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식서스 경기 감상 (21.01.27. vs LAL)
- 현 동부 1위 대 서부 1위의 대결, 홈 9승1패 대 원정 10승 0패의 대결이었던 만큼, 플옵을 방풀케하는 치열한 경기가 펼쳐졌습니다. 특히 페인트존에서의 싸움이 아주 피지컬했는데요. 그 과정에서 엠비드가 르브론에게 밀려 허리부터 떨어지는 위험한 상황이 있었고, 이후 엠비드의 팔꿈치 어택으로 인한 플래그런트, 하워드와 모리스/해럴의 신경전 등이 계속되었습니다. 열정적인 건 좋지만 부상은 없도록 서로 조심했으면 좋겠어요. 진짜 엠비드 누워서 허리 잡고 못 일어날 때는 심장 터질 뻔 했습니다
- 아마도 오늘 경기에서 가장 주목되었던 관전 포인트는, '엠비드가 과연 마크 가솔을 이겨낼 수 있느냐'는 거였겠죠. 결과만 먼저 말씀드리면, 드디어 인간상성 극복에 성공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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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앤써님이 위 글에서 엠비드가 왜 마크 가솔에게 약한지, 올 시즌의 엠비드가 어떻게 맠가를 극복할 수 있을지 정리해주셨었는데요(항상 감사). 지난 시즌까지 엠비드가 맠가에게 왜 당했는지 다시 요약하자면,
1. 포스트업을 치면 힘에서 안 밀리며
2. 밀착마크 시 페이스업으로의 변환을 너무 잘 방해함
3. 토론토의 더블팀에 너무 잘 당함
이렇게 크게 3가지로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다들 아시다시피, 이번 시즌 엠비드는 새로운 플레이스타일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며, MVP 레이스에 이름을 올리고 있죠. 그 플레이스타일 변화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주 득점 루트를 백다운을 통한 림 공략 위주에서 점퍼 위주로 바꿈
2. 탑에서 공잡고 드리블-풀업 점퍼 옵션의 비중을 크게 늘림
3. 더블팀 대처가 많이 좋아짐
위의 항목들을 각각 매치시켜 본다면, 이번 시즌 엠비드는 '이론적으로는' 이미 맠가를 극복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1.안되는 포스트업을 고집하지 않고 점퍼로 승부하면 되고 2.탑에서 공잡고 시작하면 포스트업-페이스업 변환이 필요없으며 3.더블팀 대처를 열심히 갈고 닦았죠. 이제 심리적으로 위축되지 않고 보여주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는데요. 현 최강팀을 상대한다는 압박감 + 오랫동안 인간상성이었던 선수를 이겨내야 한다는 에이스의 부담감 때문에 어려울 수도 있다 생각했었는데, 제 기우였습니다. 28득점에 4도움, 특히 1쿼터에 13득점을 몰아치며 이번 시즌은 다르다는 걸 여지없이 보여줬네요.
다만 우려스러운 점도 있었습니다. 일단 포스트업으로는 여전히 마크 가솔을 밀어내지 못했고, 때문에 점퍼 감각이 죽게 되면 공략이 많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만 해도 3쿼터에 허리부터 떨어지는 충격을 받은 후, 슈팅이 맛이 가면서 엠비드의 존재감이 급격히 줄었죠.
또한 오늘 엠비드가 킥아웃을 잘 해주긴 했지만, 레이커스의 더블팀 타이밍도 아주 좋았기 때문에 엠비드가 당황하며 턴오버를 범하는 장면도 많았습니다(5턴오버). 이것 역시 맠가(와 해럴)가 엠비드의 포스트업을 상대로 튼튼하게 잘 버티니 가능한 수비였죠. 즉, 마크 가솔은 아직도 엠비드가 상대하기엔 까다로운 수비수가 맞습니다. 그래도 예전처럼 인간 상성 정도는 아니고, 엠비드 역시 자신감을 얻은 것 같다는 점이 큰 수확이라는 결론입니다
- 전체적인 경기 흐름 자체는 양 팀의 3점 성공에 따라 달라졌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양 팀 모두 수위권의 수비팀인 만큼 좋은 수비를 선보였는데요. 수비 성공 후 시몬스의 속공+토비/그린/코크마즈의 3점으로 점수차를 벌렸던 필리와는 달리, 레이커스는 3쿼터까지 3점 3-16(18.7%)으로 빈공에 시달렸습니다. AD도 오늘 괜찮았던 스탯과는 다르게 컨디션이 굉장히 안좋아보였구요. 어찌보면 그럼에도 계속 점수차를 유지하며 쫓아왔다는 점이, 레이커스가 강팀임을 증명하는 장면이 아니었나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경기 종료 3분전, 분명 필리가 12점차로 앞서고 있었습니다만, 여기서 레이커스의 3점 혈이 뚫리며 맹추격이 벌어집니다. 시작은 카루소였는데, 우선 스크린 타고 빠른 레이업으로 2득점, 이후 스틸로 포제션을 뺏은 다음, 속공 상황에서 다시 3점을 꽂아넣더니, AD의 빗나간 3점을 오펜 리바로 살려내고 이걸 기어이 슈로더가 3점으로 마무리합니다!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더군요. 이게 그 유명한 데스 라인업, 볼드 맘바로구나...
이 막판 3분동안 단체로 패닉에 빠졌는지 필리는 어이없는 실책을 연발하며 포제션을 허공에 날렸고, 결국 르브론의 킥아웃 패스를 받은 KCP의 3점으로 경기는 1점차가 됩니다. 그리고 경기 종료 11초전, 클러치 상황에서 슈로더가 엠비드에게 스크린을 걸고 AD가 컷인해 들어가는 허를 찌르는 패턴으로 레이커스가 기어이 역전에 성공합니다!
필리 입장에서는 절망스러웠을 겁니다. 다 이기던 게임을 역전당해버린 분위기에, 상대는 리그 최고 수비팀인 레이커스. 필리의 클러치 제1옵션인 엠비드는 3쿼터 충격 이후 슛감이 가출했고, 그나마 기대를 걸만한 세스 커리는 오늘따라 컨디션이 영 아니었죠(야투 1-6, 3점 0-3). 닥 감독의 선택은 오늘 계속 좋은 모습을 보였던 토비였습니다.
커리에게 스크린을 걸어 매치업을 카루소로 바꾼 뒤, 직선 돌파로 들어가다가 풀업 미드레인지. 이 패턴이 이렇게 깔끔하게 성공할 줄은 몰랐습니다. 제가 그동안 봐왔던 필리 해리스의 모습은, 클러치만 되면 작아지고 실수를 연발하는 소위 '새가슴'이었거든요. 바로 얼마 전 멤피스전에서도 클러치 턴오버로 기회를 날려버렸었구요. 근데 레이커스 상대로 클러치를? 닥 감독님 대체 토비한테 무슨 짓을 하신겁니까?
- 사실 클러치샷의 임팩트에 가려져서 그렇지, 오늘 토비는 경기 내내 만점짜리 활약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공, 속공 가리지 않고 고비마다 공무원처럼 꾸준히 넣어주는 득점은 여전했구요. 더 눈에 띄었던 점은 오늘 전술상으로 토비가 계속 중요한 역할을 맡아줬다는 겁니다.
먼저, 레이커스는 오늘 맠가-AD 투빅이 주전이었는데요. 둘 다 스페이싱이 되고, 안으로 찔러주는 패스가 좋죠. 그래서 경기 시작부터 필리는 계속 레이커스의 하이포스트 위주 운영에 휘둘렸습니다. 맠가/AD가 외곽에 있으면 엠비드가 따라나와야 하는데, 그 뒤로 컷인해 들어가는 선수에게 계속 뚫리는거죠.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장면입니다.
원래 필리의 기본적인 수비 기조는 드랍백입니다. 엠비드가 쳐져서 골밑을 수호하는 걸 전제로, 다른 선수들의 수비 동선이 짜여있죠. 때문에 엠비드가 외곽으로 나가면 컷인하는 상대를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엠비드가 그냥 골밑에 머무른다? 그러면 AD/맠가에게 3점을 얻어맞는거죠.
계속 같은 패턴으로 공략당하자, 1쿼터 중반부터 필리가 수비 매치업을 조정합니다. 맠가를 막던 엠비드가 AD를 막고, 토비에게 마크 가솔을 막게 한 것이죠. AD가 오늘 컨디션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3점 0-3) 엠비드가 어느정도 AD에게서 거리를 둘 수 있었는데, 문제는 3.5번인 토비가 5번인 마크 가솔을 골밑에서 막을 수 있냐는 거였는데요. 이걸 또 토비가 해냈습니다.
가솔이 원래 공격력이 좋은 빅맨은 아니라는 걸 감안해도, 토비가 잘 버텼죠. 이 이후로 처음과 같은 패턴으로 필리가 당하는 장면이 현저히 줄어듭니다. 4쿼터에 레이커스가 맠가를 넣지 않고 AD-르브론-KCP-카루소-슈로더 데스 라인업을 돌린건, 아마 스몰라인업의 폭발력으로 점수차를 줄여보고자 한 의도였겠지만(아주 멋지게 성공했죠), 토비가 맠가 상대로 대응을 잘 해낸 점도 아주 약간은 영향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 수비 뿐 아니라, 공격에서도 토비의 임무는 막중했습니다. 오늘 필리는 시몬스를 지공/속공 상황에 따라 철저히 구분해서 썼어요. 속공이나 얼리오펜스 때는 본래대로 1번 역할을 수행했지만, 상대의 수비가 갖춰진 지공 상황이 되면 거의 대부분 빅맨의 동선을 가져갔죠. 이런 플랜 덕분에 시몬스는 오늘 트리플더블을 기록하면서도 턴오버를 한 개밖에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시즌 필리의 주 공격 루트는 픽앤롤이죠. 시몬스가 내려놓은 지공 볼핸들러 자리는 토비/커리/밀튼이 나눠받았는데요. 오늘 커리의 컨디션은 최악이었고, 밀튼은 잘 해줬지만 벤치에서 20분 출장하는데 그쳤죠. 그러니까 오늘 대부분의 지공 상황에서, 필리의 볼 핸들러는 토비였습니다.
토비가 이번 시즌 갑자기 잘하게 된 것은, 저번 시즌까지 들고 있던 서브 볼핸들러 역할을 내려놓고 간결한 피니셔 역할 위주로 조정해준 다음부터였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무려 레이커스 상대로 볼 핸들러로써 훌륭한 모습을 보여줬어요. 그 와중에야투 10-16(62.5%)의 효율로 24득점까지 올렸으니 대단하죠. 턴오버 3개는 애교로 봐줘야...
- 디펜딩 챔피언을 상대로 극적인 승리! 덕분에 뽕맛에 잘 취해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경기 내내 앞서가다가 막판에 역전당하는 장면은 참 그랬어요. 이런 점은 닥 감동님 전매특허 필리의 고질병이기도 한데, 더 높은 곳을 바라보려면 필히 개선해야 할 부분이겠죠. 그리고 엠비드의 부상이 걱정되네요.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다면 무리하지 말고 푹 쉰 뒤에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경기는 이틀 뒤, 미네소타 원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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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시즌에 토비 욕 잔뜩 했었는데.. 요샌 너무 사랑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