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네요
좋아하는 구단을 비롯한 남은 3개 구단만 새가 됐다는 점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슈퍼 리그를 기대했던 이유는 자본의 유입보다 지금과 같은 축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더 컸으니까요.
제가 라리가를 좋아하는 이유는 스타들을 보는 것보다 뛰어난 패스와 화려한 개인기, 그리고 라리가 특유의 리듬 축구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라리가를 놓고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가 다 해 먹는 구단이 아니냐고 하지만, 정작 제가 라리가를 보기 시작했던 시절에는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와 발렌시아, 레알 소시에다드 같은 구단들이 우승 경쟁을 벌였거나, 우승을 차지하는 등 경쟁력이 있었어요.
2007년 서브 프라임 모기지와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 이후 그동안 경쟁력을 갖췄던 구단들이 경제적으로 몰락하면서 양극화가 됐지만, 대신 이 시기에는 호셉 과르디올라의 바르셀로나와 조세 무리뉴 감독의 레알 마드리드로 이어지는 뜨거운 엘 클라시코, 그리고 맞불 축구 등 공격적인 축구에 눈이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 뛰었던 선수들이 매우 좋았기 때문에 즐거웠고요.
양극화 얘기하지만, 솔직히 이때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에서 뛰었던 선수들이 매우 좋았던 것이지 라리가의 다른 구단들에서 뛰었던 선수들의 기량이 별로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2016년부터 라리가의 다른 구단들이 두 줄 수비와 공간 압박, 그리고 거친 수비를 중시하는 성향이 강해지면서 이게 점점 라리가인지, 세리에A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습니다.
저를 비롯해서 오랫동안 라리가를 보시는 분들도 경기가 끝나고 나면 “이게 정말 우리가 아는 라리가가 맞을까?”라는 말을 했을 정도로 오늘날 라리가는 예전의 라리가와 거리가 멉니다.
구단들은 늘 두 줄 수비를 하기 바쁘고, 공간을 압박하는 데다가 틈만 나면 거친 파울로 경기의 흐름을 끊는 등 예전처럼 시원시원한 패스나, 화려한 개인기를 볼 수 없습니다. 선수의 질이 예전만큼 좋지 않은 점도 분명히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라리가 특유의 스타일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별로 좋게 보지 않습니다.
90분 동안 비슷비슷한 패턴의 경기력이 벌어지니까 축구 자체에 즐거움을 느끼지 못합니다.
예전에는 새벽 3시 이후에 일어나도 잘 일어났다고 생각이 됐을 만큼 축구가 재밌었습니다. 근데 서서히 새벽 3시에 일어나도 다시 잠든 만큼 축구가 재미가 없어졌어요. 어제 플로렌티노 페레스 회장이 “수준 낮은 경기가 너무 많다”라고 지적했던 것에 동의했던 이유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건 단순히 라리가만 그런 게 아닙니다. 프리미어 리그 역시도 비슷합니다. 프리미어 리그 자체가 거친 리그이기 때문에 파울이 많은 것은 그렇다고 쳐도 예전에는 화끈한 중거리 슈팅이나, 팀마다 특유의 스타일이 있었을 만큼 그 개성이 있는 맛으로 봤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구단이 비슷비슷한 스타일의 축구를 펼칩니다. 그래서 예전만큼 축구를 보는 즐거움이 사라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슈퍼 리그 창설을 바랐던 첫 번째 이유는 이런 고착화된 스타일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기 때문입니다. 말 그대로 강팀 VS 강팀인 만큼 서로 공격할 기회가 많아지는 것은 사실이니까요.
두 번째 이유는 솔직히 저는 축구계의 미래가 밝다고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쪽 업계에서 일했던 경험 때문인지 몰라도 절대로 긍정적으로 보지 않아요. 여러 이유가 있는데, 지금의 상황이 계속 이어진다면 결국 모두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팬층의 고령화도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선수 수급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고, 이로 인해 상술했던 경기력의 저하도 있다고 봅니다.
축구 기자로 일했던 지난 2년하고도 4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별별 리그를 다 봤습니다. 제 기사를 예전에 꾸준하게 보신 분들이라면 제가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를 비롯한 유소년 선수들은 물론이고, 아약스와 인터 밀란, 올림피크 리옹과 같은 타 리그 유소년 선수들이나, 혹은 브라질 리그에서 활약 중인 선수들에 대한 글을 자주 올렸던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지난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보고 느낀 것이지만, 옛날만큼 뛰어난 선수들이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실패할 선수들은 줄어들었지만, 반대로 성공할 선수들이 줄어들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코어로 삼을 선수들은 줄어들고 있는데, 그 코어들을 성공할 수 있게 해줄 조력자들은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코어로 삼을 선수들을 수급하는 돈이나, 선수단을 유지하는데 사용될 돈은 계속 필요하거나, 늘어나는 중입니다. 이 때문에 법으로 금지된 서드 파티라고는 하지만, 구단이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서 에이전트뿐만 아니라 이제는 부모들에게도 거액의 돈을 줘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쉽게 말하면, 선수가 4500만 유로에 이적을 하면 예전에는 500만 유로의 에이전트 수수료를 줘야만 했는데, 요즘은 선수가 4500만 유로에 이적하면 에이전트에 1500만 유로, 부모들에게 1500만 유로를 줘야 합니다. 이는 갈수록 선수들을 수급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재정에 어려움을 겪는 구단이 많아진 것도 사실이고, 이 기간 동안 축구에 대한 관심이 식은 데다가 기업들 역시 예전처럼 축구에 대한 투자를 매력적으로 보지 않는 까닭에 자본을 유지하거나, 끌어들이는 일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지금처럼, 혹은 지금보다 질적으로 낮은 경기가 늘어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세 번째, 슈퍼 리그가 없다면 결국에는 프리미어 리그가 독점하는 운명은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라리가와 세리에A는 재정적으로 너무 어렵습니다. 그래도 예전에는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같은 구단들이 핵심 선수들을 지키는 게 쉬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들도 예전처럼 선수들을 지키는 게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중계료에 대한 격차는 점점 커지는 데다가, 프리미어 리그는 영어권이라는 장점과 더불어 기후적으로 낮 경기를 치르기 좋아서 시간대가 좋습니다. 반대로 라리가와 세리에A는 그렇지 못합니다.
지금의 흐름이 이어진다면, 결국 라리가와 세리에A가 반전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슈퍼 리그가 몇몇 구단의 이기적인 발상이라는 것에도 동의하고, 저 역시 “슈퍼 리그는 찬성하지만, 분명 제도적인 개편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슈퍼 리그에 찬성했던 가장 큰 이유는 결국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대부분 빅 클럽들의 경기를 보지 중하위권 구단들의 경기를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글을 쓰면 분명히 최상위권 구단들을 응원하지 않으시는 분들께서 “오만방자하다!”라고 하실 수 있겠지만, 결코 그 구단을 깎아내리기 위한 목적으로 쓴 게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다수의 사람이 유명한 선수들이나, 유명한 구단들의 경기를 보는 것은 사실이니까요. 그런데 지금의 상황은 그 유명한 구단들마저 유명한 선수들을 유지하는 것이 어려워진 상황입니다.
오늘날 축구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로컬 팬이나, 헤비 팬이기도 하지만, 결국 경기를 시청할 수 있는 라이트 팬층을 얼마나 잡고, 이를 어떻게 유지하느냐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이 라이트 팬층을 잡고, 유지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대다수의 라이트 팬층이 유명한 선수들, 혹은 유명한 구단들의 경기를 보는데, 저 유명한 구단들의 경기를 보지 않는다면 이는 축구가 점점 매니아들을 위한 스포츠가 될 뿐만 아니라 쇠퇴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지금 UEFA가 내놓은 개정안이 좋냐면 또 그것도 아닙니다. 솔직히 저는 UEFA나 FIFA나 더하면 더하지 덜할 사람들은 아니라고 봅니다. 네이션스 리그를 비롯해서 쓸모없는 대회가 너무 많아요. 근데 선수들이 이 대회에서 부상을 당해서 돌아오면 그렇다고 정당한 보상을 해주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이번에 발표한 개정안 역시 36개 팀들이 참가해서 조별 리그 10경기를 치른다고 되어 있는데, 글쎄요. 선수들의 수급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데, 선수단을 유지하거나, 이들을 대체하는 것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이는 상술했듯이 결국 경기의 질적 저하로 이어질 수 있는 문제입니다.
이런 이유로 슈퍼 리그의 창설을 정말 찬성했던 사람이었는데, 지금의 상황은 아쉬울 뿐입니다. 응원하는 구단이 징계를 받거나, 몰락하는 거야 솔직히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바이고, 각오했지만, 그런 것보다 오늘날 축구가 과연 감성과 낭만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는 문제인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결국, 돈이 돈을 낳는다는 말처럼 오늘날 축구는 자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고, 이를 얼마나 유지하느냐가 관건인데, 지금의 상황이 이어진다면 과연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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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파나 우에파나 다 비리의 온상인데 섣부른 움직임으로 오히려 얘들 권력만 더 강화시켜줄 판이네요.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