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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소주 한잔 하는 중입니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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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3-04-16 12:37:51

     후라시 / 신용목


      동그라미는 왼쪽으로 태어납니까

      오른쪽으로 태어납니까

 

      왼쪽으로 태어난 동그라미의 고향은 오른쪽입니까 어디서부터

      오른쪽은 시작됩니까

 

      동그라미를 그리는 자는 동그라미의 부모입니까 내가 그린 동그라미는 몇 개입니까

 

      나는 그들에게 죄인입니까

 

      왼쪽으로 걸어갔는데 왜 오른쪽에 도착합니까

      왜 자꾸 동그라미를 그립니까

      동그랗습니까

 

      동그랗습니까

 

      어둠을 뒤쫓던 후라시 불빛이 내 얼굴에 쏟아졌을 때

      나는 유일한 동그라미 안에 갇혀 있었다

 

      동그라미 안에만 비가 내리고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을 착취당하지

      너는 혼자였고 나는 가난했어

      무엇보다도 우린 젊어서

 

      온통 늙어가지

 

      그러나 어둠은 한 번도 잡히지 않았다 후라시를 켤 때마다 보란 듯이 불빛 그 바깥에 가 있었네

 

      동그라미 안에만 비가 내리고

 

      나는 간신히 외치기 시작했어

      비 내리는 밤이 있다는 것은 아직 우리의 슬픔이 젊기 때문이다

 

      다음 날부터

      태양은 구정물 통에 담긴 접시처럼 유일한 하늘에 떠 있었다

 

      다음 날부터

      나는 깨뜨릴 수 있는 동그라미와 깨뜨릴 수 없는 동그라미에 대해 생각했지만

      우리가 만났던 밤은 아직 젊었고

 

      어떤 비도 슬픔을 씻기진 못하고

 

      너는 혼자였고 나는 가난했지

 

      동그라미 안으로 쓰윽 들어온 손이 내 턱을 추켜올렸을 때

      내 얼굴은 이미 깨져 있었다

 

   ㅡ「후라시」, 『누군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 신용목

 

 

 


출근 2주차 주말을 맞이한 병아리는 꿈에서도 사무실 풍경이 펼쳐집니다.

이번 한 주도 고생 많으셧습니다.

농구인의 축제가 다가왔습니다. 회원분들 모두 플레이오프 기간 즐겁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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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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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3-04-16 00:20:52

좋은 시,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시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천천히 숨 고르고 읽어보니 참 좋고도 슬픕니다. 시는 시인에게 본인의 언어를 속삭인다고 하던데... 시인분들은 정말 대단한 예술가분들 같습니다. 덕분에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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