:17

군사를 일으키자마자 영포 팽월이 한으로 귀순했다고 해서 그것이 항우의 영향력이 약했다고 보긴 힘들지 않을까요..? 한나라가 동진이 어느정도 진행이 된후에 팽월이나 영포가 뒤돌아 선걸로 압니다. 또 영포는 항우가 가족을 몰살? 했던걸로 기억하구요. 팽월역시 한나라에서 꾀어낸 인재중 한명이지 자발적으로 귀순한것은 아니죠. 결국 한나라의 능력이라고 봐야죠. 항우의 영지는 아니었지만 사실상 항우가 지배자였고 항우의 신하들이었죠. 동등한 개념이 아니라 일종의 신종관계를 거친 나라들이었죠.

2010-05-27 21:21:34

위의 신하들은 기껏해야 주자사, 주목 정도의 지방 관리였겠지만 항우의 신하들은 세금을 걷을 수 있는 "왕"이었죠. 이 차이는 조금 크다고 봅니다. 더욱이 진이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지 20년도 채 안 된 시점이라, 애초에 백성들 사이에도 항우에 의해 지배를 받는 통일된 나라라는 생각은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WR
2010-05-27 21:25:24

글쎄요. 저는 그렇게 크게 안봅니다. 그건 유방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방역시 한신에게 제왕을 명하고 세금을 걷을수 있는 권리를 줬으며 구강왕 영포나 다른나라 점령당시에도 그 방식을 고수했었죠

항우를 무찌른 다음에 다시 개편한것이구요. 제가 보기엔 항우와 다른 제후들간의 관계나

유방의 한나라가 북벌, 영포, 팽월 항복후 세력 분배나 별 차이 없어보입니다.

2010-05-27 21:36:52

모두 항우의 영향력 있다고 보기에는 얼마나 막장인지 한가지 예를 보여드리겠습니다.
항우가 장도를 연왕에 봉했는데 연땅에 가니까 그전 연왕 행세를 했던 한광이란 자가 싫다고 버티니 "장도"가 공격해서 쫓아내 버렸습니다. 또 제나라 왕 행세를 했던 전시를 다른 곳으로 봉하고 장수였던 전도를 제왕으로 봉했는데 전시의 부하였던 전영이 이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제의 반란 이유입니다. 장량이 이것을 이끌어 낸 것이 아닙니다.) 항우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다면 어떻게 이런 일들이 일어났을 까요.

유방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그만큼 제갈량이 위나라를 깨는 것 보다 분열을 획책하기 쉬웠고 유방이 꼭 "중국 전토를 가진" 항우를 상대로 싸웠던 것은 아니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WR
2010-05-27 21:29:37

또 항우에 의해 지배받는 상황에서 사실상 통일 된 나라라고 인식 됬겠죠

그렇게 따지게 되면 주나라 역시 통일된 나라라고 보기 힘들게 되버립니다.

한나라가 초나라를 이겼을때 이미 한나라는 통일된 나라로 평가 받습니다. 그건 초나라의 항우도 같은 잣대로 보면 거의 통일된 국가라고 봐야죠. 그당시의 인식으로는 한나라는 초나라를 이긴후 중앙집권을 이룩하는 과정에서 완벽히 중앙집권 형식으로 나아가는데 중앙집권이 된 후부터 통일로 치진 않죠..

WR
2010-05-27 21:12:27

또 촉나라가 넓은 땅이고 기름지긴 했지만 중원을 가지고 있던 항우정도까진 아니죠.

촉이 비옥한 땅이긴 하지만 황하강 일대나 이런 비옥한 땅에 비하면 솔직히 척박하다고 해도 할말없는 땅이라고 봅니다. 촉이 비옥했다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위 오 촉 중에 가장 척박한 땅이 어디냐 라고 한다면 촉이죠.. 산세가 험한 편이고 중국에서도 서쪽은 살기 어려운 땅, 척박한 땅이라는 이미지가 강합니다.

2010-05-27 21:29:12

문제는 항우의 근거지가 팽성이었단 점입니다.
기껏 함양까지 차지해 놓고도 그 좋고 너른 기름진 땅 다 버려두고
자기 고향인 팽성으로 내려갑니다.
천하의 목줄기라 할 수 있는 함양을 내팽겨치고요.

또한 촉이 가장 척박하다 하기엔...
비교대상이 1개 주와 여러개 주이니 비교하기에 무리가 있습니다.
개개의 주로 비교하자면 익주는 당시 13개 주 중에서도 비옥한 주입니다.

험하고 척박하다 하면 병주, 량주 등이 해당되는 것이지요
익주를 척박하다 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서천이 험하다는 것은 서천을 넘어가는 그 고개와 산세가 험하다는 것이지요
들어가기도 힘들고 나오기도 힘들다 해서 험한 땅이란 것이지
그렇다고 해서 그곳이 비옥하지 않다는 게 아닙니다.
서천은 이미 전국시대부터 땅이 비옥하고 비단의 명산지로써 부유한 땅으로 인정받았었습니다.

WR
2010-05-27 21:31:47

중요한건 익주와 근접한 나머지 주들은 척박하다는 것이죠. 즉 촉 전체는 비옥한 땅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넘어가는 과정도 험해서 세력을 늘리기도 힘들 뿐더러 늘려도 주변에 비옥한 땅이 많이있지 않기 때문이죠. 익주를 먹고 있긴했지만 그렇다고 한나라가 항우보다 경제적으로 풍족한 상황은 결코 아니었죠.

또 항우가 팽성으로 내려가긴했지만 여전히 함양은 항우 세력 아래에 있는 땅이었고 그 땅의 경제력은 항우의 것이었습니다. 유방이 처들어 오기 전까지는요

2010-05-27 21:41:53

익주와 근접한 주라면 후한 기준으로 옹주와 형주, 교주정도가 있을텐데

전국시대 말기 기준으로라면 옹주는 진나라의 도읍인 함양이 있는 중요 거점이었고
형주는 초나라가 400년 도읍지로 쓰던 곳입니다.
교주는 후한에 이르러서야 좀 괜찮은 땅이니 험한것이 맞다 치더라도

이러한 점에서 힘을 늘리면 비옥한 땅이 많지 않다는 것에는 선뜻 동의하기가 어렵네요.

익주는 그 외부가 지세가 험해서 내부의 노른자 밖에 쓸수가 없다지만
그 내부만으로는 충분히 부유합니다.
때문에 소하가 익주를 근거로 많은 대군을 길러낼 수 있었던 것이지요.

물론 유방이 항우에 비해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적어도 1개 주로 덤벼 볼 수준은 될 정도의 부는 가지고 있단 것입니다.

WR
2010-05-27 21:44:41

글쎄요.. 그당시 항우의 세력을 보면 익주가 아무리 비옥한 땅이라고 해도 감히 쉽게 덤벼볼만한 상황은 아니었던 걸로 압니다. 경제력으로두요. 꽤나 차이났던걸로 압니다

2010-05-27 21:58:47

항우의 전체 세력을 생각하면 분명 덤벼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항우한테 덤빌 수 있었던 몇가지 요소들이 있는데

첫째가 항우가 도읍을 팽성으로 정한 것이었습니다.
만약 항우가 범증의 말을 들어 함양에다 도읍을 정해버렸다면
유방이 아무리 힘을 기른다 하더라도 못넘어왔을 겁니다.
제 개인적으로 장량의 최대공훈이라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도읍을 동쪽의 팽성으로 잡음으로써
유방의 소식을 전해 듣는 것도 느렸고 반응도 느렸습니다.

두번째가 서촉으로 가는 입출구에 해당하는 옛 진나라 땅을
진나라 장수들인 사마흔, 동예 등에게 맡긴 것이지요.
게다가 항우는 항복한 진나라 병사 20만을 생매장하고
항복한 진의 황제 자영을 죽인 전력이 있기 때문에
이들은 항우에게 충성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이 점은 장량이 유방에게 서천으로 가야 하는 이유로도 지적한 점이고요.

게다가 항우가 중국 전체를 평정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아
세력들이 다 안정화 되지 않았기에
완벽하게 항우의 세력화가 되지 않았던 점이 마지막 세번째입니다.
이것은 사실 첫번째의 이유와도 연계가 됩니다.
당시 중국의 중앙이었던 함양에 자리를 잡았더라면
여러 세력들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제어가능했을 겁니다.

만약 많은 기간이 지나고 항우의 세력으로 완벽하게 흡수되었다면
제 아무리 소하가 병력을 잘 만들고 한신이 군사를 잘 부린다고 하더라도
이를 뒤집기는 어려웠겠지요.

따라서 위의 세가지 이유때문에
항우의 세력이 매우크긴 컸으나
그것을 온전히 항우의 세력으로 보기는 힘들었다는 점이지요

분명 장량도 이 점을 지적했기에
서천에 가서도 패업을 이룰 수 있다고 한 것입니다.

WR
2010-05-27 21:49:43

촉이 비옥하다고 쳐도 유방이 항우를 쉽게 덤빌만한 상황은 절대 아닙니다. 제가보기엔

그당시 초와 한의 유방 동진 전 전력차이, 인구차이, 경제적차이 는 촉의 유비와 위의 조조 만큼의 차이였다고 생각합니다.

2010-05-27 22:06:25

한과 초, 촉과 위의 국력차로만 보자면 아마 말씀하신대로 엇비슷할 것입니다.

다만 그 영토의 안정화에서는 초와 위를 비교하기가 힘듭니다.
초는 각지에 왕을 배정할 때에 그 과정에서 불만과 잡음이 많았습니다.
결국 그것이 후에 한이 동진할때 한에 가담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지요.

그러나 위의 경우는 좀 다릅니다.
위나라는 정복지를 안정화 하는데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때문에 원소를 쳐서 하북을 점령하고도 오환과 공손씨까지 밀고 올라가서
후환을 없앴던 것이고요
정복지에는 그 지역출신을 우대하여 민심 안정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것이 초와 위의 비교되는 점이지요.
때문에 위는 그 국토의 전력을 최대한으로 활용 가능했던 반면
초는 그렇게 다 활용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WR
2010-05-27 22:08:00

물론 그렇습니다만, 그건 항우의 세력권이라고 해도 될정도라고 저는 보거든요.. 사실상 제나라임시왕 한신, 구강왕 영포 등등과 유방의 관계가 그당시 초나라와 다른 제후간의 관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봅니다.
또 저도 장량이 항우가 천도를 하게 끔 만들은 건줄알았는데 리플을 보니 다른분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소설에서만 장량이 천도하게끔 한거라고.. ㅠ
또 결과적으로 보면 서천으로 가게한것역시 장량이고, 결국 항우를 뒤집을만한 밑그림을 짜준 사람 자체가 장량이라는 것이죠. 제가 보기엔 그것은 유비와의 배경차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유방의 서천 배경 자체를 장량이 짜낸것이라고 할만큼 장량하고 연관이 많기 때문이죠.

2010-05-27 22:14:42

뭐... 항우는 원래 천도를 하고 싶어했고
범증이 반대한 것을 장량이 항우가 천도하도록 부추긴 측면이 있습니다.
그것을 장량이 항우가 별 생각 없었는데 하도록 만든게 아니라요.

저도 뭐 장량이 제갈량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다만 중립님과 저의 관점이 다르다고 해야할까요.

중립님의 관점은 유방이나 유비나 처지는 비슷했는데
장량은 유방의 패업을 이루게 했고 제갈량은 그렇지 못했으므로
장량이 더 뛰어나다라면

저의 관점은 유방의 상황은 그리 나쁘진 않았다.
환경이라면 유비가 좀 더 척박했지만 뭐 그런거 고려해도
제갈량보다 장량이 뛰어나다.... 이정도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제갈량은 그 자신이 늘 말하던 대로
관중과 악의와 비견할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2010-05-27 22:21:56

아무튼 덕분에 좋은 이야기 나눌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0-05-27 20:43:58

장량이 없었다면 항우가 천도하는 일이 없었을 거라 하셨는데, 항우본기,고조본기, 유후세가에 의하면 항우는 스스로 천도한거지 장량이 설득해서 천도한 것이 아닙니다. 초한지라는 소설과 착각하신 듯 합니다. 그 시기 장량 제일의 공은 항백과 유방을 인척관계로 묶어서 항백으로 하여금 관중으로 뒤 따라 들어온 항우가 유방을 치지 못하게 설득하도록 한 것이죠.

WR
2010-05-27 20:45:58

음 그렇군요. 그렇다 하더라도 계속해서 범증이 죽이라고 하는 유방을 촉으로 빼돌려준것도 장량의 공이죠. 항백을 이용한것이 있긴하지만.. 스스로 천도한건 오늘 처음 알았군요 ㅠ 제 지식의 한계인가요 ㅠ

2010-05-27 21:46:07

비교가 잘못되었네요.
제갈량은 소하와 비교가 되야지 장량과 비교는 아니죠.
둘다 뛰어난 인물입니다만 전 개인능력으로 볼때 장량에게 한표입니다.

WR
2010-05-27 21:48:26

흠 저도 소하랑 비교 가 되야 한다고 보긴 했지만 일단

대부분 분들이 초한지 유방휘하중 가장 뛰어난 지략적인물로 장량을 뽑고 삼국지에서는 제갈량을 뽑는지라

한번 비교해봤네요. 그리고 딱히 장량이 제갈량과 비교 안되기도 뭐한게 제갈량이 정치에 강점이 있긴했지만

임팩트적으로는 외교나 큰 그림을 짠다는점에서 장량과 비슷한 점이 꽤있죠. 그래서 비교해 봤네요..

2010-05-27 21:51:53

사실 삼국지에서 장량처럼 군사적인 능력(계략,모략을 주로 짜는 모사)이 뛰어난 인물이
제 개인적인 생각으론 가후,곽가,법정,방통,정욱 순으로 봅니다.

WR
2010-05-27 22:03:19

장량이 근데 애매한게 군사적인 능력이 가후나 곽가 만큼 많은 업적을 보여준 인물은 또 아닙니다.

한신이 가후나 곽가 와 비슷한 스타일이죠..

장량은 뭐랄까 약간 특이한 타입이라고 봅니다. 만능형이면서 큰그림과 외교술, 그리고 최강 말빨+예측력등을 통한

큰 그림을 잘짜는 타입이죠. 전투에서 계략 모략을 따내는 곽가 가후 같은 타입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사실상 이런 모략을 짜낸게 별로 없죠.. 사면초가가 굉장히 큰 임팩트가 있긴했습니다만 사면초가를 제외하고는 딱히 곽가 가후만한 임팩트를 보여주는 군략적 업적은 그닥 없습니다..

2010-05-27 22:06:19

한신 같은 스타일을 삼국지내에서 찾는다면 주유,장합,서황 더 생각한다면 더 생각하겠지만 이정도로 생각이 나는군요. 가후나 곽가나 자기가 직접 군을 통솔한적이 없습니다.

WR
2010-05-27 22:10:29

글쎄요. 직접 군을 통솔한적이 없다고 해서 한신과 같은 타입이 아니라고 보기힘듭니다.

그것은 왜냐하면 한신역시 특이하게 지략과 용맹함까지 갖췄던 사람이었기 때문이죠.

곽가랑 장량이랑 비교하기엔 타입자체가 다릅니다. 장량은 애시당초 곽가처럼 전쟁 당시의 전략, 계략에 능했던 타입이 아니기 때문이죠. 그랬다면 한신이 필요하지 않았겠죠

한신은 전략가면서 특이하게 장군으로써도 굉장히 용맹함이 있었던 사람이었기에 군을 통솔한겁니다.

통솔+전략을 담당했던 사람이었죠. 제가 보기엔 곽가나 가후는 장량보단 한신에 가까워 보입니다. 한신이 용병술+전략+계략 모략이었죠. 큰그림을 그리고 외교술에 능한 장량하고 가후, 곽가는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2010-05-27 22:15:27

제가 말을 잘못했는데 계략,모략이 군사적인 능력에서만 쓰이는건 아닙니다.
가후 같은 경우에도 처세술이 대단히 좋고 전략을 쓰는데있어서 실수가 없으며 상당한 기밀한 전략을 주로 구사하는 인물입니다.
곽가 같은 경우에 통찰력이 뛰어나고 모략을 세우는데에선 가히 조조진영에선 탑인 모사였습니다.
장량과 비슷합니다만....

WR
2010-05-27 22:18:02

음 그런가요..? 곽가는 조조가 전쟁군사 라고 할정도로 전략적인 측면에서 전술을 짜는데 뛰어났던 인물로 압니다. 한신이랑 비슷한 타입이라고 봅니다.

2010-05-27 22:22:11

한신같은 경우 사령관 타입니다.
자기가 직접 군을 통솔하면서 전투에 임할때 전략을 구사하는 타입입니다.
곽가나 가후보고 군을 통솔하면서 전투에서 진영을 짜고 상대진영을 보고 전술을 구사하라고 하면 할수도있겠지만 그걸 더잘하는 장수들이 많은데 굳이 시키지 않겠죠.

WR
2010-05-27 22:24:35

근데 한신을 사령관 타입으로 보기엔 전략, 계략이 엄청났다는 것이죠.

한신이 직접 지휘한것은 곽가, 가후의 능력에 뛰어난 실제 용병기술과 자신까지 용맹했기 때문에 나오는 부가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신은 애시당초 장합등과 같이 사령관으로만 보기엔 너무 그릇이 큰사람입니다.

곽가가 다른분야에도 뛰어났긴 했지만 특히 전쟁 쪽에서 강한 모략을 많이 냈다는점에서 한신과 비슷한 타입이라고 봅니다. 사실상 장량은 전쟁이나 군뒤에서 전략을 지시하는 타입은 아니죠.

2010-05-27 22:31:27

곽가가 장량과 스타일이 많이 다른합니다만 어떻게 껴버렸는지
장량과 비슷한 스타일을 굳이 찾자면 가후,노숙,순욱 정도로 볼수 있겠네요.

WR
2010-05-27 22:28:21

실제로 사령관 타입이었다면 곽가, 가후같은 군뒤에서 계략 모략을 짜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한신에겐 없었습니다. 괴통이라는 모략가를 얻긴 했지만 그건 유명한 한신의 북벌이 끝난다음에 제나라 항복후 얻은 모략가 죠.

사실상 한신은 곽가, 장합 역할을 혼자 다했던 타입이라고 봅니다. 워낙 용맹했고 실제 전쟁중에도 전쟁터에서 지시를 하는 타입이라 사령관, 장군으로 오해받기 쉬운타입중 하나라고 봅니다. 만능형이라 타입을 구분짓기힘들긴합니다만

2010-05-27 22:32:35

한신타입으로 그정도 능력과 지위를 가진 인물을 굳이 삼국지에서 찾자면
주유 빼면 없겠죠.
오나라에서 밖은 주유 안은 장소 이랬으니까요

WR
2010-05-27 22:32:32

오히려 이런 한신같은 만능형이 아닌 곽가 와 비슷한 타입을 초한지에서 찾으라면

이좌거 같은 타입이겠죠.

실제로 장량이 전쟁에 참여할때 실제 곽가 같이 군뒤에서 군략 모략을 짜는 건 장량이 아닌 이좌거 였습니다. 장량이 사면초가라는 대대적인 군략을 짜긴했지만 그 이전엔 그닥 없죠

WR
2010-05-27 22:33:55

저도 가후, 노숙은 동의합니다만

순욱은 또 동의 못하겠네요 ^^;;

순욱은 전형적인 소하 같은 타입이죠. 군량, 인구수, 군대에 필요한 물량 담당 전문 책사니..

2010-05-27 22:36:54

조조가 순욱에게 정신적으로 의지를 많이 했었습니다.
조조밑에 많은 관료들도 순욱 인맥빨로 들어온 관료들이 많았었고
그렇게 하나하나 다따지다간 비교를 할수가 없죠.
순욱이 위에서 보급만 담담한게 아니니까요.

WR
2010-05-27 22:38:27

하나하나 따지는것이 아니라 어떤 분야가 더 주특기 였냐가 요지죠.

순욱은 보급말고는 딱히 다른 분야에서 업적이 없을정도로 보급이 특화되어있는 군사중 하나였습니다. 전형적인 소하 타입이지 장량하고는 거리가 멉니다

2010-05-27 22:44:48

제말은 주특기가 뭐가 중요 한게 아닙니다.
유방 같은 경우 장량에게 정신적으로 많이 의지 하였고
조조 역시 순욱에게 정신적으로 많이 의지 했었다는걸 말하고 싶었던거에요.
이쯤에서 그만 자러 가야겠습니다.
삼국지랑 초한지를 너무 오랫동안 안봤더니 기억이 가물가물

2010-05-27 21:59:13

그리고 제갈량이 밑그림을 잘그린다고 하는데 나라의 체계를 잡고 법을 제정하고 이런거는 진짜 삼국지내에서 탑클래스 관료입니다만 천하 3분계니 하는건 노숙이 먼저 생각했던겁니다.
그걸 실행하기 위해서 오나라의 힘만으론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유비를 끌어들인거고
애초에 오나라에서 주유는 찬하 2분계를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주유가 급사를 해서 실행을 못한거뿐이죠.

2010-05-27 21:56:28

장량의 가장큰 공적은 유방이 진나라의 실패를 본보기삼아 중앙집권체제를 포기하고 봉건제로 회귀하려할때 장량이 설득하고 또 설득해서 중앙집권국가로 만든거라고 생각합니다. 장량이 없었다면 지금의 중국은 없었을지도 모르죠. 수많은 작은 국가로 쪼개져있을지도요.
WR
2010-05-27 22:04:16

장량이 통일이후 잠적한걸로 알았는데 그런 제안까지 하고 하야한 거군요.. 정말 왕옆의 재상으로써 가장 이상적인 인물 같습니다..

2010-05-27 22:08:43

통일이후 장량이 잠적한것은 미래의 두려움때문입니다.
숙청당할것을 미리 알았던겁니다.
유방과 오랜기간 함께했었는데 유방의 성격을 파악못할 장량이 아니죠.
한신은 부득히 남아서 제후 직위를 얻었지만 결국 모함받고 유방손에 죽습니다.

WR
2010-05-27 22:12:44

토사구팽의 주인공이 될지 한신이 예측을 못했다는게 좀 안타깝네요... 차라리 괴통의 말을 믿고

제나라독립설을 받아드려 유방에게서 독립했다면 초한지가 어떻게 돌아갔을지 궁금하긴 하군요

한신이 뛰어나긴 했지만 약점은 유방에게 너무 충성을 다했고, 그에 합당한 대가를 받을려고 노력했던 점인것같습니다.

사실이게 정상이죠. 장량이 너무 청렴하고 물욕이 없는 것이 크죠.

2010-05-27 22:16:34

근데 딱히 유방이 무서워서 잠적한건 아닌걸로 보입니다. 유방이 개국공신 1호인 소하에게 식읍 7000호를 내린데 비해 장량에게는 3만호의 식읍을 내렸다고 나와있죠. 그런데 장량이 거절한것 뿐이구요.
또 토사구팽이 났을때도 유방은 소하를 의심할지언정 장량만큼은 끝까지 믿었다고 나와있습니다. 소하가 자신이 건달시절부터 따르던 인물임을 생각해볼때 유방에게있어서 장량은 단순히 신하(숙청의 대상이되는)라기보단 거의 인생의 동반자? 어감이 좀 그렇긴 하네요. 하여간 신하 그 이상의 존재였습니다.


장량전에서 장량의 인물묘사를 하는데 이런대목이 나온다죠?

고제가 일찍이 말하기를 '군정을 분석하여 군영안에서 계책을 세워 천리밖의 승부를 결정짓는데에 나는 자방만 못하다'라고 하였다. 나는 본디 자방은 아마 체격이 몹시 클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나중의 그의 화상을 보았더니 얼굴 생김새가 여자처럼 예뻤다. 원래 공자도 '용모로써 사람을 평가한다면 나는 자우에 대해서는 실수를 하였다'라고 말하였듯이, 유후에 대해서도 또한 그러할 것이다." - 사기 장량

각별한 사이였을지도.....

WR
2010-05-27 22:18:41

원조 꽃미남이죠

WR
2010-05-27 22:21:49

물론 장량이 뛰어난것도 있겠지만 제가 보기엔 한신이 못난게 아니고 장량이 너무 특이한 케이스 였다고 생각합니다.

도가 사상에 젖어 있던 사람인 걸로 압니다. 물욕이 아예 없었고 또 유방과 사이가 각별했죠. 자신이 직접 모든걸 포기하고 돌아간것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하긴 뭐한것같네요. 물론 두려움도 있다면 있다고 할순 있겠습니다만

2010-05-28 11:14:22

제가 봤을때 제갈량은 전장에 나가서 모사,사령관 적인 역할을 하는 하는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내부적으로 기틀을잡고 나라의 전체적인 틀을 짜는 모사타입이었다고 봅니다. 이 역할에서 제갈량은 탑 클래스 였죠

하지만 제갈량의 가장 큰 변수이자 악재가 바로 방통의 죽음이었다고 봅니다. 방통이 죽기전까지는 제갈량이 그동안 그려놓은 그림 그대로 흘러가고 있었고 촉나라에서 가장부족했던 전장에 나가서 모사역할을 할 인물이었는데 방통이 죽었기 때문에 그 역할을 할 인물이 촉나라에 거의 없었습니다.

만약에 방통이 살아있었으면 어차피 한중쪽으로 위나라가 쳐들어오기는 힘든상태였고 형주에 방통이있었으면 안뺏겼을 지도 몰랐다고 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촉나라에서 컸던 전환점이 형주를 뺏긴것이라고 보기때문에...

하지만 형주도 뺏긴상황에서 그 익주라는 척박한 땅을 갖고 북벌을 7번이나 했다는 것 자체로 제갈량은 어떻게 말할수가 없을정도로 뛰어난 인물이었다고 봅니다 (최소한 마속이라도 포텐셜이 터졌으면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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