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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이런 거 알고 계셨나요? - 마지막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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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6-02 01:46:29

1. NBA에서 지난 30년 동안 한 시즌에 최다득점을 올린 팀은 1990~91 시즌의 덴버 너깃츠로 경기당 119.9점을 기록했습니다. 덴버는 그 시즌에 20승 62패를 거둬 리그 전체에서 최하위의 성적을 올렸습니다.



2. 시카고 불스가 여섯번 NBA 파이널에 진출한 시즌에 마이클 조던은 우승 6회, 파이널 MVP 6회, 시즌 득점왕 6회, 플레이오프 최다득점 6회, NBA 퍼스트팀 6회, 디펜시브 퍼스트팀 6회 그리고 총 결장회수 6회를 기록했습니다. (두번째 쓰리핏을 이룬 3시즌에는 전경기 출장 )


3. 오스카 로버트슨은 어린 시절부터 플레이를 하면서 남을 가르치는데 일가견이 있었습니다. 그는 선수시절 내내 팀메이트를 가르쳤고, 코치에게 훈수했고, 언론과 농구에 대해 많은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로버트슨은 은퇴후 CBS에서 잠깐 해설을 맡았던 것을 제외하면 어는 팀에서도 코치나 감독으로 불러주지 않았고, 방송국에서도 불러주지 않았습니다. 너무 자아가 강해서 주변이 감당하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4. NBA 역사에서 한 시즌에 200스틸과 100블락을 동시에 달성한 선수는 올라주원, 조던(2회)과 피펜 3명 밖에 없습니다.


5. 데니스 로드맨의 커리어에서 유일한 트리플 더블은 불스가 72승을 올린 95~96 시즌에 일어났습니다. 96년 1월 16일 식서스와 경기에서 로드맨은 10득점, 10어시스트와 21리바운드를 기록했습니다. 로드맨의 활약으로 시카고가 승리하여 불스는 그날까지 32승 3패를 기록했습니다.


6. 21세기 최초로 3명의 선수가 정규리그 평균득점 20점 이상을 기록한 팀은 07~08 시즌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입니다.  07~08 워리어스 이전에 마지막으로 3명의 선수가 정규리그 평균득점 20점 이상을 기록한 것은 17년 전 TMC 트리오가 활약한 90~91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입니다. 07~08 워리어스는 배런 데이비스, 스티븐 잭슨, 몬타 엘리스가 평득 20점 이상을 기록했지만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했습니다. 07~08 워리어스 이후 3명의 선수가 정규리그 20득점 이상을 기록한 팀은 2016~17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인데 이 팀은 역대 플에이오프 최고 승률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2018~19 워리어스도 역시 3명이 20득점 이상이었는데, 결승에서 토론토에 패했습니다.


7. 이 마지막 글은 진지하기보다 웃자고 쓴 것입니다. (물론 내용만 놓고 보면 사실입니다.)

2003년 드래프트에서 디트로이트 피스톤스는 전체 2번 픽으로 유럽의 촉망받던 센터 다르코 밀리시치를 뽑았습니다. 당시 1번 픽은 르브론, 3번은 멜로, 4번 보쉬, 5번은 웨이드였습니다. 밀리시치가 데뷔한 03~04 시즌에 피스톤스는 좋은 성적을 올렸습니다. 실제로 밀리시치가 출장한 경기에서 피스톤스의 정규리그 승률은 85%이고 플레이오프 승률은 88%였습니다. 디트로이트 피스톤스는 그 시즌에 레이커스를 꺾고 NBA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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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WR
2020-06-02 01:14:03

맞아요. 90년 3월말에 그 경기가 있었죠. 1월말에 칼 말론이 61점을 기록하며 득점왕을 넘보자 조던은 그 경기로 득점왕을 거의 결정지었었죠. 제가 기록지를 찾아보지 않고 거의 기억만으로 이런 글을 쓰다보니 지금같은 실수가 발생하네요. 아마 그 경기 뿐일 겁니다. 글의 내용은 수정하고 다른 것으로 대체하겠습니다. 

WR
2020-06-02 14:48:17

이건 완전히 저의 레이더가 탐지할 수 있는 영역 밖에 있었네요. 지금까지 네번에 거쳐 시리즈를 쓰면서 기록지로 확인하지 않고 기억에 의존한 게 많았는데, 이 댓글을 보니 여기서 이 시리즈를 멈추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2020-06-02 01:07:12

상위픽 중에 멜로만 우승못했네요..인생이란..

WR
2020-06-02 01:19:00

디트로이트가 그 해에 밀리시치 대신 멜로를 뽑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지금까지도 제일 궁금합니다.

WR
2020-06-02 01:41:47

그런 토론이 있었는지 저는 몰랐네요. 그런데 말씀하신 두 개의 정반대 시나리오가 모두 일리가 있어서 더더욱 궁금해집니다. 과연 멜로가 있었어도 라시드를 데려왔을까 부터요.

2020-06-02 01:56:40

말씀하신 것처럼 쉬드를 데려오기전 

멜로 픽이 우선이군요...

멜로가 왔으면 라쉬드를 데려오지 않았을지도 모르니...

 

Updated at 2020-06-02 01:20:38

90-91덴버 승률보니까 120점이상 실점한게 대부분이었다는건데... 극도의 공격몰빵 농구였나보군요

WR
2020-06-02 01:22:52

극단적인 런앤건은 폴 웨스트헤드 감독(매직 존슨이 데뷔시즌 우승할 때 감독)의 전매특허였습니다.

2020-06-02 09:51:18

근데 덴버는 본래 덕 모 감독 시절부터 런앤건으로 유명했던 팀이었죠. 모 감독은 런앤건을 바탕으로 80년대 덴버를 9년 연속 플레이오프에 올린 명장이었지만 아쉽게도 플레이오프에선 컨파 진출이 최고의 성과였죠.

한편 덴버 구단이 매각되자 새 구단주는 더이상 런앤건으로는 우승권에 한계가 있음을 지적하며 런앤건을 버리고 수비 지향 농구를 하도록 주문했죠. 결국 모 감독은 프런트와 갈등 끝에 감독직에서 물러났고, 웨스트헤드가 새 감독으로 부임했습니다.

웨스트헤드는 레이커스 시절 런앤건으로 우승을 맛본 감독이기도 하나, 런앤건 농구의 신봉자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레이커스 시절에도 팀 템포를 좀 줄이고 수비 농구 위주로 가려고 계획했었죠. 근데 계속 런앤건을 고집하던 매직 존슨과 의견이 충돌했고, 감독과 스타 플레이어간에 힘겨루기 끝에 구단주 측의 성원을 등에 업은 매직이 승리, 웨스트헤드는 감독직에서 물러났죠. 그리고 매직을 지지하던 어시스턴트인 팻 라일리가 새 감독이 되었습니다. 웨스트헤드는 오히려 런앤건 때문에 억울하게 코치직을 내려놓은 셈이죠. 당시 여론은 오히려 웨스트헤드를 옹호했고 제아무리 스타라지만 감독을 내쫓는 데 앞장선 매직이 건방지다며 욕하는 분위기였죠. 이 일로 매직의 이미지는 일시 나빠졌지만 결국 그해 런앤건으로 다시 우승을 차지하면서 비판 여론을 종식시켰죠.

웨스트헤드가 덴버 온 것도 런앤건을 하기 위함이 아닌 더이상 하지 않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모 감독의 런앤건 체제 하에 익숙했고 런앤건을 지지하던 선수단과 큰 갈등에 봉착했죠. 선수들은 비록 파이널엔 못갔지만 자신들의 스타일로 매년 훌륭한 성적을 냈는데 거기 만족하지 못하고 아버지같던 모 감독을 해임해버린 구단 측에 크게 반발했죠. 그래서 웨스트헤드가 뭐라 하던 아랑곳않고 계속 자신들의 런앤건을 고집했고, 그 결과가 저런 놀라운 득점과 처참한 실점으로 나타난거죠. 제아무리 덴버의 런앤건이 강하다 한들, 선수단과 코치진에 으르렁대는 막장 상황에서 팀이 승리할 순 없었을겁니다.

결국 덴버는 플옵 단골 강팀에서 순식간에 리그 최하위팀으로 전락했죠. 부임 첫 해에 선수단 장악에 실패한 웨스트헤드는 결국 2년차땐 선수들의 고집을 꺾고 런앤건을 포기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래서 덴버는 팀칼라가 확 바뀌었는데 수비는 좀 좋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불안했고, 평균 득점은 20점 가까이 하락하며 단숨에 리그 꼴찌급의 허약한 공격력으로 전락해버렸죠. 수비가 좋아져서 적게 실점하여 승리하는 팀이 아닌, 공격력이 나빠져서 적게 득점하면서 실점도 적잖게 해서 패배하는 팀이 되버린 겁니다. 결국 덴버의 성적은 전년보다 약간 향상되긴 했지만 여전히 바닥을 맴돌았고, 2년간 팀을 추락시키는 것 외엔 성과를 내지 못한 웨스트헤드 감독은 결국 해임되고 말았죠.

덴버의 모 감독 이야기는 슬램덩크에 나온 풍전의 노 감독 이야기와 기가막히게 흡사합니다. 풍전도 런앤건을 바탕으로 매년 전국대회 8강에 드는 강호였지만 학교에선 그 이상의 성적을 요구하며 런앤건을 고집하는 노 감독을 해임해버렸죠. 그리곤 수비를 강조하는 김영중이란 젊은 감독을 데려오죠. 하지만 노 감독의 런앤건을 동경해 풍전에 입학했던 선수들은 노 감독 해임에 크게 반발했고, 새 감독의 지시를 전혀 따르지 않으며 계속 런앤건을 고집했죠. 결국 팀웍은 엉망이 되었고 결국 전국대회에서 주인공팀인 북산에게 패배했습니다.

WR
2020-06-02 12:13:54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제가 기간을 지난 30년으로 끊은 이유는 덕 모 감독의 80년대 중반 덴버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90~91 덴버는 모 감독시절보다 훨씬 극단적인 런앤건이었습니다. 글자 그대로 묻지마 런앤건이었죠. 그래서 저런 간단한 댓글을 쓴 거였습니다. 

 

그해에 90년 12월 말까지 올랜도 울리지가 득점 1위를 달렸습니다. 그러다가 부상으로 아웃되었고, 그때부터 워싱턴의 버나드 킹이 2월 말까지 득점 1위를 지켰던 기억입니다. 울리지가 빠지고 나니 덴버의 승률이 조금 올라갔습니다. 킹이 3월초에 부상으로 아웃되었고, 그 이후부터 득점경쟁은 조던의 독주가 이어졌었죠. 

2020-06-02 15:26:20

아... 풍전 '노감독' 이야기가 실제 있었던 일이군요! 몰랐습니다.

2020-06-02 09:21:16

저해는 바닥을 기었지만, 80년대 잘 나갈때에도 엄청 공격농구로 몰빵했었어요.

감독 성향들도 그렇고, 아무래도 산동네에서 시즌의 반을 보내는 팀이라

그래도 상대팀보단 고지대에서 덜 헥헥거리는 면이 있다보니... 업템포 가져가는게 유리했죠.

그래서 80년대 플옵 꾸준히 나갈때도 팀 득점은 상위 3위권, 실점도 하위 3위권이었을겁니다.  

 

물론 90-91시즌은 80년대 전성기가 딱 끝나고 팀이 어수선하게 리빌딩 하던 때라

전체적으로 로스터 구성이 이합집산 느낌도 있어서 체계적인 수비를 기대하기도 힘들고,

제일 간편하게 닥공을 할 수 밖에 없기도 했을겁니다.

그래서 경기당 119.9 득점과 130.8실점이라는 결과가 나왔죠.

2020-06-02 11:43:34

89년에 덴버 구단이 매각되었을 때 새로운 구단주 측은 런앤건으로 덴버가 우승하긴 어렵다며 농구 스타일을 바꿀 것을 주문하죠. 하지만 런앤건의 대부인 덕 모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1년 내내 프런트와 싸우다가 사임했습니다. 모 감독 체제 하의 덴버는 9년 연속 플옵에 가고 약간의 부침은 있지만 40승대 중후반 정도 기록하던 팀 칼라 확실한 중상위권 팀이었죠.

덴버 구단은 런앤건 덴버 농구의 상징인 간판 스타 팻 리버를 트레이드하고, 팀 리빌딩을 위해 버니 비커스탶을 새 단장에 앉힌 뒤 덕 모를 몰아내고 폴 웨스트헤드를 새로운 감독으로 앉힙니다. 웨스트헤드는 레이커스 시절 런앤건으로 유명하긴 했으나, 실상은 런앤건을 버리고 지공 위주의 수비 농구로 가려고 시도하다 레이커스 감독직에서 쫓겨난 경험이 있었죠. 모를 몰아내고 웨스트헤드를 데려온 건 얼핏 덴버의 팀 칼라를 유지하려는 것으로 보였지만 실은 교묘하게 런앤건을 포기하려는 술책이었습니다.

하지만 10년 가까이 모 감독 밑에서 런앤건 철학으로 농구를 해온 덴버 선수단이 쉽사리 변화를 받아들이기 어려웠죠. 감독이 바뀌고 프런트가 뭐라 하던 덴버 선수들은 계속 런앤건을 고집했죠. 선수단과 코칭 스탶, 프런트가 으르렁대는 막장 상황에서 팀이 제대로 돌아갈리 없었고 저런 막장 성적이 나왔던 겁니다.

수비는 개나 줘버리고 공격만 올인하는 스타일의 마이클 애덤스, 올란도 울리지 등이 묻지마 막장 런앤건 농구를 주도했고, 덴버는 명품 런앤건 팀에서 리그의 조롱거리로 전락했죠. 1년간 지지고 볶은 뒤 팀에서는 이번엔 애덤스와 울리지마저 보내버리고 드래프트에서 정통 센터 무톰보를 뽑으며 다시금 수비 지향의 지공팀으로 바꿀 의지를 천명했죠. 그래서 이듬해 덴버 농구는 많이 느려졌지만 아직 수비 조직력이 다져지지 않는 상황에서 득점도 못하는 팀으로 전락하며 여전히 좋지 못한 성적에 허덕였고 결국 웨스트헤드는 경질됐습니다. 당시 덴버 농구는 프랜차이즈 사상 최악의 흑역사로, 하나의 스타일로 10년간 굳어진 팀을 한 순간에 바꾸려는 무리한 시도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보여준 좋은 예였죠.

2020-06-02 12:36:14

복잡한 뒷배경이 있었네요. 저는 덕모 감독시대와 무텀보-압둘러프-엘리스 시대사이의 세대교체정도로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주축인 알렉스 잉글리시나 월터 데이비스도 워낙에 노장이었고.. 그렇다면 덴버의 저 난장판(?)은부자연스러운 세대교체+팀컬러 교체가 가져온 참사라고 봐야겠네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WR
2020-06-02 12:44:38

허슬 플레이어님께서 어떤 경로로 그런 이야기를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당시 덴버를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웨스트헤드 감독 부임이후 막장 런앤건은 훨씬 심화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게 감독의 의도가 아니었다면 훨씬 더 큰 문제입니다. 

 

올랜도 울리지는 직전 시즌에 레이커스에서 활약하면서 커리어 최초로 매스컴에서 칭찬을 받았습니다. 이기적인 플레이를 버리고 팀 안에 녹아들어가서 카림이 떠난 레이커스가 정규시즌 1위에 오르는데 공헌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90~91 시즌 덴버로 옮기면서 불스 시절 이상으로 막장의 이기적인 플레이어로 되돌아갔습니다. 팀의 다른 핵심인 아담스와 라스머센도 그 시즌 전부터 덴버에서 플레이했지만 90~91 시즌처럼 막무가내로 달리며 난사하던 선수는 절대 아니었습니다. 특히 아담스 플레이는 감독의 의중이 반영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었을 겁니다. 또 다른 핵심멤버인 크리스 잭슨은 루키였기 때문에 덴버의 전통과는 무관한 선수입니다.

2020-06-02 13:54:29

웨스트헤드 감독이 부임한 후에, 팀 오펜스 스타일은 그대로이면서 디펜스가 그렇게 삽시간에 무너질 순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런 극단적인 무모한 런앤건에서 단 한 시즌만에 오히려 공격력 꼴찌급 팀으로 변하는 것도 부자연스럽고요. 90-91시즌의 덴버는 거의 통제가 되지 않는, 케미스트리도 거의 무너진 상태의 팀이었다고 봅니다. 말씀하신대로 울리지의 나쁜 버릇이 드러나 한 해 만에 다시 이기적인 선수로 돌아온 것도 그런 환경 탓이 커 보이고요.

 

아담스는 그 전에는 팻 리버와 함께 볼 소유를 나눠가며 뛰었기에 그의 난사 기질을 어느 정도 억제해가면서 덕 모의 런앤건 시스템에서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해냈죠. 하지만 리버와 모가 떠나고 팀 시스템이 무너진 상태에서 아무런 제재 장치도 없이 멋대로 농구를 했다고 보여집니다. 마이애미, 디트로이트 등에서 잘 짜여진 시스템 하에 롤 플레이어로 뛸 때는 수비 좋고 슛 좋은 가드였던 마이크 제임스가, 토론토에서 단 한 시즌 동안 수치상으로만 커리어-하이를 찍었을 뿐 이기적인 스코어러로 팬들의 엄청 지탄을 받은 것과 비슷한 흐름이죠.

 

웨스트헤드의 90-91시즌은 거의 팀을 방임한 것과 다름없죠. 그만큼 사실 모 감독의 해임과 리버의 이적 등이 기존 덴버 선수단을 많이 뒤집어놓은 상태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게 아니고 의도된 계산 하에 전략적으로 런앤건을 펼친 거라면 웨스트헤드 감독은 정말 무능한 위인일테죠. 아니 그때 농구는 런앤건이라기보단 그냥 막장 수비일 뿐이었으니까요. 

 

1년의 혼란기를 거쳐 결국 팀 스타일을 완전히 바꾸어놓은 91-92시즌이 오히려 웨스트헤드의 본래 청사진에 가깝다고 보여집니다. 애초에 구단측이 원했던 것도 덕 모의 런앤건 팀을 탈피하는 모습이었고요.

WR
2020-06-02 14:28:47

이 주제로 허슬 플레이어님과 토론을 해도 결론이 나지 않을 거 같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덴버가 91년 시즌의 막장농구에 대한 성찰도 있고 드래프트에서 무텀보를 뽑고 나서 팀 컬러를 바꾸려고 했던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당시에 NCAA 농구를 거의 주목하지 않았고, 파이널 4에도 올라오지 못한 학교는 아무 관심도 받지 못했을 겁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1990년 로욜라 메리마운트 대학의 돌풍은 NBA 파이널 이상의 전국적인 관심을 끌었습니다. 당시에 농구에 전혀 관심없던 사람들도 LMU 센세이션은 알았을 정도니까요. 그때 LMU 감독이 웨스트헤드였습니다. 그리고 그 팀 운영의 판밖이가 바로 90~91 너깃츠였고요. (적어도 제가 느낀 바는 그랬습니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팀이 아니던 LMU는 90년도 NCAA 토너먼트에 올라 매 경기 140~150 득점을 올렸습니다. 전통적인 강호인 미시건 대학과 경기에서 정확히는 생각나지 않지만 150점 정도를 넣어서 승리하자 전국이 난리 났습니다. 학교 역사상 최초로 토너먼트 8강에 올라 크리스 잭슨이 이끄는 루이지애나 주립대와 붙었는데 (당시 쉬킬 오닐은 1학년이었을 겁니다) 양팀 모두 140점이 넘는 득점을 올려 ESPN과 CNN에서 하루 종일 그 이야기로 방송을 채웠습니다. LMU가 루이지애나에게 패함으로서 돌풍은 거기에서 멈췄지만 바로 그 해에 웨스트헤드가 덴버의 감독으로 부임했고, 덴버의 팬들이 원하던 것이 바로 LMU 식의 농구였습니다. 적어도 제가 생각한 바로는 그랬습니다.

2020-06-02 16:52:44

예 알겠습니다. 저로서도 당시의 배경 등에 대해 좀 더 면밀히 살필 필요가 있을 것 같네요. 당시 덴버의 새 구단주 그룹이 런앤건의 색채를 버리고 수비를 강화해 그냥 플옵 단골팀이 아닌 컨텐더 급으로 팀을 강하게 만들 청사진이 있었다는 건 저도 확인한 바 있습니다. 그래서 버니 비커스탶을 단장에 앉히고 덕 모를 내쫓은 뒤 웨스트헤드를 데려온건데, 의문이 남는 건 웨스트헤드를 런앤건의 달인으로 데려온 거라면 이미 검증된 런앤건의 달인인 덕 모를 굳이 내쫓을 이유가 있을까이며, 웨스트헤드가 그래도 나름 리그에서 우승도 맛본 명장인데 로욜라의 런앤건을 도입했다고 해서 이미 런앤건에 익숙한 선수단이 한 해만에 그렇게 망가질 수 있나 입니다. 여러모로 당시 상황에 대해 의문나는 부분이 많네요. 더 강한 런앤건을 위해 웨스트헤드를 데려왔다가 1년만에 그 극단적 전략을 다시 수정하고 또 오히려 공격력 떨어지는 지공팀을 단기간에 만드는 등 팀 운영 방향성 등에 의문점 투성이입니다. 로욜라의 런앤건이 안 통한다고 속단했다면 그때 바로 웨스트헤드를 경질했어야 하지 않나, 구단주 측이 런앤건을 지양하고자 하는 입장이었다면 애초에 웨스트헤드를 데려오지 않고 90-91시즌부터 지공에 능한 다른 감독을, 그것도 물러나는 덕 모에 대응할 급의 감독을 데려와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덕 모의 퇴진부터 해서 당시 시대적 배경에 대해 좀 더 고찰할 필요가 있어 보이네요. 웨스트헤드도 런앤건의 후속주자로 데려온거면, 사실 91-92시즌 끝나고 바로 경질되어 버린 건 오히려 아구가 맞는 측면도 있고요. 이름값 있는 감독을 한 해 만에 자르고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니...

WR
2020-06-02 17:06:25

네. 말씀 고맙습니다. 찾아보니 1990년 LMU와 미시건의 전체경기가 유튜브에 있습니다. 최종스코어는 149-115 네요. 저녁에 오랜만에 추억에 젖어 이 경기를 감상해볼까 합니다.

https://youtu.be/GAX2jr5WUDY

2020-06-02 01:57:27

오스카 로버트슨은 최근엔 NBA 경기장에서 가끔 얼굴을 드러내더군요.

 

엄청난 레전드라 코치라도 하는 걸 한번 보고 싶은데 아쉽습니다.

 

이 시리즈가 마지막인 것도 아쉽습니다..

 

WR
2020-06-02 12:15:10

재미있는 것은 선수시절 오스카 로버트슨과 매사에 비교되었던 제리 웨스트는 은퇴 후 단 한번도 NBA 주변을 떠난 적이 없고 아직까지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WR
2020-06-02 12:17:40

리그 최상위 성적을 거둔 레이커스가 매직과 워디를 데려오던 시절과 흡사했습니다. 말씀처럼 드래프트 결과는 실패였지만요. 그래서 그때 멜로가 디트에 갔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아직도 떠나질 않습니다.

2020-06-02 05:54:09

조던의 결장수는 정말 후덜덜하군요. 200스틸 100블록 2회도 경이롭습니다.

WR
2020-06-02 12:19:10

6회 결장 중에 4번이 92~93 시즌이었습니다. 조던의 심신이 지쳐있었고, 잔 부상도 제법 있었습니다. 그때 조던의 득점이 올라간 중요한 이유는 도미닉 윌킨스가 계속 쫓아왔기 때문입니다.

2020-06-02 07:02:28

올시즌
테이텀 워커 브라운 3명이 20점 넘는데
과연 어떤 결과 낼지 궁금하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WR
2020-06-02 12:22:09

2017년 캡스도 시즌 내내 3명이 20점을 넘다가 마지막에 깨졌습니다. 일년 내내 그것을 지키는 건 정말 쉽지 않습니다. 올해 보스턴도 풀 시즌이었다면 과연 3명이 끝까지 20점을 지킬 수 있었을까 궁금해집니다. 브라운은 아슬아슬하지 않나요?

2020-06-02 07:46:56

4. 올라주원은 그냥 200스틸 100블록이 아니리라 봤고, 역시 200-200이더군요. 아마 유일?

5. 로드맨이 트덥하던날 영상에 3점 넣는 것도 나오는데, 의외로 로드맨의 통산 3점은 82-355나 됩니다. 어떤 시즌은 32-101, 31.7%나 되네요.

WR
2020-06-02 12:23:58

네. 올라주원은 우승하기 전까지 200-200을 트레이드마크처럼 달고 다녔습니다. 척 데일리 감독은 로드맨이 뛰어난 삼점슛 능력을 가졌다고 여러번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치열한 경기에서 로드맨이 삼점슛을 시도하면 얼굴 표정이 일그러졌습니다.

2020-06-02 07:47:53

 1. 덴버는 최고 득점팀이기도 했는데 승률 꼴찌인거 봐서 최고 실점팀이기도 하지 않았을까요...

119점 내고 질려면 120점을 실점해야되는데.. 어이쿠나..

2020-06-02 09:06:27

당연히 최고 실점 팀이고요. 그야말로 경이롭게 경기당 130.8실점을 했습니다.

2020-06-02 09:06:21

 데니스 로드맨의 트리플더블 경기는

제가 중계로 봤던가? AFKN의 뉴스 하이라이트로 봤던가 했던 기억이 나는데..

당시 로드맨이 7득점이었는데, 막판에 3점 슛 던지고 그게 들어가서 10점을 기록

트더를 달성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 선수단은 축제분위기 였는데...

암튼 그런 기억이 어렴풋이 납니다.

2020-06-02 09:17:04

네 맞습니다. 리바에 어시까지 다 두자리 해놓고 득점이 딱 7점이었는데 막판에 3점을 뙇! 넣어서 극적으로 달성했죠.

WR
2020-06-02 12:24:43

그 경기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의외로 많네요. 저는 갑자기 생각나서 써본 거였는데요.

2020-06-02 09:35:13

밀리시치의 저 승률기록은 가비지에나 투입하니 그런거죠.
밀리시치의 디트픽은 본인으로서는 불운이었네요.

WR
2020-06-02 12:25:33

특히 시즌 후반에는 크게 이기는 경기에만 투입되었습니다. 그래서 팬들에게 인기가 있었죠.

2020-06-02 09:51:30

조던도 엄청난 금강불괴죠 유체적인 체력도 굉장하고요

WR
2020-06-02 12:27:43

여섯번 우승하면서 여섯번 득점왕에 여섯번 수비 퍼스트딤이었다는 것만으로 이야기 끝입니다. 역대 다른 선수들과 레벨 차이가 확연히 있었습니다.

indm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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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nlal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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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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