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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한 기간은 짧았지만 영원히 기억되는 슈퍼 트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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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7-01 01:04:20

 

위의 영상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Run TMC 트리오의 대표적인 하이라이트 경기인 1991년 플레이오프 LA 원정 2차전입니다. 오늘날 Run TMC 트리오는 1990년대 초반 워리어스를 상징하는 전설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Run TMC 트리오가 거둔 성적과 지속된 기간은 그 명성에 비해서 조금 초라합니다. 실제로  Run TMC 트리오 단 2년 동안만 지속되었고 절반에 약간 못미치는 81승 83패를 거두고 해체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인기와 영향력은 지금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워리어스의 슈퍼트리오 TMC는 팀, 미치 그리고 크리스를 뜻합니다. 크리스 멀린은 1985-86 시즌에 NBA 커리어를 시작했지만 음주와 과체중으로 처음 두 시즌을 거의 허송세월 했습니다. 그 이후 멀린은 해병대 돌격 헤어스타일로 각오를 다지며 절치부심하던 중에 88년 드래프트에서 미치 리치몬드가 합류하고 올해의 신인상을 받습니다. 이듬해 89년에는 팀 하더웨이가 루키로 합류하게 됩니다. 하더웨이는 루키시절에 현란한 크로스오버 드리블을 선보이며 14.7득점과 8.7어시스트를 기록합니다. 90년 올해의 신인상 투표는 87년에 드래프트 된 데이비드 로빈슨이 1위 표를 휩쓸어 다른 선수들의 공식득표는 모두 제로입니다. 그때에도 지금처럼 점수 순위로 올해의 신인상 투표가 이뤄졌다면 하더웨이가 로빈슨 다음에 2위를 차지했을 것이 확실합니다. 87년 드래프트인 고참 루키인 로빈슨이 없었다면 워리어스가 90년에도 올해의 신인상을 또 차지했을 겁니다.


TMC 트리오의 위력은 하더웨이가 2년차를 맞는 1990-91 시즌에 진가를 발휘합니다. TMC 트리오의 워리어스는 덴버에서 열린 시즌 개막전에서 162-158이라는 무지막지한 스코어로 승리하며 자신들의 아이덴티티를 전국에 알립니다. 돈 넬슨 감독은 가끔씩 하더웨이, 리치몬드, 멀린과 더불어 사루나스 마르셸루니스와 로드 히긴스의 3가드 2스윙맨이라는 극단적인 스몰라인업을 구사하며 팬들을 열광시켰고, 그 시즌 워리어스는 홈경기가 모두 매진되는 인기를 누렸습니다. 그 시즌에 TMC 트리오는 합작해서 경기당 평균득점 72.5를 기록했습니다. 팀 평균득점 116.2(전체 2위) 그리고 평균실점 115(꼴찌에서 2위)를 기록하며 1990-91 정규시즌을 44승 38패로 마친 워리어스는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멀린, 리치몬드, 하더웨이, 마르셸루니스 등 네 선수의 공격이 폭발하면서 시즌 55승을 거둔 샌안토니오 스퍼스에 완벽한 업셋 승리를 거뒀습니다. 하지만 워리어스의 고질적인 수비에서의 문제점은 플옵 2라운드에서 레이커스와 경기할 때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워리어스는 레이커스의 매직, 워디, 퍼킨스와 바이런 스캇을 막지 못하며 경기당 평균 122.4점을 내주고 패했습니다.


1990-91 시즌이 끝난 직후 워리어스와 넬슨 감독은 공수의 밸런스를 보강하고자 Run TMC 트리오를 해체하기로 결정합니다. Run TMC 트리오가 해체되는 과정은 팬의 입장으로 매우 안타까웠습니다. 단장(GM)을 겸임하던 넬슨 감독은 리치몬드를 91년 드래프트 되는 신인 빅맨과 맞바꿀 의도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991년 NBA 드래프트는 당일 뚜껑이 열릴 때까지 안개 속을 헤매는 것과 같은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당시 4학년생이기 때문에 드래프트에 참가할 것이 확실시 되었던 기대주는 UNLV의 래리 존슨과 스테이시 오그먼, 조지타운의 디켐베 무텀보, MSU의 스티브 스미스 등이었고, 얼란조 모닝, 빌리 오웬스 등 3학년과 쉬킬 오닐, 케니 앤더슨 등 2학년의 기대주들이 많은 상태였습니다.


드래프트 한달 전 초미의 관심은 AP통신이 올해의 대학선수로 선정한 LSU의 2학년생 쉬킬 오닐이 91년 NBA 드래프트에 참여하는지의 여부였습니다. 오닐이 대학에 남겠다고 결정한 후에는 대학 최고의 수비형 센터인 조지타운의 3학년생인 얼란조 모닝에게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모닝이 드래프트에 참가할 경우 넘버1 픽은 확실해 보였지만, 그는 존 탐슨 감독의 설득과 선배인 무텀보에 대한 배려로 대학에 남기로 결정했습니다. 남은 언더클래스 대어는 시라큐스의 3학년생 만능 포워드 빌리 오웬스였습니다. 시라큐스는 UNLV에 대항할 NCAA토너먼트의 다크호스로 기대를 받았으나 1라운드에서 업셋으로 탈락함으로 인해 오웬스가 설욕을 위해 다음해에 컴백 할 거라는 예상이 돌았지만 오웬스는 드래프트에 참가를 선언했습니다. 그 직후 조지아텍의 2년생 포인트가드인 케니 앤더슨도 NBA에 진출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해 드래프트에서 누가 넘버1 픽이 될 것인가에 전문가들의 의견이 둘로 심하게 갈렸습니다. 보수적으로 생각하면 래리 존슨이고 그보다는 덜 안정적이지만 실링이 높은 선수로 생각하면 빌리 오웬스였습니다. 찰스 바클리와 줄곧 비교되던 존슨은 부상이 없는 한 향후 10년간 20득점에 10리바운드는 보장된 선수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습니다. 빌리 오웬스는 바로 전해에 7번 픽으로 지명된 라이어닐 시몬스의 상위 호환처럼 인식되었습니다. 두 선수는 거의 비슷하지만 오웬스의 사이즈가 약간 컸고 약간 더 다재다능해 보였습니다. 라이어닐 시몬스는 스몰 포워드로 활약하면서 NBA 첫해에 평균 18득점에 8.8리바운드 그리고 4어시스트를 기록했습니다. 결국 1번 픽을 가진 샬럿은 보수적인 선택을 해서 래리 존슨을 지명했습니다.


기어코 2번 픽에서 이변이 발생했습니다. 빌리 오웬스를 드래프트 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뉴저지 네츠가 일부 지역 팬들의 열성적인 요구에 따라 케니 앤더슨을 지명한 것입니다. 케니 앤더슨은 고등학교 시절 뉴욕시가 배출한 역대 최고의 농구천재로 칭송받던 선수였습니다. 앤더슨이 2번 픽으로 뽑힘에 따라 3번 픽을 가졌던 킹스에게 빌리 오웬스를 지명하는 횡재가 돌아갔습니다. 전 시즌 리그 최하위를 기록했고 수비형 센터가 절실히 필요한 덴버는 위험을 무릅쓰고 기본기가 불확실한 무텀보를 4번 픽으로 뽑았고, 마이애미는 스티브 스미스를 5번으로 뽑는 보수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드래프트 직후 네츠에게는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네츠의 데릭 콜먼과 빌리 오웬스는 대학 동기로 호흡이 잘 맞았던 선수였기에 오웬스가 네츠에 오기를 기대했던 팬들이나 언론들의 실망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빌리 오웬스를 지명한 킹스도 고민에 빠졌습니다. 라이어닐 시몬스와 빌리 오웬스는 전형적인 스몰 포워드였고 모든 면에서 너무 비슷해서 둘 중에 하나를 처분해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돈 넬슨 감독의 워리어스가 킹스에게 거부하기 힘든 제안을 해왔습니다. 빌리 오웬스를 워리어스에 데려가는 대신에 검증된 스타 리치몬드와 두 명의 선수를 킹스에 주겠다는 제안이었습니다. 그렇게 빅딜은 이뤄졌습니다. 그런데 워리어스 팬들과 미디어들은 그 결정에 매우 불만이 많았습니다. 돈 넬슨은 TMC 트리오 중에서 한명을 보내는 대신에 빅맨을 데려오겠다고 약속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워리어스가 비싸게 데려온 것은 빅맨이 아니라 크리스 멀린과 포지션이 충돌되는 빌리 오웬스였습니다. 사람들은 오웬스를 스몰 포워드라고 봤지만 넬슨은 계속해서 우리가 원하던 빅맨을 얻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시즌이 시작되자 오웬스에게 빅맨의 역할을 맡겼습니다.


넬슨 감독의 기대처럼 1991-92 워리어스는 전 시즌보다 확실히 강팀이 되었습니다. 매직 존슨의 충격적인 은퇴 이후 그 자리를 차지할 후보에 워리어스가 꼽힐 정도였습니다. 6‘8“의 파워포워드 빌리 오웬스와 6’9“의 센터 타이론 힐은 일반적인 생각으로 언더사이즈였지만 워리어스의 공수 균형은 전년보다 눈에 띄게 향상되었습니다. 넬슨 감독의 주문대로 매스컴은 빌리 오웬스를 빅맨이라고 불렀습니다. 워리어스는 1991-92 시즌에 55승을 거둬 NBA의 27개의 전체팀 중에 유타와 공동 4위를 차지했습니다. 크리스 멀린은 NBA 퍼스트팀과 원조 드림팀에 선발되었습니다. 식스맨 마르셸루니스는 경기당 29분을 뛰면서 18.9 득점을 높은 효율로 올리는 발전을 이뤘습니다. 이 때만 해도 미래는 워리어스의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때부터 워리어스에게는 끔찍한 부상의 악몽이 시작되었습니다. 

 

* 1990-91 워리어스는 20세기에서 마지막으로 3명의 선수가 정규리그 평균득점 20점 이상을 기록한 팀입니다. 21세기 최초로 3명의 선수가 정규리그 평균득점 20점 이상을 기록한 팀 또한 07-08 시즌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입니다. 07-08 워리어스는 배런 데이비스, 스티븐 잭슨, 몬타 엘리스가 평득 20점 이상을 기록했지만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했습니다. 07-08 워리어스 이후 3명의 선수가 정규리그 20득점 이상을 기록한 팀 역시 2016-17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인데 이 팀은 역대 플에이오프 최고 승률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3명의 선수가 정규리그 20득점 이상을 기록하면서 우승한 팀은 아직까지 2016-17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가 유일합니다. 이듬해에도 워리어스는 3명의 선수가 20득점 이상을 기록하면서 우승했지만 커리가 결장 때문에 기록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2018-19 워리어스도 역시 3명이 20득점 이상이었는데, 결승에서 토론토에 패했습니다. 이런 걸로 봐서도 Run TMC 트리오는 21세기 골스왕조의 예언자처럼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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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0-07-01 00:14:26

 오랜만이네요 Run TMC

WR
2020-07-01 00:26:09

90-91 시즌 Run TMC 트리오가 거둔 개인 성적입니다. 

이름

경기

나이

FG%

득점

Chris Mullin

82

27

53.6

25.7

Mitch Richmond

77

25

49.4

23.9

Tim Hardaway

82

24

47.6

22.9

2020-07-01 09:02:40

아름답네요~~

2020-07-01 10:25:32

정말 멋진 숫자네요.

Updated at 2020-07-01 00:53:25

Run TMC가 워리어스에 있을땐 제가 너무 어렸고... 마이클 조던의 2차 복귀부터 NBA를 그나마 좀 보기 시작할때도 화자 되던게 기억나네요.  전 멀린을 좋아했는데 그래서 데틀레프 슈렘프도 좋아했나 봅니다(?) 

 

그나저나 반가운 이름들이 많이 등장하네요. 케니 앤더슨, 데릭 콜먼, 무톰보, 모닝 등등

WR
2020-07-01 01:00:27

슈렘프는 대학을 미국에서 나왔지만 독일 출신의 파워포워드라서 때로는 원조 노비츠키로 불리기도 합니다. 

Updated at 2020-07-01 01:13:29

리치몬드가 떠나고 55승을 했는데 벤치에서 출전해서 18.9득점을 해준 마르셜오니스의 공이 지대했더군요

부상만 없었더라면 지노빌리처럼 위대한 선수로 기억되었을지도 모릅니다

WR
2020-07-01 01:14:36
마르셸루니스는 소련팀의 88올림픽 우승을 이끈 최고의 선수였습니다. 전부터 그 선수의 실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미국 적응을 완료한 91-92 시즌에는 본격적인 스타로 발돋움하기 직전이었습니다. 지노빌리처럼 튀는 플레이어는 아니지만 단단한 기본기를 갖춘 데다가 몸의 충돌을 전혀 꺼리끼지 않을 만큼 더 저돌적인 선수였습니다. 
2020-07-01 04:48:54

런티엠씨에 스프리웰 웨버 개틀링...좋은 선수가 참 많았어요

2020-07-01 05:48:37

하... 크리스 개틀링 머리 뚜껑 사연으로 당시 저는 어린나이 였지만 뇌리에 깊게 기억되는 선수네요

2020-07-01 07:55:04

일단 글쓰신분 누구시죠? 요즘 진짜 돈내고봐도 안아까운 글들을 계속 ㅜㅜ 너무 감사합니다

2020-07-02 23:35:22

이 분 글은 진리의 선추천!!

2020-07-01 07:58:43

진짜 나중에 쓰신글 모아서 책하나 내시죠!!

2020-07-01 08:59:17

전주 KCC 감독이였던 스테이스 오그먼~~반갑네요. 

 

WR
2020-07-01 12:49:05

88 올림픽 미국 대표 출신이었습니다

2020-07-01 09:01:27

전 안타깝게도 Run TMC 는 거의 못봤고 대신 달라스의 3J를 봤었습니다. 그 멤버도 Run TMC 처럼 상당히 신나고 매력적인 구성이었는데 토니 브랙스턴이었나? 여자 가수랑 삼각관계 때문에 불화를 겪고 결국 와해됐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WR
2020-07-01 12:51:19

잭슨과 키드 모두 성깔이 있던 선수였죠. 

2020-07-01 09:45:44

돈 넬슨이 진짜 파격적이네요. 요즘도 6'8짜리 4번들이 흔해진 요즘도 볼때마다 한번씩 느낌이 요상해지곤 하는데 90년대에도 저런 언더사이즈 4번, 5번을 썼군요?

WR
2020-07-01 12:52:42

넬슨은 감독시절 빅맨을 기피하는 걸로 악명 높았습니다. 솔직히 말해 넬슨 스타일로는 우승권에 진입하기 힘듭니다. 자기 팀에 유잉과 오클리가 있으니까 어쩔 줄을 모르던 넬슨입니다.

2020-07-01 09:54:10

빌리오웬스의 커리어는 결국 리치먼드가 아깝지않을 정도로 이어 졌나요?

WR
2020-07-01 12:55:37

이게 모두 이듬해에 일어난 사건들입니다.

 

빌리 오웬스 : 부상으로 커리어가 꼬여서 평범한 선수로 은퇴함

크리스 멀린 : 부상으로 커리어가 망가짐

마르셸루니스 : 부상으로 커리어가 망가짐

팀 하더웨이 : 부상으로 커리어가 망가지는 줄 알았으나 오랜 재활 끝에 마이애미에서 재기함

미치 리치몬드 : 부상으로 시즌 절반을 날림. 골스 선수들과 달리 더 이상 부상에 시달리지 않음

 

2020-07-01 16:19:24

저한테 킹스때부터 봤던 리치몬드는 당대 최고의 건강한 선수중에 하나로 기억됩니다

2020-07-01 12:58:28

리치몬드에 비하면 완전 망했죠. 리치몬드는 새크 가서 6번 올스타에 오르며 훗날 명전행의 밑거름이 되는 탄탄한 커리어를 쌓은 반면에, 오웬스는 골스에서 3년 정도 반짝한 뒤 이후 줄곧 내리막이었습니다.

 

오웬스는 다재다능하긴 한데, 뭔가 특출난 면이 없어 보이는 어정쩡한 올라운드 플레이어였습니다. 또한 인저리 프론이라 너무 잦은 부상 때문에 장기인 운동능력을 계속 갉아먹기도 했고요. 여러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었으나 어느 한 포지션에 제대로 정착하지 못했고 슈팅력이 개선되지 못하면서 결국 3-4번 트위너로 남았습니다.

 

그나마 돈 넬슨이 오웬스를 높이 샀고 (다재다능하고 가드처럼 볼 다루면서 스윙맨처럼 뛸 수 있고 빅맨 수비도 해줄 수 있는 걸 높게 샀던 듯... 넬리 볼에 특화된 4번이라고도 할 수 있죠...) 넬리 볼 하에서 뛸 때가 가장 신체적으로도 그렇고 전성기였습니다. 몸만 좀 더 건강했더라면 그래도 어느 정도 주전급 올라운더로 꾸준한 모습을 보여줬겠지만, 아무리 최대치로 산정해 놓고 봐도 리치몬드의 턱밑에는 미치지 못할 듯 합니다.

2020-07-01 16:35:19

돈넬슨 대단한게 본인이 단장을 겸하긴 했지만 무려 1라픽 3장이나 주고 데려온 웨버를 사이틀어졌다고 1년만에 포기하는 결단력은 정말 엄지척!! (물론 1라픽 3장을 받았고 그중엔 다행히 훗날 빈스카터 뽑은 픽도 돌아돌아 돌려받았다지만)

2020-07-01 10:26:49

저는 그들의 경기를 못봤지만, 이름은 기억합니다. ^^

2020-07-01 15:19:08

저도 이 팀에 대한 기억이 흐릿한데, 120점 넣고 130점 내줘서 정작 승률은 별로 아니었나요?

2020-07-01 15:20:43

찾아보니까 91-92시즌은 훌륭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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