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 드래프트: 40일의 리얼리티 오디션, 그런데 신인 선수들이 주인공인.
'드래프트 그게 뭔데, 맨날 그렇게 빠져있어?'라는 질문에 언젠가 답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한적한 개인 블로그용 글을 하나 썼는데, 왠지 여기에도 올리고 싶어서, 적당히 편집해서 올려봅니다. (드래프트가 뭔지 모르는 분들도 읽을 수 있게 하려고 보니, 다 아는 얘기를 압축 또 압축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
지난 6월 22일은 2023년 NBA 드래프트가 열렸습니다. 최근 몇 년 그랬듯이, 올해도 거의 40일 정도 NBA 드래프트에 빠져 즐거운 시간을 보냈죠. 5월 중순에 순번이 발표된 후로, 유튜브에서 유망주들의 스카우트 분석 영상을 하나씩 찾아보고, 모의 드래프트 결과가 나올 때마다 읽고, 여러 커뮤니티에서 글을 읽고 썼습니다. 드래프트 며칠 전부터는 뉴스에 밤을 설쳤고 드래프트 당일은 휴가를 내고 생중계로 지켜봤고요. 누군가는 이런 저를 이상하게 볼지도 모릅니다. 따지고 보면, 드래프트 자체는 농구 경기가 아니고, 여러 팀이 다음 시즌에 함께할 신인 선수를 차례로 뽑고 이를 공지하는 행사일 뿐이니까요. 한때는 저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드래프트는 그 자체로도 짜릿하거든요.
NBA 드래프트는 무엇이고 왜 중요할까?
NBA 드래프트는 매년 NBA 팀들이 신인을 선택하는 행사로서, 젊은 선수들이 NBA 선수 생활을 시작할 수 있게 하는 등용문의 역할을 합니다. 일생에 단 한 번만 참석할 수 있는, 선수 경력 전체의 성패를 좌우하는 기회죠. 수천 명의 미국 대학 농구 선수와 해외 리그 선수들이 NBA 진출을 노리지만, 해마다 드래프트로 뽑는 선수는 각 팀별로 2명, 총 60명에 불과하기 때문에 경쟁이 매우 치열합니다. 한 번 뽑히고 나면 선수는 짧게는 2년 길게는 5년까지 해당 팀에서 뛰어야 하고, 어떤 순번에 뽑히는지에 따라 초봉이 10배까지도 차이나기 때문에, 그야말로 순간이 선수의 평생을 좌우하게 되는 셈입니다. 구단에게도 드래프트는 젊고 비교적 저렴한 유망주들로 팀을 강화하는 기회인 동시에, 장기적인 미래의 기반을 닦는 '농사'이므로 구단의 운명이 걸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죠.
준비: 유망주의 경기와 스카우팅
젊고 재능 있는 선수는 농구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사람들의 평가를 받습니다. 요즘은 더 어릴 때부터 스카우트가 시작되기도 해서, 중고생쯤 되면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들로 전미 랭킹이 나오기도 하죠. 최근 비미국인 선수들과 해외 리그 진출 선수들의 NBA 진출이 잦아지긴 했지만, 전통적으로 미국 대학 농구(NCAA)가 스카우팅의 주요 무대가 됩니다. 자신에게 맞는 대학을 선택하고, 대학 농구에서 기량을 길러야 합니다. 특히 '3월의 광란'이라고 부르는 NCAA 토너먼트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것이 중요한데, 이때 활약에 따라 스카우트들 사이의 평가가 크게 영향받습니다. 따라서 선수들은 대학 1학년 때부터 자신의 현재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어떤 성과를 거뒀는지, 그 외 전체적인 환경이 어떤지 고려해서, 지금 드래프트에 참가할지, 아니면 한두 해 더 역량을 키우고 도전할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순번 추첨식과 드래프트 콤바인
5월이면 NBA 순번 추첨식이 열립니다. 신인을 지명하는 순서를 추첨으로 정하는 것인데, 대체로 직전 시즌 성적이 안 좋은 팀일수록 더 높은 순번을 얻게 되지만, 확률에 따라 행운이나 불운이 오가기도 합니다. 추첨식을 통해 지명 순번이 정해지면, 이제 본격적인 드래프트 일정의 시작입니다. 추첨식에 이어 열리는 드래프트 콤바인에는 드래프트 후보인 선수들이 모두 참석해 모든 팀 앞에서 자신의 스킬과 능력을 뽐내고, 각 팀은 처음으로 선수들을 마주 합니다. 드래프트 콤바인은 신체 계측, 온 코트 스킬 훈련, 5-5 시합, 팀 대표와 인터뷰 등이 포함되는데, 이를 통해 각 팀은 유망주들의 신체 특성, 농구 기술, 운동 능력, 성격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순번 추첨식과 콤바인이 종료되고 나면, 수많은 전문가들이 모의 드래프트 결과를 내놓기 시작합니다. 1번부터 60번까지, 선수들의 특성과 각 팀의 수요를 고려해서, 말 그대로 선수 전원을 출발선 뒤로 한 줄로 줄 세우는 것이죠. 이제 드래프트 당일까지 각 선수들은 자신의 순위를 높이기 위해 또 다른 경쟁을 시작합니다.
팀별 사전 드래프트 훈련과 인터뷰
드래프트 콤바인으로 모든 선수들과 모든 팀이 한자리에 모였다면, 이제는 각 팀과 선수들이 사전 드래프트 훈련과 인터뷰를 통해 개별적으로 만날 차례입니다. 사전 드래프트 훈련은 보통 1명의 개인 훈련 또는 3:3 경기를 해볼 수 있도록 6명의 그룹 훈련으로 치러지는데, 각 팀은 선수의 코트 위 퍼포먼스, 운동 능력, 현재 팀과의 조화 등을 확인해 볼 수 있으며, 개별 인터뷰로 선수의 성격이나 품성, 코치 용이성을 고려해 팀에 맞는 선수인지 평가합니다. 이 과정은 일방적인 면접보다는 서로 탐색하고 구애하는 것에 가까워서, 팀은 자신들의 시설과 운영 철학, 나아가 연고지 등을 소개하고, 선수는 긍정적인 인상을 남기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런 상호작용은 선수의 드래프트 주가에 크게 영향을 끼치는데요. 각 팀은 측정할 수 있는 재능 외에 태도나 직업 의식 같은 무형적인 가치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죠. 이 평가에 따라 플레이어의 가치가 오르거나 내리면서 모의 드래프트 순위도 끊임없이 바뀝니다.
드래프트 당일
드래프트 당일이 되면, NBA 총재가 행사장에서 1번부터 순서대로 각 팀이 어떤 선수를 뽑았는지 발표합니다. 각 순번마다 5분의 제한 시간이 있기 때문에, 각 구단의 사무실은 아직 안 뽑혀서 남아있는 선수들을 놓고 누구를 뽑을지 긴박하게 의사결정해야 하죠. 구단 임원진, 스카우트, 감독 등이 한데 모여, 선수 프로필을 신중하게 분석하고, 다른 구단의 트레이드 제안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최종 결정한 뒤, NBA 사무국에 알리면 이를 총재가 공표합니다. 각 순번이 발표될 때마다 누군가는 꿈을 실현해 환희로 가득 차 함께 자리한 가족을 부둥켜 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꿈이 꺾여 낙담하기도 합니다. 드래프트 자체의 예측 불가능한 특성, 팀들이 받는 시간 압박, 선수와 구단들이 겪는 다양한 감정, 이 모든 것이 한데 뒤섞였다가, 60번 선수 지명을 마지막으로 행사는 마무리됩니다. 잔치는 끝났어요. 마치 졸업식처럼 어떤 결과가 나왔든, 이제 쓰던 글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페이지를 펼칠 때입니다.
끝이 아닌 시작
그렇습니다. NBA 드래프트는 시작입니다. 선수 입장에서는 자신의 십수 년 인생과 꿈이 실현되는 하나의 마침표로 볼 수도 있겠지만, NBA 팬에게 드래프트는 더할 나위 없이 명확하게 새로운 시즌의 시작점입니다. 응원팀이 어떤 포지션을 어떤 선수로 보강했는지, 이후 오프시즌 동안 어떤 전략으로 팀을 향상시킬지, 그래서 다음 시즌에는 팀이 어느 정도 성적을 낼 수 있는지, 그 모든 희망을 담아 예측하고 기대합니다. 응원팀에 새로 들어오는 선수들을 자세히 살펴보고, 장단점, 성장 배경 등을 파악하며 그 선수의 서사를 소비할 준비도 마칩니다.
그렇게 다시 공놀이에 빠지는 거죠. 그깟 공놀이에.
정성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