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는 왜 공격 페이스를 늦춰야 할까?
아무래도 이 부분에 대해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서, Positive 님과 의견 교환했던 것들을 간단히 정리해서 올립니다.
이번 시리즈에서 필리는 무조건 공격 페이스를 늦춰야 해요. 6차전에 승리를 거두고 시리즈 동률을 만들려면 공격 페이스를 늦추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4차전까지였다면 체력 문제가 있는 랩터스를 괴롭히기 위해(정확히는 카와이와 라우리) 공격 페이스를 올리는 것도 고려할만 했지만, 5차전이 가비지로 간 상황에서 필리는 절대 공격 페이스가 빠르면 안됩니다.
이제는 체력 이점도 없기 때문에 필리는 반드시 공격 페이스를 늦춰야만 해요(5차전에 홈에서 카와이-라우리가 휴식을 취한 게 너무 컸네요).
필리 입장에선 이번 시리즈는,
1) 카와이-시몬스 구도 때문이나(속공 구심점인 시몬스 봉쇄),
2) 매치업 꼬으기 등에 따른 수비 컨셉(시아캄-엠비드 구도 & 버틀러-라우리 구도 & 마크 가솔-토비 구도)을 유지하고,
3) 사이즈 우위를 가져가기 위해서
라도 무조건 늪 농구로 가야 하는 데, 이게 깨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가 5차전에 나타난 것 같습니다.
특히 5차전은 수비 조직력 문제가 필리 입장에선 크게 드러난 경기였어요. Positive 님 지적과 같이 필리는 이번 시리즈에 얼리 오펜스 상황만 나와도 수비 로테이션이 흔들립니다.
2차전에도 이로 인해 위기를 맞은 바 있고, 오늘 경기는 얼리 오펜스가 턴 오버로 인해 야기되면서 더욱 심각해진 경향이 있었죠.
사실 필리는 시즌내내 수비 조직력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이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될 성격의 것은 아니었죠.
수비 조직력이 안 좋았는데도 시리즈 내내 수비력이 좋았던 건 지공 상황에서 철저한 매치업 꼬으기가 먹히면서 약속된 로테이션이 돌아간 것이 컸습니다.
5차전 필리는 약속된 로테이션이 흔들렸던 얼리 오펜스 + 속공 상황에는 오픈 찬스를 거의 헌납하다시피 했죠. 이 때 랩터스에게 주어지는 외곽 찬스는 지공 상황에서 의도적으로 주는 외곽 찬스와는 격이 다릅니다.
지공 상황에서 의도적으로 주는 오픈 찬스는 필리가 원하는 위치(예를 들어 시아캄은 정면 45도 이내) 위주로 줄 뿐만 아니라, 공격 시간에 쫒길 때 주는 오픈 찬스 혹은 컨테스트가 동반된 찬스였기에 랩터스가 공격 리듬이 좋기가 힘들었죠.
반면, 5차전처럼 턴 오버로 인해 얼리 오펜스에서 주어졌던 오픈 찬스에는 필리의 의도가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랩터스가 공격 리듬을 살리기에 제격이었습니다.
같은 오픈 찬스라도 수비가 의도해서 줬느냐와 공격팀의 의도대로 만들어졌느냐는 큰 차이가 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2, 3차전의 오픈 찬스는 필리가 의도했던 오픈 찬스여서 랩터스 슈터들이 꽤나 곤혹스러웠겠죠.
공격도 전술실행에 따른 리듬이라는 게 있는 데, 원하는 순간에 원하는 위치에서 오픈을 만들어주는 것과 수비가 의도적으로 오픈을 주는 건 슈터들이 받아들이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죠.
그렇기 때문에 5차전은 랩터스 슈터들 입장에선 정말 좋은 전개였을 겁니다. 공격 팀의 의도대로 오픈이 만들어졌으니까요. 그리고 5차전에 랩터스 슈터들이 좋은 공격 리듬에서 슈팅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공격 페이스 향상에서 기인합니다.
외곽의 오픈 찬스가 2, 3차전과는 비교도 안되게 좋은 리듬(공격 팀의 의도대로)에서 나오니 랩터스 슈터들이 넣기가 정말 편했을 거에요. 물론 이 찬스를 살리는 것도 팀의 능력이고, 이 찬스를 완벽히 살린 랩터스 슈터들(특히 그린)은 정말 좋은 선수들입니다.
만약, 6차전에도 필리가 5차전처럼 턴 오버를 남발하면서 속공 얻어맞으면, 원래 문제였던 수비 조직력 문제가 터져나오는 것을 막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얼리 오펜스 상황조차도 컨트롤 안된 건 결국 필리 수비 조직력의 한계 때문이고, 이는 필리의 고질적인 약점이기 때문에 현 시점에는 필리가 무조건 턴 오버를 줄이고 지공 위주로 가는 게 필요합니다.
사실 턴 오버가 많은 게 무조건 문제가 되는 건 아니에요. 턴 오버가 볼 무브먼트로 인해 나오는 경우는 어느정도 공격 팀도 턴 오버를 감안하고 플레이하기 때문에, 턴 오버 자체가 큰 문제가 되진 않습니다. 수비 입장에서 세이프티가 잘 이뤄지니까요.
하지만 5차전 턴 오버들은 대다수가 본헤드 플레이였죠. 이런 턴 오버들은 공격팀의 의도가 전혀 가미되지 않았기 때문에 수비팀에게 카운터 맞기 십상입니다.
공격 페이스를 완전히 상대에게 헌납하는 턴 오버였던 것이죠.
그래서 턴 오버를 범하더라도 어떤 종류의 턴 오버를 범하는 지가 정말 중요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5차전 필리의 턴 오버 대부분은 본헤드 플레이여서 정말 아쉬웠습니다.
또 하나 고려할 점은 필리의 시리즈 의도입니다. 필리는 이번 시리즈 내내 카와이 쪽 공격 비중을 확 낮췄습니다. 1차전에 버틀러가 카와이 수비하다 체력 문제가 더해져 크게 고전한 이후, 브라운 감독은 의도적으로 버틀러-카와이 매치업 비중을 줄였습니다.
이후 버틀러가 살아났죠.
이런 문제들 때문에 필리는 수비수 카와이와 정면대결하는 것을 시리즈 내내 피하고 있어요. 굳이 어려운 공격을 시도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시몬스를 오프 볼 옵션(커터, 스크리너, 롤맨)으로 사용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필리는 정규시즌 후반기부터 철저하게 속공 리딩은 시몬스, 지공 리딩은 버틀러 컨셉을 가져가고 있고, 랩터스 시리즈에서는 이 경향이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브라운 감독은 아예 맥코넬을 기용하지 않으면서까지 버틀러를 완전한 1번으로 쓰고 있죠. 수비 매치업까지 라우리-밴블릿과 되고 있는데 사실 이 부분이 2차전부터 버틀러가 살아났던 키 포인트 중 하나였습니다.
반면, 시몬스는 시리즈 내내 공수 모두에서 카와이를 상대하면서 엄청난 체력 부담에 시달리고 있고, 더욱이 수비수가 카와이인 상황에 필리가 시몬스 중심의 속공 전개를 시도하는 건 위험부담이 너무 큽니다.
필리의 속공은 거의 대부분 시몬스 주도로 이뤄집니다. 허나 이번 시리즈에선 위와 같은 이유로 지공을 팀 컨셉으로 잡은 데다가, 시몬스가 카와이와 매치업되고 있어서 시몬스 주도의 속공을 시도하기 힘듭니다.
정규 시즌에 이미 필리는 시몬스 중심으로 속공 전개를 시도하다 랩터스에게 호되게 당한 전적도 있으니까요.
이런 점을 고려해볼 때 6차전에는 무조건 다시금 공격 페이스를 늦춰야 하는 데, 페이스 조절에 가장 중요한 리바운드 우위를 빼앗긴 상황이라서 필리가 정말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엠비드가 살아나야 필리는 활로가 열립니다. 일단 보드 장악력 우위부터 다시 가져와야 하는 데, 그러기 위해선 엠비드의 활약이 절실하죠.
필리 입장에선 리바운드 우위를 가져와서 필리 의도대로 경기 속도를 늦추고, 철저히 본인들의 의도에 맞는 수비 컨셉을 가져가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공격은 버틀러 중심의 아이솔이 여전히 먹히고 있고, 5차전에는 토비-빅맨의 픽 앤 롤(+스캇의 3점)도 먹힐 수 있다는 걸 보여줬으므로 시작은 수비부터 해야해요. 공격은 그 다음입니다.
널스 감독이 이바카-마크 가솔 2 빅을 중용한다 해도, 필리는 최소한 지공 상황에선 엠비드-시몬스 중심으로 카와이 수비를 해낼 수 있다는 걸 증명했습니다.
시몬스의 카와이 수비는 오늘도 훌륭했고, 지공 상황에서는 새깅을 기반으로 한 시아캄 수비도 괜찮았죠. 그렇기 때문에 경기 속도만 늦추면 필리에게도 반전의 계기가 생길 겁니다.
결국 반전의 시작은 1) 엠비드로부터 나와야 하고, 2) 특히 리바운드 우위를 반드시 가져와야 합니다. 그래서 3) 경기를 늪 농구로 만들어야 해요.
버틀러가 상수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이 세 가지만 해낼 수 있다면 6차전에 반전 경기력을 보이는 것도 가능할 것 같긴 합니다.
그러나, 만약 엠비드 몸상태가 5차전과 대동소이하다면 필리는 홈에서 승리를 헌납하고 말겁니다. 5차전처럼 턴 오버로 자멸하는 것만은 피하길 바라고, 특히 홈에서 승리를 헌납하는 것만은 보고 싶지 않기 때문에 엠비드가 부디 부활해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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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토론토가 제가 생각한 것을 기가 막히게 깨네요. 토론토가 하이페이스 게임으로 가면 승산이 높지 않다 봤는데 의외로 대승을 거뒀습니다. 하이페이스라면 식서스가 승산이 더 높다고 본 이유는 라우리의 경기력 난조와 식서스가 하이페이스를 토론토보다 더 선호해서, 토론토가 선수 구성 상 하이페이스 게임하기가 좋지 않아서 등을 들었는데, 라우리가 살아나면서 바로 토론토가 하이페이스 게임이 되더군요. 제가 언급하기도 했지만 오늘 포인트가드 대결에서 라우리>>>시몬스가 되버려서 여기서 게임이 크게 갈렸습니다. 엠비드 부진도 크지만 진짜 패인은 라우리 시몬스 포가 대결 완패였어요.
오히려 로우페이스 선호하는 쪽은 토론토라고 봤는데 오늘 게임이 이렇게 흘러가서 이렇게 된 이상 하이페이스 게임을 하기도 참 난감해졌습니다. 당장 하이페이스를 이끌어야 할 시몬스가 너무 안 좋다는 점 때문에 하이페이스 게임 하기가 난감합니다. 그래서 로우페이스를 가야 되는 상황이긴 한데, 로우페이스를 선택하려면 결국 수비와 리바운드 싸움을 이기는게 무조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중심인 엠비드가 컨디션이 안 좋다는 점이 영 걸리네요. 그래도 4차전보다는 움직임 자체가 좀 나아진 점에서 6차전에서는 좀 더 좋아질거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