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히 정답에 다가가고 있는 러셀 웨스트브룩과 클리퍼스
웨스트브룩 영입 후 5연패를 달리다 멤피스와 토론토를 잡고 2연승으로 한숨을 돌린 클리퍼스입니다. 뚝심 넘치는 로테이션 운영으로 많은 팬들에게 원성을 들은 루 감독이지만, 어제 토론토전에서는 적절한 선수 기용과 플레이 지시를 보여줬습니다.
토론토는 경기 시작부터 공을 들고 있지 않는 웨스트브룩을 없는 사람 취급하며 새깅, 페인트존 잠구기에 들어갔습니다. 경기 시작 후 코너의 웨스트브룩을 버리고 페인트존 근처에 서 있던 밴블릿이 웨스트브룩이 서 있는 사이드로 공이 들어가자 기계적으로 웨스트브룩을 잠깐 마크하러 간 사이 레너드가 그 틈을 타서 덩크를 성공하자 확연히 노골적으로 변했죠.
비록 웨스트브룩으로 인해 침체된 분위기지만, 2쿼터가 시작하자마자 그걸 다시 끌어올린 것도 웨스트브룩이었습니다.
레너드와 주바치가 들어오고 난 후에는 템포를 끌어올리는 건 자제, 최대한 안정적으로 볼을 간수하며 적절한 패스를 여러 차례 보여줬습니다.
뻣뻣한 핸들링 탓에 압박 대처에 다소 취약한 레너드의 약점을 가려주며, 동시에 공 없는 웨스트브룩을 최대치로 활용할 수 있는 좋은 플레이 셋이었습니다. 위 세 장면을 제외하면 더 시도해보지는 않았지만, 앞으로도 충분히 활용 가치가 있어 보입니다. 주전 라인업의 웨스트브룩을 상대로는 대게 특정한 약점 탓에 (발이 느리거나, 밴블릿처럼 신장이 작거나) 가려줘야 하는 선수들을 붙이고 새깅을 지시하여 수비에서 배려를 해주려는 그림이 많이 나오는데, 이렇게 웨스트브룩을 스크리너로 활용하여 그런 선수들을 직접적으로 플레이에 관여시키면서 상대 수비 플랜에 혼선을 주는 시나리오가 많이 나와주길 바랍니다. https://twitter.com/joeylinn_/status/1633706508033871874?s=20
웨스트브룩은 3쿼터 중반 이후 에릭 고든과 교체된 이후 다시 코트를 밟지 않았습니다. 테렌스 맨과 고든이 함께 백코트를 이뤄 경기를 마무리했는데요, 결과적으로 승리를 가져오긴 했다만 루 감독은 클러치 때 웨스트브룩을 활용하는 방법을 다시 찾아보려 하는 듯 합니다. 비록 웨스트브룩이 극복하기 힘든 단점을, 거기에 클러치 상황이 되면 더 부각될 수밖에 없는 단점을 가진 선수긴 하지만, 클러치 타임 내내 조지/레너드의 아이솔 일변도로 돌아가며 굉장히 정적이고 답답한 오펜스를 보여주는 클리퍼스가 활용할 수 있는 무기가 되어줄 가능성을 오늘 경기에서 보여줬습니다. 조지/레너드와의 인버티드 픽앤롤을 잘 활용할 수 있고, 웨스트브룩을 탑에 배치한 후 핀다운 스크린에 이은 조지/레너드의 점퍼나 포스트에서 1대1 세팅을 가져가는 그림이 나올 수도 있죠. 웨스트브룩을 클러치에 쓸 거면 코너에 박아놓은 채 레너드 1대1만 시키지 말고, 이렇게 활용도를 높여보는 방안을 강구했으면 좋겠습니다.
웨스트브룩이 활용하기 까다로운 선수라는 건 부정할 수 없습니다. 수비 활동량 문제는 클리퍼스에서도 계속 부각되고 있습니다. 최대한 프리 스위치로 오프볼 움직임을 줄여주고 기본적인 수비 매치업에서도 상당한 배려를 해주면서 가드 웨스트브룩이 골밑을 지키고 포워드 레너드와 바툼이 앞선에서 뛰어다니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수비에서 악영향이 눈에 보이는 수준입니다. 새깅 문제로 인해 하프코트 상황 활용도 역시 크게 제한됩니다.
하지만, 리그 전체적으로 봐도 충분히 우위를 점하고 있는 영역 역시 존재합니다. 템포 푸쉬 능력은 물론, 페이인트존 진입 후 킥아웃 패스들의 퀄리티 역시 충분한 스페이싱이 제공되는 상황 속에서 다시금 그 효용을 되찾았습니다. 현재 클리퍼스 선수들 중 조지/레너드를 제외하면 웨스트브룩 정도로 페인트존 진입을 자유자재로 가져갈 수 있는 자원은 없습니다. 정적인 클리퍼스의 오펜스에 웨스트브룩의 독특한 빠른 템포의 농구가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건 5연패 기간에도 충분히 입증된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웨스트브룩이 제공할 수 있는 장점을 최대치로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고, 지금까지 타이런 루 감독은 이 부분에서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마커스 모리스와 웨스트브룩을 함께 주전 라인업에 꾸준히 기용하는 것부터 아쉽습니다. 모리스는 터프한 인사이드 수비수로서 가치는 아직 남아있지만, 외곽에서는 느려진 발과 반응속도로 인해 마크맨에게 전혀 압박을 주지 못하고 수비 대형을 깨뜨리는 주범입니다. 웨스트브룩과 모리스라는 두 수비 구멍들로 인해 최대한 체력을 보전해줘야 하는 레너드, 조지에게 시작부터 수비적으로 큰 부담이 가해지게 됩니다. 코빙턴에 비해 우위를 가지고 있다는 공격적 범용성도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로는 그 가치를 잃었습니다. 기본적인 오픈 스팟업 3점이 들어가지 않는 상황, 특유의 페이크 후 원 드리블 미드레인지도 위력이 죽었고, 웨스트브룩이 들어오며 모리스의 또다른 강점 중 하나였던 포스트 1대1 옵션 역시 빈도가 줄었습니다. 모리스 대신 바툼, 코빙턴, 테렌스 맨처럼 확실한 스팟업 슈터로 기능할 수 있으며 공수 모두에서 우월한 활동량을 자랑하는 자원들이 널려있음에도 모리스 주전을 계속해서 고집하는 것은 분명한 실책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웨스트브룩이 레너드, 주바치와 함께 뛰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고 조지, 플럼리 등과 뛰는 시간을 최대한 늘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레너드에 비해 3점 라인에서부터 다양한 슈팅 시도를 가져갈 수 있는 조지를 위한 오프볼 액션을 가장 잘 봐줄 수 있는 선수가 웨스트브룩이고, 조지 역시 원래라면 본인이 싫어하는 포인트 가드 포지션을 맡는 시간대에서 웨스트브룩이라는 핸들러와 함께 호흡을 맞추는 그림이 가장 이상적입니다. 웨스트브룩의 빠른 템포 농구에 맞춰 같이 템포를 끌어올릴 수 있는 자원이기도 하죠. 플럼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웨스트브룩의 템포에 맞춰주고, 하프코트 상황에서 함께 픽앤롤 게임으로 호흡을 맞출 수 있는 자원이죠. 탑에서 직접 핸드오프를 가져가는 빈도는 줄이고, 좀 더 직선적인 림 러너처럼 뛰어주면 더욱 좋을 듯 합니다. 여기에 웨스트브룩의 수비 활동량을 가려줄 수 있는 코빙턴 or 바툼이 나온다면 금상첨화.
이미 샘플은 쌓일대로 쌓였습니다. 웨스트브룩 본인의 기량이 NBA에서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는 수준은 절대 아니라는 건 다들 동의하실 겁니다. 본인에게 충분히 어울리는 세팅을 깔아줄 수 있는 환경에서라면, 제한된 출전 시간 내에서 팀에게 공헌할 수 있는 선수입니다. 클리퍼스는 그 환경을 만들어줄 수 있는 리그에 몇 안되는 팀들 중 하나입니다. 루 감독 본인이 말하는 대로 5연패 기간의 이해할 수 없는 선수 운용이 실험이었다면, 하루 빨리 그에 맞는 피드백을 보여주길 바랍니다. 계약 당시 웨스트브룩에게 주전 자리를 보장해주는 대가로 딜을 성사시킨 게 사실이라면, 가장 이상적인 그림은 러스-조지-레너드-바툼-주바치로 게임을 시작, 시작 후 3~4분 안에 러스 대신 테렌스 맨을 투입하고 러스는 1쿼터 막바지~2쿼터 초에 투입하여 벤치 타임에서 레너드가 없는 시간대를 버텨주고, 레너드가 들어온다면 위의 인버티드 픽앤롤처럼 적극적인 오프볼 움직임을 주문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클로징 라인업에는 무조건 테렌스 맨을 포함시키고, 조지/레너드/빅맨 이 세 자리가 고정이라면 파웰, 코빙턴, 러스를 때에 따라 번갈아 활용하는 것이 제일 낫다 생각합니다. 오펜스가 너무 고구마같다 싶으면 러스 넣어서 풀어주고,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파웰이나 고든이 낫지 싶어요.
아무튼, 점차 서로간의 핏과 케미스트리를 찾아가고 있기는 한 거 같아 다행입니다. 앞으로의 시즌이 어떻게 풀릴지는 잘 모르겠지만, 긍정적인 분위기로 시즌을 마치고 포스트시즌에 돌입할 수 있기만을 바랍니다.
와 선생님의 필력, 농구를 해석하시는 눈 감탄하며 정독했습니다.
어찌보면 벽신에게 바라던게 이런 모습이었는데 벽신은 안되고 버럭신은 되는거였네요.
이제 모든 건 깔아준 판을 잘 사용할 루감독님이겠네요. 농잘알 선생님 덕에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LET'S GO CLIPP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