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타 와타나베, ‘말이 가진 힘’
*원문 주: 이 아티클은 일어로 쓰인 본문의 번역본임을 알리는 바입니다.
"Yuta 씨, 오늘 가비지 타임에 나오셔서 리바운드를 많이 잡으셨더라고요!"
경기 후 인터뷰에서 한 기자 분께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 질문을 받자마자 곧장 받아쳤지요.
"제 생각입니다만, 세상에 '가비지 타임' 같은 건 존재하지 않습니다."라고요.
그랬더니 미디어 룸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습니다.
물론, 저도 그 기자 분께서 부정적인 의미로 그 단어를 사용하신 건 아닐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날 경기는 저희가 아주 큰 점수 차comfortable margin로 이기고 있었고, 제가 투입된 시점도 1~2분 정도 밖에 안 남은 상황이었으니까요.
더구나 그 질문을 하신 것 자체도 제 활약에 대해 긍정적인 기사를 써주시기 위해서였을 겁니다. 그럴 의중이 없으셨다면 그런 질문을 하실 필요도 없었을 테니까 말입니다.
그렇긴 해도, 기자 분께서 선택하신 그 어휘는 도저히 익숙해지지가 않습니다.
'Garbage time' 말입니다.
이 말을 제가 쓰는 일어로 번역하면, 말 그대로 '시간 낭비'라는 뜻이 됩니다.
하지만 NBA에선 이 '가비지 타임'이라는 말을 경기 막판에 점수차가 워낙 많이 벌어져서, 경기 결과가 눈에 뻔히 보이는 그런 상황을 지칭할 때 쓰지요.
여기 NBA에선 다들 익숙하게 쓰는 어휘인 겁니다.
하지만 저는 단 한 번도 그 말을 입에 올려본 적이 없습니다.
'지상 최고의 농구 리그'인 이 곳에서 뛸 수 있는 '행운아'는 전 세계를 통틀어 단 450명 뿐입니다.
언젠가 전 세계의 농구 선수가 4억 5천만 명 정도 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대충 계산해보아도 NBA에서 뛰는 농구 선수가 되려면 말 그대로 '100만 분의 1'의 경쟁률을 뚫어내야 한다는 얘기가 되겠지요.
저 역시 그 '행운아'가 되기 위해 오랜 세월 동안 피나는 노력을 했습니다. 그리고, 셀 수 없을만큼 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습니다. 그 모든 여정을 지나, 마침내 NBA에 들어온 거지요.
제가 NBA 코트 위에 있는 단 1분, 1초도 '가비지 타임'이라 부르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코트 위에서 몇 분,
아니, 몇 초를 뛰든 상관없이 말입니다.
저는 다음 경기에도 출전할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이 없는 선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적은 시간을 뛰더라도, 코트 위에 있는 모든 순간들이 제게는 기회입니다. 제가 이 곳에 있다는 흔적을 남길 기회지요.
이제 제 사전에 '가비지 타임'이라는 단어가 존재할 수 없는 이유를 아시겠지요.
저는 '언어가 가진 힘'을 믿습니다.
긍정적인 방향으로든, 부정적인 방향으로든,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우리의 정신을 규정지어 버립니다.
그리고, 그렇게 규정되어버린 정신은 우리의 앞날을 지배해버리지요.
그래서, 이 기회를 빌어 제가 굉장히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문장들, 단어들을 여러분들께 소개해보면 어떨까합니다.
저라는 사람을 만들어낸 '말',
저라는 선수를 만들어낸 그 '말'들을 말입니다.
"Shoshin, 그리고 kenkyo. 이 두 단어는 무슨 일이 있어도 평생 까먹으면 안 된다."
제 고교시절 감독님이자 제 멘토이신 시카마 선생님께서 제게 가르쳐주신 단어들입니다.
번역해보자면 '초심beginner's mind', 그리고 '겸손'을 뜻합니다.
지금은 NBA 선수가 되었습니다만, 농구를 시작한 이래로 지금까지 제가 늘 '엘리트 레벨'에서만 뛰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중학 시절, 저는 굉장히 고통스러운 성장통을 겪었습니다.
유명한 농구부가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고자 했는데, 그게 쉽지가 않았습니다. 지원하는 학교들마다 번번히 저를 거절한 거지요.
그런 어려운 시기에 제게 기회를 주신 분이 바로 진세이 고교의 시카마 선생님이셨습니다.
당시만 해도 진세이 고교 농구부는 그다지 강하지 않았습니다.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리는 그런 학교가 아니었죠. 하지만 감독으로 계셨던 시카마 선생님은 전국적인 명성을 가진 명 감독이셨습니다.
시카마 선생의 지도 아래서 저는 단 하루도 빠트리지 않고 정말 열심히 훈련했습니다. 그렇게 감독님 밑에서 1년을 보내고 2학년이 되었을 때, 저는 일본 국가대표팀 역사상 가장 어린 선수로 발탁되었습니다.
국가대표로 발탁되었을 때, 시카마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평생 못 잊겠지요.
"국가대표 뽑혔다고 거만하게 굴지 마라. 항상 겸손해야 돼."
그러시고나선 '국가대표'가 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설명해주셨습니다.
국가대표가 되면 당연히 저를 지지해주고, 응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거라고 말씀해주셨죠.
하지만 그와 동시에 저를 미워하는 사람들도 늘어날 거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국가대표가 된다는 건 그런 거라고 말씀해주셨어요. (예, 미국이 아니라 조국인 일본에도 헤이터는 늘 있습니다.)
그리고 "너는 아직 고등학생이기 때문에 나이 많은 선수들보다 에티켓과 매너에 더 신경써야 한다. 코트에서 행실만 말하는 게 아니야, 코트 밖에서 특히 더 그래야 돼."라고 말씀해주셨죠.
그때부터 저는 '겸손 kenkyo'을 늘 되새기며 살았습니다. '겸손'이라는 단어가 정의해주는 삶을 살았지요.
그 덕에 저는 지금까지 셀 수 없이 많은 도움들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곳, 못한 시기에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저는 일본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미국으로 향했습니다. 영어를 전혀 못하는 상태로 말이죠.
일본을 떠나기 전, 저는 국내 전문가들로 부터 정말 많은 비평들을 들었습니다.
'분명 언어 장벽이 문제가 될 거다.',
'미국에서 뛰기엔 이미 나이가 너무 많다', 같은 이야기들이었지요.
하지만 저는 그 '말'들을 마음에 새기는 대신, 시카마 선생이 가르쳐주신 말, '초심 shoshin'을 마음에 새기는 쪽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NBA에서 뛰겠다'는 저의 어린 시절의 꿈 또한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에 도착한 지도 벌써 8년이 다 되어갑니다. 제 인생의 거의 3분의 1을 이 곳에서 보냈네요.
그간 저의 여정을 지지해주시고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첫 학교였던 St. Thomas More School의 팀메이트들이 '영어'라는 커다란 장벽을 마주했을 때 정말 많은 도움을 줬습니다.
George Washington University에서 만난 팀메이트들은 제가 수업을 잘 들을 수 있게 항상 도와줬지요.
이 모든 시간들을 거치는 동안, 저는 가능한 한 가장 '겸손'하기 위해 늘 노력했습니다.
심지어 NBA에 들어온 지금도,
여전히 겸손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미국에 살아보니, 미국과 일본, 두 나라에서 '겸손'이라는 말이 가지는 뉘앙스가 뭔가 다른 것 같습니다.
제가 두 나라의 문화를 모두 경험하면서 느낀 차이를 설명하려면 한 에피소드를 얘기해야만 할 것 같은데요, 저희 부모님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이 얘기는 지금도 처음부터 끝까지 또렷하게 기억이 납니다.
대학 2학년 때였습니다.
2학년 시즌이 막 끝난 때였고, 저는 NBA에 들어갈 수 있을지, 없을지 한창 저울질해보고 있을 때였죠.
솔직히 말하면 자신 없었습니다. 제가 드래프트에 뽑힐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드래프트보다는 섬머 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내야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죠.
그러던 차에, 하루는 부모님이 문자 메시지를 보내셨더군요.
부모님은 여전히 일본 카가와 현에 살고 계시는데, 부모님과 정말 친하게 지내는 편이라 하루 종일 서로 연락을 주고 받습니다. 그날도 여느 날들과 다름없이 문자를 보내셨죠.
"유타야, 어제 진짜 짜증나는 사람을 한 명 만났었어. 우리더러 네가 진짜 NBA에 들어갈 수 있겠느냐고 묻더라. 그래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냥 '유타는 아직 갈 길이 멀죠~'하고 말았어."
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문자를 읽었을 때, 정말 충격을 심하게 받았습니다.
저 스스로도 그 해 드래프트에 뽑힐 가능성은 희박하다 생각하곤 있었지만, 장담컨데 세상 그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하며 드래프트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하면서도 전혀 자신은 없었습니다.
정말 외로운 시간들이었고, 제 자신을 북돋아보려고 정말 애를 많이 썼습니다. 동기부여가 전혀 안 됐었거든요. 어떻게 해서라도 긍정적인 생각을 가져보려 애썼습니다.
그렇게 제 나름의 노력은 하고 있었습니다만, 깊은 절망에 헤어나오긴 정말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그렇다보니 저도 모르게 누가 '아냐, 너 할 수 있어, 너도 잘 하고 있어, 지금처럼만 하면 될 거야.'하는 '힘있는 말'을 듣고 싶어 하던 시절이었지요. 무의식적으로 그런 응원을 갈구하던 때였습니다.
그런 우울한 시기에 제 부모님에게까지 그런 문자를 받은 겁니다.
부모님이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는 저도 이해했습니다. 부모님 입장에선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하려 애쓰셨을 테니까요.
그래서 제 가능성을 믿는 질문에 그런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셨던 겁니다. 자식 가진 부모 마음이 그런 거 아니겠어요, 자식 문제에는 항상 신중해지기 마련이니까요.
그런 부모님 의중을 이해하면서도, 내 부모님들까지 "아, 유타는 아직 갈 길이 멀어요"라고 말씀하시는 걸 도저히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더군요.
어떻게 해석을 해도 그 문자가 부정적인 방향으로 밖에 보이질 않는 겁니다. 제 힘으론 도저히 극복이 안 됐습니다.
제 미국 생활 초기 때부터 제 눈에 정말 크게 띄었던 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미국 부모님들은 어떤 상황에도 자기 자녀들을 항상 칭찬하고, 북돋아준다는 점이었죠.
학교 시합이 있을 때, 미국 부모님들은 경기장에 오셔서 "Oh, 제 아들 진짜 잘 하지 않아요? 어메이징하죠?"하고 말하시죠.
그게 전혀 유별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부모님들이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확신에 찬 모습으로 자기 자식들을 자랑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질투가 많이 났었습니다.
그 문자를 받고 정말 충격을 많이 받았지만, 부모님께 대들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대신 일본에서 고교 팀 동료였던 제 베스트 프렌드, 류스이 쿠스모토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속풀이라도 좀 하려고 말이죠.
류스이는 지금 노베오카 고교의 감독으로 있습니다.
그 친구는 저와 가장 친한 친구일 뿐만 아니라 제가 굉장히 존경하는 친구예요. 그 친구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나 시합에 나설 때 가지는 마인드셋을 지금까지도 존경하고 있지요.
류스이한테 전화를 걸어서 솔직히 털어놨어요,
"부모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게 너무 짜증나, 계속 신경쓰이고.. 나도 엄마 아빠가 나를 전적으로 믿고 응원하고 계신다는 건 알아, 근데 꼭 그런 말을 입에 올릴 필요는 없잖아.. 그 문장이 계속 생각나고, 나를 잡아먹어."하면서요.
류스이의 대답은 심플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충분히 숙고해봤다는 생각이 들어? 그럼 부모님께 말씀드려. 네가 왜 그 문자를 그렇게 해석할 수 밖에 없는지 분명 이해하실 거야."
그 말을 듣고 나서, 부모님께 제 솔직한 심정을 말씀드렸습니다. 문자를 드렸어요.
"저는 지금 제 농구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를 지나고 있어요. 그래서 제 자신감을 갉아먹고, 저를 짓누르는 그 어떤 부정적인 말도 지금은 피하고 싶어요. 두 분은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저를 잘 아시는 분들이시고, 제가 농구를 시작한 첫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 누구보다도 저를 많이 응원해주는 분들이세요."
"그래서 두 분이 제 편이 되어주시는 게 저한텐 너무나도 중요해요."
문자를 보내자마자 부모님이 전화를 걸어오셨습니다.
고향에서 걸려온 전화, 그리고 익숙한 목소리...
전화를 받고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은 "아들, 미안해."였습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그 느낌이 아직도 생생히 느껴지네요.
이게 바로 '말이 가진 힘'입니다.
만약 그 시기에 제가 110%의 전력투구를 하지 않고 있었거나, 혹은 아예 재능이 없는 선수였다면 "아, 우리 아들은 갈 길이 멀어"라는 말을 듣고도 아무렇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얼마나 열심히 살고 있는지를 부모님도 알고 계셨거든요.
NBA에 들어갈 수도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가 눈 앞에 펼쳐졌는데, 그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든 긍정적인 생각들만 쥐어짜고 있던 때였습니다. 조금의 부정적인 생각도 용납하지 않았죠.
그래서 부모님께도 긍정적인 말만 듣고 싶어했던 거였죠.
이 얘기를 들려드리자니 제 대학 시절 일화가 하나 더 떠오르는데요,
1학년 시즌을 잘 마치고 2학년 시즌을 맞았을 때였습니다. 2학년 때 갑자기 슬럼프에 빠졌죠.
이러면 안 되는데... 이거 왜 이래...?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도무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출구가 없는 터널에 갇힌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때, 우연히 시카마 선생님께서 문자를 보내주셨습니다.
저를 우울과 불안에서 끄집어내 줄, 그야말로 '퍼펙트 타이밍'이었죠.
"웃으면서 뛰거라. (Play with Smile.)"
내용은 그게 전부였습니다.
그 '말'이 저의 눈을 열어주었습니다.
제가 왜 그렇게 농구를 사랑하는지 다시 일깨워주었죠. 고교 때부터 종종해주시던 말씀이었는데, 잊고 있었던 겁니다.
바로 다음 경기, 저는 커리어-하이 퍼포먼스를 펼쳤습니다.
이게 바로 '말이 가진 능력', 아니, '아주 작은 말이 가진 힘'입니다.
2018년, 마침내 저는 NBA에 입성했습니다.
그 오랜 세월동안 품고 있었던 꿈을 드디어 실현하게 됐지요.
멤피스 그리즐리스에서 뛰던 첫 시즌, NBA가 돌아가는 방식을 보며 정말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NBA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놀라웠죠. 출전시간은 거의 받지 못했지만 말입니다.
두 번째 시즌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더 적으면 적었지, 더 뛰진 못했죠. 시즌 대부분을 G 리그에서 보냈습니다. 어쩌다 콜-업을 받더라도, 부상 선수 빈자리 채우는 용도였죠.
부상으로 로스터에 구멍이 나면 제가 메꾸는 역할이었죠. 올라가서 부상 당한 선수들 훈련이나 재활을 돕는 역할을 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정말 힘들었습니다.
어느덧 3년차에 접어들었네요.
올해는 토론토 랩터스로 팀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올 시즌엔 트레이닝 캠프 때부터 일찌감치 참여했습니다. 덕분에 랩터스라는 팀이 어떤 컬러를 가진 팀인지도 파악할 수 있었고, 다른 팀원들은 어떻게 플레이하는지도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이 팀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어떤 식으로 헌신하면 될지도 생각해 볼 수 있었죠.
토론토는 수비를 기반으로 경기를 치르는 팀입니다. 공격도 수비에서부터 시작하는 팀이죠.
저는 수비가 좋기 때문에 랩터스에선 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리바운드 싸움에서도 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항상 분석적으로 생각하려고 하는 편입니다. 제가 가진 스킬들을 어떻게 이 팀에 가장 도움되는 방향으로 사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죠.
"팀을 승리의 자리에 데려다 주는 선수가 돼야 한다."
이 말 역시 시카마 선생께서 자주 해주셨던 말입니다.
제 안에 새겨주신 말들 중에 가장 큰 가르침을 주는 말이지요. 특히, NBA에 들어오니 이 말씀이 너무나도 크게 와닿습니다.
'NBA'라는 세계에는 에고가 센 스타 플레이어들이 있습니다.
저는 제가 그런 부류가 못된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제가 있는 팀들은 제가 공을 오래 들고 있거나 슛을 많이 쏘길 바라지 않아요.
그런 선수들과는 달리, 저는 '궂은 일dirty work'을 통해 팀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탯으로 치환되지도, 치환될 필요도 없는 그런 플레이들 말입니다.
언젠가 한 지인과 'Kenkyo(겸손)'가 무엇일까에 대한 대화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분이 말하길,
"유타, 내 생각에 'Kenkyo'라는 것은 겸손할 줄 아는 것과 감사할 줄 아는 것의 혼합체mixture인 것 같아."라고 하더군요.
Kenkyo를 정말 잘 표현한 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NBA 경기장에 서있는 모든 순간second들이 제겐 모두 의미가 있고, 소중하니까요.
몇 주 전에 랩터스와 계약을 맺었습니다. 정말 행복합니다.
하지만, 랩터스가 제게 원하는 것도 지금껏 다른 팀들이 제게 원했던 것과 다르지 않을 겁니다. 제 역할은 똑같겠지요.
그래서 저는 '롤 플레이어'까지 도달하기 위해 더 노력할 거고, 항상 더 발전하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제 사전에 "Garbage Time"은 없습니다.
1분이라도, 단 1초라도.. 제게 의미없는 시간은 없습니다.
얼마가 됐든, 코트에 올라가면 저는 제가 가진 능력을 전부 사용해서 플레이합니다.
그것 뿐입니다.
2021. 4. 30.
Yuta Watanabe
지난 2021년 4월 30일에 유타 와타나베 (그 유타 아님)가 The Players' Tribune에 기고한 아티클을 전체 번역해보았습니다.
모델 출신의 미인 아내와 결혼한 아시아 최악의 선수, 아니 세계 최악의 선수인 줄로만 알았는데, 개인적으로는 글 옮기면서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공부 목적으로 해본 졸역임에다, 보다 나은 의미 전달을 위해 중간 중간 의역을 다소 섞었습니다. 이 점 양해바라며, 원문이 워낙 훌륭하니 원문 그대로의 감상을 원하시는 분들께서는 제 번역은 스킵하시고 원문을 읽으시는 편을 권해드리는 바입니다.
원문입니다.
https://www.theplayerstribune.com/posts/yuta-watanabe-toronto-raptors-basketball-nb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