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게도 봄이 오나요? ⑧ (마지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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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에 결국 끝을 봤습니다. 과정이 궁금하신 분들이 계실 것 같아서 적겠습니다.
매듭 짓는 단계에서 제가 삽질(?)을 좀 해서 답답하고 못나보이기는 한데,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서울까지 어떻게 가긴 했네요.
만남
4시에 역에서 만났습니다. 이번 코스는 커플들이 많이 가기로 유명한 벚꽃 명소 공원이었습니다. 상대방 집 근처기도 하고, 제가 꼭 가보고 싶다고 해서 갔습니다.
상: 어디야? 나 중앙 출구에 있어!
젤: 엥 나돈데? 어딨지... 아 찾았다!
상대방은 평소에 검은색 아우터를 자주 입는데 오늘은 핑크색 니트를 입고 왔더라고요. 머리도 포니테일이었고요. 평소와 약간 다른 스타일이어서 뭔가 색달랐습니다. 저도 평소보다 조금 더 깔끔하게 하고 나왔습니다.
젤: 공원 이동 후 와 사람 진짜 많다... 한강급인데?
상: 한강도 사람 이렇게 많아??
젤: 난 몇번 안 가봐서 잘은 모르지만 거기도 사람 엄청 많지. 다들 돗자리 하나씩 깔고 앉더라 ㅋㅋㅋㅋ
상: 여기도 그래 ㅋㅋㅋㅋ 다들 하나씩 깔고 앉았네.
젤: 와 저긴 술 마시는 사람들도 있네... 이 시간에 술을...?
상: ㅋㅋㅋㅋ 일단 좀 걸을까? 여기 사실 우리집 근처라 난 자주 와봤거든! 투어 해줄게!
대충 30분 정도 걸었던 것 같네요. 나중에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지 또 얘기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했습니다.
젤: 오리배 저기 있는데 저녁 먹고 와서 저거 탈래?
상: 그래! 근데 저거 언제 끝나는지 봐야될 것 같은데...?
확인해 보니까 5시 30분에 마감이더라고요. 이미 시간이 5시가 거의 다 됐어서 그냥 바로 탔습니다. 해질 때 쯤에 오리배 타면서 고백하는게 계획이었는데
상: ㅋㅋㅋㅋ 운전하는거 재밌어?
젤: (열심히 핸들을 돌리며) 재밌는데 살짝 빡세네 ㅎ...
상: 어렸을 때 꿈이 드라이버였다며! 비슷한거 지금 하고 있네
젤: 차이점은 물 위에서 하고 있다는거지...
상: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 옆에 나도 있고 ㅎㅎ
호수 위에 다른 사람들이 타고 있는 배도 너무 많았고, 그것보다 너무 시끄러워서 고백할 분위기가 아니어서 결국 타이밍을 다시 잡았어야 했습니다. 내리고나서 그 주변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구경을 좀 했어요. 마찬가지로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말이죠.
상: 여기 배경 좋은데 여기서 사진 하나 찍어줄까?
젤: 앗 부끄러운데...
상: 뭐가 부끄러워! 찍어서 어머니한테 보내드리면 좋아하실텐데
젤: 음... 그럼 조금 있다가 다른 곳에서 찍을게 ㅎㅎ...
저녁
한 1시간 쯤 돌아다니고 나서, 저녁을 먹으러 갔습니다. 한참을 못 정하다가 결국 스테이크 앤 그릴 가게로 들어갔습니다. 들어가서 음식을 시키고, 상대방이 화장실에 다녀온다고 해서 고백 타이밍을 계속 고민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밥 다먹고 카페 가서 말하는 것 밖에 생각이 안 났어요 ㅠㅠ
상: 나 왔다! ㅎㅎ
젤: 음식 방금 나왔으니까 바로 먹자!
밥 먹고 영화 얘기, Kpop 얘기 등을 했습니다. 전 대화에 집중하면서도 계속 머리를 굴렸고요 (떼구르르 굴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
상: 다 먹었으면 나갈까? 우리 벌써 여기 한 시간 있었어 ㅋㅋㅋ
젤: 진짜네... 일단 나가자 (이때 이미 시간 9시)
상: 좀 걷자!
젤: 그래 ㅎㅎ
(10분 정도 걸은 후)
젤: 나 다리 살짝 아픈데 저기 보이는 벤치에 잠깐 앉아도 돼...?
상: 응! 앉자
젤: 고마워 ㅎㅎ
상: 우리 다음주에는 뭐할까? 미리 정하자!
젤: (아... 지금 아니면 답이 없다.)
이때 더 이상 미루면 안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습니다. 여기서 무조건 고백을 해야한다고 생각해서 벤치에 앉은건데, 문제가 있었어요.
앞에는 아식스 신발가게 (심지어 영업 시간 끝나서 문 닫음)
뒤에는 그냥 차가 쌩쌩 달리는 차도
저희가 앉은 자리가 길가에 있는 벤치였다는 점. 분위기 잡을래야 잡을 수가 없는 장소였죠. 그래도 지금 앉은거 지금 못 끝내면 오늘도 못 말할 것 같아서 그냥 강행했습니다.
'이미 사귀자고 말만 안 했지 유사연애하고 있잖아'
'같이 벚꽃 보러 오고, 매번 몇시간씩 통화하는거 보면 너도 대충 이미 다 끝난 싸움인거 알고 있잖아'
'후... 긴장 하지 말고 제발 말해 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
속으로 제발만 한 100만번 외친 것 같아요. 너무 외쳐서 제발이 X발로 바뀔 때 쯤에 입을 열었습니다.
젤: 조금 더 분위기 좋은 곳에서 말해야 하는거 아는데, 오늘 하루 종일 하고 싶은 말이 있었거든. 근데 지금 말하려고. 내가 진짜 너를 좋아하는데...
...
.....
.......?
조졌습니다. 원래 말하려고 했던 건 "내가 진짜 너를 좋아하는데, 내가 너의 남자친구가 되어도 될까?"였는데, 갑자기 뇌정지가 와서 중간에 끊겨버렸어요.
속으로는 "제발 말해 이 답답한 놈아!" 외치고 있었지만 입은 이미 굳어버린 상태, X같이 멸망했다고 생각할 때쯤 상대가 방이 말을 꺼냈습니다.
상: 혹시 괜찮으면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길래?
젤: (끄덕)
말이 안 나오고 상대방 얼굴도 못 보겠어서 그냥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결국 다시 공원 쪽으로 걸어가는데, 걸어가는 동안 거의 말도 안 했어요 서로. 누가봐도 어색해진 분위기를 해결하려고 상대방만 계속 말을 걸었죠.
상: ㅎㅎ 누가 우리 보면 싸운 커플인 줄 알겠다
젤: 그러게... ㅎ...
다시 공원
공원 중심부 쪽에 벤치가 있어서 강을 바라보고 앉았습니다. (또 벤치냐?)
앉아서 한 1분 정도 말 없이 앉아 있었어요.
상: 너가 무슨 말 할지 알 것 같아. 나도 하고 싶은 말 있는데 내가 먼저 말해도 돼?
젤: 어...? 어... 그래...!
상: 나도 이걸 영어로 뭐라고 해야할지 잘 모르겠는데 일단 말할게?
젤: 응!
상: 내가 너에게 충분히 좋은 사람인지 잘 모르겠어
젤: (?)
상: 난 지금 취준 중이라 스트레스 받아서 자존감도 많이 낮아졌고
젤: (??)
상: 내가 너에게 너무 부담을 주는게 아닐까 생각했거든, 혹시 나랑 같이 있는게 재미 없는데 억지로 하는건가 싶어서
젤: (???)
상: 그래도 너는 항상 재밌게 해주고, 항상 스윗하고, 내가 취준 때문 바빠서 답장 잘 못해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내가 좋아한다고 한 것들 다 기억해줘서 너무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었어 ㅎㅎ... 난 사람들이랑 전화하는 것도, 라인하는 것도 다 싫어하는데 너랑 전화할 때는 너무 좋았고.
듣고나서 잠시 생각한 뒤에 말했습니다.
젤: 내가 너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매번 만나자고 안 했을거야. 너랑 같이 있는 시간이 싫었으면 지금 같이 공원에 앉아있지 않았을거고. 사실 저녁 먹고 호수 위에서 오리배 타면서 말하고 싶었는데, 지금 다시 말할게. 나 너 진짜 좋아하는데, 내가 너의 남자친구 되어도 될까?
상: 응! ㅎㅎ 제대로 들어서 엄청 기쁘네
헤어지며
헤어질 때, 이번에는 상대방이 제가 타는 역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상: 맞다! 나 깜빡하고 말 안해준거 있는데, 나 스트레스 받으면 가끔 성격 엄청 더러워지니까 감당할 준비해?
젤: 헉 ㅋㅋㅋ 괜찮아 승질 부려도 다 받아줄게 ><
상: 그럼 다음에 어디갈지는 나중에 정하자. 잘 들어가!
젤: 너도 조심히 들어가! 내일 면접 잘 보고!
이렇게 2월 2일 목요일에 처음 만나서 4월 2일 일요일에 사귀기 시작했네요.
사실 크게 달라진건 없습니다. 좋아하는 티를 더 내는 것 말고는요.
그래도 여자친구라고 생각하니까 가슴이 더 두근거리는건 어쩔 수 없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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ㅊㅋㅊ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