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안토니오 스퍼스의 예상치 못한 선전, 그 이유는?
미네소타를 상대로 승리를 가져가며 오늘로 5승 2패를 기록하고 있는 스퍼스입니다. 프랜차이즈 역사상 2번째로 훌륭한 시즌 스타트를 가져가고 있고, 공수 양면에서 굉장히 긍정적인 경기력을 뽐내고 있는 중입니다. 단순히 슛감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 오픈 기회를 만들어내는 과정 자체가 근 5년 동안의 샌안 농구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퀄리티에요. 수비에서 활발함은 말할 것도 없죠. 머레이와 결별하며 리그 최악을 향해 달려들 것처럼 보였던 스퍼스가 왜 이리 잘하고 있는지 제 나름대로 그 원인을 찾아봤습니다.
1. 잭 콜린스의 변신 -> 48분 내내 돌아가는 시스템
포틀랜드 시절 콜린스와 지금 콜린스의 모습은 상당히 다릅니다. 이전에는 빼어난 운동능력과 슛터치를 바탕으로 한 훌륭한 피니셔, 그리고 수비에서는 포지션 대비 상급에 속하는 민첩함을 바탕으로 미스매치에 잘 대응할 수 있는 유니콘같은 선수였다면, 지난 시즌부터 이번 시즌까지 콜린스가 보여주는 모습은 예전 필라델피아 시절 다리오 사리치가 생각납니다. 팀원들의 활발한 오프볼 움직임을 모두 캐치하고 적재적소에 날카로운 피딩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슈팅 역시 이런 무기가 있다 정도에 그쳤던 포틀랜드 시절과 달리 실제로 전 구역에서 높은 성공률을 기록하는 중입니다.
2. 켈든 존슨의 성장
켈든의 성장은... 참 대단합니다. 지난 시즌에는 3점 슈터로 성장한 모습을 보여줬고, 이번 시즌에는 감량과 발전한 드리블 실력을 바탕으로 한 인상적인 플레이메이킹 능력까지 선보이고 있는 중입니다. 상대 수비의 견제가 심해지며 와이드 오픈 3점 시도의 비율이 지난 시즌 48% 가량에서 30% 초반대로 내려왔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여전히 빼어난 3점 성공률을 기록하고 있죠. 고무적인 것은 상대 수비가 켈든을 이제 위협적인 슈터로 인식하고 적극적인 클로즈아웃을 가고 있다는 점, 그리고 켈든이 거기서 생기는 틈을 놓치지 않고 안정적인 리드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온볼 슈팅 스킬 역시 발전했어요.
https://twitter.com/RReyving/status/1586903003713474566?s=20&t=3U0xhcjxoTinweeLZQ-WkQ
경기당 10개가 넘는 3점을 시도하면서 40%가 훌쩍 넘는 성공률을 기록하고 있고, 그렇다고 해서 돌파의 위력이 줄어든 것도 아닙니다. 진지하게 MIP를 노려볼 수 있는 수준이에요.단순히 스탯이 예쁘게 찍히는게 아니라, 흐름이 넘어갈 것만 같을 때 켈든이 적극적으로 나서며 득점을 올리고 다시 흐름을 스퍼스 쪽으로 가져오는 모양새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어요. 경기 내내 득점 모드로 나서는 게 아니라 본인이 언제 적극성을 발휘해야 할지 잘 파악하며 기어 변속을 기가 막히게 해내고 있습니다.
코트 바깥에서도 팀의 라커룸 리더 롤을 맡으며 한층 성숙해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난 시즌 머레이와 함께 뛸 때는 그냥 유쾌하기만 한 친구인 줄 알았는데, 요즘은 켈든의 경기 내에서의 태도나 인터뷰를 보며 깜짝깜짝 놀라고 있는 중입니다.
https://twitter.com/Spurs_Nation/status/1586896072940609539?s=20&t=kM_iF7ikAR9_aA7FQOAGFg
"모든 경기는 힘들기 마련입니다. 몇몇 선수들이 빠지면 다른 사람들이 그 빈 자리를 메꿔줘야 해요. 우린 하나의 팀이자 가족이며, 우리 뒤에 있는 선수들에게 완전한 신뢰를 갖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데빈이 다쳤고, 제레미는 아프며, 알다시피 몇몇 선수들이 빠져야 했어요. 멍이 좀 들긴 했지만, 우린 계속해서 싸워나갔어요. 계속해서 하나의 팀으로 뛰었습니다. 힘들 때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제 양 옆에 있는 형제들, 함께 여름 내내 체육관에서 땀 흘리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던 사람들을 볼 수 있어요. 저는 오늘 밤은 물론, 시즌 내내 정말 엄청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린 훌륭한 팀 바스켓볼을 하고 있어요. 서로가 서로를 더 나아지게 만들어주죠. 이런 식으로 농구를 하는게 즐겁습니다."
코트 안팎에서나 팀의 완전한 리더로 올라선 켈든 덕분에 우려했던 리더쉽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3. 풍부한 뎁스, 그리고 포포비치 감독
가드진 뎁스, 특히 핸들러 뎁스는 바바리모가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팀을 떠나면서 더욱 더 처참해졌지만, 윙/포워드 뎁스는 근 5년을 통틀어서 이렇게 좋았던 적이 있었나 싶습니다. 당장 어느 팀에서든 로테이션을 받을 수 있는 준주전급 선수들이 제레미 소핸, 아이재아 로비, 케이타 베이츠-디오프, 덕 맥더맛, 켈든 존슨, 데빈 바셀. 굉장히 풍부한 뎁스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특히 소핸과 로비의 영입 덕에 팀 수비적인 범용성이 정말 확연히 달라졌어요. 퍼들을 제외하면 무주공산이나 다름 없었던 페인트 존 수비에서 활발한 빅 사이즈 윙들이 힘을 보태주니 페인트존 페킹으로 쉬운 슛을 억제하고, 거기서 나오는 엑스트라 패스들은 길이와 활동량으로 최대한 커버를 해냅니다. 억지로 4번으로 끌어올리며 수비적 약점이 크게 노출된 켈든 존슨과 덕 맥더맛은 다시 3번 자리로 내려가며 확연히 나아진 모습을 보이고 있죠. 이렇게 강화된 수비력 덕분에 트랜지션 기회도 더 많이 나오고 있고, 여기서 효율적으로 득점을 뽑아내며 다소 아쉬운 하프코트 오펜스를 커버치는 그림이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루키 제레미 소핸의 수비적 영향력은 엄청납니다. 말 그래도 1번부터 5번까지 모든 포지션을 수비할 수 있고, 루키다운 아쉬운 실수를 범하고 있긴 하지만 전체적인 커버 범위나 대인 수비력은 팀 내 최고 수준이라 봐도 무방해요. 시카고전에서는 4쿼터 마지막 결정적인 오펜스 파울을 유도해내기도 했고, 미네소타전에서는 에드워즈, 러셀을 완전히 락다운하는 포제션도 볼 수 있었습니다. 공격적으로는 아직 갈 길이 멀긴 합니다만 슬슬 오픈 3점 정도는 몇개 넣어주고 있고, 슛이 들어가지 않을 때도 적극적인 속공 참여와 지능적인 컷인, 인상적인 페인트존 피니싱 등 다방면적으로 팀에 공헌하고 있어요. 로드맨보다는 디그린이 더 맞는 컴패리즌같습니다.
바셀, 리차드슨 등의 부상을 틈타 모습을 드러낸 벤치 플레이어들의 활약 역시 인상적입니다. 우선은 로미오 랭포드. 화이트 트레이드 당시 샐러리 필러로 포함되어 스퍼스에 오게 되었는데요, 빠른 시일 내에 팀을 떠날 것이라는 세간의 평가를 뒤집고(사실 이건 샐러리 탓이 큽니다) 최근 연일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중입니다. 공격에서는 적극적인 컷인으로 볼 흐름을 원할하게 만들어주며, 수비에선 핸들러 압박 수비를 굉장히 잘해주고 있어요. 오늘만 해도 한창 불 타오르던 에드워즈에 전담으로 붙어 어느정도 제어를 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케이타 베이츠-디오프도 빼놓을 수 없죠. 다소 무리한 공격을 가져가는 게 흠이지만, 백업 포워드로 활용하기에는 차고 넘치는 퀄리티의 선수입니다. 컷 가져가는 감각 훌륭하고 공수 양면에서 왕성한 활동량과 리바운드 능력이 좋으며, 슈팅도 꽤 쓸만한 수준까지 올라왔어요. 조금만 이타적으로 굴어줬으면 완벽할텐데 말입니다.
루키 브랜햄과 웨슬리도 최근 데뷔전을 가졌는데요, 둘 다 아직 부족한 점이 보이긴 하지만(일단 둘 다 수비가 좀) 그럭저럭 괜찮은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저 나이 선수들이 1군 오펜스에 첫 경기부터 녹아들어 자기 롤을 잘 수행한다는 거 자체가 긍정적이지 않습니까. 서머리그 거르고 프리시즌에야 처음 호흡 맞추더니 갑자기 팀 디펜스의 축으로 부상한 소핸이 이상한 거지.
이렇게 가지각색의 선수들이 존재하는 현 스퍼스의 로스터를 데리고 각 선수들에게 적합한 롤을 찾아주고 서로가 서로의 재능을 해치지 않으며 최대한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도록 세팅을 짜주는 건 감독의 몫이고. 이번 시즌 포포비치 감독님의 능력은 정말 감탄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경기를 보다 보면 칼같은 타임 아웃과 기민한 선수 기용으로 흐름을 어떻게든 스퍼스 쪽으로 가져오시는 모습이 참 대단해요. 처참한 핸들러 뎁스에서 어떻게든 답을 찾아내고 팀 구성에 적합한 수비 세팅과 멘탈리티를 장착시켰습니다. 감독 싸움은 무조건 한 수 이기고 들어가니 선수단이 열정적으로 시킨 일만 잘하면 승리를 가져올 수밖에 없죠.
농구팬이라면 사랑할 수밖에 없는 농구를 하고 있는 스퍼스. 바셀과 리차드슨, 소핸이 건강히 돌아오길 바라며 이만 마치겠습니다. 다음에는 바셀의 활약에 대해서도 더 집중 조명을 해봐야겠어요. 인디애나전 끝나고 아쉬운 마음에 바셀을 반쪽짜리 슈터라 음해하던 농알못이 있었는데, 시즌 내내 참 잘해주네요.
사이즈 큰 4번 필요한 팀에 소헨 들어온 게 컸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