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p
자동
Free-Talk

[역사이야기] 패전이 만든 오늘날 일본 초밥

 
13
  2762
2020-07-24 17:04:45

 



일본의 대표음식 초밥보기에는 만들기 간단해보이지만 이 초밥을 더욱 맛있게 만들기 위해 장인들은 항상 손의 온도를 30도정도로 하고 밥알개수마저 300개를 딱맞추며 초밥을 제작한다고 한다.

그런데 초밥을 먹다보면 문득드는 의문이 있다.

 

 

보통 초밥집에선 한접시에 초밥 10개를 내놓는데,이는 세계 어느나라의 초밥집을 가든 같다.

솔직히 접시에 담긴 초밥개수를 더 줄이거나 늘일수도 있는데 왜 이렇게  1접시에 10개만의 초밥을 담는것일까?

 

 

사실,여기에는 2차대전에서 패배한 일본인들의 사정이 담겨있다.

과연 어떻게 된것일까?

이것이 당신의 쌀값입니다

 

뭐야 X발 돌려줘요


일본의 패전 직후인 1945년,일본은 극심한 쌀값의 폭등을 겪는다.
전쟁 직후 아시아 각지에 퍼져있던 일본인들과 군인들이 귀향해 입이 늘어난 데다가, 조선/만주로부터의 쌀 수탈이 불가능해져 쌀 생산량이 급락했기때문이었다.

게다가 전쟁으로 어획량도 반타작났고,해안은 그나마 간에 기별이 갈만큼은 먹었지만 내륙지역은 심각한 빈곤을 겪었다.

 

궭 배고파 죽는데스


이때문에 쌀과 생선이 주식이던 일본인들은 극심한 기아를 겪었고,1949년까지 최대 1천만이 기아로사망했다는 통계가 존재할만큼 아사자가 즐비했다.

우효!꼬들꼬들한 쌀 겟또다제!

이제 나의뱃속에서 얌전히 소화되라구!
그리고 배고픔을 못참고 생계형범죄가 크게 늘어났다.

" 앞으로 외식은 금지한다! "

결국 이사태를 보다못한 가타야마 데쓰 총리가 '음식점 영업 긴급조치'를 포고한다.
내용은 간단했다.
'정부허가가 없으면 음식점 영업은 금지'된다는 것이었다.

그럼 우리는 어떡하라고?


이 조치로 음식의 낭비가 줄어들었지만,음식점주들은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영업이 중지되서 돈을 못벌게 된 것이었다.

 

어 잠만! 초밥집은 제재대상 아닐수도 있겠는데?

 

?? 뭔소리여 니네도 제재대상임

 

ㄴㄴ 손님이 밥가져오면 우리가 그걸로 초밥만들어 돌려주면됨 

그러면 이건 요식업이 아니라 재료를 받은다음 요리만 해서 인건비받고 돌려주는거니 괜찮지않음?

 

이때,도쿄의 한 초밥집에서 '손님에게 재료를 받고 우리가 그걸로 초밥만들어 돌려주면 음식판매 아니지않음?'이라는 주장을 하고 이에 많은 초밥집이 이에 동조했다.

이에 음식점 점주들의 생계를 고려하던 도쿄시청은 얼씨구나하고 이에 동조해 초밥집은 제한을 해제해주었다.

그러나 조건이 하나있었다.

 

1인당 쌀 한홉까지만 교환가능


제한이 없으면 또 초밥먹으려고 사람들이 쌀을 사재기해서 가격이 폭등할걸 우려한 도쿄시청은 손님 1인당 밥 한공기정도의 쌀,즉 1홉까지를 초밥으로 만들수있다고 제한을 했다.

그러면 1인당 얼추 초밥10개는 만들겠네


그리고 이것이 초밥 10개를 만들수있는 분량이였다.
그래서 점주들은 초밥을 1접시에 10개씩 내놓기 시작했고 이게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이때 생선의 부족으로 같은 종류의 초밥을 1판당 1개에서 2개로 늘려 땜빵했다.

그리고 이것이 회전초밥에서 같은종류의 초밥이 1그릇당 2개담는것의 유래가 되었다.

모양이 각양각색이던 초밥도 이때 재료부족으로 최대한 미니멀리즘화가 되며 현재의 모양과 비슷한 초밥이 되었다.
그리고 그 패전으로 인한 임기응변들이 지금까지 내려오며 초밥의 기준이 된 것이다.


이렇듯,초밥은 패전을 겪은 일본인들의 애환을 담은 음식이다.
일본인들이 그냥 평범한음식인 초밥을 소울푸드로 여기는것은 어쩌면 이런 어려운 시대의 고난을 함께한 음식이라는 정서가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40
Comments
3
2020-07-24 17:29:19

일제강점기 시기 일본으로 쌀 유출은 수탈보다는 수출에 가깝습니다.

4
2020-07-24 17:52:37

수탈에 가깝죠 정치적 자유가 없는 곳에서 똑같이 쌀이 주식인 국가인데 한쪽은 쌀이 넉넉치 않은데도 빠져나갔으니까요.

1
2020-07-24 17:59:23

빠져 나간 이유가 조선인 지주들이 소작농들한테 수탈한걸 일본에 제값 받고 팔아먹은겁니다. 소작농들이야 조선 말기나 일제강점기나 마찬가지로 힘들었는데 조선인 지주들이 소작농들한테 뺏어간걸 일본의 수탈이라고 볼 순 없죠.

2020-07-24 18:10:22

일제시대 실제 지배한건 총독부인데 그 구조에 책임이 없고 조선인 지주와 소작인의 관계로 한정해서 볼 일이 없죠.
오히려 그런 구조를 지향하고 후원하고, 동양척식주식회사로 대량의 농경지를 보유하고 일본인들에게 싼값에 주거나 한국인 소작인들에게 소작을 줘서 소작료를 받은것도 일본 정부의 정책이죠. 이걸 일본 정부는 관계없다라고 할 수 없는 거죠.

1
2020-07-24 18:15:33

소작농들이 지주들한테 쌀 수탈당한건 조선 말기나 일제강점기나 똑같습니다. 일본은 조선 쌀이 품질도 괜찮은데 일본 쌀보다 싸기까지 하니까 조선 쌀을 수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고 조선인 지주들도 제값주고 사가겠다는 일본에 팔지 않을 이유가 없었던거에요. 이걸 어떻게 수탈로 봅니까? 일본이 쌀값을 후려치기라도 했나요 아님 협박해서 조선인 지주들에게 강제로 뜯어내기라도 했나요?

2020-07-24 18:17:48

님이 말씀하시는건 수탈을 아주 협의의 의미로만 보시는거죠. 군화신고 쳐들어와서 주인패고 창고열고 쌀가마니 들고가야만 수탈인게 아니죠.

1
2020-07-24 18:18:57

수탈의 의미를 잘못 알고 계시는거 아닌가요?

2020-07-24 22:03:16

오히려 님이 수탈의 의미를 매우 좁게 보시는 겁니다.

1
Updated at 2020-07-24 22:15:34
국어사전
수탈
 
(收奪) 발음듣기
[명사] 강제로 빼앗음.
 
일본이 쌀을 강제로 빼앗아 갔나요? 아니면 쌀 값을 후려치기라도 했나요?
 
일제강점기 쌀 유출이 수탈이라고 주장하실거면 일본이 쌀을 강제로 빼앗아 갔다거나 쌀 값을 후려쳤다는 근거를 가져오시면 됩니다.
Updated at 2020-07-24 22:22:31

소작인이 지주한테 수탈 당한건 인정하신건데 지주 소작관계가 조선인 사이에만 존재한것이 아니고 그러한 수탈관계로 인한 저렴한 쌀값을 이용한게 일본에 대한 이른바 수출입니다. 당연히 총독부는 이러한 구조를 일제시대 내내 조장하구요. 이러한 수탈구조에 일본의 책임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지주-상인간에 거래관계만 보는게 문제입니다.

그래서 제가 수탈을 너무 협의로만 보는것이라고 말씀드린거구요. 전체적인 구조에서 합리적으로 보이는 부분만 떼어서 ‘수출’이라고 정의하는게 당시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는 관점인지도 의문이구요.

2
2020-07-24 22:23:30

아, 그럼 조선 말기 조선 정부는 소작인들의 쌀을 수탈한거네요?

Updated at 2020-07-24 23:01:20

조선 말기나 일제강점기나 소작농의 삶이 힘든건 마찬가지였고 조선 정부나 일제 총독부나 지주와 소작농 관계에 개입해서 불평등 관계를 적극적으로 혁파하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조선 말기 조선 정부가 소작농들의 쌀을 수탈했다고 하진 않죠. 지주가 수탈했다고 하지요.

마찬가지로 총독부가 적극적으로 소작농과 지주의 관계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걸 일본이 수탈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는겁니다.

 

수탈이냐 아니냐를 논할 때 가장 중요한게 강제성을 지니고 있었냐는건데 일제강점기 쌀 수출은 강제성이 없었습니다. 조선의 쌀 사정이 넉넉치 않았는데도 빠져나가서 수탈이라고 하셨는데 지주들은 자국(조선) 민중들의 쌀 사정보단 비싸게 쌀 팔아먹어서 본인 배 불리는데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판매자도 구매자에게 팔 생각이 있어서 자의적으로 판매했고 구매자도 제값주고 물건을 구매했는데 이걸 어떻게 수탈로 볼 수 있을까요.

2020-07-25 01:23:36

당연히 조선정부가 구한말에 문제가 많았죠. 조선 말기 척박한 민중들의 삶에 조선 정부가 책임이 없다고 하는게 넌센스 아닌가요? 

 

하지만 개항기 이래 일본상인이 유입되면서의 문제는 조선의 쌀이 국외로 빠져나갔다는데 있죠. 그전에는 어찌됐건 쌀이라는건 조선에 남아서 어떻게든 유통이 되는건데 일본으로 쌀이 빠져나가버렸고 개항기엔 허울뿐인 방곡령이라도 있었지만 일제강점기엔 그런것도 없었죠.

 

자꾸 반복되는 이야기인데 지주-상인간의 상업거래 하나만으로 수탈적 성격을 가리는건 의미 없습니다. 경제 용어로서의 아다리를 맞춰서 수출은 될 수 있을지 모르나 소작인-지주-상인-일본으로 이어지는 파이프라인의 거시적으로 수탈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자꾸 조선정부 이야기하시는데 총독부가 언제부터 조선정부의 정책을 총체적으로 계승한 기관이 되었죠? 자신들의 통치를 위해서라면 이것저것 바꿀수 있는 권한이 있고 실제도 했고 그것을 '근대화'라고 포장했던 기관이 총독부인 것이죠.

 

강제적 성격이 없었다구요? 10년대에 회사령으로 회사설립을 원천봉쇄하고 20년대 후반 들어서야 일부지역에 제한적인 공업화를 추진했지만 일제가 한반도에서 가져가고자 했던것은 어디까지나 곡식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국권을 잃은 상태에서 자체적인 산업발달을 시도할 권한조차 사라졌고 농업중심 경제를 강요당했죠. 

 

조선의 쌀이 일본으로 잘 팔려나간 이유는 말씀하셨다시피 가격이 저렴했기 때문입니다. 왜 저렴했을까요? 인건비가 낮았기 때문이겠죠? 그것도 엄청나게. 일본까지의 운송비를 합쳐도 일본의 쌀에 비해서 가격경쟁력이 있었던 겁니다. '수출'이라는 시장 원리가 작용했다면 시장 원리에 따라서 쌀 가격이 높아질만도 한데 그렇지도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20년대부터 농촌에서는 수많은 소작쟁의가 일어납니다. 소작민들은 소작조건에 불만이 많았겠죠. 그 수많은 소작쟁의를 진압한것은 누구였을까요? 1910년에 망한 대한제국일까요? 총독부였겠죠? 총독부의 강제력으로 소작농의 소작조건 개선을 막았죠. 이것은 강압이 아닐까요?

 

수탈이라는 것은 강제적 성격을 내포합니다. 사전 안찾아주셔도 저도 그쯤은 압니다. 그 강제적 성격을 판단하는  기준이 서로 다른 것이죠. '수탈, 수출의 의미도 모르나?' 답답해하시는 모습이 눈에 선한데. 저는 반대로 식민지 통치의 전체적 구조를 생각하지 못하시는 '구조맹'적 모습이 답답합니다.

 

저는 여기까지 쓰겠습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1
Updated at 2020-07-25 03:41:40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의 공통점

 

1. 소작농들이 지주들에게 쌀을 수탈당했다.

2. 사회의 지배층인 조선 말기 조선 정부와 일제강점기 조선 총독부는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이를 해결하려 하지 않았다. 쉽게 말해 방관했다.

 

총독부가 소작농과 지주의 불평등 관계를 해결하려 들지 않아서(방관해서) 수탈이라면 마찬가지로 방관한 조선 정부도 수탈했다는 논리도 성립 가능합니다.

 

 말씀하신대로 조선 말기 척박한 민중들의 삶에 조선 정부가 아예 책임이 없진 않죠. 그렇다고 조선 정부가 방관했다고 소작농들의 쌀을 수탈했다고 하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말도 안되는 얘기고요.

마찬가지로 일본이 소작농과 지주의 불평등 관계를 방관했다고 그게 수탈이라고 할 수 없는겁니다.

 

게다가 소작인-지주-상인-일본으로 이어지는 파이프라인이 거시적으로 수탈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조선에 쌀이 부족한 상황이었다고 해서 판매자인 지주들이 일본에 쌀 안팔겠다고 뻐팅기다가 일본이 총칼로 위협해서 뺏어간게 아니잖아요. 저 파이프라인에서 강제적인 수탈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라인은 소작인과 지주의 관계 하나고 지주의 소작농 수탈이야 조선 말기부터 있던건데 일본의 지배 이전부터 있던 불평등 관계를 총독부에서 방관했다고 이걸 수탈이라고 하는건 말이 안됩니다. 소작농과 지주의 불평등 관계가 일본 지배때문에 생긴 것도 아니구요. 자기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대로 조선의 쌀 사정이 어떻건 제 배 불리는데만 관심있던 조선 지주들의 도덕성이 문제지 왜 제값주고 사가겠다는 구매자가 문제고 이게 수탈이 되는겁니까??

 

저 파이프라인에서 문제가 있다면 자국의 쌀 사정은 알 바 아니고 나만 잘먹고 잘살면 된다는 지주들이 문제지 왜 이걸 제값주고 사가겠다는 구매자가 수탈을 한다는 걸로 연결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님이 쌀 판매자고 쌀을 사겠다고 하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A는 형편이 매우 어려워 하루에 한끼 먹는 것도 벅차지만 B는 당장 먹고 사는데는 지장이 없습니다. 

A는 쌀을 3만원에 사겠다고 하고 B는 6만원에 사겠다고 합니다. 

형편상 B가 더 많은 돈을 내겠다고 할 수 있는 건 당연하겠죠?

심정적으로는 A에게 동정심도 들고 A에게 팔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결국 님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B에게 6만원을 받고 쌀을 팔았습니다.

 

그럼 여기서 B는 A를 수탈한게 되는건가요? 아니죠.

도덕적으로 봤을 때 판매자는 B가 더 많은 돈을 지불하겠다고 했더라도 하루에 한끼 먹기도 힘든 A에게 파는게 맞지 않았냐는 지적을 할 순 있겠죠. B도 형편이 어려운 A에게 양보하는 것이 좋지 않았냐는 얘기도 할 수 있구요.

그렇지만 도덕적으로 판매자와 B를 지적할 순 있더라도 정당한 가격을 주고 거래를 한 B가 A를 수탈했다고 하긴 무리가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쌀 유통 파이프라인도 이와 똑같은거죠.

도덕적으로 봤을 때 자기 이익을 위해 형편이 힘든 조선 민중을 외면하고 일본에 비싸게 쌀을 팔아먹은 지주들을 비판할 수 있겠지만 이를 일본의 수탈로 보긴 힘들어요.

 

 

그리고 10년대 회사령이니 20년대 제한적인 공업화니 하는 것은 쌀 유출이 수탈이냐 수출이냐의 논점과 별 상관이 없는 논점 이탈입니다. 쌀이 일본에 넘어갈 때 이 과정이 강제적이었느냐 아니었느냐가 주요 쟁점이지 사회 전체적으로 일제의 통치 방식이 어땠는지가 쟁점이 아니죠. 일제가 조선에서 가져가고자 했던 것이 식량인건 맞는데 그걸 정당하게 제값주고 사갔으면 그건 수탈이 아닙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수탈처럼 강제적이지도 않았고 값을 후려치는 부당한 거래도 아니었죠. 당연히 수탈처럼 어느 한쪽만 이득보고 어느 한쪽은 크게 손해보는 구조도 아니었구요. 

9
2020-07-24 17:56:51

그걸 수출이라고 이야기하면 대항해시대 이후 중남미에서 이루어진 플랜테이션을 이용한 식민지 약탈, 영국의 인도 수탈등도 다 수출이 됩니다...

1
2020-07-24 18:01:49

제값 주지도 않고 강제로 뺏어가야 수탈이죠.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쌀 유출은 조선인 지주들이 소작농에게 빼앗다싶이 한 쌀들을 제값받고 일본에 팔아넘긴겁니다.

2020-07-24 18:16:14

수탈을 그렇게 협의의 의미로만 보면 전근대시기에도 수탈은 거의 존재하지 않게 될겁니다. 지배층의 수탈? 그건 세금이었다.
지주의 수탈? 그건 계약관계였다.
심지어 전쟁기간중에 상대방 지역에서 현지 조달한것도 합리화 되는게 생깁니다. 나폴레옹은 영수증 주고 징발했거든요. 나중에 대가를 지불하겠다고요.(그거 몇백년 뒤에 프랑스 정부가 갚은적도 있습니다.) 그럼 그냥 계약상의 이행의무 문제지 수탈이 아닐까요?

1
2020-07-24 18:20:39

전근대시기에 지배층의 과도한 증세로 인한 세금이나 지주의 소작농 수탈은 강압적으로 이뤄진 경우고 일제시기 일본의 조선 쌀 수입은 강압적으로 이뤄진게 아니라니까요.

6
2020-07-24 18:23:12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의 차이일것 같은데...

 

1. 환율을 수출구조에 맞게 맞추어놓고 지주들의 편의를 봐주면서 소작농의 쟁의를 무시하면 자연스럽게 수탈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일본측 관점에서 이야기하면 이것은 계약관계라고 말할수 있겠지만 피해자인 우리나라의 관점에서 이야기하면 이건 수탈... 아무리 좋게 봐줘도 수탈을 방조하는 행위죠...

 

2. 한국인 지주뿐 아닌 일본인 자본가들이 만든 플랜테이션도 존재하였던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중남미와 인도에서 이루어진 일들과 전혀 차이가 없는...

 

3. 중일 전쟁 발발이후 총 동원령이 내려진 이후는 이러한 계약관계라고 말할만한것도 없이 다 수탈해갔었죠...

일본관점에서야 일본 본토에서도 그랫다... 라고 변명할수 있겠지만 우리나라 입장에서 수탈당한건 수탈 당한거죠...

Updated at 2020-07-24 18:32:07

총독부가 소작농들의 민생까지 고려해서 소작농과 지주의 수직적 관계를 혁파하지 않았다고 그걸 수탈이라고 하기는 무리가 있어보입니다. 조선인 지주의 쌀 수출은 어디까지나 조선인 지주와 일본의 니즈가 서로 맞아떨어져서 이뤄진거니까요.

 

물론 말씀하신대로 중일전쟁 발발 이후 30년대 후반부터 해방까지 일제강점기 말기에는 수탈한게 맞다고 봅니다. 이땐 뭐 전황이 하도 급박해서 식기도 가져가서 녹이고 했으니...

Updated at 2020-07-24 18:50:53

필요없는 댓글이라 지웁니다.
죄송합니다

2020-07-24 18:36:31

서로의 니즈가 맞아떨어졌다기보다는...

 

반대로 일본 총독부가 조선을 식량기지화 하기위해서 쌀농사의 비중을 일부러 늘리고 수출중심의 정책을 핀걸로 알고있는데요... 역으로 일본에서 쌀농사짓는 사람들이 이걸로 힘들어했다고 알고있구요.. (그래서 일본 유학생들의 경우 일본 좌파들과의 연대도 잘 되었다고 알고있구요...)


과연 이런게 다른 제국주의 나라들의 정책과 얼마나 차이가 날까요...

2020-07-24 18:39:41

조선인 지주 입장에선 조선에서 파는 것보다 일본에 팔아먹는게 더 이득이니 일본에 팔아먹은거고 일본 입장에선 조선 쌀이 일본 쌀보다 가성비 좋으니 수입한건데 니즈가 맞아떨어졌다고 보는게 맞겠죠.

1
2020-07-24 18:44:10

원래 국가라면 자국민들의 소비량을 계산해서 그 외에것들을 수출하게 환율을 조정하죠...

 

그런데 식민지 2등 국민이다보니 총독부에서는 그런거 상관없이 일본에 팔기 쉽게 환율을 고정해놓은거고...

 

상인들, 지주들 레벨에서 생각하면 이게 올바른 계약같아보이지만

 

사실은 식민지이기때문에 적법하게 수탈당하도록 총독부가 판을 짜준거라 보는게 옳을것 같은데요... 

Updated at 2020-07-24 18:51:29

수탈이냐 아니냐에서 가장 중요한건 그게 강제적이었느냐 자발적이었느냐인데 이 경우는 강제적이 아니었죠. 총독부가 맘만 먹었다면 식민지라는 조선과 일본의 수직적 관계를 이용해서 조선인 지주들에게도 강제로 값 후려치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게 수탈이죠. 근데 일본이 그렇게 했나요?

 

강제적이지 않은 자발적인 수출을 수탈로 보긴 힘들어요.

2020-07-24 18:53:32

어차피 서로의 생각이 평행선이라 좁혀지지는 않을것 같고... 같은이야기가 계속 중복되니 여기까지 이야기를 마무리하는게 맞을것 같구요...

 

우리나라를 제외한 나머지 중남미의 수탈이나 영국의 인도수탈과 같은것들도 한번 비교하면서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cndkekw님의 생각처럼 강제적인 수탈은 아프리카를 제외하면 의외로 별로 존재하지 않아요... 근대이후에... 

Updated at 2020-07-24 19:06:00

대항해시대의 식민지(중남미)와 19세기 이후의 식민지(아프리카, 아시아)는 애초에 그 성격부터가 다른 식민지라 직접적인 비교는 힘들 것 같구요.

 

19세기 이후 영국, 프랑스 등 열강 식민지 대부분이 아프리카에 집중됐는데 강제적인 수탈은 아프리카를 제외하면 별로 존재하지 않았다는건 별로 의미가 없는 듯 싶습니다. 아프리카를 제외하고서 19세기 이후 열강들의 식민지 정책을 논할 수 없으니까요.

2
Updated at 2021-06-04 10:52:45

.

2020-07-24 18:11:04

경제사학계의 ‘일부’의 의견이죠. 통설 아닙니다.

2
Updated at 2021-06-04 10:53:01

.

2020-07-24 18:57:12

경제사학이요? 

정확하게 경제학 말씀이신가요? 역사학 말씀이신가요? 

 

적어도 제가 아는 '역사학' 교수에서는 그런 얘기를 하는 경우를 한 번도 못 봐서요.

역사를 말하는 것과 경제를 말하는 건 명확하게 다른 거 같습니다. 

2
Updated at 2021-06-04 10:52:51

.

2
2020-07-24 19:33:19

공감합니다. 국사적으로 보는 관점은 사실 국민정서적으로도 연관있어서 건드리기 어려운 문제이죠
일본은 폭주하기전에 참 세련되면서 잔혹하게 병합해갔죠. 관아에 끌려가서 곤장맞던 문화에서 변호사를 통해 일본인 상대로도 이길 수 있게한 반면 민족의 문화를 거의 말살시켜버렸으니깐요.
강제병합 이후 일본은 말씀하신 것 처럼 정당한 댓가를 지불해가며(조선인 입장에서는 수출로 더 돈을 벌수 있었음) 수출해갔죠. 그걸로 부를 축적한 사람도 나오구요. 그점에서 수탈은 아니라고 보지만, 소작농같이 지주들을 제외하고는 수탈과 비슷한 영향을 받았던 것이 아쉽죠. 아무래도 물가는 올랐으니깐요. 쌀 소비량이 줄었다는 기록은 있습니다 (다만 조선시대 식문화가 제삿상에 쓰이는 식의 고봉밥에 매우 간단힌 반찬에서 다른 식문화가 생겨서 줄었다는 말도 있죠. 사실 소작농은 이전 이후 수탈당하긴 똑같긴 했을 것입니다)조선시대 말기 이후로 재산의 대부분은 지주들이 가지고 있었으니깐요.

2020-07-24 22:27:53

그 변호사를 임명하는 근대적인 재판제도는 대한제국시기에도 이미 기틀은 잡혔습니다. 일제시대에 새로운 것들이 많이 들어오고 ‘근대’라는 것을 경험하는 시기이기도 했으나. 흔히 일제강점기 이전 개화기 내내 들어온 신문물과 변화들까지도 모두 일본에 의해 들어왔다고 오해합니다. 마치 조선중기에서 1910년이 되면 모든게 바뀐것 처럼요.

2020-07-24 21:23:25

?

1
Updated at 2020-07-24 23:14:36

수탈 수출이야기가 좀 있는데요.

간단하게 쌀가격이 식민지 조선 국내에서 판매되는 가격보다 일본에 파는 가격이 더 비쌌습니다. 그러니 수출하는게 조선 지주들에게도 이득이었구요.

물론 구조적으로 들어가면 소수의 지주들만 배불리고 대다수의 소작농민들은 쌀을 못 먹게 되는 모순이 발생했으니 수탈로 볼수도 있지만 이건 구조적으로 봤을때 이야기입니다. 팔기 싫어하는걸 억지로 빼았아간 그런 류의 경우는 아니죠.

그럼 제3세계에서 싼가격에 쌀을 사오면 되지 왜 굳이 식민지에서... 라는 반문이 가능한데 보통 국가들은 국가차원에서 식량자원은 관리를 하죠. 단순히 더 비싸다고 왕창 다 팔고 그러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식민지 상황이었던지라 자체적인 통제없이 시장경제에 그대로 끌려가게 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죠.(사실 이 차이가 좀 크죠)

수탈이라는 단어 자체가 지나치게 가치가 반영된 단어인지라(성군 암군 이런것 처럼) 학계에서는 잘 안 쓰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기본적으로는 수출이 맞다고 봅니다. 수탈논쟁은 일종의 감정대립이죠.

본 코멘트는 운영원칙 위반으로 삭제되었습니다.
본 코멘트는 운영원칙 위반으로 삭제되었습니다.
1
Updated at 2020-07-25 19:09:38

쇼킹하지만 사실 조선 민중들에겐 일제강점기는 지배계층이 조선 왕조에서 일본으로 바뀐 것 말곤 별로 달라진게 없었습니다. 삶이 힘든거야 조선 말기나 일제 강점기나 똑같았고 지배계층이 일제로 바꼈다고 해서 더 고통스럽고 손해를 본게 아니거든요.

 

일제강점기에 대해서 대부분의 국민들이 착각하는게 크게 두가집니다. 하나는 토지조사사업으로 일본이 땅 뺏어갔다는 토지수탈설과 나머지 하나가 본 댓글에서 쟁점이 된 쌀 수탈설인데

 

토지수탈설은 김해지역의 토지장부가 발견됨으로서 논파된지 오래고

쌀 수탈설도 정당한 댓가를 받고 판 수탈이 아닌 수출로 밝혀졌죠.

 

물론 중일전쟁 이후 30년대 후반부터 45년 해방까지는 말 그대로 수탈한게 맞고 일제의 수탈이 실제로 심하지 않았더라도 제국주의는 그 자체로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다만 일본에 고마워해야 한다는 식민지 수혜론 같은 극단적인 찬양이 아닌 이상 실제 역사적 사실이 어땠느냐에 대해선 충분히 논할 가치가 있습니다. 국민정서와 다르다고 국민정서 입맛에 맞게 역사적 사실을 끼워맞추면 그건 역사가 아니라 역사 왜곡이나 다름없죠.

2020-07-25 19:08:54

사학이라는게 여러가지 이유로 편향될수밖에 없는 것이니

일본인들 입장에서는 다르게 생각될 여지가 많이 있겠네요.

정서적으로는 불쾌한 느낌도 들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좋은글과 댓글들 감사합니다.

14:44
7
1109
글쓰기
검색 대상
띄어쓰기 시 조건








SERVER HEALTH CHECK: 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