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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로버트슨이
 
  1465
2020-02-27 22:19:39

어느 정도의 선수였나요?고대의 트리플더블 머신이라는 것과 벅스의 유일한 우승때 멤버, 올스타랑 퍼스트팀 단골이던 건 알겠는데 지금으로 보면 어느 정도었던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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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Updated at 2020-02-27 23:47:17

 | 커리가 오스카 로버트슨을 넘는게 쉽지 않아 보이는 이유  |  NBA-Talk

당시 리그에서는 윌트 채임벌린에 이은 넘버투이자 가드중에서는 압도적인 선수였습니다. 밥쿠지와 제리웨스트와 경쟁하면서도 9년 연속 퍼스트팀을 차지했죠.지금 뛰는 현역 선수중에 9년 이상 연속 퍼스트팀을 차지한 선수는 르브론밖에 없네요. 아직 커리조차도 확실히 넘었다고 하기 어려울 정도의 선수입니다.

Updated at 2020-02-27 22:29:13

정말 이름은 유명한데 플레이본분은 드물겠죠
느바가 해외위성중계 하면서 알려진 첫세대가
쥴리어스어빙, 모제스말론, 압둘자바, 버드
부터에여

2020-02-27 22:30:38

하든이 5회, 폴이 4회, 커리가 3회, 서버럭이 2회 

은퇴한 선수론 매직이 9회, 키드가 5회, 내쉬가 3회, 스탁턴이 2회네요 

개인적으론 퍼스트 팀의 수상 횟수가 얼마나 오랫동안 리그를 지배한 선수인지를 나타낸다고 봐서 

로벗슨의 9회 수상은 정말 대단한 업적이라고 봅니다 

Updated at 2020-02-27 23:51:40

당대 최고의 가드였고 그야말로 그 이전에는 없었던 혁신적인 기량과 스타일을 지닌 슈퍼스타였죠. 그때 당시 6-5의 키로 포인트가드를 보면서 평균 30득점씩 쏟아부었으니... 두 자릿 수 어시스트도 엄청난 거였구요.

"빅 오"라고 불린 건 가드 포지션에서 그야말로 너무 큰 선수였기 때문입니다. 압도적인 사이즈와 피지컬로 그야말로 매치업 나이트메어였고, 정말 수비하기 힘들었죠. 스킬도 매우 뛰어났는데 훗날 조던의 주무기로 알려진 페이더웨이 점퍼의 원조가 바로 빅 오였습니다.

밥 쿠지도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적인 선수였는데 쿠지가 은퇴하기도 전에 바로 빅 오가 등장해 역대 넘버원 포가의 간판을 바꿔버렸습니다. 성품 좋기로 유명한 쿠지가 자신을 너무 일찍 끌어내린 빅 오를 질투해 신시내티 감독 시절에 빅 오와 불화가 심했죠. 빅 오의 성깔이 워낙 드세기도 했지만, 쿠지같은 인격자도 속 좁게 만들어버릴 정도로 시대를 초월한 천재 가드였습니다.

또한 당시 빅 오는 당대에 차별받던 흑인들의 저항을 대변하던 위인이었습니다. 빅 오는 성격이 불같고 굉장히 직선적이어서 불의를 보면 전혀 타협하지 않고 상대에게 독설과 분노를 여과없이 표출하곤 했으며 인종차별이라도 당하면 결코 그냥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당시 대표적인 흑인 스타들의 인종차별 대응방식이 다 달랐는데, 러셀은 꾹 참았고 윌트는 도리어 비웃었고 빅 오는 곧바로 싸웠습니다.

빅 오가 나중에 선수노조 대표를 했을 때 사무국이 빅 오 성깔때문에 너무 많이 곤혹을 치렀고, 이때 FA 제도를 비롯해 선수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제도들이 빅 오의 추진력과 행동력을 바탕으로 많이 자리잡았죠. 초대 선수노조 대표인 밥 쿠지와 더불어, 앞장서서 선수들의 권익을 대폭 향상시킨 대표적 인물입니다. 그야말로 농구계의 말콤 X가 바로 빅 오였죠.

빅 오 하면 트리플 더블로도 유명한데, 당시엔 트리플 더블이란 기록에 특별히 의미 부여를 하지 않아서 사실 더 많은 트리플 더블을 할 수 있었지만 덜 한거죠. 요새 웨스트브룩처럼 좀 의식했다면 3년 연속 트리플 더블같은 기록도 가능했을 겁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웨스트브룩의 위업을 과소평가할 수 없는게, 가드가 두 자릿수 리바운드 잡기가 정말 힘든데 빅 오는 그나마 리바운드가 많이 나오던 시대에 뛰었고 출전 시간도 거의 풀타임 가깝게 뛰었죠. 반면에 웨스트브룩은 제한된 출전시간 내에서 더 리바 잡기 힘든 상황인데 그걸 해냈으니... 확실히 리바 능력만큼은 얼핏 수치가 비슷해보여도 웨스트브룩이 빅 오보다 한 수 위죠. 요즘 시대였음 빅 오가 전성기 때 한 7~8리바운드 정도 잡았을 겁니다. 제이슨 키드 정도의 리바운더였죠.

근데 이 대단한 빅 오도 하필이면 팀이 동부에 있어서 늘 러셀의 보스턴과 윌트의 필라델피아 사이에 껴서 이리저리 치이며 신시내티 시절엔 파이널도 못 가봤죠. 만약 팀이 서부에 있었음 그래도 몇 번 파이널은 갔을텐데... 그래도 두 괴물들 사이에서 시즌 MVP도 한 번 가로채기도 했지만요.

이후 계속 플옵에서 쓴 잔만 마시던 빅 오는 감독 쿠지와의 불화로 힘든 나날을 보냈고, 결국 트레이드까지 되고 말았죠. 이미 서른을 훌쩍 넘겨 전성기가 지난 그는 트레이드의 충격을 훌훌 털어버리고 카림 압둘-자바라는 또 한 명의 어린 천재와 함께 새로운 팀 밀워키를 정상에 올리죠. 빅 오는 2인자가 되는 것도 기꺼이 감수하며 자바를 도와 이타적이고 헌신적인 플레이를 펼쳤고, 리더쉽의 표본이었죠. 71년 우승에 이어 74년에도 밀워키는 파이널에 가며 빅 오 커리어의 두 번째 우승에 도전했으나, 7차전까지 가는 대접전끝에 아쉽게도 보스턴에게 무릎을 꿇고 말았죠. 빅 오는 그 파이널을 마치고 미련없이 은퇴했는데, 팀의 정신적 지주였던 빅 오의 부재로 인해 자바를 비롯해 젊은 밀워키 선수들은 많이 흔들렸고, 결국 밀워키의 돌풍은 거기가 끝이었습니다.

빅 오는 비록 가까이하기 힘든 성격이긴 했지만 당대 흑인 선수들에게는 귀감이었고 존경의 대상이었죠. 다만 꼰대 기질도 강해서 그 당시 최고의 백인 스타였던 피트 마라비치의 서커스같은 플레이를 흑인 후배들이 따라하자, 백인들 앞에서 광대놀음하지 말라며 일갈하기도 했죠. 그만큼 자존심이 셌고, 인종차별에 민감했습니다.

빅 오도 만약 밀워키에서 우승을 못했음 후대에 꽤나 박한 평가를 받았을텐데 그나마 다행이죠. 빅 오는 특히 당대 함께 뛰어본 선수들이 입을 모아 최고라고 극찬하는 선수였습니다. 그만큼 압도적인 개인 기량을 자랑했고, 흑인 선수들이 리그에 자리잡는데 큰 역할을 한 행동가였습니다.

2020-02-27 23:37:36

어떻게 이렇게 상세하게 아시나요..?! 지식에 감탄하고 갑니다

댓글로 추천!

2020-02-28 00:41:53

추천드립니다!

2020-02-27 23:48:53

좋아요

20-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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