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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학적 관점으로 본 임진왜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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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2 01:56:55

명량해전-1

 

아시아게임 2018 축구 결승전 한국이 일본을 이겼습니다. 시리즈와 시기가 참 절묘하네요.

 

자 드디어 이 전쟁의 클라이막스인 명량해전입니다. 이 전투는 가지는 의미와 결과에 따른 의미가 너무나 중요한 전투인데 비하여 그 전투의 전개 과정을 이해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운 전투입니다. 즉 그 전투의 과정이 원인과 결과, 공과 실 등을 설명하기에는 있는 사건의 물리적 팩트들만 가지고는 해석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적은 난중일기나 도도 다카도라가 적은 회상록만 봐도 도데체 어떻게 13척이 330척을 이겼는지 과학적으로 논리적으로 쉽게 이해가 가지를 않습니다. 심지어 승리의 당사자인 이순신 마져도 '천운이었다'고 기록할 정도니 말입니다. 역사에는 간혹 이러한 전투들이 등장하며, 모호 할 수록 사가들에 의하여 훗날 저마다 다른 해석과 상상을 동원하여 계속 각색이 되어지는데, 이 명량해전이 그런 전투들 중 단연 갑에 위치한 전투라 할 수 있겠습니다. 설민석 같은 분들을 포함하여 해외 유투버들까지 저마다 해석이 다양합니다. 어쩌면 아직까지도 정설이 없는 아직 연구대상의 전투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더욱 재미있습니다.

 

비유를 하자면 다윗이 골리앗을 이겼다는 것은 팩트로 알고 있으나 이를 원인과 결과, 그리고 무엇을 더 잘했고 무엇을 더 못하였는가의 공과를 따지기에는 사실 종교적인 신의 섭리로 해석하지 않는 이상 그냥 운이 억수로 좋았다라고 밖에 해석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외에도 주로 무협 관련 소설이나 일부 무림의 고수들 간의 대결을 보면 서로 칼을 섞기 이전에 눈빛으로 어마어마한 심리적, 정신적, 상상적인 싸움을 벌인 후에 막상 칼을 맞대면 허무하게 한 합에 끝나는 경우들 처럼 이 명량해전이 전투 전에 가지던 무게감과 기대감과 책임감과 부담감이 어마 어마 했던 것에 비해 330척이 13척에게 너무나 허무하게 밀리고 말았는데 대체 왜?라는 것에 원인과 결과 그리고 공과를 따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제 3자의 입장에서 볼 때 싸움의 주체들의 머리속과 마음속에 일어나는 일들을 볼 수가 없기에 물리적 사건들만 보고 나서는 허망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과거 스타리그를 볼 때 결승전이 벌어지기 직전 어마 어마한 기대와 떡밥에 비해서 막상 뚜껑을 열면 원사이드 하거나 허무한 결승전을 본 기억들이 있는데, 진검승부를 내기 전에 서로 생각이 많은 경기일 수록 막상 생각과 다르게 전개 될 경우 와르르 무너지는 경우들을 여럿 봤습니다.

 

물론 과정이 어떻든 간에 결과는 무척이나 중요한 결과이긴 하나, 이를 후대에 문학적 창작물 특히 영화로 만들어야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내면의 세계보다는 외면의 세계에서 좀 더 근거를 찾으려는 시도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면 이 전투가 임진왜란의 하이라이트 클라이막스이기 때문입니다. 하여 이 명량해전의 경우에는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이나, 영화 '명량 회오리 바다' 같은 경우에는 실제 난중일기에 적힌 팩트보다 각색 되어 좀 더 스팩타클하게 표현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며 이해해야 합니다. 

 

우선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의 경우에는 13척이 330척을 이길 수 있었던 가장 큰 근거로 '쇠사슬'을 등장시킵니다. 과학과 논리를 찾은거죠. 그리고 이전부터 이러한 설도 있어 근거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요. 어쨌든, 내륙과 진도섬 사이에 쇠사슬을 연결해 놓고 330척이 이 쇠사슬에 묶여 전진을 못하게 한다음 화포로 피해를 누적시킨 다음에, 물살이 역류할 때 적을 물리쳤다는 식으로 승리의 이유를 해석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조선의 공업적 기술력이나 전쟁으로 인한 피폐함으로 볼 때 이건 기술적으로 불가능 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봐도 적어도 일본군 100여척의 질량과 물살의 힘, 여기에 기타 항해적 힘이 합쳐진 질량을 쇠사슬이 견디어 내어야 한다는 것인데... 얼마나 대단한 쇠사슬을 만들어야 했으며, 또 이걸 얼마나 대단하게 고정을 해야하는지를 생각한다면 과연 지금의 기술로도 이게 제조가 가능한지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당시에는 이정도 양의 철을 구할 수도 없었을 뿐더러 만들 기술도 시설도 시간도 인력도 없고, 운반할 장비도 없었기 때문에 이는 정말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명량' 역시도 일부 전개는 난중일기에 기초하나 가장 절정의 순간 구루시마의 대장선이 이순신의 대장선에 돌격하기 직전에 바다에 거대한 회오리가 일며 서로 회오리에 6바퀴쯤 돌고 돌다 만나 구루시마가 뛰어들어 활에 고슴도치가 되어 이순신에게 목이 베이고 구루시마의 함선들은 회오리에 다 삼켜지며, 이순신의 함선도 회오리에 빨리기 직전 백성들의 도움으로 빠져 나온다는 '초자연적인 현상'에 그 공을 해석하였습니다. 이 영화 역시도 도대체 아무리 그래도 13척이 330척을 어떻게 인간적으로 물리적으로 이길 수 있겠느냐? 는 질문에 상당히 고민을 하였고, 어느정도 심리적인 부분과 리더쉽으로 몰아가는데 성공을 하지만 이 역시 영화라 액션과 멋진 장면으로 영화를 풀어줘야 함으로 결정적인 장면에 이런 설정을 한 게 이해가 됩니다.

 

 

자 그럼 저는 명량을 어떻게 해석할까요?

 

저는 그동안 수많은 전사들을 연구(연구라고 말하긴 민망합니다. 그냥 관심정도입니다.)해 오면서 대부분의 전투들은 물리학적이고 공간학적이며, 수학적인 방식으로 다 해석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농구를 분석하듯이요. 그러나 이 명량만큼은 정신적인 영역, 심리적인 영역, 리더쉽의 영역과 같은 완전히 다른 내면의 영역에서 그 원인을 찾지 않고서는 해석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당대의 모든 영웅들 위에 이순신이 성웅이자 충무공으로 높이 평가 받는 이유에서 또 당대 전쟁에 참여한 사람들 모두의 존경과 경외를 받는 점을 먼저 이해를 해야 이 승리를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일본의 최고 지도자인 히데요시도, 조선의 선조도, 명의 만력제도 이순신 만큼 사람들로 부터 존경을 받지 못합니다. 모두 그들의 권력에 의해 강제적으로 그들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지 그들로부터 감동과 감화를 받아서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순신은 이들의 리더쉽과는 완전히 존재부터 다른 그런 리더쉽을 보여줍니다.

 

"죽고자 하면 살것이요. 살고자하면 죽을 것이니."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전선이 있사오니...."

 

이순신의 최고의 리더쉽은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니라 철저히 나라와 백성의 안위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던지는 삶이었습니다. 저 같았으면, 한양으로 압송한다고 금군이 왔을 때 다 목 쳐버리고 한양으로 쿠데다 가거나 일본에 투항해서 선조를 그냥 짓 밟아 버렸을 것입니다. 백의종군 중 칠전량에서 수군이 다 증발하고 나서 선조가 다시 수군통제사에 임명했을 때 저 같았으면 "야 선조 이 XX야 니가 해." 했을 것입니다. 정말 저 같았으면 전쟁 끝나고 전라도 백성들 다 끌고 한양으로 올라가 왕조를 전주 이씨에서 덕수 이씨로 바꿨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순신 장군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이게 과연 인간인가? 하늘에서 신이 인간의 형상을 하고 내려온 예수님 같은 그런 존재인가? 싶을 정도의 숭고함이 느껴집니다. 정말이지 이순신은 자신의 자아를 철저하게 죽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절대 12척을 끌고 나갈 수 없습니다. 아무리 전략의 천재 할아버지라도 이건 답이 없습니다. 군인으로써 나가 싸우다 죽는게 소임이라는 생각이 아니면 절대 나갈 수 없는 전투입니다.

 

역사에 수많은 명장들이 있습니다. 서구권에서는 알렉산더, 한니발, 시저, 나폴레옹을 대표적인 천재로 칩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자신의 야심을 위해 부하들을 전쟁터로 내 보냈고, 나라가 자신을 소환하자 시저와 나폴레옹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탈취한 야심가들입니다. 한니발 조차도 나중에 조국이 답이 없자 셀루코스 왕국으로 투항하지요. 그런데 이순신은 다릅니다. 그래서 성웅입니다. 성웅은 두려움이 없습니다. 애초에자신을 위해 싸우는 그런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드레곤 볼에서 베지터가 손오공을 보며 이런 말을 하지요. 저놈은 지구를 위해 싸우기 때문에 자신의 한계를 계속 극복한다고... 그런데 나는 나를 위해 싸우기 때문에 늘 한계를 넘지 못한다고.

 

이런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서 홀로 대장선을 이끌고 적 330척을 향해 홀로 나아 갑니다. 남은 12척의 지휘관과 군졸들은 경외와 숭고함을 느끼면서도 일단 두고보자 하며 뒤에 쳐지기 시작합니다. 물론 이는 전시에참수감이지만, 어차피 적에게 죽나 이래 죽나 저래 죽나... 일단 장군님 하시는 거 뒤에서 보고 있다가 장군님 만일 전사하시면 바로 내 빼자는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저 역시도 과거 스타트업 같은 회사들 다닐 때 이런 심정이었습니다. 사장 하는 거 보자... 망하면 그 때 옮기면 되고, 그 때가지 월급만 잘 나오면 되지 뭐...

 

그런데 대장선 혼자 여러척을 격파합니다. 난중일기에 영화처럼 백병전은 없고 적의 총탄에 2명정도가 전사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신기에 가까운 함포사격술로 다가 오는 적선들 연달아 격파합니다. 어쨌든 일본군은 칠전량 해전의 자신감으로 기세 좋게 판옥선 1기쯤이야 하며 덤벼 들었지만 상대는 이순신이었습니다. 이순GOD...!!! 적도 놀랍니다. 이건 원균과 다르다... 대장선에 초요기(지휘관들을 부르는 깃발)가 세워집니다. 그 전까지 두려움에 뒤쳐져 있던 지휘관들과 군졸들이 이젠 이순신의 위엄 앞에 명령에 따라 이순신 앞에 나옵니다. 장군이 폭풍 카리스마로 틀린말 하나 없이 지휘관들을 다그칩니다. 비로서 자신들의 부끄러움에 속에서 뭔가 뜨거운게 터져나옵니다. 이 비천한 몸 하나 살자고 뒤에서 오줌이나 지리고 있었다니... 나도 명색이 군관인데... 안위, 김응함 등이 갑자기 미친듯이 전투에 뛰어들기 시작합니다. 심지어 안위의 전선은 너무 개돌해 일본군이 개미처럼 올라타 백병전까지 일어납니다. 이순신이 보다 못해 옆치기로 일본군을 물리쳐 헬프를 해 살립니다. 

 

한 사람의 죽고자 하는 희생이 조선군을 두려움에서 용기로, 그 어떠한 숭고한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해 하는 성웅의 정신이 온 조선군을 이제 지배하기 시작합니다. 한 사람의 위대한 리더는 모든 사람을 위대하게 만듭니다. 한 사람의 숭고한 희생은 군중의 가슴에 불을 짚입니다. 해안가에서 전투를 지켜보던 백성들도 가슴이 뜨거워져 눈물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자신이 저 배에 타서 적을 쳐부수지 못하는게 한이 맺힙니다. 조선 군 사이에 잃어버렸던 믿음과 신념이 생겨납니다. 아니 이 분과 함께라면 여기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이 진저리나는 전쟁에서 그래도 이 분을 만나서 의미있는 존재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더 죽음이 이상 두렵지 않습니다.

 

그럼 일본군은 어떨까요? 심지어 일본군 선봉장인 구루시마 미치후사는 싸우다 이순신에게 참수마져 당해 높이 효수 되었습니다. 일본군의 눈에 이순신은 지옥에서 올라온 악귀와 같습니다. 일본 본토에서도 저런 카리스마는 본적이 없습니다. 이렇게까지 우리가 수군을 파괴해놨는데도 저렇게 견제하다니... 저건 사람이 아니다... 도도 다카도라, 와키자카 야스하루 등 그 누구도 이순신에 필적할 리더쉽을 못 보여줍니다. 그냥 장졸들 뒤에서 고래 고래 소리나 치며 등이 떠밀며 계속 돌격하라고 닥달합니다. 갈구고 잔소리 하고 심지어 요즘 것들은 정신상태가 어쩌고 저쩌고, 내가 너희 때는 말이야... 어떤 레파토리인지 아시겠죠? 군사들은 마지 못해 축자적으로 계속 들어갑니다. 그러나 물살의 영향도 있고 앞에 격파 되어 침몰한 함선들에 걸려 서로 뒤엉켜 버립니다. 이순신에게 가는 길이 왜 이렇게 먼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가기 싫습니다. 또한 조선의 함선들은 왜 이렇게 갑자기 크고 견고한 성처럼 보이는지 모르겠습니다. 배틀크루져 앞에 레이스 같습니다. 정오가 되자 물살도 역류합니다. 일본군 사이에서 "안 돼.. 역시 이순신은 못 이겨... 이젠 틀렸어" 패배주의가 전염병처럼 퍼지기 시작합니다. 다그치는 지휘관에게 병사들의 변명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쏘레와... 물살이..." 한마디로 그만두고 돌아가자는 소리죠... 도도 다카도라는 전세가 틀렸음을 직감합니다. 와키자카는 그 이름이 한이 맺힙니다. "리... 순신... 리... 순신...."

 

숫자가 많은게 오히려 독이 되었습니다. 이건 라디오 무선기도 없어서 통제도 안되고 오히려 숫자가 많은게 양날의 검이라고 한번 사기가 꺾이니 걷잡을 수 없습니다. 칸나에 전투가 바다에서 펼쳐진 그런 형국입니다. 숫자만 믿고 밀어붙혔는데... 이순신의 난중일기에 보면 31척을 격파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이순신이 직접 격파한 것을 눈으로 본 것을 샌 것에 불과하고 아마 뒤에서 서로 뒤엉켜 좌침된 일본 함선의 수는 그 보다 더 많았을 것입니다. 이제 조선 함대가 일본군 본대 바로 앞에까지 다가와 맹공을 퍼붓기 시작합니다. 심지어 도도 다카도라는 부상을 당하였고, 중앙감찰관 모리 다카마사는 물에 빠졌다가 구해지기까지 했습니다. 일본군은 통제를 벗어나 모두 퇴각하고 맙니다. 전투는 끝났습니다. 조선군이 명량에서 세계해전사에 빛나는 승리를 일구었습니다.

 

 

명량해전-2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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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18-09-02 02:02:12

330척은 부풀려진 기록 아닌가요?

2018-09-02 20:37:04

최소로 잡는 기록도 130척 이상입니다. 기록마다 130척대에서 330척대까지 나오는데

직접적으로 충무공이 눈 앞에서 싸운 적이 133척 정도라는건 이견이 없는 듯 합니다.

해협이 좁아서 뒤에 대기타던 배까지 합치면 최소 200척은 넘겠죠.

2018-09-02 02:16:09

저는 항상 이순신 장군님을 생각할 때 마다 경의와 존경심을 갖는 것은 오로지 나라와 백성을 위해서 마지막 목숨까지 내놓으셨죠. 제가 만약 이순신이였으면 히데요시에게 투항 후 선조 목을 베고 조선을 멸망시켰을 겁니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근본 자체가 이성계가 고려 신하로써 쿠테타로 세워진 나라고 조선 왕조가 그나마 빛났던 세종대왕 이후 임진왜란을 기준으로 막장 역사를 이어가다 결국 일본에게...조선이라는 나라는 애초에 임진왜란 당시 멸망하게 수순이였다고 봅니다.

2018-09-02 08:40:21

동감..... 제일 능력없고 질투가 심하고
가장 무능한 왕중에 하나라고 생각 합니다

Updated at 2018-09-02 10:40:39

이성계가 쿠데타를 성공시킬 수 있었던 건 군사력도 있지만

정도전, 정몽주, 하륜 등 신진사대부들의 힘이 있었죠

단순히 군사력 만으로 나라를 삼켰다면 10년안에 혼란에 빠졌을 겁니다.

 

그럼 이순신에게 그런 세력이 있느냐 하면 없었어요.

지방호족들과 권신들에게 대항하려 신진사대부가 생겼는데

이순신이 살았던 때는 그런게 없었죠.

이순신 자체가 지방호족, 권신이었으니까요. 

 

조선을 막장으로 표현하는데, 막장인 나라가 3년 전쟁을 버티고 다시 도약할 수 있었다고 보십니까?

아직 버틸 힘이 남아있는 나라를 뒤집는 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을 겁니다.

불가능에 가깝죠,

 

이순신이 군부를 잡고, 류성룡이 권신들의 꼭데기에 올라 앉아.....

아니요, 이순신이나 류성룡이나 윤두수가 그렇게 큰 차이가 있었던게 아니예요.

이순신이 선조를 폐위 시키고, 광해군을 왕위에 올리면....

이순신은 반역죄로 10년안에 죽겠죠.

잘했다면 죽고 난 다음에 또 죽거나요....

 

이순신에게는 선택지가 없었을겁니다.

2018-09-02 11:59:58

명랑은 정말 말도 안되는 전투이기는 하네요...

2018-09-02 20:37:20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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