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리 크라우스는 왜 필 잭슨을 쫓아냈을까
이 글은 바로 아래 올라온 글에 대한 답변으로 아주 급하게 작성된 것입니다. 그리고 제목과 달리 필 잭슨은 크라우스에게 내쫓긴 것이 아닙니다.
프로선수 시절 필 잭슨은 NBA의 거의 모든 커리어를 벤치멤버로 보내면서 마리화나와 마약을 가까이 했고 몇년 동안은 반사회적인 히피 문화에 젖어있었습니다. 그런 이유들 때문에 필 잭슨은 선수 은퇴 후 아주 힘들게 살고 있었습니다. 생계 유지도 어려울 정도의 형편없는 급여를 받고 2부리그인 CBA 감독을 지냈고, NBA 코치 자리가 여의치 않자 몇 해 동안 푸에르토리코에서 농구팀을 지도했습니다. 당시 잭슨은 과거의 전력 때문에 NBA 팀에서는 기피대상이었습니다.
그런 필 잭슨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사람이 제리 크라우스입니다. 제리 크라우스는 신임 감독인 덕 콜린스를 설득해서 필 잭슨을 시카고 불스의 코치로 영입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덕 콜린스 감독은 크라우스 단장이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에 크게 반발했고, 감독과 단장의 관계는 계속 악화되었습니다. 제리 크라우스는 예전부터 감독 및 코치들과 어울리며 전술이나 팀운영에 대한 토론을 즐겼고 그것이 단장의역할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덕 콜린스는 그러한 크라우스의 행동이 감독의 영역을 침범하는 월권이라고 여기며 반발했습니다. 크라우스는 다른 GM과 달리 대부분의 원정경기에도 선수단과 동행했는데, 팀 버스 제일 앞자리에 앉아서 공항까지 간 후에 팀 비행기 제일 앞자리에 앉았습니다. 선수들과 코칭스탭의 공간이라고 여겨졌던 라커룸에도 수시로 들락거렸습니다. 덕 콜린스는 그런 크라우스에게 질색했습니다. 덕 콜린스가 질색한 크라우스의 또 다른 습성은 크라우스가 아주 사소한 것들까지 선수나 코칭스탭과 상의해서 결정하지만 가장 중요한 드래프트나 트레이드 등을 감독과 상의없이 내질러 버리는 성향이었습니다.
덕 콜린스 감독은 86년 취임 후 매년 불스의 성적을 끌어올렸고, 크라우스 단장이 감독의 동의 없이 오클리를 트레이드 한 88-89 시즌에는 불스를 16년 만에 컨퍼런스 파이널에 올려놓았지만 플레이오프 종료 후 전격 해임되었습니다. 그 직후 크라우스 단장은 라인스도프 구단주를 설득해서 필 잭슨을 불스의 감독으로 승격시켰습니다. 그 이후부터 둘의 관계가 끝날 때까지 크라우스 단장은 본인이 필 잭슨의 인생을 수렁에서 구해준 은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크라우스는 피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생각했습니다.) 잭슨이 감독으로 부임한 후 제리 크라우스는 철저하게 구단 운영을 장악함으로서 자신의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그 이후 숱한 사연들이 있었지만 잭슨 취임 후 4년 동안 시카고 불스는 승승장구해서 첫번째 쓰리핏을 달성하게 됩니다. 그 사이에 NBA 선수들의 연봉이 크게 올랐고 그에 따라 감독의 연봉도 비례해서 올랐습니다. (GM의 연봉은 선수와 감독들에 비해서 거의 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사이 마이클 조던이 돌연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불스에게는 가장 어려운 시기였는데, 라인스도프 단장은 성적이 일취월장한 화이트삭스에게 푹 빠져서 구단주가 된 이후 처음으로 불스에 대해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라인스도프는 조던의 야구전향을 부추기며 기존 페이롤을 조던에게 그대로 지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팀이 아주 어려운 상태에서 필 잭슨은 은퇴 직전의 두 선수를 최저연봉으로 데려와서 조던의 빈 자리를 메꾸려 했습니다. 처음에는 임시방편이었지만 시간도 부족하고 돈도 없어서 한 시즌 내내 리그 최저연봉선수 두 명이 번갈아가며 조던의 빈자리를 메꿨습니다. 물론 크라우스 단장이 토니 쿠코치라는 구원투수를 타이밍에 맟춰 불스에 투입한 것도 불스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보낸 93-94 시즌에 불스는 모두의 기대를 뛰어넘는 성적을 올렸고, 필 잭슨은 자신이 리그 최상급의 감독이라는 것을 모두에게 인정받게 됩니다. 하지만 크라우스는 필 잭슨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직속부하로 취급했습니다. 잭슨과 크라우스의 첫 번째 공개적인 충돌은 93-94 시즌 직후에 찾아왔습니다.
필 잭슨은 전술에서 코치의 도움을 많이 받는 스타일이었습니다. 공격 전술은 텍스 윈터에게 의지했고, 수비 전술은 자니 바흐에게 의존했습니다. 두 사람 보두 잭슨보다 스무살 이상 많고 NBA 감독 경력이 있던 베테랑이었습니다. 그런데 제리 크라우스 단장은 93-94 시즌이 끝나자마자 난데없이 자니 바흐 코치를 해고했고, 자유계약선수인 호레이스 그랜트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습니다. 자니 바흐 코치와 그랜트는 막말고 부자 지간보다 가까운 사이였는데, 두 사람은 크라우스에게 '조던 룰'의 작가 샘 스미스 기자에게 정보를 제공한 내부자로 지목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처음으로 필 잭슨은 크라우스를 건너뛰고 라인스도프 구단주에게 찾아가 단장이 이런 식으로 횡포를 부리면 감독직을 수행하기 힘들다고 항의했습니다. 그런데 크라우스는 독단적인 행동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필 잭슨의 반대에도 2천만 달러에 가까운 금액을 제시하며 자유계약선수 론 하퍼를 영입했습니다. 하퍼는 역대 불스 최고 연봉선수가 되어 버렸습니다. 불스에게 재난 같던 94-95 시즌 후반에 조던이 복귀함으로써 크라우스와 잭슨 사이 파국은 봉합되었습니다. 시즌 종료 후 조던과 잭슨 감독이 주도해서 데니스 로드맨을 불스로 영입했습니다. 크라우스 단장은 처음에 반대했지만 여론에 밀려서 수용하고 말았습니다. 불스는 금전적인 여력이 없어서 자유계약선수가 된 암스트롱을 떠나보냅니다.
그 시즌에 불스가 시즌 72승을 거두며 우승을 차지하자 위상이 높아진 필 잭슨의 제리 크라우스의 간섭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필 잭슨은 크라우스의 예상보다도 더 깊고 더 수완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잭슨은 크라우스의 통제에서 벗어나 거의 모든 중요한 사안을 구단주 라인스도프와 담판으로 결정했습니다. 필 잭슨 자신의 계약 및 연봉과 조던을 비롯한 주요 선수들의 재계약 및 연봉 협상까지 모두 크라우스 단장을 건너뛰고 라인스도프 구단주와 합의로 진행되었습니다. 그 시즌 불스가 또 우승을 차지한 이후 GM 패싱이 또 일어나자 분개한 크라우스 단장은 매스컴과 기자들에게 불스를 다섯번 챔피언으로 만든 것은 선수와 감독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는 망언을 내뱉었습니다. 그때부터 98년 2차 쓰리핏이 완성될 때까지 크라우스 단장은 구단에서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는 미운오리새끼가 되어버렸습니다. 제리 크라우스는 리그 최고의 대우를 받는 잭슨에게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었습니다.
98년 쓰리핏 이후 라인스도프 구단주는 필 잭슨과 만나서 팀에 남아주기를 원한다며 재계약을 제안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피펜과 로드맨은 떠나기로 되어 있고, 그들이 없이는 조던이 복귀할 거 같지 않았습니다. 필 잭슨은 구단주의 제안을 거절했고 조던은 공식적으로 은퇴를 발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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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단장이라 할지라도 제리 크라우스 혼자서 마음대로 진행할 수는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생각했던 이상으로 2차 쓰리핏 말기에 단장으로서 영향력을 많이 행사하지는 못했던 모양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