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식서스 경기 감상 (23.03.17. at CHA)
- 험난한 일정에도 불구, 점점 더 좋아지는 경기력을 앞세워 계속해서 승리하고 있는 필리입니다. 오늘은 샬럿 원정을 나서 121:82, 39점차로 올 시즌 최다 점수차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바로 내일 백투백 인디 원정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거의 10분 가량의 가비지타임을 벌어 주요 선수들의 체력을 세이브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승리였죠.
- 최근 진지하게 MVP레이스 역전을 노리고 있는 엠비드. 그의 경기 내 공수 존재감이 샬럿을 잡아먹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경기였습니다. 2쿼터 초반까지는 대등하게 진행되던 경기였으나, 엠비드가 휴식을 마치고 돌아온 2쿼터 후반부터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했고, 그 중심에는 엠비드의 수비력이 있었습니다.
시즌 후반 들어 기어를 바꾼 엠비드의 블락 파티가 오늘도 계속되었는데요(오늘 4블락). 어떤 분들은 엠비드의 수비 폼이 올라왔다고들 하시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엠비드는 데뷔 이후로 시즌 후반/플옵에서의 체력 및 건강 문제에서 자유로웠던 적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하든이 부활하며 어느 때보다도 우승 확률이 높은 이번 시즌(필리 입장입니다), 엠비드는 의도적으로 체력을 아끼기 위해 시즌 초반 수비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았다는 추측입니다.
예를 들어 시즌 극초반 터커와의 수비 커뮤니케이션 미스로, 드랍백이냐 스위치냐 골라야 하는 상황에서 어정쩡하게 팀 수비 대형이 깨지는 경우가 왕왕 있었습니다. 엠비드는 (하던대로)드랍백, 터커는 스위치를 택할 때가 많았는데, 이때 엠비드 본인이 스위치로 변경해주거나 아예 드랍백 위치를 전진 조정할 수도 있었지만, 엠비드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여기서 많은 오픈 찬스가 발생했죠. 원래 엠비드는 가드와의 미스매치도 상당시간 버틸 수 있는 민첩성과 수비 지능으로 유명한데,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하지만 최근 엠비드가 수비에 체력을 더 쏟기 시작하면서, 드랍백이든 스위치든 어느 쪽에서나 엠비드를 공략하기가 상대팀으로써는 아주 부담스럽게 되었습니다. 특히 복잡한 셋트 플레이보단 선수들의 개인 공격력을 활용해 득점을 많이 만들어내는 샬럿 같은 팀은 더더욱 엠비드를 뚫기 어렵죠. 블락을 의식해 샬럿 선수들이 골밑에서 엠비드와의 대결을 피하는 양상이 2쿼터 후반부터 나오기 시작했고, 결국 샬럿의 공격은 핸들러가 스크린 받고 바로 풀업 3점이나 미드레인지를 던지는 패턴 일변도가 되었습니다.
예측 가능한 공격은 막기가 쉽죠. 2쿼터에 상대 야투율을 37.5%(팀 3점 1-7)로 떨어뜨리며 12점차 리드를 잡은 필리는, 3쿼터에는 13점, 4쿼터에는 15점으로 호넷츠를 묶으며(후반 샬럿 팀 야투율 25.0%, 3점 1-18) 상대를 넉다운시켰습니다.
수비에서 뿐만 아니라 공격에서도 엠비드는 미친듯한 컨디션을 보여줬는데요. 마치 레이업마냥 미드레인지를 꽂아대는 한편, 말도 안되는 앤드원도 수차례 얻어내며 매치업이었던 닉 리차츠를 농락했습니다. 방패로 뚜드려패는 와중에, 공격에서는 엠비드가 자꾸 사기를 치며 꾸준히 득점을 해내는 필리의 필승 패턴이 부활했습니다. 오늘 엠비드는 38득점(야투율 76.2%), 13리바운드, 5도움, 4블락을 3쿼터만에 기록하며 승리의 1등 공신이 되었구요.
- 3쿼터까지 엠비드가 필리의 20점차 리드를 이끌어왔다면, 4쿼터에는 하든과 리드가 확인사살을 하며 각각 30,40점차로 벌리는 핵심 선수가 되었습니다. 우선 필리의 후반기 상승세에 리드의 활약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텐데요. 리드가 엠비드의 백업 자리를 꿰차고, 필리의 고민이었던 세컨 라인업의 리바운드와 수비를 책임져주면서, 더이상 벤치 타임은 필리의 약점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폴 리드가 벤치 타임에 날뛸 수 있도록, 팀에서는 리드가 출전했을 시 드랍백 수비 비중을 줄이고 지역 방어나 스위치 수비 포제션을 늘리도록 했습니다. 이런 수비에 특화된 맥다니엘스의 합류 또한 컸구요. 리드 본인도 파울 관리에서 극적인 성장을 이루면서, 파울트러블로 인해 본인의 출장시간을 깎아먹고 경기 플랜을 그르치는 상황이 후반기 들어서는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리드의 또다른 약점인 공격 부분만큼은 아직 개선되지 않았는데요. 훌륭한 운동능력에 비해 마무리 스킬이 너무 부족한데다, 공만 잡으면 본인의 득점만 노리는 터널시야 때문에 어이없는 턴오버가 나오는 경우도 많죠. 특히 볼핸들러에게 단단한 스크린을 제공하기보단 슬립으로 빠져버리는 성향이 문제가 됩니다. 수비적인 약점에도 불구하고 하든과의 공격 전개를 위해 팀이 울며 겨자먹기로 해럴을 백업 5번으로 써야 했던 이유 중 하나죠.
그런데 누가 농구도사 아니랄까봐, 하든이 슬슬 이러한 리드의 움직임에 적응을 하는 듯 합니다. 아니, 본격적으로 리드 조련을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만 해도 4쿼터 초반에 롤하는 리드에게 볼을 몰아주며, 계속해서 리드와의 픽앤롤을 시도했죠. 비록 이 과정은 매끄럽지 못했으나, 하든이 뒷배를 봐주자 자신감에 가득찬 리드는 4쿼터에 출장한 5분 30초동안 6득점(야투 3-4)-6리바(4오펜)-1블락을 기록하며 이미 터졌던 게임을 더 크게 터뜨립니다. 하든 역시 아주 좋지 않았던 야투 감각에도 불구(야투 4-15, 3점 0-6), 11득점 11리바운드 13도움으로 트더를 기록하며 일찌감치 퇴근할 수 있었구요.
- 게임이 일찍 가비지로 접어들면서, 워싱턴전 이후 출장기회를 잡지 못했던 데드먼이 올 시즌 필리에서의 두번째 출전을 기록했습니다. 출전시간도 6분 30초 남짓으로 짧지 않았고, 그동안 팀도 데드먼에게 공수 중요한 역할을 맡기면서 데드먼의 현재 폼을 가늠해 볼 수 있었죠.
팀 내 경쟁자인 리드나 해럴에 비해 데드먼이 가지는 강점은, 공수에서 균형잡힌 능력치라고 생각합니다. 드랍백 수비를 세컨 라인업에서 무난히 소화해낼 수 있는 높이와 커버 능력을 갖췄으면서, 개인 공격력도 나쁘지 않죠. 성공률과 상관없이 포스트업 공격이 '가능'하다는 점이 리드와의 차이점을 만듭니다. 또한 필리에서는 아직까지 3점을 던진 적은 없지만, 외곽 지원으로 유의미하게 스페이싱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도 확실한 장점이죠.
다만 현재 백업 5번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리드와 비교할 때, 운동능력이 떨어진다는 점도 분명합니다. 오늘 매치업이었던 카이 존스와의 수차례 리바 다툼에서 패배하면서 이 약점이 드러났는데, 필리가 백업 빅맨에게 간절히 원하는 능력 중 하나가 보드 장악이란걸 생각하면 큰 단점이죠. 물론 카이 존스가 오늘 엠비드에게도 몇 번이나 도전했던 좋은 운동능력을 가진 빅맨이란 건 고려할 만 하겠습니다. 리바운드와 커버 수비에 강점이 있는 맥다니엘스와의 조합이라면 괜찮을 것 같은데, 맥다니엘스가 부상중이기도 하고 요즘 리드의 폼이 워낙 좋아서 남은 시즌 중 데드먼이 기회를 잡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 일정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7연승 중인데요. 연승 경기 중에는 16연승 중이었던 현 리그 1위 밀워키 원정과, 동부 상위권 경쟁팀인 클블 원정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마침 경쟁자인 요키치의 덴버가 연패를 당하면서, 엠비드의 MVP 수상 가능성 역시 어느때보다 높아지는 상황입니다. 스토리는 다 만들어졌다고 보고, 많은 분들이 예상하시듯 덴버 그리고 밀워키와의 맞대결 결과에 따라 수상자가 가려지지 않을까 싶구요. 그 전까지 기세를 유지하기 위해서 최대한 승리를 챙겨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체력 문제에도 불구하고 내일 백투백 인디애나 원정에서의 선전을 기도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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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엠비드가 트로피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만... 끝까지 봐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