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p
자동
NBA-Talk
/ / / /
Xpert

사무 인턴, NBA 감독까지: 웨스 언셀드 감독 이야기

 
17
  2307
Updated at 2022-09-08 15:59:11

 


 

 

 항상 NBA 주변의 흥미로운 주제들을 전해주는 Scott Cacciola 기자가 올 2월 23일에 뉴욕 타임즈에 기고한 아티클입니다. 

 

 NBA 레전드 웨스 언셀드의 아들이자, 현재 워싱턴에서 감독을 하고 있는 웨스 언셀드 주니어가 위저즈 감독이 되기까지 거쳐온 여정을 들려주는 글입니다. 아버지가 구단 레전드였으니 그저 낙하산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는데, 그가 아버지의 수혜를 입었는지와는 별개로 멋진 삶을 살았네요. 물론, 그 부분에 대한 얘기도 잠깐 나옵니다. 

 

 

  최대한 1:1 직역을 하려고 하는 편입니다만, 원문의 뉘앙스와 원 의미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의역을 가미했습니다. 이 점 양해바라며, 원문이 워낙 훌륭하기 때문에 원문 그대로의 감상을 원하시는 분들께선 제 번역은 아예 스킵하시고 원문을 읽으시는 편을 권해드립니다.

 

 

 원문입니다. 

https://www.nytimes.com/2022/02/23/sports/basketball/nba-wizards-wes-unseld.html?referringSource=articleShare

 

 

 

 











Wes Unseld Jr. 감독은 20년 동안 쌓은 경험을 감독 첫 시즌에 녹여내고 있다. 

/ Nick Wass for Associated Press 

 

 

 

 

 

 

 

팩스 보내기, 엎지른 팝콘 청소하기: NBA 감독으로 가는 험난한 길

 

 

 

 

Fax Machines and Popcorn Spills: The Rocky Road to N. B. A.

 Coaching

 

 

 

 

 

 

 

 

Feb, 23, 2022

Scott Cacciola, <The NYT>

 

 

 

 

 

 

 

 

   Wes Unseld Jr. 감독이 워싱턴 위저즈에서 젊은 스카우트로 일하던 시절의 얘기를 들려주었다.

 

 

  팀의 감독이 되었지만, 그는 그 시절에 작성한 자료들을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 장장 여덟 시즌 동안 전국을 돌며 작성한 스카우팅 리포트들이다. 그는 한 번씩 그 화일들을 들춰보는데, 그럴 때마다 리포트가 너무 기초적인 수준이라 깜짝 놀란다고 한다.

 

  당시 위저즈의 어시스턴트 코치였던 Mike Brown이 막내 스카우트였던 자신을 항상 격려해주고, 북돋아주곤 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도대체 이 리포트의 어디를 보고 나를 믿어준 건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절레 절레 가로저었다. 

 

  그래도 언셀드는 NBA 생활 내내 이 스카우팅 리포트를  옆구리에 끼고 다녔다. 미국 전역을 이잡듯이 샅샅이 뒤져 모은 유망주들 분석, 그리고 상대팀을 연구한 모든 자료가 그 화일 안에 다 들어있었다. 

 

 

 

 

 

스카우트로 여덟 시즌, 어시스턴트로 열 여섯 시즌을 보낸 뒤 위저즈의 감독이 된 웨스 언셀드 주니어 감독. / Phelen. M. Ebenhack for AP Photos

 

 

 

 

 

 'NBA 코치'를 꿈꾸는 다른 모든 이들과 마찬가지로, 언셀드 감독 역시 '이 길이 맞나'하고 고민하는 순간들을 지나왔다. 

 

 불안과 걱정에 잠 못들던 늦은 밤들, 해치우고 해치워도 도저히 끝이 보이지 않는 원정 경기들을 지나온 그다. 그는 NBA에서 생활하는 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여기서 8년을 보내고 나면, 이런 생각이 들죠. '내 인생이 갈리고 있구나'"

 

 

 

 

 하지만, 그는 오늘도 코트사이드(감독석)에 앉았다. 

 

 그리곤 그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게임에 완전히 몰두했고, 세상 모든 것을 잊고 그 속으로 들어갔다.

 

 

 

 

  "이 화일들 들춰볼 때마다 도움이 많이 돼요. 제 초심이 어땠는지를 볼 수 있거든요." 언셀드 감독이 말했다. 

 

 

 

 "모든 코치들이 마찬가집니다. 처음엔 다른 코치들이 어떻게 하는지를 흉내내면서 배우죠. '어떤 감독이',  '어떤 선수를',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는지 보면서 말입니다. '어, 저 방식으로 하면 되겠는데? 걔한테도 한 번 써볼까? 우리 애들한테도 한 번 해볼까?'하는 식으로요. 모든 코치들은 그런 방식을 거치면서 자기만의 농구 철학을 만들어 가죠."

 

 

 

 

훈련을 이끄는 언셀드 감독. / Jonathan Newton for The Washington Post

 

 

 

 

 

 

 올해로 46세가 된 언셀드 감독은 스카우트와 어시스턴트 코치로만 약 20년 간의 NBA 경험을 쌓았다.

 

 

 처음엔 위저즈에서 시작해, 워리어스, 매직, 너겟츠를 거쳤다. 여러 구단들, 여러 직책들을 거치며 이 '화일'들이 쌓였다. 

 

 이 화일들이 감독 첫 시즌에 십분 활용되고 있다. 특히, 스카우트로 일한 시절이 '감독 웨스 언셀드'를 형성하는 너무나도 중요한 토대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스카우트 언셀드'는 여전히 그의 정체성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살아보니까 내가 경험한 모든 것들이 하나, 하나, 다 모여서 나를 이루는 거더라고요." 

 

 

 

 

 그의 여정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도전에 익숙한 삶을 살아온 그지만, 올 시즌, 그가 또 하나의 도전을 맞닥뜨렸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종류였다. 

 

 

 올-스타 브레이크를 맞은 현 시점, 위저즈는 27승 31패를 기록하고 있다. 에이스 Bradley Beal은 왼쪽 손목 부상을 당했고, 수술대에 올랐다. 시즌 엔딩 부상이었다. 

 

 

 악재가 겹친 은 트레이드 시장에서 활발히 움직였다. 그들은 Kristaps Porzingis를 받아왔고, 팀의 스코어링 리더인 Spencer Dinwiddie를 내줬다. 대대적인 라인업 개혁이었다.

 

 

 참고로, 위저드는 2017-18 시즌 이후로 한 번도 5할을 넘기지 못했다.

 

 

 

 

 "올해 목표는 플레이오픕니다."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위저즈에서 뛰었던 베테랑 가드, Ish Smith의 포부다. 그는 이번 트레이드 데드라인 때 이뤄진 샬럿 호넷츠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팀에 재합류했다.

 

 

 "물론, 매 경기, 매 경기 200%를 쏟아 붓는 게 더 먼저지만요."

 

 

 

 


 

 

Unseld Jr. 감독의 부친, Wes Unseld의 모습. 그 역시 1988년 부터 1994년까지 위저즈의 감독이었다. / Tim DeFrisco for Allsport, via Getty Images

 

 

 

 

 

 

 올 시즌, 그들은 '위저즈 DNA'를 갖고 있는 감독을 보유하게 되었다. 

 

 

 

 지난 2020년에 작고한 웨스 언셀드는 위저즈 구단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선수로 꼽힌다. 이번 올-스타 주간에 열린 NBA 75 주년 행사에서도 그를 기념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가장 위대한 NBA 선수 75인'에 포함됐다.

 

 

 

 올 시즌에 부임한 웨스 언셀드 주니어 감독은 그의 아들이다. 

 

 그의 아버지 웨스 언셀드는 선수로 은퇴한 후에 구단 중역으로도 오랜 기간 일했다. 언셀드 감독의 커리어 초기에 아버지의 도움이 없었을 거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이유다.

 

 하지만, 언셀드 감독은 감독 자리까지 올라오기 위해 '매우 고지식한' 방법을 선택했다. 그것도,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시작했다. 

 

 

 

 

 존스 홉킨스 대학에 다니던 시절, 언셀드 주니어는 위저즈 팀에서 여름 인턴을 했다. 그것도 두 해 연속으로 일했다. 심지어 첫 인턴 때는 대기업 Nabisco의 세일즈 부서에서도 일하며 투 잡을 뛰었다. 

 

     

 위저즈에서 인턴을 하면서, 언셀드는 여러 부서를 이리저리 옮겨 다녔다. 한 부서에서 몇 주간 일하다 옆 부서로 자리를 옮겼고, 그러면서 각 부서의 기초가 되는 업무들을 두루 익혔다. 

 

 

 당시 위저즈 GM이었던 그의 부친은 '부서 가리지 말고 무조건 열심히 배우라'며 그 누구보다 성실히 일할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라, 언셀드 감독은 언론 홍보 부에 있을 때엔 미디어 보도 지침을 만드는 일을 성실히 했고, 지역사회 부에 있을 때에는 직접 현장에 나가 팬들과 어울렸다. 

 

 마케팅 부에서 일할 때는 직접 기업들을 만나 스폰서쉽 유치 일을 배웠고, 티켓 판매도 직접 했다. 언셀드 감독은 그곳에서 프로 스포츠가 가진 경제 원리에 대해 매우 중요한 가르침을 얻었다고 한다.

 

 


 "성적이 안 좋을 땐 티켓이 안 팔렸어요. 변하지 않는 진리죠."

 

 

 

 

 

 

 

Johns Hopkins 대학 시절의 언셀드 감독. / Johns Hopkins University Athletes

 

 

 

 

 

 

 

 

 고단했던 인턴의 하루일과를 마치고 나면, 언셀드 감독은 훈련시설로 향했다. 

 

 

 그곳으로 가서 슛 연습을 하고 있는 선수들의 리바운드를 잡아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아침에 출근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인턴 생활을 하는 동안 하루의 시작과 끝을 모두 리바운드 보조로 채웠다.

 

 

 

 그렇게 위저즈에서의 두 번째 인턴이 끝나갈 때즈음, 언셀드는 농구 경영 쪽으로 진로를 틀었다.

 

 

 졸업 후 금융계에 진출해, 투자자의 길을 가려던 당초의 계획을 변경한 것이다. 농구가 가진 유혹이 너무나도 강력했고, 인턴쉽이 끝나기 전에 인사과로부터 정규직 자리를 제안 받은 탓이었다. 

 

 그는 말단 스카우트 자리를 제안 받았는데, 워싱턴 지역의 고교 유망주들과 대학 유망주들을 평가하는 일이 주 업무였다.

 

 


 언셀드가 스카우트로 취직한 1997-98시즌, Mike Brown이 어시스턴트 코치로 선임됐다. 브라운 코치 역시 초임이었다.

 

 브라운 코치는 언셀드를 처음 만났을 때 어떻게 대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고 한다. 아무리 갓 대학을 졸업한 말단 스카우트라 해도, 그의 아버지가 농구계의 거성인 데다, 프랜차이즈의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대통령 빼고 D. C. 에서 제일 유명한 인물이죠, 아마도요." 브라운 코치가 말했다.

 

 

 

 

 하지만, 'GM네 도련님'이라는 편견과는 달리, 웨스 언셀드 Jr. 는 모든 정보들을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직원이었다.

 

 브라운 코치가 말하길, 언셀드는 만날 때마다 늘 질문을 한 가득 쏟아 놓았고, 항상 더 나아질 방법을 연구하는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엉덩이가 가벼운' 젊은 이여서, 구단의 'Dirty Work'를 제일 먼저 나서서 도맡는 직원이었다고 한다. 

 

 

 

 

 

 말그대로 Dirty Work였다. 브라운 코치가 오전 훈련 후에 있었던 한 코치 미팅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하루는 미팅 도중에 코치 한 명이 팝콘을 엎질렀다. 그러자 언셀드가 곧장 일어나서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나타나 바로 상황을 정리했다.

 

 

 

 "그날, 그 자리에서 알아봤지요. 그 친구가 진국이란 걸요." 

 

 

 골든 스테이트의 어시스턴트가 된 브라운 코치의 말이다.

 

  

 "마음만 먹으면 몇 직급은 건너 뛸 수 있는 친구였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친구는 하나도 건너뛰지 않고 모든 단계를 성실히 밟았지요."

 

 

 

 

  언셀드가 신인 스카우트로서 차근차근 경험을 쌓아가던 무렵, 구단에 전문 스카우트 채용 공고가 났다.

 

 이 직책은 아마추어 경기 뿐만 아니라, NBA 시합까지 분석해야 하는 자리였다. 전국 곳곳에 흩어져 있는 NBA 구장들을 돌아다니며 적들을 샅샅히 파악했다. 그렇게 만들어낸 자료들을 코칭 스태프들에게 제공하는 역할이었다. 

 

 

 언셀드에게 안성맞춤인 자리였다. 정말 시의적절한 시기에 올라온 공고였다. 그는 곧바로 지원을 했고, 직무 테스트와 면접이 진행됐다.

 

 

 

 "그 때는 어떤 직무를 하는 자린지도 몰랐어요." 

 

 

 언셀드가 말했다. 그는 브라운 코치에게 도움을 청했다.

 

 

 "모퉁이만 돌면 바로 마주치는 거리에 살았기 때문에, 브라운 코치님 댁에 자주 갔어요. 거기서 시간을 많이 보냈죠. 같이 영화도 많이 보고, 조언도 많이 들었어요. 스카우트 가서 어떤 걸 유심히 봐야 되는지도 알려주셨고, 제 생각을 어떻게 자료로 정리하는지도 알려주셨죠."

 

 

 

 브라운 코치도 그 시절을 떠올렸다. 

 

 

 

 "영화 볼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 말도 안 하고 보는 친구예요. 옆사람 방해하면 안 된다면서요."

 


 "언셀드는 영화 보러 정말 자주 왔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저도 자주 같이 봤어요."

 

 

 

 

 

너겟츠에서 어시스턴트로 있던 시절. / Rocky Winder for NBAE via Getty Images

 

 

 

 

 

 브라운 코치에 의하면 당시까지도 NBA의 스카우팅 작업은 '구석기 수준'에 머무르고 있었다고 한다. 

 

 

 랩탑? 그런 건 꿈도 꾸지 마시라. 당시에 작성된 모든 스카우팅 리포트들은 전부 수기로 작성됐다. 언셀드도 리포트에 들어가는 모든 스탯들을 전부 손으로 직접 써야했다. 경기 중에 나온 패턴들이나 플레이들 역시 직접 손으로 그렸다. 

 

 

 아, 리포트 작성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일일이 손으로 작성한 자료들은 다음 날 오전 6시가 되기 전까지 모든 코칭 스탭들의 사무실에 전달돼야 했다. 그래서 언셀드는 전국 어디에 방문하든 팩스 머신이 어딨는지 부터 확인하곤 했다. 

 

 

 

 

 "저희가 묵는 호텔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여야 했죠. 24 시간 여는 Kinko's나 편의점 같은 데를 항상 찾아다녔어요." 

 

 

 "정말 중요한 레슨이었죠.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다행히 테크놀러지가 급 발전한 덕에 언셀드는 리포트를 이메일로 전달하게 되었다. 

 

 

 하지만, 스카우트들의 애환은 여전했다. 기술이 발전한 덕에 스카우트들은 같은 기간동안 더 많은 도시들을 방문해야 했다. 그는 그 당시, 한 달에 최소 20일 이상 출장을 다녔다. 

 

 "최장 기록은 28일이였어요." 언셀드가 말하길, 캐리어 하나에 의존해서 최대한 오래 집 밖에서 보냈을 때는 28일 연속으로 출장을 다녔다고 한다. 

 

 

 

 

 

 

에이스 브래들리 빌에게 지시하고 있는 언셀드 감독. / Steph Golsing for NBAE via Getty Images 


 

 

 

 

 스카우트 시절이 지난 후, 그는 여섯 시즌 동안 위저즈의 어시스턴트 코치로 일했다. 여섯 시즌 동안 코치로 일한 뒤에는 골든 스테이트에 합류했다. 2011-12 시즌이었다.

 

 

 그가 팀을 떠나기로 마음 먹었을 때, 위저즈에선 더 높은 직책을 제시했다. 하지만 그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정든 둥지를 떠나기로 결심했고, 위저즈에 다시 돌아오는 건 불가능 할 거라 생각했다. 

 

 

 

 

 "그 제안이 마음에 안 들었던 건 아니예요. 그래서 떠난 게 아니었죠."

 

 

 언셀드 감독이 위저즈를 떠날 때의 심경을 들려주었다. 

 

 

 

 

 "왜, 다들 인생에서 그런 때들이 있지 않습니까,  지금 있는 '안정적인 곳'을 떠나서 뭔가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새로운 기회를 잡아 보고 싶은 시기 말이예요. 저한텐 그 때가 그랬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언셀드는 위저즈의 감독이 되었다. 

 

 

 

 감독으로 선임은 됐지만, 언셀드 감독은 '감독의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는 조금도 예측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막상 감독이 되고 나서 보니, 이전의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삶이 펼쳐지더란 것이다. 지난 수년간 감독이 되기 위해 착실히 준비한 그였지만, '감독이 되기 위해 준비하는 것'과 '실제로 감독이 되는 것'이 얼마나 다른지 깨달았다고 한다. 

 

 

 한 시즌동안 팀의 원정 스케쥴을 짜는 게 감독들의 업무인지도 몰랐고, 그게 얼마나 어렵고 머리 아픈 일인지도 몰랐다고 한다.  

 

 

 

 "딱 스케쥴을 짤 때는 이런 생각으로 짜요, '오, 그래, 이 날 출발해서.. 이 날 하루 자는 거야.. 여기는 이틀 먼저 도착하는 게 좋겠군.. 그럼 이렇게, 저렇게.. 훌륭한데?'하면서요."

 

 "잠깐 다른 일 하고 나서 처음 짜놓은 걸 다시 보잖아요? '와.. 도대체 뭔 생각으로 짰지? 개판이네..'하는 생각이 들죠. 이 자리가 가진 깊이와 수많은 특성들은 직접 이 자리에 앉아보기 전까지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어요."

 

 

 

 올 시즌, 위저즈는 꽤 들쭉날쭉한 시즌을 보내고 있다. 

 

 

 시즌 초반부터 많은 부상들로 휘청거리고 있고, 아마도 시즌 시작 때의 라인업과 시즌 마지막의 라인업이 제일 많이 달라진 팀이 될 것이다. 

 

 

 팀 기록 또한 좋지 못하다. 그들의  공격 레이팅과 수비 레이팅 모두 뒤에서 세 번째에 위치하고 있고, 팀의 에이스인 브래들리 빌도 올 여름 FA가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그러나, 언셀드 감독은 '팀의 미래가 매우 기대된다'고 말한다. 그는 올해에 합류한 포르징기스에 대한 기대를 드러냈다. 포르징기스를 '우리 팀 퍼즐에 끼울 매우 재능 있는 조각'이라 표현했다. 

 

 

 

 하지만, 올 시즌 위저즈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언셀드 감독은 늘 '배우는 자세'로 살아갈 것이라는 점이다. 이 때까지 그랬듯이, 그리고 이 모든 여정이 시작된 인턴 때에 그랬듯이.

 

 

 

 

 "진짜 신기합니다."

 

 

  그가 말한다. 

 

 

 

 "지나온 날들이 한 데 모여 결실을 맺고 있다는 게 말입니다."

 

 

 

 

 

 

 

 

 

 


 

4
Comments
2022-08-12 13:46:35

 오늘도 잘보고 갑니다. 지금은 대충 보고 있다 시간날때 정독 할려고 합니다. 이글 보니 예전에 매니아분 중에 구단 인턴으로 들어 간다고 했더분이 있는데 처음에는 보수도 없는데도 많고 임금도 작다고 하더군요, 어찌어찌 올라가더라도 여러가지로 힘들다는 애기를 한걸로 기억 합니다. 감독까지 된건 정말 대단 하다고 생각 합니다

2022-08-12 13:58:42

아버지의 후광없이, 스스로 이뤄낸거라 더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2022-08-12 15:57:02

이름이 언셀드.. 안팔린 감독이신건가요 

2022-08-13 17:44:48

와우..

글쓰기
검색 대상
띄어쓰기 시 조건









SERVER HEALTH CHECK: 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