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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조던의 커리어에서 가장 굴욕적인 패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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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7-02 01:02:03

스타 군단인 1983-84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선수들 중에서도 마이클 조던은 스타 중 스타로 꼽혔습니다. 당시 3학년이던 조던은 2년 연속 미국 농구협회에 의해 USA Basketball Male Athlete of the Year에 선정되었고, 84년에는 대학농구협회 등 7개의 기관에서 개별적으로 선정하는 대학농구 올해의 선수를 완벽히 싹쓸이 했습니다. 이는 조던 이전에 래리 버드와 랠프 샘슨만이 이뤘던 업적입니다. 

 

1983-84 시즌에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농구팀은 자타공인 전국 최강의 멤버로 구성되었습니다. 11명의 로스터 전원이 훗날 NBA에 드래프트 될 정도로 선수층이 깊었습니다. NCAA 토너먼트가 시작되었을 때의 주전 선수는 4학년인 맷 도허티와 샘 퍼킨스, 3학년인 마이클 조던, 2학년인 브래드 도허티 그리고 신입생인 케니 스미스로 구성되었습니다. 이들 중에서 조던과 퍼킨스는 1984년 NBA 드래프트에서 각각 1라운드 3번과 4번 픽으로 지명되고, 도허티는 1986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1번 픽으로, 케니 스미스는 1987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6번 픽으로 지명됩니다.


1983-84 정규 시즌을 모두 마치고 NCAA 토너먼트를 앞둔 상태에서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는 27승 2패로 전국 1위에 올라와 있었고, 25승 3패의 조지타운이 2위로 그 뒤를 이었고, 휴스턴 대학은 25승 4패로 전국 5위를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전체적인 그림은 전국랭킹 1위인 노스캐롤라이나에게 조지타운, 휴스턴, 4학년생 센터 샘 보위가 이끄는 켄터키 그리고 드폴 등이 도전하는 모양새였습니다. 당시 마이클 조던에게는 두 개의 목표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 목표는 3월에 열리는 NCAA 토너먼트에서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를 우승으로 이끄는 것이고, 두 번째 목표는 그 해 NBA 드래프트에서 전체 1번 픽으로 선발되는 것입니다. 두번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첫번째 목표 달성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당시 마이클 조던에게는 절대 만만히 볼 수 없는 동기생 라이벌들이 3명이나 있었는데, 이들은 조지타운 대학교의 패트릭 유잉, 휴스턴 대학교의 아킴 올라주원 그리고 어번(Auburn) 대학교의 찰스 바클리였습니다. 그런데 유잉은 조지타운 대학교의 전통에 따라 그 해 드래프트에 참가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그렇게 되면 휴스턴 대학교의 아킴 올라주원이 가장 강력한 1번 드래프트 후보가 됩니다. 그런데 나이지리아 출신의 올라주원은 환상적인 운동능력을 가졌지만 농구 경력이 짧았고, 감독들이 다루기 어려운 성격을 가졌다는 이야기들이 나돌았습니다. 그래서 희미하게나마 1번 픽을 차지한 팀이 올라주원을 지나칠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2년 전에 노스캐롤라이나가 NCAA 토너먼트에서 우승한 후 제임스 워디는 도미닉 윌킨스, 테리 커밍스, 라셀 톰슨 등을 제치고 드래프트 전체 1번 픽으로 지명된 바 있습니다.

 

마이클 조던의 노스캐롤라이나는 NCAA 토너먼트 32강에서 템플 대학교를 손쉽게 이기고 16강(sweet sixteen)에서 비교적 약체인 인디애나 대학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인디애나 대학교는 전통의 강호였지만 그 해에는 1학년과 2학년의 백인 학생들을 주축으로 구성된 어린 팀이었습니다. 신입생인 스티브 알포드가 팀의 공격을 이끌었고, 스튜 로빈슨을 제외하면 전체 로테이션 인원이 모두 백인이었습니다. 인디애나 선수들 중에서 스티브 알포드는 훗날 NBA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에 지명되고, 독일 태생의 센터 우베 블랍은 짧은 NBA 커리어를 갖습니다. 그리고 그밖에 어떤 선수도 NBA 커리어를 갖지 못합니다. 실제로 그 해 인디애나의 전력은 NCAA 토너먼트 16강에 오른 것만으로도 성공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정도로 최강 노스캐롤라이나의 적수가 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인디애나 대학교에는 바비 나이트(Bobby Knight)라는 최고의 감독이 있었습니다. 바비 나이트는 자타공인 최고의 꾀돌이였고 전략가였고, 16강에서 마이클 조던의 노스캐롤라이나를 스나이핑하기 위한 작전을 구상했습니다. 바비 나이트 감독은 3학년생인 댄 다키히(Dan Dakich)에게 조던에 대한 수비를 맡기며 그에게 연결되는 패스를 사전에 차단함과 동시에 조던에게 백도어 컷, 포스트업 그리고 공격리바운드를 허용하지 말라고 주문했습니다.


경기가 시작되었을 때 노스캐롤라이나는 마이클 조던의 연속 득점으로 1분 만에 4-0으로 앞서 나갔습니다. 하지만 딱 그것뿐이었습니다. 조던은 순식간에 두 개의 파울을 범하고 벤치로 물러섰습니다. 인디애나의 스티브 알포드가 전반 종료와 함께 버저비터 중거리슛을 성공시켜 인디애나는 32-28로 4점을 앞선 채 전반전을 마쳤습니다. 파울 트러블로 전반에 8분밖에 뛰지 못했던 마이클 조던이 후반 시작과 함께 투입되었습니다. 하지만 노스캐롤라이나는 공격의 활로를 찾지 못했습니다. 반면에 인디애나는 엉성하게 던진 슛들이 전부 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가끔씩 조던이 던진 슛들은 글자 그대로 림 안에 들어갔다 나왔습니다. 그럴 때마다 인디애나는 반격에서 득점에 성공했습니다. 경기종료 5분을 남기고 인디애나는 59-47로 12점을 리드한 상태에서 공을 소유했습니다. 해설자는 이 경기가 끝난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부터 샘 퍼킨스와 조던의 공격을 앞세운 노스캐롤라이나의 맹추격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2분 동안 10점을 따라잡아 종료 3분을 남기고 2점차까지 쫓아갔습니다. 그 사이에 조던을 마크하던 다키히가 5반칙으로 퇴장당했습니다.


하지만 노스캐롤라이나에게 그 이상의 운이 따르지 않았습니다. 마이클 조던의 결정적인 슛이 또 다시 림 안에 들어갔다 나왔고, 고비마다 인디애나에게 외곽슛과 자유투를 허용했습니다. 경기종료 1분전, 2점을 뒤진 상황에서 마이클 조던이 5반칙으로 퇴장당했습니다. 자타공인 대학의 최고의 선수가 고작 13득점(야투율 6/14), 1어시스트, 1리바운드를 기록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노스캐롤라이나는 경기종반에 연속으로 자유투를 내줘 68-72로 패했습니다. 16강전에서 전국최강의 노스캐롤라이나가 탈락하는 대이변이 일어난 것입니다. 인디애나의 팀 야투율은 무려 70%였고, 1학년생 스티브 알포드는 40분을 전부 뛰면서 27득점을 올렸습니다. 마이클 조던의 대학시절 마지막 경기는 이렇듯 그의 인생에서 최대의 굴욕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최강팀을 꺾은 인디애나는 8강전에서 버지니아 대학교에게 아깝게 패해 탈락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인데 만화 슬램덩크의 산왕고가 바로 이때의 노스캐롤라이나를 모델로 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결승전은 패트릭 유잉의 조지타운과 아킴 올라주원의 휴스턴이 맞붙었습니다. 휴스턴은 마이클 영이 올라주원을 도와주며 분전했지만 패트릭 유잉 말고도 레지 윌리엄스, 데이브 윈게이트, 마이클 잭슨 등이 활약한 조지타운 대학교에게 75-84로 패하고 2년 연속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16강에서 탈락한 마이클 조던에게 드래프트 전체 1번의 꿈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조던은 그 해 여름에 LA에서 열리는 올림픽 대표로 선발되어서 프로에 데뷔하기 전에 전 국민에게 자신을 어필할 좋은 기회를 가졌지만 안타깝게도 그해 드래프트는 올림픽이 열리기 전에 시행되도록 스케줄이 잡혀 있었습니다. 그해 여름 조던이 속한 미국 대표팀을 지도한 감독이 바로 조던과 악연이 있던 바비 나이트(Bobby Knight)입니다. 올림픽 이후 나이트 감독은 조던에 대해 자신이 지금까지 봤던 가장 뛰어난 농구선수라고 추켜세웠습니다.

 

그후 36년이 지난 지금도 마이클 조던은 그때 이야기가 나오면 얼굴이 굳어집니다. 당시 언론에서는 노스캐롤라이나가 패배한 가장 큰 이유가 딘 스미스 감독이 전반전에 마이클 조던을 너무 일찍 벤치로 불러들인 것이라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마이클 조던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딘 스미스 감독이 자신을 일찍 벤치로 불러들인 것을 탓한 적이 없습니다. 조던에게 딘 스미스 감독은 대학 지도자 이상의 인물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에 조던은 "내 곁에는 어머니와 딘 스미스 감독이 변함없이 나를 지켜주고 계신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날 노스캐롤라이나와의 16강 전에서 놀라운 활약을 보여줬던 신입생 스티브 알포드는 1987년 드래프트에서 댈러스에게 2라운드에 지명되어 NBA 커리어를 시작하지만 주로 벤치에 머물다가 4년 후 리그에서 방출됩니다. 그 직후부터 알포드는 다양한 코치 경력을 쌓아가고, 2013년부터 2018년까지 농구의 명문 대학교인 UCLA 의 감독을 지낸 후 현재는 네바다 대학교의 감독으로 재직중입니다. 스티브 알포드는 대학농구에서 가장 연봉을 많이 받는 감독 중에 한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