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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랑의 블랙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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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6-20 15:22:40

 

사랑의 블랙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축복에는 꼬리표가 붙는다

 

시간이 되돌릴 수 있다면, 전지(全知)에 가까운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로또 번호 맞추기는 유치할 뿐입니다. 세상에 벌어질 모든 일들을 분초단위로 예상, 예측할 수 있으니, 갖가지 대응책을 마련해두고 각 시나리오별로 최적의 해()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부를 쌓을 수 있음은 당연하고, 권력도 취할 수 있고, 온갖 누릴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누려볼 수 있습니다.

 

적어놓고보니, 능력 치고는 지나치므로, 꼬리표 단서 한 두개쯤은 붙여 놓아도 좋을 듯 싶습니다. “시간은 되돌릴 수 있다.”는 능력은 시간은 되돌아간다.”는 상황으로 바꾸어 놓는 식입니다. 언제, 어떻게 되돌아가도록 할까요? 이왕 정했으니 “2. 2. 성촉절 24:00가 되면 06:00으로 항상 되돌아간다.”로 하면 좋겠습니다.

 

이 정도 꼬리표 단서면, 시간이 되돌아가는 것이 축복일까요? 아니면 굴레일까요? 누구든 한번쯤 꿈꿔볼 수 있는 상상을 이야기로 풀어낸 영화가 있습니다. “사랑의 블랙홀(Groundhog Day)”은 의지와 상관 없이 하루를 무한히 반복하는 기상캐스터 필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그려낸 영화입니다.

 

불만 가득한 필 + 꼬리표 달린 축복

 

기상캐스터 필은 스스로를 멋지고 매력있다 생각합니다. 이제 곧 메인스트림으로 진출할 예정인데, 겨우 매멋(groundhog)이 겨울잠에서 깨어나 굴에서 나와 그림자를 보는지 확인하는 행사(성촉절, 매멋이 그림자를 보면 겨울이 6주 더 지속된다고 합니다)에 참여하기 위해 펜실베니아 한 마을에 와야 하는 자신이 불만입니다.

 

한 겨울 눈 쌓인 추위를 헤쳐 필과 PD 리타, 카메라맨 래리는 성촉절 매멋을 찍어가는데, 필은 끊임없이 자신의 객관적 상황과 주관적 기대를 비교하며 불만을 토로합니다. 다만 리타에게는 관심을 보이며 자신과 함께 메인스트림으로 나아가자는 이야기를 하는데, 리타의 진정성과 매력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평과 허황으로 가득찬 필의 모습은 리타와 래리에게는 새롭지 않았고, 이들은 익숙한 듯 필을 적당히 무시할 뿐입니다.

 

문제는 이제부터는 시작입니다. 눈이 많이 쌓여 바로 복귀하기는 어려운 상황에서 하루 더 잠을 자게 되는데, 내일인 줄 알았던 오늘이 어제입니다. 성촉절 2. 2.이 거듭 반복되는 상황이 시작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D2ZC11pPPQ

 

변화하는 필의 모습: 환호 좌절 수용 극복

 

24:00가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같은 날 06:00에 필은 우선 의심하고 부정합니다. 초자연적인 일이 발생했으니 당연합니다. 항상 똑같은 뉴스에 눈을 뜨기 시작하며, 숙소에서 자신을 맞아주는 할머니의 모습, 길에서 만나는 옛 동창 보험 영업사원 친구의 첫 대사가 모두 동일함을 깨닫고 이제는 받아들입니다. 환호하면서.

 

필은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정보를 취득합니다. 우선 마음에 드는 여자에게 접근하여 하루하루 출신학교,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을 차근차근 모읍니다. 시간은 얼마든지 있으니 필에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나서 그녀에게 마치 오랜 동창생인 것처럼 접근해서 하루 연인이 되는데 성공합니다. 자신감을 얻은 필은 은행에서 나오는 돈자루를 완벽하게 채어가기도 하면서 하루 쓸 돈을 충분히 취득합니다. 필에게 부족했던 이성에 대한 인기, 재력은 이제 모두 채워집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Q097jOO7l4 

 

어느 정도 누릴 것들을 한창 누린 필은 이제 리타에게 접근합니다. 같은 방법입니다.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을 물어보고, 다음 날 시나리오대로 가까워집니다. 심지어 프랑스 시까지 외어가면서, 공부하듯 그녀에게 접근합니다. 정성이라면 정성, 집념이라면 집념입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대목에서 리타는 필을 의심합니다. “어떻게 나에 대해서 그렇게 잘 아시죠?” 하루가 반복되어도 필에게 사랑이 자연스럽게 채워지지는 않습니다.

 

이때쯤 필은 좌절합니다. 아무리 가까워져도, 유효기간은 하루입니다. 어떤 일을 해도 무효화되는 일들에 진절머리가 납니다. 리타는 마음을 허락하지 않고, 다른 이성에게 추근대거나 돈을 훔쳐내는 일들 지겹습니다. 필은 포기하고 죽음을 선택합니다. 하지만 어김없이 울리는 06:00 기상알람은 필에게 탈출구는 없음을 잔인하게 알려줍니다.

 

필은 리타에게 고백합니다. 나는 하루를 반복해서 살고 있노라고. 증명하라는 리타의 요청에, 음식점 내 모든 사람의 과거와 현재를 모두 밝혀줍니다. 리타는 필을 이해하게 되지만, 도와줄 수는 없습니다. 필은 리타와 서로를 공감하는 이야기를 나누고 카드 게임을 하는 등 가까워집니다. 이제 리타와 정말로 가까워졌다고 생각한 필에게 어김없이 06:00 알람이 다가옵니다.

 

이제 필은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마음을 굳힙니다. 2. 2. 죽을 운명인 노인에게 따뜻한 밥을 대접하고, 보험 영업사원 친구의 모든 보험을 들어주고, 나무에서 떨어지는 아이를 잡아주는 한편, 피아노를 배웁니다. 하루하루 같은 일을 반복합니다. 필이 성촉절 취재에서 말하는 문구들은 깊이가 있고 멋들어지게 되고, 피아노 실력은 일취월장하고, 오래된 인사처럼 마을의 가장 사랑받는 사람이 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0fvSiRgKTQ

 

https://www.youtube.com/watch?v=gKGOG-Pr81E

 

리타는 어제의 필과 오늘의 필이 다름에 무척 놀랍니다. 자연스럽게 흥미와 관심이 생겨 필의 하루를 살 수 있는 경매에서 지갑에 있는 돈을 모두 털어 삽니다. 그리고 그와 진지하게 대화합니다. 필은 사랑스러운 리타와 또다시 밤을 지샙니다. 그리고... 내일이 옵니다. 둘은 어느새 연인이 되고 영화는 마무리 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0Fdb16Om40E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영화는 단계별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제가 파악한 바로는, 대강 이런 순서로 보입니다.

 

, 이성에 대한 인기 → 문학, 예술 타인에 대한 선의 사랑

 

필은 1단계에서 만족하려 했습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돈이나 인기는 수단에 가까웠던 모양입니다. 그 다음은 예술입니다. 프랑스 시를 읽고 체호프 명언을 외거나 피아노를 배우고 얼음조각예술을 배웁니다. 이를 통해 무료함을 달랩니다. 문학, 예술보다도 더 만족감을 주는 것은 타인에 대한 선의입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필은 마을 사람들을 돕습니다. 선한 의도에서 비롯된 행동은 마을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습니다. 이제 필은 안정됩니다. 하지만 아직 필을 내일로 이끌어주지는 못합니다.

 

필이 내일을 맞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리타와의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 의한 진정한 키스라는 동화의 클리쉐처럼, 리타와의 진정한 공감과 사랑이 필을 내일로 이끕니다. 적당히 무시하고 멀리했던 필을 이제는 공감하고 이해하는 리타의 모습은 필에게 가장 큰 선물이자 축복입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톨스토이가 소설로 물은 질문이기도 합니다. 소설에서 톨스토이가 한 대답도 사랑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모든 문학의 중심에는 사랑이 있습니다. , 인기, 예술, 도덕, 윤리를 모두 아우르는 사람으로서 가장 필요하고,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이유이자 목적, 사랑이 아닌가 합니다.

 

영화가 제게 주는 의미

 

 

힘들거나 기분전환할 때 보는 영화나 만화들이 있습니다. 어릴 때 저는 유리가면을 참 즐겨 보았습니다. 열혈 근성 마야를 보며 힘을 얻었습니다. 조금 나이가 들어서는 사랑의 블랙홀을 챙겨 봅니다. 주제의식이 제 마음을 울립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랑. 현대판 고전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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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2020-06-20 15:17:01

이거 지금봐도 재밌죠. 빌 머레이 정말 잘 나갔었는데...

WR
1
2020-06-20 15:28:19

등장인물 캐스팅이 너무 좋았습니다^^ 지금봐도 정말 재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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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20 15:23:58

내가 진짜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극장에서 처음 봤을 때에는 그 진가를 모르다가 세월이 지나서 다시 본 이후에 알게 된 저의 인생영화 중에 하나입니다.

WR
1
2020-06-20 15:33:51

저는 대학 입시 때 처음 알고는 이후 챙겨보는 영화입니다^^ 필과 리타의 사랑스러운 모습이 참 보기 좋고, 제게는 마음을 다잡게 해주는 영화입니다 Damon Bailey님께도 인생영화라고 하시니 더 반갑습니다 

1
2020-06-20 15:34:49

저는 미국친구들과 같이봤는데, 그때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1
2020-06-20 15:34:25

이거진짜로 15번 봤습니다

2
2020-06-20 15:35:34

타임루프에 갇히셨나 보네요.

1
2020-06-20 15:36:33

너무 재밌더라구요
어릴때 정말 많이 봤어요

WR
1
2020-06-20 15:41:26

클래식한 스토리 전개, 명확한 주제의식으로 어떤가 하지만, 배우들이 정말 사랑스럽게 여기해주었던 영화입니다^^ 의외로 이 영화 팬분들이 있으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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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20 15:54:43

 https://www.youtube.com/watch?v=sZzblPk8bf4

WR
1
2020-06-20 15:58:05

LEOZRA님께서 올려주신 게시글과 댓글영상(위 유튜브 영상)을 보고 이 영화 리뷰를 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추억을 떠올렸습니다 감사합니다 

1
2020-06-20 15:59:13

앗 댓글 다신 그 분이었군요 몰랐습니다

1
2020-06-20 15:58:16

매해 2월2일에 봅니다.

WR
1
2020-06-20 15:59:33

연례행사인가요?^^ 한겨울에 따뜻한 영화로 손색 없다고 생각합니다 

2
2020-06-20 16:06:09

저는 대한과 입춘 사이에 007 여황 폐하 대작전을 봅니다.

1
2020-06-20 16:27:27

완전 명작이죠. 저도 인생영화 중 하나로 꼽습니다. 한국 제목은 처음 알았네요.

WR
1
2020-06-20 16:46:52

왠지 정감가는 번역입니다 "사랑의 블랙홀" 원제목인 Groundhog Day보다야 낫겠지만, 클래식한 느낌이 물씬 납니다^^  

1
2020-06-20 17:24:17

필의 피아노 때문에 재즈 피아노 학원 5년 째 수강 중입니다. 덕분에 적어도 필 스타일의 부기우기는 꽤 치는 편입니다.원래 메인 악기는 트럼펫인데 연습실에 못나가다 보니 요즘은 메인 악기가 되어버렸네요.
유투브에서 필이 반복한 시간을 추측해보던데 대략 30년 정도가 아닐까 하더군요. 생각해보면 그걸 견딘 필이 대단합니다

WR
1
2020-06-20 17:36:55

음악하시는군요^^ 부럽습니다 저는 통기타 3개월 배우다.. 그만둔지 너무 오래되었네요 예술이 주는 위안이 어마어마할텐데 좋으시겠어요 30년이라고 한다면, 30년동안 철옹성같이 버틴 리타도 대단하다 싶습니다^^ 

2
2020-06-20 18:12:24

30년 동안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를 매일 만난 거네요. 나이들지도 않고요. 그렇게 견디기 힘들지 않았을 거 같네요.

1
2020-06-20 17:59:39

이 시절때 이런 느낌의 영화들 정말 좋아합니다.

WR
1
2020-06-20 18:47:47

요즘 양산형 영화와는 또 다른 멋이 있습니다^^

1
2020-06-20 19:16:07

그땐 저런 느낌이 양산형이 아니였을까요??

근데도 저런 감성 너무 좋네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WR
1
2020-06-20 20:04:49

말씀듣고 보니 그렇습니다 그때는 저런 류의 느낌이 많았던 것 같은데, 대표적인 작품만 지금까지 남겨진 것 같네요^^ 그러고보니 그때 사랑의 블랙홀은 그저 로맨틱코미디로 평가받았다고도 하는 것 같네요 그래도 뭔가 고전같은 느낌?이 저도 참 좋습니다 

2
2020-06-20 20:51:44

와 이 영화 정말 좋아하는데 또 봐야겠어요

2
2020-06-20 23:23:36

초딩때 주말에 tv에서 해주는 명화극장같은데서 본 기억나요. 그때는 그냥 코믹한 영화라 생각하고 재밌게 봤는데 작년에 생각나서 다시 찾아보니 곱씹을게 많았습니다

1
2020-06-21 12:03:35

개인적으로 번역된 제목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특히나 과거에는 대부분이 한국에 흥행을 위해서 제멋대로 바꾼 것이고 심지어는 후속도 없는 작품이 인기 제목의 작품의 2로 나오는 경우도 많이 보았습니다. 하지만 '사랑의 블랙홀'은 거의 엑스파일의 멀더와 스컬리의 목소리 더빙 마냥 영화 제목에 찰떡궁합 입니다. 오히려 'Groundhod Day'같은 알 수 없는 제목은 유일한 영화의 감점 요소라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당시 어려서 제목만 보고 투명인간의 사랑(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입니다만) 마냥 유치한 느낌이라 걸렀다가, 누나가 빌려와서 같이 보는데 말 그대로 재밌어서 2박3일 반납 전에 또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Groundhog Day는 캐나다 와서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고, Graoundhog도 종종 보입니다. 어떤 녀석은 사람보고 무려 도망도 안가고 먹을꺼 주려나 킁킁대기도 하더군요. 그리고 와서 보니 영화가 제목을 제대로 잡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2월 2일이 되면 10월의 마지막 날이나 비오는 수요일이나 November's rain 처럼 딱 생각나는 영화더라구요.

WR
1
2020-06-21 13:55:08

만약 요즘 식대로 "그라운드호그 데이" 라든지 "성촉절"이라든지로 번역되었다면 오히려 무슨 의미인지 몰랐을 것 같습니다 제목이 말씀하신대로 유치한 느낌인데, 그것이 또 앤틱한 느낌이라 잘 살린 듯 합니다 Groundhog는 영화로만 봤는데 캐나다에서는 종종 보이는 모양이네요^^ 더더욱 영미권에서는 친근한 소재였던 모양입니다 

저는 요즘 영화제목은 오히려 번역을 잘 안해서 조금 아쉽습니다 지금 네이버 영화를 보니 "콜미 바이 유어 네임" "와일드 시티" "아이캔온리 이매진" 이런 식으로 영어표현을 그대로 쓰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아마 오래전 영화인 해리슨포드의 "도망자"도 요즘 나오면 "퓨지티브(fugitive)"라는 제목으로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앞서 든 영화를 "네 이름으로 날 불러줘/나의 이름은 너" "거친 도시/야생도시" "상상할 뿐/오직 상상" 이런 식으로 번역해도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1
2020-06-21 21:01:29

맔씀 하신대로 이런삭으로 알 수 없는 제목이 돠어버린 영화 제목이 보지도 않은 엉화 인데 제목만 기억 납니다. 노골적인 R등급의 느낌의 포스터에 한글로 "투문정션"이라고 써있었ㄴ데 어릴 때라 영웅본색, 첩혈쌍웅 마냥 한문인즐 알았는데 알고보니 Two moon junction 이더군요. 이런식으로 그냥 영어를 한글로 바꿔서 애히려 헷갈리게 하는 면도 있지만, 흥행을 위한 말도 안되는 제목이나 그냥 직역은 웬만하면 아, 이건 좀 별로다 싶더군요.
중국 갔을 때 캡틴아메리카 개봉했을 때라 자하철 포스터에 미국대장 이라 써 있어서, 아니 그냥 대위인데... 근데 미국 대위리고 하면 더 웃길것 같다고 셍각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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