는쟁이벌의 바퀴벌레 사냥

다른 여타 기생벌들은 애벌레의 먹이가 되는 숙주들을 마비시킨 뒤 애벌레들에게 먹이는데, 이 는쟁이벌은 완전 마비시키는 게 아니라 신체 능력은 그대로 두고 정신만 멍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소위 말해서 숙주를 '좀비'로 만든다는 게 허튼 말이 아니죠.

는쟁이벌의 침에 찔린 바퀴벌레는 그 즉시 스스로 움직일 의지를 상실합니다. 그래서 는쟁이벌한테 산채로 질질 끌려가는데요, 만약 는쟁이벌이 바퀴벌레를 완전 마비시켜버린다면 그 작은 덩치로 자신보다 더 크고 무거운 바퀴를 제대로 끌고 가지 못할 겁니다. 이때문에 보통 다른 기생벌들은 자신이 끌고 갈 만한 덩치의 숙주를 노리지만, 는쟁이벌은 바퀴를 '정신지배'하는 식으로 마비시켜서 자신이 끌고 가는 대로 그대로 따라오게 만들어서 애벌레에게 풍부한 영양소를 듬뿍 제공해주죠. 

바퀴벌레는 자연 상태에서 덩치는 좀 있지만 자기 방호 능력은 떨어지고 영양분은 풍부한 곤충이라 온갖 수많은 천적들의 먹이가 됩니다. 오로지 인간만 이 바퀴벌레에게 쩔쩔매며 살며, 농발거미나 그리마, 새들에게는 가장 손쉽고 영양 만점의 먹이입니다. 는쟁이벌도 자연 상태에서 매우 흔하면서 자신같이 작은 기생벌이 마비침을 쏘아도 별 반항도 못하며, 일단 둥지로 끌고갈 수만 있다면 애벌레들에게 최상의 양분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이 호구를 효과적으로 숙주로 삼을 수 있게 마비침이 독특하게 발달한거죠.

바퀴는 계속 넋이 빠진 상태로 멍하니 있다가 산채로 파먹히는데요, 이때는 자발적인 운동 의지 뿐만 아니라 통증에 대한 반응도 극도로 둔감해지기에, 그냥 멍하니 먹힙니다. 근데 여러 실험에 따르면, 이 좀비 상태의 바퀴벌레도 자신의 의지만 없다 뿐이지 다른 물리적인 자극에는 제대로 반응을 합니다. 물에 빠뜨리면 수영을 하고요, 공중에 놔두면 날아갈 수 있으며, 몸을 자극하면 뒤집는 등의 일반적인 행동이 다 가능합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상황에 따라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것일 뿐이지,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는 건 불가능한 상태죠.

즉 완전 넋이 나가고 통감이 사라진 상태지만 몸이 마비된 것도 아니고 운동능력도 멀쩡하면서 도망칠 생각도 못하고 그대로 애벌레의 먹이가 되는 겁니다. 놀랍게도 는쟁이벌의 애벌레는 바퀴의 어디를 어떻게 파먹어야 바퀴가 뜯어먹히는 와중에도 가장 오래 살아남는지를 알고서 체계적으로 파먹습니다.

먹히는 와중에도 바퀴벌레는 특유의 그루밍(입과 압발로 몸을 깨끗이 단장하는 행위)를 계속해서 하고요, 신체 내부에서는 신진 대사가 몸에 양분을 최대한 축척하는 쪽으로 바뀝니다. 이런 행동들은 겉으로는 바퀴의 외형을 청결하게 만들면서 속으로는 애벌레가 먹는 양분을 최대한도로 늘리는 식의 매커니즘이죠. 이 또한 는쟁이벌의 '정신지배'의 결과물이고요. 

진짜 대박이네요. 바퀴 한마리 잡아서 의식주를 다해결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