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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도 봄이 오나요? ⑧ (마지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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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3-04-04 22:30:27

일요일에 결국 끝을 봤습니다. 과정이 궁금하신 분들이 계실 것 같아서 적겠습니다. 


매듭 짓는 단계에서 제가 삽질(?)을 좀 해서 답답하고 못나보이기는 한데,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서울까지 어떻게 가긴 했네요.


 

만남

4시에 역에서 만났습니다. 이번 코스는 커플들이 많이 가기로 유명한 벚꽃 명소 공원이었습니다. 상대방 집 근처기도 하고, 제가 꼭 가보고 싶다고 해서 갔습니다.


상: 어디야? 나 중앙 출구에 있어! 

젤: 엥 나돈데? 어딨지... 아 찾았다! 

 

상대방은 평소에 검은색 아우터를 자주 입는데 오늘은 핑크색 니트를 입고 왔더라고요. 머리도 포니테일이었고요. 평소와 약간 다른 스타일이어서 뭔가 색달랐습니다. 저도 평소보다 조금 더 깔끔하게 하고 나왔습니다.

 

젤: 공원 이동 후 와 사람 진짜 많다... 한강급인데? 

상: 한강도 사람 이렇게 많아?? 

젤: 난 몇번 안 가봐서 잘은 모르지만 거기도 사람 엄청 많지. 다들 돗자리 하나씩 깔고 앉더라 ㅋㅋㅋㅋ 

상: 여기도 그래 ㅋㅋㅋㅋ 다들 하나씩 깔고 앉았네. 

젤: 와 저긴 술 마시는 사람들도 있네... 이 시간에 술을...? 

상: ㅋㅋㅋㅋ 일단 좀 걸을까? 여기 사실 우리집 근처라 난 자주 와봤거든! 투어 해줄게! 

 

대충 30분 정도 걸었던 것 같네요. 나중에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지 또 얘기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했습니다. 

 

젤: 오리배 저기 있는데 저녁 먹고 와서 저거 탈래? 

상: 그래! 근데 저거 언제 끝나는지 봐야될 것 같은데...? 

확인해 보니까 5시 30분에 마감이더라고요. 이미 시간이 5시가 거의 다 됐어서 그냥 바로 탔습니다. 해질 때 쯤에 오리배 타면서 고백하는게 계획이었는데 

 

상: ㅋㅋㅋㅋ 운전하는거 재밌어?

젤: (열심히 핸들을 돌리며) 재밌는데 살짝 빡세네 ㅎ... 

상: 어렸을 때 꿈이 드라이버였다며! 비슷한거 지금 하고 있네

젤: 차이점은 물 위에서 하고 있다는거지...

상: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 옆에 나도 있고 ㅎㅎ

 

호수 위에 다른 사람들이 타고 있는 배도 너무 많았고, 그것보다 너무 시끄러워서 고백할 분위기가 아니어서 결국 타이밍을 다시 잡았어야 했습니다. 내리고나서 그 주변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구경을 좀 했어요. 마찬가지로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말이죠.


상: 여기 배경 좋은데 여기서 사진 하나 찍어줄까?

젤: 앗 부끄러운데...

상: 뭐가 부끄러워! 찍어서 어머니한테 보내드리면 좋아하실텐데

젤: 음... 그럼 조금 있다가 다른 곳에서 찍을게 ㅎㅎ...


저녁

한 1시간 쯤 돌아다니고 나서, 저녁을 먹으러 갔습니다. 한참을 못 정하다가 결국 스테이크 앤 그릴 가게로 들어갔습니다. 들어가서 음식을 시키고, 상대방이 화장실에 다녀온다고 해서 고백 타이밍을 계속 고민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밥 다먹고 카페 가서 말하는 것 밖에 생각이 안 났어요 ㅠㅠ

 

상: 나 왔다! ㅎㅎ

젤: 음식 방금 나왔으니까 바로 먹자!

 

밥 먹고 영화 얘기, Kpop 얘기 등을 했습니다. 전 대화에 집중하면서도 계속 머리를 굴렸고요 (떼구르르 굴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

 

상: 다 먹었으면 나갈까? 우리 벌써 여기 한 시간 있었어 ㅋㅋㅋ

젤: 진짜네... 일단 나가자 (이때 이미 시간 9시)

상: 좀 걷자!

 

젤: 그래 ㅎㅎ

 

(10분 정도 걸은 후)


젤: 나 다리 살짝 아픈데 저기 보이는 벤치에 잠깐 앉아도 돼...?

상: 응! 앉자

젤: 고마워 ㅎㅎ

상: 우리 다음주에는 뭐할까? 미리 정하자!

젤: (아... 지금 아니면 답이 없다.)

 

이때 더 이상 미루면 안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습니다. 여기서 무조건 고백을 해야한다고 생각해서 벤치에 앉은건데, 문제가 있었어요.

 

앞에는 아식스 신발가게 (심지어 영업 시간 끝나서 문 닫음)

뒤에는 그냥 차가 쌩쌩 달리는 차도

 

저희가 앉은 자리가 길가에 있는 벤치였다는 점. 분위기 잡을래야 잡을 수가 없는 장소였죠. 그래도 지금 앉은거 지금 못 끝내면 오늘도 못 말할 것 같아서 그냥 강행했습니다.


'이미 사귀자고 말만 안 했지 유사연애하고 있잖아'

'같이 벚꽃 보러 오고, 매번 몇시간씩 통화하는거 보면 너도 대충 이미 다 끝난 싸움인거 알고 있잖아'

'후... 긴장 하지 말고 제발 말해 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

 

속으로 제발만 한 100만번 외친 것 같아요. 너무 외쳐서 제발이 X발로 바뀔 때 쯤에 입을 열었습니다.


젤: 조금 더 분위기 좋은 곳에서 말해야 하는거 아는데, 오늘 하루 종일 하고 싶은 말이 있었거든. 근데 지금 말하려고. 내가 진짜 너를 좋아하는데... 

 

...

.....

.......?

 

조졌습니다. 원래 말하려고 했던 건 "내가 진짜 너를 좋아하는데, 내가 너의 남자친구가 되어도 될까?"였는데, 갑자기 뇌정지가 와서 중간에 끊겨버렸어요.

 

속으로는 "제발 말해 이 답답한 놈아!" 외치고 있었지만 입은 이미 굳어버린 상태, X같이 멸망했다고 생각할 때쯤 상대가 방이 말을 꺼냈습니다.

 

상: 혹시 괜찮으면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길래?

젤: (끄덕)

 

말이 안 나오고 상대방 얼굴도 못 보겠어서 그냥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결국 다시 공원 쪽으로 걸어가는데, 걸어가는 동안 거의 말도 안 했어요 서로. 누가봐도 어색해진 분위기를 해결하려고 상대방만 계속 말을 걸었죠.

 

상: ㅎㅎ 누가 우리 보면 싸운 커플인 줄 알겠다

젤: 그러게... ㅎ...


다시 공원

공원 중심부 쪽에 벤치가 있어서 강을 바라보고 앉았습니다. (또 벤치냐?)

앉아서 한 1분 정도 말 없이 앉아 있었어요.

 

상: 너가 무슨 말 할지 알 것 같아. 나도 하고 싶은 말 있는데 내가 먼저 말해도 돼?

젤: 어...? 어... 그래...!

상: 나도 이걸 영어로 뭐라고 해야할지 잘 모르겠는데 일단 말할게?

젤: 응!

상: 내가 너에게 충분히 좋은 사람인지 잘 모르겠어

젤: (?)

상: 난 지금 취준 중이라 스트레스 받아서 자존감도 많이 낮아졌고

젤: (??)

상: 내가 너에게 너무 부담을 주는게 아닐까 생각했거든, 혹시 나랑 같이 있는게 재미 없는데 억지로 하는건가 싶어서

젤: (???)

상: 그래도 너는 항상 재밌게 해주고, 항상 스윗하고, 내가 취준 때문 바빠서 답장 잘 못해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내가 좋아한다고 한 것들 다 기억해줘서 너무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었어 ㅎㅎ... 난 사람들이랑 전화하는 것도, 라인하는 것도 다 싫어하는데 너랑 전화할 때는 너무 좋았고.

 

듣고나서 잠시 생각한 뒤에 말했습니다.

 

젤: 내가 너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매번 만나자고 안 했을거야. 너랑 같이 있는 시간이 싫었으면 지금 같이 공원에 앉아있지 않았을거고. 사실 저녁 먹고 호수 위에서 오리배 타면서 말하고 싶었는데, 지금 다시 말할게. 나 너 진짜 좋아하는데, 내가 너의 남자친구 되어도 될까?

상: 응! ㅎㅎ 제대로 들어서 엄청 기쁘네


헤어지며

헤어질 때, 이번에는 상대방이 제가 타는 역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상: 맞다! 나 깜빡하고 말 안해준거 있는데, 나 스트레스 받으면 가끔 성격 엄청 더러워지니까 감당할 준비해?

젤: 헉 ㅋㅋㅋ 괜찮아 승질 부려도 다 받아줄게 ><

상: 그럼 다음에 어디갈지는 나중에 정하자. 잘 들어가!

젤: 너도 조심히 들어가! 내일 면접 잘 보고!


이렇게 2월 2일 목요일에 처음 만나서 4월 2일 일요일에 사귀기 시작했네요. 

사실 크게 달라진건 없습니다. 좋아하는 티를 더 내는 것 말고는요.

 

그래도 여자친구라고 생각하니까 가슴이 더 두근거리는건 어쩔 수 없나봐요. 

 

그동안 답답한 전개 지켜봐주신 분들 감사하고, 이만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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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3-04-04 19:39:14

ㅊㅋㅊㅋ

2023-04-04 19:48:32

 

책상 받으시지요!

 

봄이 왔으니 이제 뜨거운 여름만 계속 되시길!

2023-04-04 19:54:05

중간에 같이 숨죽이며 읽어 내려갔습니다. 축하드려요!!

WR
2023-04-04 20:54:43

저도 적으면서 숨이 막혔습니다 

 

감사해요!

2023-04-04 20:00:05

이것이..알파남의 인생?

2023-04-04 20:10:28

해피 엔딩, 아니 이제부터 예쁜사랑 시작입니다
2023-04-04 20:10:41

하...........

2023-04-04 20:26:09

아, 생각만 해도 예쁘네요

2023-04-04 20:41:07

쉐도우 복싱 계속하시더니 결국 엔딩 나왔네요

2023-04-04 21:05:46

아. 달다 달어
이쁜 연애하세요

2023-04-04 21:08:24
훈훈하다 못해 더운게 봄이 아니라 여름이네요
2023-04-04 21:30:45

축하드립니다! 

꼭 결혼하세요...

2023-04-05 06:54:49


우선 책상받으시고
축하드려요!!!
2023-04-05 07:23:33

어머니들이 드라마 보듯이 환호와 탄식을 이으며 봤습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책상은 받으셔야죠

2023-04-05 12:13:36

뭐셔 잘된겨? 


 

디폴트로 하나 보내드립니다. 

 

식목일이라 하나 더 보내드립니다. 

 

한국인은 삼세번이라 더 보내드립니다. 

2023-04-05 15:39:06

 어우 글 읽으면서 빙그레 웃고있는 절 보니 나이가 먹었나봅니다

저는 기혼입니다만 그래서인지 너무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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