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퍼스는 히트를 롤모델로 삼아야 합니다
음.. 일단 오늘 휴스턴 전 패배에 대한 변호를 조금 해보자면, 물론 올라디포와 월이 빠진 휴스턴을 상대로 홈에서 패배한 점은 정말 아쉽습니다. 다만 이번 시즌은 홈 어드밴티지가 거의 없다고 봐도 되는 수준이고, 팀이 원정 5연전을 치르고 난 후 하루만에 치뤄야 했던 경기이며, 휴스턴 선수들이 하든 트레이드 후 정신무장을 제대로 하고 나온 건지 허슬같은 부분에서 밀렸던 느낌입니다. 우드가 알드리지를 갖고 놀기도 했고, 스퍼스 선수들 3점 감이 아주 떨어져 있기도 했죠. 그럼에도 실망스러운 패배인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고, 다음 경기까지 준비를 잘 해서 나왔으면 좋겠네요. 긍정적인 점은 후반에 켈존을 우드에 매치시켜서 그나마 덜 털렸다는 점, 또 침묵하던 드로잔이 4쿼터에는 리듬을 찾았다는 점 정도가 있겠습니다.
각설하고,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이번 오프시즌부터 스퍼스의 탱킹, 또는 리빌딩에 대한 논쟁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지금 상황은 답이 없어보이니 드로잔과 알드리지를 하루 빨리 트레이드해서 픽을 받고, 21 드래프트 클래스가 아주 풍성하니까 몇시즌 꼬라박아서 넥스트 던컨을 찾아야 한다. 이게 주된 주장이죠. 샌안팬들 사이에서도, 매니아 전반에서도 이런 분위기를 꽤나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호크스와 드로잔을 골자로 한 픽업 트레이드, 또 워리어스와 위긴스 2픽 <-> 알드리지, 11픽 트레이드가 활발하게 논의되었고, 워리어스 트레이드는 꽤 진전된 걸로 알고 있는데 탐슨 부상 후 어그러졌다고 알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론 얼탱이가 없었던) 레이커스와 드로잔 트레이드 루머가 크게 불거지기도 했고 드로잔이 팟캐스트에서 이걸 언급하기도 했었죠.
리빌딩이라는 건 베테랑들 다 팔고 탱킹해서 재능들 모아놓으면 알아서 성장해주는, 그런 쉽고 간단한 게 아닙니다. 적절한 환경과 플랜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리빌딩은 끝나지 않는 사슬에 스스로를 가둬두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특히 샌안토니오같은 텍사스 촌구석에 연고지를 두고 있는 스몰마켓 팀이라면 더더욱. 실제로 지난 사례들을 보면 이걸 쉽게 알 수 있죠. 확실한 플랜 하에 육성하지 못하거나 귀감이 될만한 베테랑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크게 엇나가는 유망주들도 많습니다. 그냥 너 하고 싶은 거 다해~ 이런 식으로 성공한 유망주는 뭐, 르브론? 어쩌면 영이나 돈치치 정도 꼽을 수 있겠네요. 남아 있는 베테랑들과의 조화 역시 신경써야 합니다. 캡스 루키 섹스턴의 데뷔 시즌, 베테랑들이 얘는 NBA 감이 아니다라고 말했던 사건도 있었죠. 커즌스가 스타우스커스를 아주 못살게 괴롭혔다는 이야기도 유명합니다. 독점적인 플레이스타일의 베테랑들의 영건들의 성장을 억제하는 경우도 왕왕 있고요. 탱킹해서 뽑는 재능들이 반드시 팀을 약속의 땅으로 이끌어준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벤더, 마퀴스 크리스? 커즌스, 에반스. WCS? 앤서니 베넷, 디온 웨이터스? 개인기량은 준수한데 팀과 융화하지 못하거나, 그냥 더럽게 못해서 루키스케일 끝나고 사라진 선수들도 굉장히 많습니다. 이번 드래프트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케이드 커닝햄이 그랜트 힐이나 페니급으로 성장할 가능성도 있지만, 반대로 실패할 가능성도 크죠.
사실 가장 주된 이유는, 응원하는 팀이 승리하는 모습을 보는 게 결국 우리가 스포츠를 보는 목적이자 본질 아닐까요? 몇년만, 몇년만 더.. 이러면서 미래의 휘황찬란한 모습을 그리는 걸로는 지금 당장 가비지로 박살나는 우리 팀 선수들의 허망한 눈빛을 지켜보는 감정을 덮을 순 없어요. 최소한 제 개인적인 입장은 그렇습니다.
그런 면에서 팻 라일리의 히트 식 리빌딩을 선호합니다. 리빌딩이 아니라 리툴링? 이라고 하는 게 더 맞겠네요. 르브론이 캡스로 떠나자 웨이드-보쉬 중심으로 팀을 개편하고, 보쉬가 혈전으로 은퇴하자 다 때려치고 탱킹을 선언하는 게 아니라 최선을 다해서 전력을 보강하고, 주어진 픽에서 가장 유망하고 가능성 있는 선수를 지명하면서 유망주들의 성장을 위해 기존 베테랑들을 정리하면서도 플옵권 턱걸이 성적을 계속해서 유지했죠. 그러다 그 모든 노력이 합쳐져서 빛을 발한 게 2020 플레이오프였습니다. 화싸를 보내고 전폭적으로 밀어준 아데바요는 마이애미의 전술적 핵이 되었고, 히로, 로빈슨, 넌처럼 어중간한 순위의 유망주들이 빠르게 두각을 드러내며 팀 전력에 큰 보탬이 되었습니다. 올리닉, 이궈달라, 버틀러처럼 든든하게 뒤를 받쳐주는 베테랑들, 그리고 선수들을 지도하고 잘 조합하여 최상의 결과물을 이끌어 낸 스포엘스트라 감독의 용병술까지. 정말 이상적인 리빌딩 그 자체였습니다.
현재 샌안의 상황은 히트와 꽤나 비슷합니다. 로터리픽은 저번 시즌에 뽑은 데빈 바셀이 다지만 드죤테 머레이, 데릭 화이트, 로니 워커, 켈든 존슨은 이번 시즌 자신들의 가치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장기계약 첫 시즌 부상 여파를 털어버리지 못한 거처럼 보였던 머레이는 MIP 아차상급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고, 워커와 켈든 존슨은 언제든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걸 시즌 내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베테랑들과의 조화 역시 좋습니다. 드로잔은 3점을 장착하고 이타적인 플레이스타일을 보여주면서 영건들을 중심으로 한 게임 플랜에 녹아들었고, 알드리지 역시 15년 동안 자기를 먹여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포스트업을 포기하고 픽앤팝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벤치에서 든든하고 팀을 받쳐주고 있는 밀스와 게이는 말할 필요도 없죠. 플랜 역시 확실합니다. 모두가 비슷한 기회를 가져가고 모두가 돌파와 3점을 어느정도 수준으로 해줄 수 있는 스몰라인업. 이걸 실행하기 위해서 드로잔이 4번을, 게이가 5번을 보는 눈물겨운 희생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전술을 설정하고 드로잔과 알드리지를 설득한 포포비치 감독은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구시대적인 감독이라는 오명을 훌훌 털어버렸습니다.
악성계약 없이 샐러리를 잘 관리해왔고, 이번 시즌 험난한 서부, 지옥같은 초반 일정에도 불구하고 6승 6패로 5할 승률을 맞추고 있습니다. 중간에 알드리지가 2경기, 드로잔이 2경기씩 빠지고 데릭 화이트가 출전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말이죠. 이미 모아놓은 재능들 시간 분배하는 것도 힘든 상황입니다. 프런트도 포브스와 벨리넬리를 잡지 않는 걸 보면 아주 생각이 없는, 현실에 안주하는 그런 수준도 아닙니다. 샌안의 미래는 굳이 탱킹을 하지 않아도, 아주 맑다고 생각해요.
일요일 7시에는 오랜만에 처음부터 스퍼스 경기를 볼 수 있겠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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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맞죠. 논리정연하게 잘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