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를 만난 유관장, 석스를 만난 바밴웬
어제 열렸던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와의 경기에서 제일런 석스가 공수에서 대폭발하면서 극적인 승리를 쟁취해냈습니다. 26득점, 9어시스트, 4스틸을 기록하며 데뷔 이래 가장 뛰어났던 경기였습니다. 가히 곤자가 대학 시절이 떠오를 정도의 활약이었습니다. 며칠 전에 '제일런 석스는 석스다'라고 회의적인 글을 썼던 것이 무안할 정도로 잘해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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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올랜도 매직의 백코트 포지션에는 석스와 RJ 햄튼 그리고 투웨이 계약자인 케본 해리스만이 경기를 뛸 수 있는 상황입니다. 아무리 프런트코트 선수들이 다재다능하기는 하나, 기형적인 포지션 배치로 인하여 경기력에 비해 정작 승리를 쌓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치 마땅한 군사 없이 고전하던 유비, 관우, 장비를 보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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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어제의 석스는 유관장 앞에 나타난 서서와 같았습니다.
석스의 파급효과 중 가장 기본은, 프란츠 바그너와 파올로 밴케로가 1차적인 세팅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석스가 시발점 역할을 해주면서 팀 오펜스의 시동을 거는 역할을 맡아주었고, 덕분에 프런트코트 선수들이 후속 움직임을 이어가며 보다 간결하게 공격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석스는 시야가 넓고 패스도 잘 뻗어나가서 흐름을 잘 만들어냅니다. 그동안 프란츠 바그너와 파올로 밴케로가 플레이메이킹을 잘 메워주고 있었지만, 이처럼 코트를 넓게 쓰기에는 한계가 좀 있었습니다.
패스 한번으로 코트 반대편의 빈곳을 찔러주는 장면을 얼마만에 보는지 모르겠습니다. 패스도 슈터들이 던지기 편한 위치로 맞춤 배달해주는 것이 쿼터백 짬바가 보입니다.
무엇보다도 바그너가 포인트가드라는 족쇄에서 벗어난 것이 가장 큰 이점이었습니다. 직접 공격을 진두지휘하기보다는 공을 받으며 플레이할 수 있었고, 이에 따라 효율도 끌어올릴 수 있었습니다.
공격을 시작부터 담당하기보다는 두 번째 옵션으로서 그리고 부차적인 역할을 수행할 때에 진가가 나오는 바그너입니다. 픽앤롤 볼핸들러로서 활약이 꽤 괜찮긴 하지만, 확실히 전담 플레이메이커로 나오는 것은 부담스러워 보였습니다.
밴케로 또한 스크리너로 쓰임새가 커졌고, 탑에서부터 공을 끌고 들어가는 것이 아닌 안쪽에서 패스를 받고 공격을 진행하는 빈도도 늘어났습니다. 밴케로 역시 플레이메이킹이 생각보다 좋긴 한데, 아직은 틀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 더 좋아보입니다.
이건 석스가 대단하기보다는 플레이메이킹이 되는 포인트가드가 들어온 영향이기는 합니다. 콜 앤서니는 플레이메이킹에는 소질이 없고, RJ 햄튼은 이제 팀에서도 볼핸들러로서 분류되지 않고 있습니다.
석스의 두 번째 파급효과는 뛰어난 앞선 수비와 템포 푸쉬였습니다. 첫 번째 장면에서는 상대가 수비 라인을 세우지 못하자 바로 달려들었고(비록 놓쳤지만), 두 번째 장면에서는 스테판 커리로부터 공을 스틸하여 바로 속공으로 연결했던 석스였습니다.
어린 선수들이 주축임에도 백코트 포지션의 괴멸로 인하여 속공과 빠른 템포의 공격이 부족했던 올랜도 매직이었습니다. 그리고 석스가 다른 것은 몰라도 딱 두 가지는 잘합니다. 수비와 템포 푸쉬입니다. 석스가 건강하게 계속 나올 수만 있다면, 전술의 확장성 면에서 커다란 도움이 될 겁니다.
그동안 석스가 활약하지 못했던 이유는 볼핸들링이 너무 불안하고 이로 인하여 페인트존 진입을 전혀 못했기 때문입니다. 드리블이 유려하지 못하다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공이 놓치거나 긁히는 빈도가 너무 높습니다.
돌파에 이은 골밑 마무리와 킥아웃 패스가 장점인 선수가 전제조건부터 막히니까 옵션이 너무나 제한적이었습니다. 심지어 점프슛도 처참한데 플로터를 비롯한 기술도 형편없어서 보조 옵션도 전무했습니다. 실제로 루키 시즌 석스의 공격력은 리그 최하위였습니다.
그러나 어제 경기에서는 돌파가 꽤나 잘 통했는데, 부족한 좌우 움직임을 전후 움직임으로 메우며 리프트 동작을 잘 활용한 덕분이었습니다. 기술적인 요령이 조금이나마 늘긴 늘었습니다. 다소 어설퍼 보이긴 했으나, 워리어스의 앞선 수비가 위협적이지 못해서 통했다고 봅니다.
어제 경기를 통해서 돌파 플레이가 가능한 석스의 위력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빅맨과 부딪쳐도 균형을 잃지 않는 피지컬과 마무리 솜씨, 안팎을 가리지 않는 패스 플레이는 드래프트 당시 석스에게 기대했던 플레이들이었습니다.
위의 두 장면에서는 석스가 오른발에 오른손으로 패스하는 엇박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패스를 잘 만든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이런 감각 때문인데, 그동안은 페인트존까지 안정적으로 진입 자체를 못했으니 장기를 보여줄 기회 자체가 별로 없었습니다.
관건은 이를 계속 이어가는 것입니다.
석스의 대활약은 너무나 반가우나 여전히 회의적인 시선이 남아있는 이유는, 단점 개선이 별로 안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볼핸들링은 불안하고, 점프슛은 물론하고 득점 기술력이 좋지 못합니다. 돌파가 막히면 석스의 쓰임새는 너무나 한정적이어서, 전제조건부터 다시 봉인될 겁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착지 습관입니다. 지난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무게 중심이 상체에 쏠려있는데 공중으로 몸을 던지는 것을 망설이지 않습니다. 공수 불문하고 빅맨과의 충돌에도 기꺼이 덤벼들고 공중 경합 상황에서도 한껏 뛰어드는데, 상체에 쏠린 무게중심 때문에 균형을 잃으면 앞으로 고꾸라지듯 넘어지면서 착지에 전혀 신경쓰지 못합니다. 실제로 발목 중심의 하체 부상이 너무나 잦습니다.
석스의 단점들이 개선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극복하기 위해서는 경험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나 부상으로 실전은 물론하고 훈련도 제대로 못하는 일이 많아서 걱정이 큽니다. 습관도 습관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넘치는 투지로 인해 부상을 당하는 일이 많아서 안타깝습니다.
저번에 반케로 그렇게 쓰는거 아닌데도 그렇고 올 시즌들어 부정적인 예상은 다 빗나가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