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브론 팬으로서 돈치치의 활약상을 보며
1997년 12월 17일 레이커스의 시카고 원정경기
19세의 레이커스 2년차 슈팅가드 코비 브라이언트는 자신보다 15세 위인 시카고 불스의 슈팅가드인 13년차 34세의 노장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에 겁없이 도전장을 내밀며 공수에서 매치업이 되면서 33득점(12/20의 야투, 3/5의 3점슛, 6/9의 자유투) - 3리바 - 2어시를 기록하면서 맹활약을 펼쳤습니다.
조던은 36득점(12/22의 야투, 1/2의 3점슛, 11/12의 자유투) - 5리바 - 4어시 - 1스틸 - 1블락
경기는 시카고 불스가 시종일관 리드하며 104대 83으로 완승을 거둔 경기였습니다만, 19세의 코비는 이날 경기를 통해 될성부른 나무의 떡잎을 보여주면서 NBA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이 날 경기는 지금까지도 동영상으로 심심치 않게 올라올 만큼 조던을 쫓던 남자와 조던 간의 15년차 연배를 뛰어넘는 멋진 대결로 NBA팬들에게 회자되고 있습니다.
코비는 포스트 조던으로 기대를 받던 티맥, 카터 등 수많은 스윙맨 스타 중에서 아마도 최종적인 승자라고 볼 수 있으며, 24시간 농구만 생각하면서 조던의 기술을 연구하고 연마하여 자신의 무기로 삼았고, 결국 조던을 넘지는 못했지만 역대 슈팅가드 2위, 역대 TOP 10의 위대한 레전드로 위대한 커리어를 남겼습니다.
커리어 내내 조던과 비교되면서 코비는 엄청난 인기와 팬덤을 거느렸으나 또 한편으로 엄청난 안티들도 거느렸던 선수로 "Love me or hate me"라는 표현으로도 유명하였습니다.
아마도 코비와 코비팬들에게 조던은 엄청난 장벽인 동시에 도전하는 목표였고, 어쩌면 코비를 현재의 위치까지 끌어올린 원동력이자 코비의 실질적인 스승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제 기억에 코비는 인터뷰 중 가장 존경하는 선수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 한번도 조던이라고 답을 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혹시 제 기억이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제 기억에 코비는 레이커스의 레전드인 매직 존슨을 가장 존경하는 선수로 언급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코비의 내심을 제가 알 수는 없겠지만, 코비의 선수생활 내내 보여준 기술과 무의식 중 나오는 혀 내미는 것과 같은 행동들을 볼 때, 코비가 가장 존경했던 선수는 조던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감히 추측해 보자면, 레이커스 프랜차이저 대스타로서 같은 선배 프랜차이즈 레전드인 매직을 예우하여 언급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고, 또 하나는 이것이 바로 코비의 자존심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2019년 11월 2일 레이커스의 댈러스 원정경기
20세의 댈러스 2년차 스몰포워드(포인트 가드일 수도 있음) 루카 돈치치는 자신보다 15세 위인 레이커스의 스몰포워드(포인트 포워드)인 17년차 35세의 노장 리빙 레전드 르브론 제임스에 맞서 팀을 이끌면서 일진일퇴의 치열한 대접전 승부를 벌였습니다.
코비와 조던의 대결이 공수에서의 일기토 승부의 느낌을 준다면,
돈치치와 르브론의 대결은 야전사령관들끼리의 전체 대 전체의 승부의 느낌을 줍니다.
이날 연장 승부끝에 레이커스가 119대 110으로 신승한 경기에서
돈치치는 31득점(10/23의 야투, 4/9의 3점슛, 7/8의 자유투) - 13리바 - 15어시 - 1블락의 맹활약
르브론은 39득점(13/23의 야투, 4/9의 3점슛, 9/11의 자유투) - 12리바 - 16어시 - 4스틸 - 1블락으로
두 선수는 15세의 나이차를 뛰어넘어 명승부를 펼쳤습니다.
돈치치가 전반부에 수비하는 르브론을 상대로 그의 성명절기라 할 수 있는 순간이동급 스텝백 점퍼로 3점을 꽂아 넣자, 후반부에 르브론은 클러치 상황에서 일부러 AV를 불러내어 스위치 상황을 유도하여 돈치치를 상대하고 똑같은 스텝백 점퍼 3점슛을 성공시키는 장면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경기 후 르브론은 돈치치는 얼싸 안고서 '넌 정말 굉장한 놈이야, 계속 전진하라'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돈치치는 평소에도 가장 존경하는 선수로 주저하지 않고 르브론을 지목하고 있으며, 지난 루키 시즌에는 르브론의 사인이 담긴 저지를 얻고서 아이처럼 좋아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습니다.
르브론도 올어라운드 포인트 포워드로서 자신의 스타일과 비슷한 돈치치에게 큰 애정을 표하고 있죠.
GOAT 조던이 일세를 풍미하고 은퇴한 후 조던을 보고 자랐던 조던 키드들이 NBA에 데뷔하면서 주로 외곽슛을 담당하던 슈팅가드 포지션은 스윙맨들로 가득 차기 시작하였습니다. 2000년대 초반 6성슈가들은 서로 엄청난 대결을 보여주면서 NBA인기 상승에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르브론이 17년차를 맞이하면서, 아직 은퇴하지 않았지만 르브론의 플레이를 보고 자란 르브론 키드들이 리그에 데뷔하기 시작하였고, 현재 돈치치가 가장 선두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2의 르브론은 과연 어떤 스타일인지에 대해서도 사실 의견이 나누어 질 수 있을 것입니다.
18세 NBA무대에 데뷔하면서 르브론은 무려 MJ MJ라는 과분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조던과 같은 운동능력 만땅의 스윙맨으로서 엄청난 파워를 보여주면서, 한편으로 매직 존슨과 같은 사이즈에 놀라운 코트비젼과 패싱센스로 동료들을 살려주면서 올어라운드한 활약을 보여주기도 하였습니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르브론의 정체성은 조던보다는 매직 존슨에 더 가까운 선수로 드러나고 있고,
올어라운드 포인트 포워드가 르브론을 지칭하는 가장 적합한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그런점에서 자이언같은 선수도 제2의 르브론으로 언급되면서, 르브론과 같은 파포급 체격과 파워에 가드처럼 날라다니는 탈인간급 운동능력을 보유하였고, 패싱센스까지도 갖추고 있지만, 올어라운드 포인트 포워드가 제격인 돈치치가 보다 더 르브론과 비슷한 유형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물론 돈치치는 유럽의 백인으로 힘과 리바운드 능력은 매우 뛰어나지만, 르브론과 같은 운동능력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타입이긴 하죠. 그렇더라도 그가 보여주는 경기 운영 모습이나 그가 기록하는 스탯은 매우 르브론과 유사하다고 보여집니다.
르브론 제임스
SF(SG, PF 시즌도 있음), 6-9, 250파운드(113kg), 84년생, '03년 드래프트 전체 1순위
루카 돈치치
SF(PG, SG로 분류되기도 함), 6-7, 218파운드(98kg), 99년생, '18년 드래프트 전체 3순위
프로필상 돈치치는 98kg으로 나오지만, 돈치치는 대식가로 알려져 있기도 하고, 현재 100kg은 훌쩍 넘길 것으로 예상합니다. 6-7의 크지 않은 신장으로 놀라운 리바운드 능력을 보여주는 것에는 그의 뛰어난 농구센스와 리바운드 예측능력과 더불어 빅맨에게도 밀리지 않는 강한 파워가 큰 힘이 된다고 보여집니다.
돈치치는 정말 불가사의한 선수라는 생각이 듭니다.
백인으로서 운동능력이 크게 뛰어난 선수도 아니고, 스피드가 뛰어나지 않고 오히려 평균보다 느린 축에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마치 MMA에서 코너 맥그리거가 조제 알도에게 13초만에 KO승을 거두고서 한 인터뷰처럼, "정확도가 파워를 이기고 타이밍이 스피드를 이긴다"라는 말처럼, 돈치치 역시 놀라운 BQ를 바탕으로 한 타이밍과 정확도가 괴물이 득실거리는 코트에서 그를 최고의 레벨로 돋보이게 하고 있습니다.
돈치치의 이런 모습은 르브론 팬으로서 한가지 기대감을 주는데,
르브론이 이제 운동능력과 스피드가 한해, 한해 감퇴할 것인데, 그렇더라도 돈치치의 활약상을 보면, BQ와 노련미를 바탕으로 여전히 뛰어난 경기력을 보여줄 수도 있겠구나 라는 점입니다.
돈치치가 백인라는 점, 뛰어난 운동능력 없이 놀라운 BQ와 올어라운드함을 바탕으로 보여주는 엄청난 경기력으로 인해서 래리 버드를 소환하기도 하는데, 그런점들은 버드와 유사점이 있기는 하지만, 플레이 스타일면에서 버드는 스트레치형 빅맨에 가깝고, 가령 노비츠키가 패싱능력을 갖추면 돈치치보다는 더 버드와 비슷하다고 보여지고, 돈치치는 분명 올어라운드 포인트포워드로서 르브론과 더 비슷한 유형이라 생각합니다.
돈치치의 또하나의 놀랍고 의외인 점은, 백인에 운동능력이 뛰어난 편이 아니라서, 버드나 카일 코버, 혹은 레딕처럼 엄청나게 정확한 슈팅능력을 장착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될 수 있는데, 막상 기록을 보면, 3점슛률은 루키 시즌 32.7%, 2년차인 현재는 33.6%로 르브론과 비교해서도 더 낫다고 보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전체 야투율도 루키시즌 42.7%, 2년차인 현재 48.6% 정도입니다.
자유투율도 루키시즌 71.3%, 2년차인 현재 81.5%로 아주 특출난 수준까지는 아니죠.
여러모로 스탯라인과 야투율 등이 르브론과 비슷한 유형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1~2년차까지의 기록을 보면 오히려 돈치치가 르브론보다도 앞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르브론 3년차까지(연차로는 2년차까지, 나이로는 3년차 비교가 가능하죠) 스탯
돈치치 현재까지 스탯
돈치치가 2차스탯을 보면 BPM, VORP에서 현재 리그 1위로서 르브론이 강점을 보인 부문에서 역시 놀라운 성적을 보이고 있습니다. 두 선수가 비슷한 계열의 선수임을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요소라 할 수 있겠죠.
비록 초반이지만 돈치치가 보여주는 BPM 수치 13.7은 놀랍게도 르브론 최전성기에 보인 13.0보다도 높은 수치입니다. 르브론은 7년연속, 총 8년을 BPM 리그 1위를 기록한 바 있습니다.
제가 10년 넘게 르브론 팬을 해 오면서,
이렇게 빨리 르브론과 비슷한데 오히려 르브론보다 진도가 더 빠른 그런 선수를 보게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조던 팬님들이 코비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을지?
쭉 매니아 생활을 하면서 보아온 바로는, 아마도 일부는 코비 안티가 되기도 하고, 일부는 코비팬이 되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렇더라도 팬이건 안티건, 코비가 조던의 스타일로 다시금 리그를 제패한 점에 대해서는 조던 팬님들도 뭔가 조던 스타일의 위력에 대해 증명한 것으로 볼 수 있어 좋게 생각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르브론 팬으로서 아직은 르브론을 떠나 보낼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아마 코비팬님들도 그러셨을 것이고, 그러나 인간인 이상, 어느순간 갑자기 그날은 찾아오게 되겠죠.
르브론이 지난 시즌 큰 부상을 당하기도 하고, 14년만에 플옵진출에 실패하기도 하고, 그래서 이제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번 시즌 좋은 동료와 감독, 시스템과 함께, 그리고 오랜만에 오프시즌을 잘 쉰 덕에 르브론은 다시금 MVP급 기량을 뽐내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돈치치를 보면, 뭔가 흐뭇하면서도 아직은 르브론이 밀리지 않고 한 수 가르쳐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도, 앞으로 르브론이 커리어를 마감하고 은퇴하는 순간이 온다면, 저도 그만 NBA와 매니아 생활을 졸업할까 생각하다가도, 그 다음은 돈치치를 응원해 볼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제 와이프는 제가 NBA 세계에 빠져 있는 십수년 동안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토로하기도 했는데, 놀랍게도 돈치치가 마음에 든다고 하더군요.
만일 르브론 은퇴전에 혹은 은퇴후 돈치치가 엄청난 성장가도를 달리면서, 매니아에 르브론 vs 돈치치 논쟁이 벌어지고 서로 심한 표현들이 오갈 경우, 제가 돈치치 안티가 될 상황이 올지도 모를 일이겠죠.
그러나 그런 상황이 자주 있지 않다면, 르브론의 뒤를 이어, 르브론의 스타일이 리그를 지배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입증해 주는 한 요인으로서, 돈치치의 놀라운 활약상을 기쁘게 감상하고 응원하게 될 것 같습니다만, 사람 일은 또 모르는 거겠죠.
아무튼 지금으로서는 앞으로 돈치치를 상당히 응원하게 될 것 같고, 르브론 은퇴 후에는 가장 응원하는 선수가 될 것 같습니다.
US바카 들어보니 염기자님은 20살때 르브론과 돈치치의 비교에서는 돈치치의 손을 들더라구요. 저도 동의는 하는 편이지만, 일단은 지켜봐야죠. 내구성이 르브론의 내구성에 근접하여 리그를 씹어먹고 다닌다면, 아마 르브론과 돈치치의 파이어는 일어날겁니다. 반드시..돈치치는 그만한 재능이 있는 선수니까요. 저도 돈치치에 요새 빠져살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