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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소설 한 편-최진영 '홈 스위트 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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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3-03-19 14:50:15

오랜만에 와이프가 애들 데리고

처가에 간 주말입니다.

보통 이럴 때면 밤새 뭐할지 미리 계획 짜고

설레여서 제발 나가기만 바라게 되는데,이번에는

직업 특성상 3월이 무지하게 힘들고

제가 맡은 업무가 지난 주에 일이 집중되다 보니,

아직도 피로가 남아서 그냥 자고 싶었습니다.

 

바라던 대로 푹 잤습니다.

마지막 기억이 놀토를 보던 중이니 한 8시 지나 잠들어

잠깐 깨서 핸드폰 보니 새벽 4시 정도.

폰 가지고 이것저것 하니 한 한시간 흐른 것 같은데,

폰 떨어뜨린게 침대와 매트 사이에 빠져서

꺼내기 귀찮아서 에라 그냥 자자.

깨보니 9시가 다 되어 있는.

 

역시 건강과 피로 회복에는

잠만한 게 없습니다. 

개운하고 머리가 돌아가는 느낌이 듭니다.

 

직장에서 직원들에게 책 한 권씩을 주었습니다.

명색이 문학도이고 한 때 모으기도 했던

이상문학상 작품집이 보여서 골랐습니다.

시간 흐르고 처음 책 쌓여 있던 데를 보니,다들 골라가고 

이상 문학상 작품집이 제일 많이 남아 있네요.

소설은 죽었....냐?

 

주중엔 일 많아서 피곤하고 집에 와선 애들 본다는 핑계로,

사실은 귀찮고 그냥 스마트폰하고 노는게 편한 건데.

받아만 두고 안 보고 있었는데,

사실은 자기 옛날 집 이야기와 거기 있던 우물가와 개구리 얘기하고

자기 이사 많이 한 얘기하고 엄마랑 소소한 대화 나누는.

그 심리를 곱고 잘 정제되어 있지만 일상적이지 않은 문체로 진행하는

도입부가 영 몰입이 안 되고 와닿지 않은 게 컸어요.

사실은 그마저 귀찮음이고 스스로 몰입 안 한 거죠.

대충 읽다가 빨리 폰이나 하자.

 

느즈막히 일어나서 조용한 집에

혼자 할 일 없이 멍하니 있는 일요일 아침.

이 책이 보이고 떠오르고 읽기 시작하니

일단 단편이면서도 짧은 편이기도 하고

순식간에 다 읽고 상념같은 것에 젖습니다.

 

제목만 보면 따뜻한 집에 대한 이야기같지만,

죽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요즘 노인들에게 화두라는 '웰다잉'에 대한 이야기인데

아직 젊은 서술자가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을 그린.

 

많은 퇴고를 거친게 눈에 보이는 정갈한 문장들과

의식의 흐름 치곤 마냥 복잡하지 않고

서정적으로 죽음에 대한 생각과 극복 방안을 제시하는

작가의 오랜 상념들이 한 올 한 올 다가오는 느낌.

 

'시간은 발산한다.'

아마도 작가가 가장 공들여 주제를 담은 문장같습니다.

시간은 지나고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퍼져가는 것. 

그 퍼져있는 것 중에 점같은 어떤 것을

각자 기억하고 간직하는 것.

 

지금 현재의 삶에서 가장 자주 듣게 되는 대화가

장모님과 와이프의 대화이고,

모녀와의 대화를 옆에서 듣다 보면

남자 입장에선 나는 누군가와 저런 대화를 못할 것 같은데

여자들만이 나눌 수 있는 감정이 통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게 따뜻한 사랑의 표현이든,

날카롭게 칼이 서 있는 케케 묵은 감정의 표현이든.

 

소설 속에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서술자와 엄마의 대화 중에

인상적인 것들이 좀 있어요.

 

만약에 이 소설 원작으로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이 모녀의 대화 부분은 꼭

연기력 좋은 배우들이 맡아서

잘 표현해주었으면 생각도 듭니다.

 

잊고 지내다가 가끔씩 떠올리게 되면

순간 멈짓멈짓하는게,

부모님이 죽은 이후입니다.

이제 두 분다 돌아가셔도 

크게 이상할 것은 없는 연세가 되셨고.

어머니는 성당에 전보다 더 열심히 다니시고

아버지는 웰다잉에 대한 이야기 심심찮게 꺼내시고.

뭔가 두 분 스스로도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시점에 많은 고민을 하고 있지 않나.

어머니는 그 생각을 잊으려 종교로 돌리고,

아버지는 그 생각과 정면으로 대면하며,

예정된 두려움을 이겨나가는 느낌도 받고.

 

그 최종 결론은 어느 순간

나의 죽음에 이르는데,

타고난 성정이 낙천적이어선지

거기서 생각을 잘 끊네요.

 

결국 이 소설은

그런 죽음의 순간의 인식에 대한

진중한 고찰의 결과랄까요.

안 하던 독서와 깊은 생각까지 하게 만들 만큼

깊은 잠은 머리에 좋습니다.

최진영 작가님 원래 좋아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이 소설 정말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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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2023-03-19 15:06:30

최진영 소설 참 좋지요.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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