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p
자동
Free-Talk

군사학적 관점으로 본 임진왜란-5

 
25
  1562
2018-08-31 16:45:03

빨리 쓰고 쉬어야겠습니다. 연재를 한다는게 이렇게 힘든 줄 몰랐습니다... 탈고를 향하여... 

 

 

강화협상과 재침(정유재란)

 

사실 이번 편은 제일 쓰기 싫은 편입니다. 왜냐면 전쟁 보다는 죄다 정치와 외교만 판을 치거든요. 하지만 이 다음편에 있을 대반전과 대감동을 위한 일종의 폭풍전야를 잘 써야 그 효과가 배가 됨으로 그래도 쓰기로 합니다. 

 

아... 전투가 있기는 있습니다. 일본군이 남쪽으로 철군하면서 그 병력을 싹 다 끌어다가 10만의 군세로 진주성에 복수를 합니다. 2차 진주성 전투인데, 정전을 해 놓고 기습을 해버리는 비겁한 방법으로 철군하는 자신들의 분풀이를 해버리죠. 10일 정도 버텼는데 결국 함락 당하고 모든 살아있는 것은 몰살 당합니다. 어쨌든 이 때 진주성을 일본 점령지로 만들어버림으로 인해 나중에 정유재란 재침 때 전라도 공략이 한결 수월해졌습니다. 이 사건만 봐도 명군이 참전을 안 했을 경우 결국 전라도를 계속 지켜 내기 어려웠을 거라는게 제 생각입니다.

 

자 이제 강화협상이 진행되어 명나라 쪽에서 심유경이라는 자가 협상자로 등장하고, 일본측에서는 고니시가 대표로 나옵니다. 왜 고니시가 나왔는지 모르겠는데, 뇌피셜을 가동해보면 결국 전쟁은 히데요시 가문의 사적인 전쟁이 되어버렸고, 구로다 가문이라던가 모리 가문 같은 가문들은 어디까지나 협력업체 같은 개념이라 본사 실무자 중에 그나마 상인 출신인 고니시가 제일 협상에 능하기에 나온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쯤 되면 고니시가 거의 독박 쓴 전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건 마치 해외 근무를 과장으로 가서 하다가 거기서 사장 업무까지 한 격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고니시는 일본 역사에서도 별로 인정도 못 받고, 결국 세끼가하라 전투에서 줄을 잘 못 서 패배해 죽게 됩니다. 이 고니시는 상인출신에다 기독교인으로 할복도 거절할만큼 독실한데, 나름 반전주의자였다고 합니다. 일본이 워낙 이 임진왜란을 쉬쉬하는 역사다 보니 고니시는 일본에서는 듣보잡인데, 참 억울한 인물입니다.

 

협상 쯤해서 조선의 육군이 13만 정도까지 모인게 3만으로 줄어듭니다. 표면상으로는 협상으로 전투가 없어 빨리 돌아가 재건에 힘쓰고 무엇보다 먹을 식량을 생산하는데 주력하라는게 그 이유였습니다. 뭐 틀린 말은 아닙니다. 자국민도 굶는 판에 이제 명군까지 먹여야 하니... 게다가 협상은 언제 끝날지 모르고, 명군은 일단 주둔해야 하기에... 하지만 선조의 속내는 달랐는데, 군벌이 형성 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였으며, 이에 따라 의병들까지도 관군에 편입 시키고는 농사지으라며 다 해산 시켜버리고 의병장들은 토사구팽 해버립니다. 결국 정유재란이 발발한 다음에도 조선군은 다시 늘리지 않은체 전쟁은 명군에게만 시키고 조선 남정내들은 모조리 SCV화 시켜버립니다. 또한 이는 더이상 조선 내에 공을 세우는 자가 나타나지 않게하고 오로지 외세인 명에 의해서 사태가 해결되기를 바랬던 선조의 찌질함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렇게 조선이 군세가 없다보니 강화협상도 조선은 배제 된체 웬 찐따 같은 심유경에 의해서 나라 운명이 좌지우지 되었습니다. 6.25 때도 북한-중국 대 연합군(미국) 협상 할 때 한국은 아예 참석도 못했는데 참 안습한 역사입니다. 정전합의문서에도 한국측 싸인은 없지요. 그래도 이승만 대통령은 나름 우리의 주권을 행사하려고 선제 북진도 하고 그랬는데 선조는 이게 왕인지 연예인인지 햇갈릴 정도입니다. 

 

자 어쨌든 협상이 시작 되는데, 원래는 심유경과 고니시가 히데요시와 만력제를 속이고 협상 했다는게 정설이었으나, 최근에 역사학자들에 의해서 다시 정리가 되었는데, 그 과정을 보면 명나라는 히데요시를 일왕으로 삼아 일종의 책봉과 입공을 허락한다(이게 대체 뭐길래?)는 것으로 끝내려고 하였으나... 히데요시 입장에서는 겨우 그거 얻자고 전쟁을 잃으켰냐는 어이가 없는 조건임으로... 

 

1)명나라 황녀를 일본 천황의 후궁으로 삼는다. 2)무역 증서제를 부활한다. 3)일본과 명나라 양국 대신이 각서를 교환한다. 4)조선 8도 가운데 4도를 일본에 이양한다. 5)조선의 왕자와 신하를 볼모로 일본에 보낸다. 6)포로 잡고 있는 조선의 두 왕자를 석방한다. 7)조선의 권신이 일본을 배반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한다.

 

이렇게 재 조건을 내밉니다. 1, 4, 5는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임으로 명은 이 말을 듣고 다음과 같이 다시 조건을 요구합니다. 

 

1)조선에서 완전히 물러갈 것. 2)조선의 두 왕자를 송환할 것. 3)히데요시가 공식적으로 사죄할 것.

 

이런식으로 핑퐁치며 첨예하게 대립했는데, 여기서 심유경과 고니시가 적당히 속이는 플레이를 한 것 같습니다. 가짜 항복문서가 명에 전달 되고, 히데요시의 요구는 명의 책봉과 조공 무역을 원한다로 정리 되어 전달 되었습니다. 이러면서 명의 책봉사가 부산에 도착하는데, 이 때 히데요시는 조선의 왕자를 대려와라라고 요구하였다 합니다.

 

자 어찌저찌 명의 책봉사가 일본으로 건너가고 히데요시와 여러 다이묘들을 만나 명의 관복을 받아 입어보고 여러 행사를 진행합니다. 그런데 이건 다 쇼이고, 히데요시는 조선의 왕자가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격노하며 다시 전쟁을 재개합니다. 받을 건 다 받고 말이죠. (그렇게 명 관복이 입고 싶었냐?)

 

결국 협상은 다 쇼였던 것이죠. 지금도 그렇지만, 이러한 협상은 일종의 정치적 쇼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히데요시에게 강화는 시간을 벌기위한 쇼였지, 애초에 이렇게 물러날 거였으면 전쟁을 일으키지도 않았겠죠. 일본, 특히 히데요시에게는 소진할 병력과 세력이 아직 건재했던 만큼 협상할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재침 (정유재란)

 

자 이렇게 다시 전쟁이 발발합니다. 임진왜란은 임진년에 일어났다 하여 임진왜란이고, 정유재란은 정유년에 일어났다 하여 정유재란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통칭해서 그냥 임진왜란이라고 하죠. 요즘은 조-일 전쟁이라고도 하더군요.

 

어쨌든 임진왜란은 가위 바위 보로 비유를 하자면 일본이 바위를 냈으나, 조선이 보를 내서 겨우 막은 상황이라면, 정유재란은 보자기를 들고 있는 조선을 향해 일본군이 가위로 날카롭게 짜르는 형국이 됩니다. 우선 가장 먼저 손을 댄게 이순신입니다. 고니시가 천재적인 권모술수를 동원해 선조와 이순신을 이간 시켜 이순신을 수군에서 제거해 버립니다. 미리 정보를 흘려 가토 기요마사의 군대가 바다를 건너고 있다고 조선에 알리는데, 선조와 조선은 단순하게 '육지는 일본이 킹왕짱, 바다는 조선이 킹왕짱'이라는 1차원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단순 무식하게 조선 수군에게 바다로 나가서 건너오는 일본군을 요격하라고 명령합니다. 이순신은 이를 거절하고 명령 불복종으로 한양으로 압송 되게 됩니다. 이순신의 생각은 내가 탄핵을 당하더라도 조선 수군만큼은 보존해야 한다는 생각이었을 것입니다.(근데 원균이...)

 

결국 이순신은 모진 고문을 받게 되고, 선조는 아예 이 기회에 이순신을 죽일 마음까지 먹습니다. 그리고 수군통제사에 원균을 앉히는데, 아마도 선조의 생각은 조선의 수군은 강하기 때문에 원균이 지휘를 하더라도 크게 문제가 없을 것이라 판단한 것 같습니다. 아니 선조는 결국 그렇게 믿고 싶었고 그렇게 만들 생각이었습니다. 훗날 선조의 공신 순위를 봐도 권율, 이순신, 원균이 모두 1등 공신에 들어가 있습니다. 거의 싸이코패스급으로 망상이 현실이 되는 수준의 선조였습니다. 결국 이순신은 죽음 직전에 목숨은 신하들의 간청으로 건지나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체 백의종군하여 권율 부대에 이등병으로 배속됩니다. 원균은 모두 다 알다시피 칠전량 해전에서 수군을 모조리 다 증발시키고 말고요.

 

이렇게 이순신과 조선수군이라는 가장 큰 장애물을 제거한 일본은 이번에는 전라도만 목표로 전격적인 공격을 합니다. 이미 진주성은 옛날에 떨어져 있었고, 아무리 권율이라고 해도 일본군 20만의 군대를 집중적으로 공세를 해 오자 계속 무너져 내리며 전주성마져 함락 되고 맙니다.

 

 

결론적으로 얘기해서 제가 앞서 1~4편 동안 써왔던 조선의 모든 영웅담과 성과들이 모두 한방에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는 얘기입니다. 선조런으로 해서 청야전술을 펼치고 이순신이 바다 보급로를 막고, 전라도와 진주를 막고 명군이 밀고 내려와 겨우 5:5의 시리즈 타이를 만든게... 고니시와 선조의 콤비 플레이로 0:10으로 스왑 될 위기에 쳐했다는 말입니다.

 

 

명량해전

 

다음편에 계속...

 

 

 

14
Comments
2018-08-31 17:16:28

잘봤습니다. 술술 읽히네요~~ 다음편이 기다려집니다!

 

여담인데,

만력제가 조선의황제, 고려천자 소리를 듣는다면

선조는 일본의 xxx 정도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듣고 또 들어도 허탈하네요.

2018-08-31 17:22:58

제가 그동안 임진왜란을 알던것이 맞나 싶을정도로 재미있게 보고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매니아 분들의 능력이란

6
2018-08-31 17:37:57

사실 고니시 유키나가가 회담을 맡은건 이미 임란 전 조선과의 조율을 고니시 유키나가가 담당했기 때문입니다. 고니시 유키나가의 사위인 대마도주 소 요시토시가 일본과 조선 사이의 연결망이자 외교책이었기 때문이죠. 임란 전에도 고니시 유키나가와 소 요시토시는 어떻게든 전쟁을 막으려 사부작거렸는데, 이 외교 실패의 책임으로 제 1 선봉장을 맡게 된 것이고요. 그리고 말씀하신 부분 중 구로다 가문은 오히려 히데요시의 직속 가신단에 속합니다. 특히 구로다 나가마사는 어렸을 때부터 히데요시의 인질로 가토 기요마사, 후쿠시마 마사노리 등 오와리 출신들과 함께 성장했고 그 아버지 구로다 간베에 역시 히데요시의 하리마 진출 후 부터는 히데요시의 직속 가신의 성격을 지녔습니다.

명나라의 책봉관계는 일본을 사대교린의 관계에 편입시키겠다는 의미로 당시 세계정세에서 매우 큰 의미를 지닙니다. 일본은 중국의 황제에게 책봉을 받지 않았고, 이에 중국과 사대교린의 관계를 맺은 그 제후국, 예컨대 조선이나 류큐, 태국 등과 직접적인 무역 등은 할 수 없었습니다. 이 사대교린이 지금으로 치면 지역경제체제에 편입이 되느냐 아니냐의 문제이므로 굉장히 큰 사건이죠. 물론 일왕은 천황이니 책봉을 받을 수 없고, 막부 설립 이래 실권자인 쇼군은 왕이 될 수 없어서 오래도록 책봉을 못했는데, 히데요시를 책봉함으로서 일본을 하나의 제후국으로 인정하겠다는 의미입니다. 명은 자신의 질서체제에 일본을 넣겠다는건데, 히데요시가 바란건 그게 아니었고 결국 심유경이라는 희대의 이빨꾼과 고니시 유키나가의 입맛에 국제 사기쇼가 발생한거죠.

4
2018-08-31 17:49:19

여기서 첨언하자면 나가마사의 아버지 간베에가 타케나가 한베에와 함께 히데요시를 양쪽에서 보필하던 군사죠. 한베에가 죽고 간베에가 히데요시를 보필하게 되는데. 혼노지 변으로 인해 노부나가가 죽게됨을 알게되자마자 간베에가 드디어 주군의 세상이 되었다고 하면서 노부나가의 죽음을 슬퍼하던 히데요시에게 간하죠. 뭐 여기서 간베에에게 섬뜩함을 느꼈다고 해서 일본천하를 차지하고도 가장 큰 공신중에 한 명이었다고 할 수 있는 간베에에게 고작 10만석 정도 밖에 주지 않죠. 물론 간베에 자체도 야망똘똘인 사람이라 후에 세키가하라가 발발했을 당시 큐슈를 휩쓸던거 보면 히데요시의 견제는 적절했다고 보고요(간베에의 히데요시에 대한 충심이 거짓됐다고는 생각치는 않지만) ㅡ 제가 지금 이렇게 간베에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서술하는건 삼국지 언능 끝내시고 전국시대 인물편 하시라는 압박일까요? 아닐까요?

2018-08-31 20:12:09

열심히 써보겠습니다 그래도 간베에가 첫 주인공이 될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죠...흐흐

WR
1
Updated at 2018-08-31 18:48:59

오 많이 배워갑니다. 사실 이번 편 쓰면서 저도 공부하며 썼습니다. 정말 정치 외교는 제 관심밖이라... 

 

근데 저도 쓰면서 느낀거지만, 임진왜란은 어찌보면 히데요시 가문의 세력만 참여했다 볼 수 있는데, 만일 전 일본이 참여하는 그런 총력전이었다면 조선-명도 막아낼 수 있었을까 싶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이제 막 싹이 트고 있던 청나라마져도 쓸리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2
Updated at 2018-08-31 19:06:04

전혀 아닐겁니다. 가토가 북방진출했다가 여진족에게 관광도 그런 관광이 없을만큼 핵관광을 당하고 돌아옵니다. 물론 병참이 받쳐주지 못했고 가토군 일군만 간 결과이긴 하지만 중원을 제패한 청의 근원들은 그렇게 만만한 존재들은 아니었습니다

전 일본이 진출하기는 무리가 있었죠. 우선 간토전봉으로 에도개발을 하고있어 임진왜란 참여에는 한발빼는 도쿠가와를 저지할 세력이 필요하기도 했고 저 서국세력들이 그나마 히데요시가 대군을 맡겨도 확실하게 컨트롤 할 수 있는 군대이기도 했었기에

1
2018-08-31 19:48:20

음 사실 히데요시 가문의 세력만 참여했다는게 일본 전국의 참여를 의미합니다. 1590년 호조 정벌 이후 전 일본은 히데요시 지배 체제가 확립되었습니다. 임진왜란에 동원된 다이묘들이 큐슈,시코쿠, 그리고 주코쿠 등 관서 지방에 집중되어 있긴하지만, 관동의 다이묘들이 동원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주로 선봉이었던 1군부터 9군의 호소카와 타다오키 등 간사이 지방 다이묘들은 임란 당시에 조선으로 넘어왔다면 10군 이하 18군까지의 군단은 일종의 예비대 격으로 전초기지였던 큐슈의 나고야에 진을 치고 대기했습니다. 본인이 직접 넘어가진 않았지만 우에스기 카게카츠도 휘하의 나오에 카네츠구 이하 병력들을 잠시나마 보낸 적이 있고, 다테 마사무네도 조선에 넘어와서 패악질 부리고 돌아갔죠. 2인자 격이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나 마에다 도시이에 등도 나고야성이나 교토 후시미성 등에서 후방 지원 업무를 담당했고요. 사실상 전 일본이 동원된 것입니다.
여진족 말씀을 하셨는데, 누르하치가 임란 당시 조선에 원군을 보내겠다며 접근한 적이 있는건 아마 잘 알고 계실겁니다. 뭐 이런저런 사정들 때문에 조선에서 거부하긴했는데, 누르하치가 이끄는 여진족 기병단과 일본의 보병이 붙으면 어떤 결과였을지 궁금은 합니다. 물론 직접 비교는 불가능하지만 병자호란 당시 쌍령전투에서의 청 기병대의 파괴력을 생각해보면 의외로 쉽게 깨부술 것 같기도 하고요.
교린관계에 대해 조금 더 말씀드리면 중국 황제에 의해 책봉을 받는 국가들은 교린 관계로서 일종의 형제국인데 이게 생각보다는 가까운 관계였습니다. 실제로 임진왜란이 벌어지고 명나라의 개입이 결정되던 시점에 같은 교린국이던 태국에서도 원군을 보내도되는지 명나라에 허락을 받기도 하거든요.

WR
1
2018-08-31 19:52:50

너무 진지빨면 안 되겠지만, 전 그냥 다카다 신겐 - 우에스키 겐신 - 도쿠가와 이에야스 - 오다 노부나가 - 히데요시 급의 리더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뭔가 임란에 일본군은 그냥 팀웍 없는 올스타 같은 느낌이랄까요? 그냥 한번 상상해 봤습니다. 

Updated at 2018-08-31 20:03:02

저도 장난삼아 진지하게 접근해보며, 군재가 뛰어난 건 아니었지만 임진왜란 때의 첫 총대장이었던 우키타 히데이에, 그리고 정유재란 때의 총대장인 고바야카와 히데아키는 히데요시의 양자이자 후계자들로서 사실 엄청난 권력이었습니다. 게다가 각각 50만석 이상의 대다이묘들이었고요. 그럼에도 각 다이묘들이 주력이 되다보니 갈등은 피할 수가 없었겠죠. 말씀하신 신겐, 겐신 등은 자신들의 가신단을 특유의 카리스마로 이끌었지만 그 겐신 조차 호족들이 허구헌 날 반항하는 일이 잦았는데, 급편성된 다이묘 연합군이 엄청 넓은 전선에 퍼져있는 상황에서 일사분란한 움직임을 보여줬을지는 모르겠어요. 실제로 세키가하라 전투 때가 정말 올스타전인데, 서군은 말 그대로 사분오열이었으니까요. 반면에 동군은 타도 이시다 미츠나리라는 공통의 이데올로기가 있었고 총대장이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 혼자 200만석의 영지에 4만 이상의 병력을 운영하는 상황에서 힘 앞에 깨갱할 수 밖에 없었고요. 조선

Updated at 2018-08-31 17:55:05

연재부분 공감합니다. 쓰고 싶어져서 쓰게됐는데 쓸 내용에 압도당하는 귀찮음과 압박감이란..

WR
2018-08-31 18:45:44

정말 이번 편이 내용에 압도당하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정말 하나도 제가 쓰면서 재미있는 내용이 하나도 없는 그런 분량이네요... 다음편은 좀 신날 듯 합니다.

2018-08-31 18:03:29

이해는 안되지만 제가 선조였다고 해도 크게 다르진 않았을 겁니다.

일단 신립이 무너졌고, 왜군을 막을 힘이 없다 판단했을 때 런한 건 나이스한 판단이었지만

그 나이스한 판단으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거지요....

나이스한 판단때문에 이순신을 질투한거고

의병장들을 다 잡아 먹은거구요.

 

권력을 지키려면 선조는 어떻게든 이순신이든 누구든 죽여야 했습니다.

나이스한 판단을 했거든요.

2018-08-31 19:34:07

늘 재밌게 잘 읽고 있습니다. 

글쓰기
검색 대상
띄어쓰기 시 조건








SERVER HEALTH CHECK: 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