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MA 선수들이 평균 나이가 높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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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을 불문하고 인간의 신체능력은 30세 전후로 퇴보하기 마련입니다. 운동을 안 하는 일반인도, 최상위권의 운동선수도 어쩔 수 없는 법칙이죠. 스포츠로 생계를 이어가는 운동선수들은 기술적인 발전을 이루어냄으로서 노쇠화를 어느정도 피해갈 수는 있지만, 전에는 점프하면 닿던 곳이 이제는 안 닿는 등은 어떤 선수라도 겪을 수 있는 일입니다. 농구나 축구 등의 구기종목의 경우 30대 중반이 다가오면 은퇴를 고려하거나 역할을 바꾸는 등의 과정을 거칩니다. 이는 대대수의 종목 선수들이 공통적으로 겪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선수가 이러한 과정을 겪는다면 괜스레 슬퍼지기도 합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30대 중반은 웬만한 스포츠에서는 은퇴할 만한 나이지만, 투기종목에서만큼은 예외가 강하게 작용하는 편입니다. 본문 작성일인 2022년 5월 16일 기준으로 UFC Pound for Pound(P4P) 랭킹 5위까지의 평균 나이는 34세로, 딱 30대 중후반이자 신체능력이 크게 저하되었을 시점입니다. 그런데 1위인 우스만부터 5위인 은가누까지 5명이 모두 챔피언이거나 챔피언 경력이 있는 선수들이네요.
#1 카마루 우스만 (35세)
#2 알렉산더 볼카노프스키 (34세)
#3 이스라엘 아데산야 (33세)
#4 찰스 올리베이라 (32세)
#5 프란시스 은가누 (36세)
위 선수들은 챔피언인만큼, 다른 선수들과 다르지 않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P4P 랭킹 15위까지 살펴보았을 때 30세 이하인 선수들은 페트르 얀과 브랜든 모레노 둘 뿐입니다. 이 둘도 1년만 지나면 30세가 되네요. 격투기, 특히 종합격투기 선수들의 전성기가 28세~32세임을 감안하면 꽤나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이 현상의 원인은 여러가지를 뽑을 수 있겠지만, 제가 특정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순발력이 비교적 덜 필요한 스포츠
모든 스포츠에서 상대의 동작에 재빠르게 반응하고 그에 따른 대응책을 내놓는 능력은 필수적입니다. 내가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뭘 해보기도 전에 상대의 수에 당해버리면 의미가 없기 때문이죠. 때문에 스포츠에서 나이를 먹는 과정, 즉 노쇠화는 좁은 의미로는 순발력과 반응속도가 저하되는 현상을 뜻합니다. 미식축구에서 공을 받은 와이드 리시버가 급격한 방향 전환으로 태클하는 상대를 따돌리는 동작 등은 다 뛰어난 순발력을 필요로 하죠. 민첩성, 점프력 등의 중요한 신체능력들은 순발력의 영역이라고 봐도 무관합니다. 하지만 MMA 경기가 이루어지는 링과 케이지는 펜스와 로프가 선수들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물리적으로 제한하기에 결코 발이 빠를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 종목처럼 순식간에 짧은 거리를 움직이는 상황은 레슬링식 테이크다운을 제외하면 희귀하기 때문에 순발력의 중요도가 덜한 것이죠. 물론 상대의 타격에 반응할 때는 반응속도가 굉장히 중요하나, 완력과 체력같이 순발력보다 더 중요한 요소가 많기에 선수들이 나이가 많아도 기량이 급격하게 저하되지는 않는 것이죠.
순발력의 중요도가 덜 필요하다는 제 의견의 또 다른 근거는 바로 경험입니다. MMA는 종목 특성상 부상 위험이 굉장히 높아 경기 간의 텀이 굉장히 긴 편이기에, 한 경기 한 경기가 매우 중요한 경험이자 교본이 되죠. 젊은 선수들은 대개 경기수가 적으므로 경험 또한 적은 것이 일반적입니다. 때문에 상황판단 능력과 같은 감각의 영역은 젊은 선수보다 경험이 더 많은 선수들이 우월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경험이 절대 과소평가 되서는 안 되는 부분인 것이, 객관적으로 밀리고 있는 경기에서 기세를 대찾는 전략, 자신보다 뛰어난 타격가를 그라운드로 끌고 내려가는 전략 등 실질적으로 종합격투기의 전략의 백본이 바로 경험입니다. 이러한 경험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노쇠화로 인한 신체능력 감소보다 경험을 통해 얻는 이익이 커지는 것이죠.
단일 투기종목에서 종합격투기로 전향한 경우
MMA가 양지로 올라와 인기를 끌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이기에 다른 메이저 스포츠보다 그 역사가 훨씬 짧습니다. 현세대 선수들은 처음부터 종합격투기에서 활동한 것이 아닌, 단일 종목에서 활약하다가 전향한 경우가 일반적이죠. 비록 2010년대 이후로 다시 한 번 인기몰이를 하고 있지만, 여전히 선수 육성 등의 인프라가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때문에 레슬링과 킥복싱 같이 이미 대형 기구들이 있고 규모가 큰 종목에서 넘어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대학교(NCAA)까지 레슬링을 연마하다 종합으로 뛰어든 사례(게이치, 케이터) 등은 셀 수 없을 만큼 많고, 타격기 종목을 배운 후 MMA로 전향한 사례(아데산야, 스테판 톰슨) 또한 무수히 많습니다. 올림픽 레슬러인 코미어, 세후도, 로메로 등 엘리트 운동인들도 다수 존재하죠. 이미 수년간의 운동과 훈련으로, 특히 현대 MMA에서 큰 축을 차지하는 레슬링과 복싱 등이 스타일의 근본인 선수들은 적응 또한 빨라 좋은 결과를 내기도 합니다. 더불어 단일 종목에서 MMA로 전향하는 선수들은 이미 단일 종목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둔 선수들이 많기에 기량 또한 좋은 편입니다. 당연히 자랑할 만한 커리어를 일군 선수들은 그만큼 나이도 있는 채로 넘어오기에 자연스럽게 평균 나이가 높아지는 것이죠.
평균 나이가 높은 이유는 위에 언급한 두 가지 이유 말고도 다른 요소들도 존재합니다. 그에 따라 다른 주장들도 충분히 나올 수 있고요. 다만 곰곰히 생각해보고 전성기를 맞는 선수들의 평균 나이들을 보니 꽤나 정확히 짚은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물론 이것이 종합격투기는 늦게 시작해도 성공할 수 있는 종목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종합격투기도 당연히 운동 종목인 만큼 적절한 유효기간이 있습니다. 단지 그 유효기간이 다른 운동보다 길다는 것이죠.
정신 없이 적다보니 꽤나 글이 길어졌네요. 다음에는 더 양질의 글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Father Time Is Undefeated"
"세월 앞에 장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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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공감이 가는 글이네요.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추가 요소로는 '종합' 격투기인 만큼 챔피언 레벨에 도달하기 위해서 배워야 할게 너무 많다는 점도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특정 분야에서 압도적인 것만으로도 챔피언이 가능했던 시기가 있었지만 스포츠 자체가 고도화 됨에 따라서 1~2개 분야에서는 특출나면서도 다른 모든 분야에서 구멍이 없어야 챔피언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러한 레벨에 도달하기 까지 배워야하는게 워낙 많다보니 비교적 늦은 나이에 완성이 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대신 스포츠가 메이저로 올라온 만큼 어릴때 부터 수련을 해서 육체적 전성기와 경험이 둘 다 최고점을 찍는 케이스도 곧 생기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