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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위대한 감독 7,6,5,4

자비에 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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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39
2025-02-16 13:58:03

역대 위대한 축구감독 7,6,5,4

 

 

7. 엘레니오 에레라

 

천국의 노예가 되기보다는 지옥의 왕이 되는 편이 나으리라 - 실낙원

 

에레라는 괴물이었다. 그는 약물사용과 심판매수를 남용했다는 의심을 살 신빙성 있는 증거가 있었고 선수단을 관리하는 데에 있어서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했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말해 그의 축구는 역사에 남았다.

 에레라의 바르셀로나 시절을 논하기보다는 결국 인테르의 카테나치오를 말해야한다. 

 모라티 구단주에게 우승을 약속한 기간이 1년 남자 에레라는 미드필더 하나를 수비진으로 전환하여 소위 스위퍼의 역할을 

소화하게 했다. 그리고 레프트백 파체티를 수직적으로 올렸다. 에레라의 축구는 효율을 강조했고 종적인 패스와 최대한의 적은 패스로 박스에 도달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이 대부분을 성취했다. 피키는 훌륭하게 스위퍼 역할을 수행했고 파체티는 카테나치오에 쏟아지는 비판들- 수비적이고 지루하다- 에 간신히 대응할 수 있는 방편이었다.

 

에레라는 심리적인 효과를 스포츠에 도입하고자 여러 시도를 했다. 온갖 의식들이 그 예였고 그는 끊임없이 선수들을 자극했고 공격했다. 에레라는 그 60년대에도 끔찍한 군대의 수장이라고 여겨졌고 그에 걸맞게 그는 선수단의 모든 것들- 영양,숙면, 선수들의 심리, 그리고 그가 제어할 수 없고 해서는 안 되는 것들까지-을 통제하려 했다. 그리고 그들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63,65,66년의 세리에 우승과 64,65년의 유로피언컵 우승이 그 증표이다. 하지만 이들은 결국 67년 마지막에 무너진다. 리그 후반기까지 지켰던 승점 4점차는 잃어버렸으며 결국 우승에 실패한다. 유로피언 컵 결승에서 인테르의 전사들은 지속된 피로에 의한 공황상태에 의해 패닉에 빠졌다. 그리고 셀틱에게 무기력한 패배를 당한다. 후에 부르니크는 자신과 파체티가 밤새 잠을 자지 못했고 옆방의 주장 피키가 새벽까지 토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술회했다.

결국 그들을 붕괴시킨 것은 그들의 성공을 이룩한 비법들이었다.

 에레라의 방법론들은 정도는 약해졌지만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그들 중 성공한 이들도 에레라같이 그들 자신에게 잡아먹혔다. 

 에레라의 축구는 이상을 위한 도달에서 오는 아름다움이나 숭고함 따위는 없었다. 그는 오로지 승리만을 추구했고 그에게 나머지는 도구였고 모든 술수들은 동원했다.

 그는 말그대로 지옥의 왕이었지만 그 지옥은 영원하지 않았다. 

 

6. 발레리 로마노프스키

 

수학은 진리,진실을 추구하는 게임이다. o 아니면 x,맞거나 틀리거나 둘 중 하나이다.

-장 피에르 세르

 

로마노프스키는 축구선수이고 감독이지만 이지적인 학생이자 하나의 수학자였다. 로마노프스키를 이야기하기 위해 먼저 언급해야할 이름은 마슬로프다. 마슬로프는 현대축구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의 시원인데 바로 압박이라는 것이다. 로마노프스키는 마슬로프의 제자였으며 압박을 다나모에서 만개시키는 것을 넘어 그 이상을 해낸다. 그는 수학과 과학을 도입했다. 그는 체력적인 주기관리를 축구에 끌고왔으며 통계와 컴퓨터를 통한 경기분석을 활용했다. 다나모는 8번의 소비에트 리그 우승,6개의 소비에트 컵, 5번의 우크라이나 리그 우승, 그리고 두 번의 유러피언 위너스 컵을 차지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러듯이 그도 사그라드는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위대한 예술가와 학자들이 그러듯 하나의 수원지가 되어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 있다. 그는 필드 위의 유효한 이항대립이 공의 유무인 것을 이해하는 감독이었고 공격할 때는 넓게 수비할 때는 좁게 공간을 사용했다. 그리고 공 없을 때의 움직임의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방법론이 이식된 방식으로 축구를 보고 행한다.

 

5. 요한 크루이프

 

시인이란 모든 감각의 거대하면서도 오래된, 이론적인 뒤틀림에 의해 견자가 된다 - 랭보

 

천재라는 단어는 우리의 생각을 멈추기 때문에 오남용되어서는 안 되지만 크루이프는 예외다. 왜냐고? 그의 이름은 크루이프이고 그것은 그가 그의 자유로운 생각대로 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크루이프는 현대축구의 기틀을 잡았고 사키의 밀란과 그의 바르셀로나는 축구의 정초석이 되었다. 공을 소유한다는 것의 의미는 그에 의해 재정의되었고 볼이 사람보다 빠르다 라는 명제는 진리로 자리잡았다. 그는 높은 라인과 압박을 강조했다.

 그의 감독 커리어는 아약스와 바르셀로나가 전부이고 아마 다른 곳에서는 그의 철학을 실현하지도 성공하지도 못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지만 그래서 어떤가! 축구라는 스포츠를 논할 때 그는 선수로서나 감독으로서나 최고이고 가장 위대한 축구인이다. 그는 축구의 미래를 읽을 수 있는 예언자였고 선각자였다. 랭보가 그랬듯 그는 견자였다.

 we color the football 바르셀로나의 자부심이 드러나는 플래카드다. 크루이프와 그의 제자들은 축구를 너무나도 아름답게 칠했다.

 

4. 아리고 사키

 

천재는 그의 실수가 아닌 그의 걸작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 볼테르

 

한 신발 공장에서 일하던 청년은 조국의 축구를 반역한다. 그는 70년 브라질, 미헬스의 축구를 경외시했고 그들을 따라가고자 했다. 당시 이탈리아는 여전히 카테나치오로 대변되는 수동적이고 보수적인 축구가 주류였다.

 하지만 사키의 밀란은 혁명을 일으킨다. 그가 강조한 것은 간격과 대형, 압박이었다. 크루이프가 유기성의 축구라면 사키의 축구는 질서의 축구이다. 

 그의 발상은 우리 팀이 높은 라인으로 압박을 가하고 높은 지점에서 공수전환을 빠르게 실현한다면 더 강력하리라는 예측에 기반했고 그는 맞았다. 

 현대축구는 결국 간격과 대형을 90분 동안 유기적으로 질서에 녹여내는 것이고 그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사키는 var과 백패스 금지규정이 부재할 때 증명했다. 현대축구는 그의 작품이며 비록 그가 밀란에서만 성공했더라도 그가 위대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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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앤든륜 윈긴슨
2025-02-17 10:59:29

123위는 순서 상관없이 리누스 미헬스 알렉스 퍼거슨 펩 콰르디올라 일까요?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WR
자비에 돌란
2025-02-18 01:00:16

네,,, 감사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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