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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임벌린이 배구 명예전당에 입성한 것은 사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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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0 15:53:17

1. 연속 우승을 차지하고 쓰리핏을 노리던 1988-89 LA 레이커스는 NBA 역사에서 플레이오프 1라운드부터 파이널까지 모든 시리즈를 스윕(sweep)으로 마무리한 유일한 팀입니다.


2. 윌트 체임벌린은 NBA 14년 선수생활 동안 단 한 번도 6반칙 퇴장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체임벌린이 속한 팀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 기록 연장에 집착한 체임벌린은 커리어 중반 이후 파울 트러블에 걸릴 때마다 수비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3. NBA 역사에서 가장 오랜 출전시간동안 파울을 범하지 않는 선수는 르브론 제임스입니다. 르브론 제임스는 2012년 12월 9일 뉴올리언스 호네츠와의 경기 1쿼터 9분30초에 공격자 반칙을 저지른 이후 5경기에서 무려 211분 동안 반칙을 하나도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그 시즌 르브론은 수비 퍼스트팀에 선정되었고, 팀 우승, 시즌 MVP와 파이널 MVP까지 휩쓸었습니다.


4. 1960년대 중반 NBA 선수들의 평균연봉은 미국 전체 근로자 평균연봉의 약 2배였습니다. 그런데 2019년 NBA 선수들의 평균연봉은 미국 전체 근로자 평균연봉의 약 150배입니다. 평균소득을 비교하면 그 차이는 더욱 벌어집니다.


5. NBA에서 시즌 MVP를 가장 늦게 배출한 포지션은 슈팅가드입니다. 마이클 조던은 (1988년) 시즌 MVP로 선정된 최초의 슈팅가드입니다.


6. 1989년부터 1993년까지 5년 동안 NBA 파이널에서 서부 컨퍼런스 팀의 홈경기 전적은 1승 13패입니다. 구체적으로 89년 레이커스 0승 2패, 90년 포틀랜드 0승 3패, 91년 레이커스 0승 3패, 92년 포틀랜드 1승 2패, 93년 피닉스 0승 3패입니다.


7. 앞으로 도저히 깨지지 않을 불멸의 기록은 1968-69 시즌에 월트 벨라미(Walt Bellamy)가 기록한 정규리그 88경기 출전입니다. 훗날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벨라미는 그 시즌 뉴욕 닉스 소속으로 35경기에 출전했고, 디트로이트 피스톤스 소속으로 53경기에 출전했습니다.


8. 앞으로 도저히 깨지기 힘든 또 하나의 기록은 1997-98 시즌 댈러스의 부바 웰스(Bubba Wells)가 세운 최단시간 6반칙 퇴장 기록입니다. 웰스는 1997년 12월 19일 투타임 디펜딩 챔피언 시카고 불스와의 경기에서 경기시작 2분 43초만에 6반칙으로 퇴장당했습니다.


9. 마이클 조던이 루키로 합류한 시카고 불스는 그 이전 시즌에 비해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시카고에서 NBA에 대한 관심은 다른 스포츠에 비해서 매우 약했습니다. 그 당시 불스의 홈구장은 18,700명이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시카고 스태디움입니다. 조던이 합류하기 직전인 83-84 시즌 불스의 평균 홈경기 관객 수는 고작 6,365명입니다. 조던의 루키 시즌인 84-85 시즌 평균 홈경기 관객 수는 크게 늘어서 11,887명이고, 그가 부상으로 많이 결장한 이듬해 평균 관객 수는 전년보다 약간 줄어든 11,445명입니다. 덕 콜린스가 감독으로 부임하고 조던이 첫 득점왕에 오른 86-87 시즌 평균 홈 관객수는 15,871명으로 크게 늘었습니다. 조던이 첫 MVP에 선정된 87-88 시즌 초반부터 무려 13년에 걸쳐 시카고 스태디움과 유타이티드 센터에서 610게임을 치르는 동안 시카고 불스의 모든 홈경기가 매진되었습니다. 


10. NBA에서 홈경기 연속 매진 기록을 갖고 있는 팀은 댈러스 매버릭스입니다. 댈러스는 코로나로 시즌이 중단되기 직전인 올해 2월에 정규시즌과 플레이오프를 합쳐 815 연속 홈경기 매진기록을 세워 종전에 포틀랜드가 가지고 있던 814경기 연속 매진기록을 경신했습니다. 댈러스의 연속경기 기록은 여전히 진행중입니다. 포틀랜드는 1977년부터 1995년까지 18년 동안 모든 홈경기 매진기록을 수립했는데, 그 당시 홈구장이던 메모리얼 콜리시엄은 12,666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었습니다. 1995년 2만명을 넘게 수용할 수 있는 모다 센터로 옮긴 후 홈경기 연속 매진기록이 중단되었습니다. 댈러스와 포틀랜드 다음 연속 홈경기 매진 기록은 보스턴 셀틱스의 662경기 그리고 시카고 불스의 610경기 순입니다.



11. 윌트 체임벌린이 NBA에서 은퇴한 후 배구로 전향해서 선수생활을 이어갔고 그 이후 배구 명예전당에 입성했다는 이야기는 신화처럼 전해지는 도시전설입니다. 저는 위키피디아와 각종 뉴스 그리고 커뮤니티 게시물 등에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몇해 전 국제심판을 역임하셨던 원로 배구인에게 제가 그 말을 꺼냈다가 망신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은퇴한 교수님인 그분은 배구 명예의 전당이 구기 종목 중에서 가장 입성하기 어려운 곳이라고 주장하셨고, 저는 윌트 체임벌린의 예를 들며 반박했습니다. 그러자 그 분은 절대 그럴 리가 없다면서 저와 함께 체육관장실을 찾아가서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습니다. 그분 말씀대로 배구 명예전당에는 헌액된 선수가 별로 없었고, 체임벌린의 이름은 더더욱 찾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위키피디아를 보여드리자 그분은 엉터리 뉴스라고 일침했습니다. 그 이후 시간이 지나 저는 윌트 체임벌린이 배구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는 이야기의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대략 제 주장이 30% 정도 맞고 그 원로 배구인의 주장이 70% 정도 맞았습니다.

 


체임벌린은 LA 레이커스에서 뛰던 1969년에 무릎 수술을 받고 나서 32살의 나이에 재활 운동으로 배구를 선택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체임벌린은 배구에 푹 빠졌고, 농구에서 은퇴한 이후 아예 프로배구 리그인 국제배구협회(IVA) 창설에 나섰습니다. 체임벌린은 1975년에 IVA 회장에 당선되었고, 시애틀 연고 팀의 구단주를 겸했습니다. 당시 선수겸 회장겸 구단주였던 체임벌린은 실력과 무관하게 IVA의 간판스타였습니다. 1977년 IVA 올스타 게임에서 체임벌린이 출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CBS에서 전국에 그 경기를 중계했습니다. 그리고 체임벌린은 올스타 MVP로 뽑혔습니다. IVA는 5년 동안 지속되다가 체임벌린이 은퇴한 후 리그가 폐지되었습니다. 체임벌린은 IVA 명예전당에 헌액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헌액자가 있던 유일한 배구 명예전당이었습니다. 그런데 IVA 명예전당 헌액자의 명단은 어디를 찾아봐도 없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배구 명예전당은 1985년에 최초의 입성자를 배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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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0-07-10 15:58:56

오늘도 재밌게 읽었습니다. 11가지 모두 새롭고,

지금은 82경기 전경기를 뛰는 선수도 적은데 88경기는 무슨 저세상 리그같으네요.

WR
2020-07-10 16:02:00

당시 NBA가 경기 일정을 개판으로 짜서 시즌 중에 팀을 옮긴 선수가 88경기 출전이라는 날벼락을 맞았습니다.

2020-07-10 15:58:58

기인이라는 말 밖에 안 나오네요.
다음에 2만사마썰도 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WR
2020-07-10 16:04:37

조던 시절 불스 경기들은 제가 직접 보고 경험했던 것인데, 윌트에 대한 이야기는 저나 이후세대나 똑같이 들어서 알고 있는 것들 뿐입니다. 체임벌린은 기록에 지나치게 집착했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 중에 하나는 당시에는 블락 집계가 없었는데, 만일 그런 것이 있었다면 윌트가 훨씬 수비에 집중해서 팀을 여러번 우승으로 이끌어불멸의 GOAT로 남았을 지도 모른다는 내용입니다.

2020-07-10 16:24:37

와... 그러네요... 블락 집계가 없어서 오히려 다른 선수들에게는 다행입니다.

지금처럼 2차지표들이 세분화 되어있었다면 더욱 무서운 선수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WR
2020-07-10 16:31:00

블락에 대한 이야기는 자주 회자되는 내용입니다. 빌 시몬스의 유명한 책에도 나옵니다.

https://i.imgur.com/CNHgAyt.png

2020-07-10 16:52:29

위에 파울 이야기 읽고 이 얘길 들으니까 정말 그럴거 같아서 실소가 나왔습니다

2020-07-10 16:03:36

헐... 진짜 체임벌린은 파도파도 역시

WR
2020-07-10 16:09:13

첫 우승을 차지한 다음 해인 1967-68 시즌에 체임벌린은 리그 어시스트 왕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당시 체임벌린은 어시시트에 지나칠 정도로 집착해서 본인에게 온 이지슛 기회도 다른 선수에게 양보했습니다. 그리고 그 선수가 넣지 못하면 불편함 심기를 감추지 않았습니다.

2020-07-10 16:14:54

네 신체적인 곳 플러스 그 너무 심한 에고 이야기도 파도 파도 나오네요

2020-07-10 16:05:44

늘 좋은 글 감사합니다

WR
2020-07-10 16:09:22

고맙습니다.

2020-07-10 16:26:45

1960년대는 많이 알다싶이 흑인차별이 심할때인데 그당시에 저런독특한 성격인 체임벌린이 어떻게 그시절을 살았을지 모르겠습니다.

라이벌이였던 빌러셀은 레드아워벡이나 팀 동료들이 리더로 인정해줘서 똘똘뭉쳤다고 들었고 같은시대 살던 알리나 후배인 카림은 이름을 바꿀정도로 저항했었는데 윌트는 저성격이면 당시 보수적인 미국에서 제일 표적이 되었을거 같습니다.

항상 재밌는글 잘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WR
2020-07-10 16:33:06
백인들에게도 인기 좋았습니다. (물론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요) 특히 윌트에게 미쳐있던 백인 여성들이 너무 많아서 그가 지나가던 모습만 봐도 울었을 정도랍니다.  
2020-07-10 17:17:42

윌트는 원래 유아독존 성격이고, 자신을 비롯한 흑인을 차별하는 비루한 사람들은 그냥 쿨하게 무시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대인배기도 하고, 그런 쿨함이 너무 지나쳐서 진지함이 부족하기도 했죠.

 

반면에 러셀은 진중하고 예민했으며, 인종차별에 대한 상처가 컸습니다. 은퇴 후 보스턴과 꽤나 거리를 두었을 정도로 선수 생활 도중에 당한 차별을 마음에 깊이 새겨두었죠. 어떻게 보면 당시 그 시대를 살던 흑인들의 가장 일반적인 모습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가장 인종차별에 맞서 싸운 투사는 오스카 로벗슨입니다. 오스카는 불의는 결코 용납하지 않으며 흑인을 차별하는 무리들과는 바로 눈 앞에서 싸웠습니다. 너무 투쟁적인 성격 때문에 오히려 은퇴 이후 인정받지 못하는 측면도 있는데, 선수 시절에는 흑인 선수들로부터 가장 존경받고 큰 형님 노릇을 했던 게 오스카입니다. 그리고 선수협 회장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현대적인 FA 제도를 도입해 선수들의 복지와 권익을 늘려주는 데 크게 기여한 것도 오스카죠. 70년대에 NBA에 일찌감치 FA가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에는, 그 어떤 사무국 관계자와 구단주도 상대하고 싶어하지 않던 역대 최고 강성 선수협회장 오스카의 전투력 덕분이었습니다.

 

이런 오스카와 윌트, 러셀의 각각 성격의 장점을 다 갖추고 있던 게 카림이었습니다. 카림은 러셀처럼 진중했고 윌트처럼 자존심이 셌으며 오스카처럼 강인했죠.

WR
2020-07-10 19:17:49

당시 체임벌린은 흑인이라기보다 외계인 취급을 당했죠. 카림은 여러 면에서 아주 똑똑했고요.

2020-07-11 06:07:24

그렇게 똑똑한 분이 사업은 왜 그리....

2020-07-10 16:28:31

 오늘도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WR
2020-07-10 16:33:15

고맙습니다

2020-07-10 16:38:39

지하철에서 혼자 싱글벙글하며 읽었네요 흐흐
감사합니다!!

WR
2020-07-10 16:40:34

고맙습니다

2020-07-10 17:01:15

참 재미있는 기록들이 많네요~
저도 마지막 주제인 체임벌린에 대해 잘못알고 있었는데, 정찬성 이슈에 타종목 성공사례로 얘기를 꺼냈다가 다른회원님이 제대로 된 정보를 알려주셔서 창피했습니다
매니아분들의 높은식견에 다시 감탄하며 항상 즐길거리 배울거리가 있어서 즐겁네요

WR
2020-07-10 18:54:09

혹시 매니아에서 있었던 일이었나요?

Updated at 2020-07-10 17:02:34

잘 봤습니다~
체임벌린... 이만 명 팩트체크도 궁금합니다

WR
2020-07-10 18:54:26

이만 명은 심한 과장입니다.

2020-07-10 17:10:31

저도 위키백과의 그 부분은 항상 의문이었습니다. 애초에 IVA라는 배구리그의 존속기간이 겨우 5시즌밖에 안되었고,인기도 그닥이었는데다가 동시대에 공존했던 FIVB는 여기에 참여한 선수들을 프로대회에서 제명했는데 이런 리그가 명예의 전당이 있다는 게 이해가 안되더군요. 오늘도 한 건 배워갑니다

2020-07-10 17:21:14

사실 윌트가 주도해 만들었고, 윌트 덕분에 5년이나 존속되었으며, 윌트도 살리지 못한 리그였습니다. 윌트의 남다른 배구 사랑 덕분에, 그래도 윌트의 네임 밸류를 앞세워 올스타전이 전국 방송에 생중계되기도 했었지만 (그래서 윌트가 이벤트 성으로 올스타전에 참가...) 그때 뿐이었죠.

 

비록 IVA가 오래 못 가고 없어진 리그지만, 배구인으로서 윌트는 나름 인정받을만한 업적을 남겼다고 봅니다. 실패했다고 그 노력과 공헌을 다 무시할 순 없죠. 다만 "배구 명예의 전당에 오를 정도로 배구 선수로서도 압도적인 기량을 뽐냈다."는 잘못된 정보가 만연해 있는 것은 좀 안타깝지만요.

2020-07-10 17:38:11

8번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깨겟네요...

2020-07-10 17:46:34

선수가 의지만 있다면 깨겠지만
감독이 미리 교체할듯 합니다

WR
2020-07-10 18:52:22

맞습니다. 웰스가 파울 아웃되는 상황은 이랬습니다.

https://youtu.be/cG1E2m0b60w

2020-07-10 17:41:54

1번 읽고 순간 ‘저 시즌에 디트가 우승하지 않았었나..? 무슨 소리지?’하고 검색을 해보니 결승까지 다 스윕하면서 올라왔고 결승에서 스윕으로 졌군요.

언제나 정확한 글 감사합니다..

WR
2020-07-10 18:54:45

말씀 고맙습니다.

Updated at 2020-07-10 19:44:47

그 당시의 르브론은 거의 올해의 수비수급 디펜더라서 수비를 대충하지않고 적극적이였을때인데 거의 6경기동안 파울이 없었다는건 놀랍습니다
몰랐던 기록 알게되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WR
2020-07-10 21:29:25

저도 참 신기합니다. 르브론은 그 시즌에 유난히 파울이 적었던 기억입니다. 말씀 고맙습니다.

2020-07-11 00:20:12

좋은글 감사합니다 재밌게 보고 갑니다

WR
2020-07-11 17:13:24

고맙습니다.

2020-07-11 10:16:02

7번 8번은 정말 웃음이 나오네요. 오늘도 감사합니다. ^^

WR
2020-07-11 17:13:33

좋은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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