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크 굽기 그리고 먹기에 대하여
사실 스테이크를 제대로 먹어본 적도 없었고.
요리는 당연히 생각도 안해봤습니다.
미국에서 일반 마트를 가도, 코스트코를 가도. 산처럼 쌓여있는 스테이크용 고기들을 봐도 저에게는 그냥 "오, 저런 고기가 있지"하는 정도이지, 사서 요리를 직접 해서 먹어볼 생각조차 안했습니다.
그러다가 큰 마음을 먹고 고기를 사서 요리를 했는데, 으아 왜 이렇게 찔긴지요.
게다가 저는 스테이크는 당연히 A1 소스에 찍어 먹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냥 정말 A1 소스 찍어서 그 맛으로 먹고, "아 스테이크 요리는 어려워"라며 포기에 가까운 마음이었습니다.
아는 지인에게 물었더니 "고기를 쌀뜬물에 담궜다가 요리하면 부드럽다고"그래서 그렇게도 해봤습니다.
부드럽긴 한데...
으악...이게 무슨 맛인지.
그러던 어느 날, 고든 램지가 가르쳐 주는 스테이크 요리를 보게 되었습니다.
영상을 열심히 보니, 생각보다 어려워 보이지 않는겁니다.
이거...뭐...그냥 소금 뿌려서 구우라는 이야기네?
아, 기름에다가 굽고, 아, 타임이라는 향신료가 있구나. 어? 오래 안굽네? 잉 버터? 안느끼해?
잠깐...스테이크 부위 종류가 무지 많네?
그러니까, 이전에 제가 구웠던 스테이크 고기 종류는 사실...스테이크로 잘 안먹는 Chuck Roast라고 일반적으로 그냥 구우면, 질기디 질긴 부위였습니다. 쌀 뜬 물에 담구는건 정말 말도 안되는 짓이었고. A1은...손대면 안되는 소스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코스트코에 가서 당당하게 립 아이 스테이크를 사왔습니다.
그리고 고든 램지 아저씨가 시키는대로 잘 따라해 보려고 하는데...여기서 또 하나 문제가 생겼습니다.
고기는...빨간게 없어져야 먹는게 아닌가요?
왜 자른 단면들이 다 핑크에, 빨간 핏 물이 슬슬 나오고. 저거 핏 물 빼고 구워야 하는게 아닌가요?
보니까, 다들 미디움 레어로 굽습디다. 빨간물이 슬슬 나오는데, 육즙 나온다고 좋아합디다.
웰던...은 다들 "대체 그걸 어떻게 먹어"라는 분위기였습니다.
고기에 대한...제 정체성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램지 아저씨가 시키는대로 그대로 해봤습니다.
어라? 맛있습니다.
아직 아주 잘 구운 것 같지는 않지만, 고기 자체의 풍미가 느껴진다는게 뭔지를 조금 느끼게 된 것 같았습니다.
빨간 물 나오는 고기는 먹는거 아니라던 제 아내를 설득해서 고기를 줬습니다.
먹더니..."어랏?"
맛있던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부드럽기까지.
아이들은 이게 핏물인지 쥬스인지 모를 때라 제가 주는대로 먹습니다.
스테이크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늘어났습니다.
캐스트 아이언을 사면 좋을 것 같기는 한데, 이래저래 읽어보니 관리가 영 귀찮아 보입니다. 그냥 스테인레스 팬으로 타협을 했습니다. 그리고 고기 잘 굽는 사람의 조언을 듣고, 수비드도 구입했습니다. 비싼 돈 들여서 산거니...이제 스테이크 뿐 아니라 이거저거 구워 보기 시작했습니다.
큰 아이가 생일이 되어서, 친구들을 초대하여 스테이크를 구워줬습니다.
아이들이 빨간 물 나오는 고기는 불안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냥 미디움 웰 수준으로 구워줬습니다. 다들 맛있게 먹었는데, 제 딸 아이가 다음 날 이야기 합니다.
"아빠, 어제 고기 맛은 있었는데 평소 보다 뻑뻑했어요. 다음에는 제건 빨간 물 나오게 해주세요."
제가 아이 키우며 가장 큰 보람을 느꼈던 순간 중 하나입니다. "내가 뭐 하나는 제대로 가르쳤구나!"
그 뒤로 한국에서 손님이 오면, 거의 필수 코스가 공원에 나가서 고기 구워먹는게 되었습니다.
일단 미국에는 그냥 동네 공원만 나가도 그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스테이크 고기가 한국과 비교하면 말도 안되게 싼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 손님들 대접하겠다고 어설픈 식당 가는 것 보다, 그냥 내가 이렇게 구워주는 것이 훨씬 특별하고 고급스러운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오는 지인들의 반응은 대부분 비슷합니다.
"난 웰 던으로"
그럼 나는 "그래" 하고는 미디엄 레어 쯤 되었을 때 이야기 합니다.
"사실 지금이 고기가 제일 맛있을 땐데..."
제 가족들은 이미 칼 질 시작했습니다.
제 친구들도 별 수 없이 한 점 집머 먹습니다.
그럼 게임 오버입니다. 다시는 웰던 스테이크는 쳐다 보지도 못 하게 됩니다.
사실 고기를 고르는 기준은 그냥... 인원수랑, 돈이랑 또는 마켓에서 하는 세일 품목에 따라 갈립니다.
문제는 제가 저 고기 부위가 대체 한국 말로는 어느 부윈지를 잘 모릅니다. 안심, 등심 등등이랑 미국에서 부르는 부위가 어떤게 어떤건지를 잘 모릅니다.
사람이 많을 때, 뭐 그냥 친한 친구랑 케주얼하게 먹을때는 "Tri-tip"이라는 부위를 삽니다. 사실 제일 저렴합니다. 대신 로스트용으로 사서, 6시간 정도의 수비드로 굽고. 공원에 들고 나가서 숯불에 시어링을 해주고, 쓱쓱 썰어서 나눠주고 먹습니다. 그러는 동안 제 아내는 토마토를 자르고 위에 모짜렐라를 얹어 숯불 한쪽에 올립니다. 그것과 샐러드가 요리의 전부입니다.
물론 가볍게 와인도 한 잔 하죠.
좀 그래도 챙겨야 할 때는 "Rip-Eye"나 "New York Stip"을 삽니다. 물론 립아이가 비싸고, 뉴욕은 좀 그 아래 레벨입니다. 하지만, 수비드로 잘 준비해서 구우면, 그래도 지방의 조직이 잘 분해 되어서, 나름 나쁘지 않게 먹을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솔직히 립아이는 그냥 막 구워 먹어도 맛있죠.)
오늘 저녁으로 간만에 스테이크를 해 먹었는데, 가족들이 나름 제가 해준 스테이크는 참 좋아합니다. 제 친구들도 LA에 방문하면 제가 해준 스테이크를 먹는게 여행 코스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물론... 솔직히 그리 잘 굽는다고 하기엔 정말 잘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서... 정말 절친들 사이에서만 합니다. 누구한테 내세울 수준이 아니라서. 하지만, 오늘 네식구 스테이크 요리에 20불 들어갔습니다. 이 정도로 스테이크 요리 가족이 함께 먹는거.. 괜찮고, 나름 제 보람이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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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미국에 산다고 모두들 고기를 잘 아는 건 아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