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널을 마치며
1. 터닝포인트였던 2차전의 수비
(즈루 풀코트 프레스: 2차전)
로페즈가 끼는 드랍백 vs 폴+부커 미드레인지의 정면 대결이면 지형 자체가 밀워키에게 승산이 없습니다. 그래서 밀워키는 1차전을 로페즈가 끼는 올 스위치로 시작했고 그 후에도 평소같은 드랍백을 쓰지는 않았죠.
스위치에서의 처참한 실패 후에 본래의 드랍백에서도 사정없이 털린 밀워키가 2차전에서 꺼내든 수비는 즈루의 풀코트 프레스와 폴에 대한 횡적인 스위치 (넥스팅)였는데요. 이 수비가 성공하면서 밀워키는 폴을 한쪽 사이드로 확실히 밀어냈고 최소한 정면에서 16~18초의 여유를 갖고 시작하는 픽앤롤은 주지 않게 되었습니다.
피닉스가 3차전부터 이 수비와의 정면대결을 피했고 6차전 2쿼터 전까지 평소의 농구를 포기했는데...하이픽앤롤+패스아웃+코너 3점으로 대표되는 피닉스의 오펜스가 사라진데에 밀워키의 결정적인 승인이 있다고 봅니다.
3,5차전에서 피닉스가 대안으로 선택한 템포푸쉬는 공격옵션이 부족한 밀워키에게도 상당부분 득이 되었고 (원래 얼리오펜스는 밀워키가 강한 팀) 4차전에서 선택한 부커 몰빵은 피닉스 특유의 패스아웃이 사라지면서 서로 2점으로 때리는 경기를 만들었으며 폴이 분전한 6차전 후반의 경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야니스가 힘겹게 벽을 치면서 2점을 넣어놓고 폴의 패스아웃에 의한 브리지스, 캠존슨 등의 코너 3점을 바로 먹는 것이 밀워키에게는 제일 불리한 흐름일텐데요. 2차전 전반의 수비는 피닉스의 코너 3점으로 연결되는 하이픽앤롤을 원천차단하면서 경기를 밀워키에게 유리한 지형으로 만들었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게 쉬운 결정은 아닌 것이 1차전까지는 쿰보에게 부상우려가 남아 있었고 (드리블 푸쉬가 거의 안됐었죠) 볼핸들러인 즈루가 방전되어 버리면 밀워키의 공격옵션이 조기에 고갈될수도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즈루가 공격에서 퐁당퐁당 정도로 (?) 버텨줬지만 당시 밀워키 입장에서도 절대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거라고 봅니다.
다만 이 수비를 훌륭하게 펼치고도 2차전 후반을 완패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밀워키가 더 좌절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요. 이 부분은 당시 인상깊게 읽었던 성지순례 급의 글이 있어서 링크 남겨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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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선즈의 평소 플랜 포기
3,5차전 전반에는 즈루를 미리 떨궈내기 위해 평소보다 폴이 훨씬 긴 거리의 드리블을 치면서 템포를 푸쉬했고 4차전에서는 부커에게 핸드오프에 기반한 공격을 몰빵했습니다. 2차전 승리 후에 평소 오펜스를 포기했죠.
벅스의 바뀐 수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였던건지 폴의 몸상태에 이상이 생긴 건지 선즈가 가장 잘하는 오펜스를 포기하면서 경기양상이 갑자기 바뀌었는데 3차전을 보면 전자 같고 4차전을 보면 후자 같더군요. 뒷얘기들이 슬슬 나올 텐데 즈루도 즈루지만 폴의 햄스트링 등 다른 이슈도 있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추측합니다.
3차전 이후 처음으로 하이픽앤롤이 제대로 돈다고 느꼈던 구간이 오늘 2쿼터였는데 페인이 터지고 부커의 볼운반 비율이 높은 것을 캐치한 밀워키가 즈루를 폴에게서 떼내고 폴에게 터커를 붙였었죠.
벼랑끝이라 독하게 마음먹은 폴이 5~6번 정도 정면에서 픽앤롤을 했고 이게 거의 득점으로 연결됐는데요. 만약 밀워키가 졌다면 2쿼터의 안이한 턴오버들과 더불어 이 결정이 매우 치명적이었을거라고 봅니다.
3쿼터에 즈루가 다시 붙으면서 (얼마 후에 다시 터커로 바뀜) 픽앤롤이 다시 사라졌는데 폴이 3차전 이후에도 분전한 시점이 있었으나 그의 픽앤롤 패스아웃은 끝까지 돌아오지 않았고 피닉스의 코트가 좁아졌죠.
오늘도 경기가 뒤로 갈수록 쿰보와의 2점 배틀로 흘러간게 피닉스에게 불리한 흐름이었죠.
3. 즈루, 미들턴, 포르티스
쿰보와 함께 밀워키에게 유리한 지형으로 경기를 끌어온 선수는 단연 즈루입니다.
2차전부터 생각도 못했던 풀코트 프레스에 종종 부커까지 바꿔맡으면서 시리즈 끝까지 굿디펜스를 유지했고 템포푸쉬가 필요한 경기에선 경기 초반에 분당 한개꼴로 슛을 시도할 정도로 공수에서 부담이 컸는데 마무리가 박살난 경기에서도 드리블 푸쉬만큼은 내내 성실하게 해줬습니다. 즈루가 양팀 통틀어 최다어시스트죠.
이런 류의 에너자이저들이 늘 그렇듯 마무리에서의 기복, 실수는 많았지만 로드가 그렇게 걸린 상황에서도 에너지가 끝까지 유지됐는데 시리즈 후반의 결정적인 수비들은 대단했고....미들턴도 이전 라운드부터 하이볼륨 게임을 유지하면서 버거운 샷들도 예년과 달리 꾸준히 넣어줬습니다. 오늘도 6점차를 만드는 샷이 아주 컸죠.
숨은 공신은 단연 포르티스라고 생각하는데 3차전 선즈의 추격분위기를 가라앉힌 공격리바운드 2개, 5차전에서의 3점, 오늘 경기에서의 느닷없는 오프더 캐치 샷들까지 경기 흐름을 바꾸거나 막는 활약을 여러차례 보여주었고 로페즈와 함께 있는 투빅, 로페즈를 대체하는 상황에서 모두 좋은 디펜스를 했습니다.
안정적이지는 않지만 가진 툴이 많고 공격적인 마인드를 가진 선수가 큰 공헌을 했네요.
4. 쿰보
쿰보는 타겟이기도 하지만 드라이버이기도 하죠. 루키시절의 시그니쳐는 탑에서의 돌파였습니다.
하이레벨 경기에서 쿰보의 약점은 사실 한결같은데 벽을 친 후에 한박자 느리게 나가는 품질나쁜 킥아웃, 키핑을 위한 스핀무브 남용, 벽을 보고도 한번 더 치고 나가려는 습관 (이라기보다는 불가피한 면이 있죠) 등인데 사실 이 부분은 순수한 드리블 드라이브, 드라이브 &킥의 핸들러, 혹은 패서로써 갖는 약점이죠.
완전한 롤맨이 되면 볼핸들러에게 종속되고 볼핸들러가 되면 신장에서 역으로 핸디캡이 생기는 선수인데 중간자적인 게임이 너무 없다보니 불리한 상황에서도 어쩔수 없이 업템포를 유지해야되는 경우가 많았었죠.
다운템포에서 스핀 후의 턴어라운드, 정적인 상황에서의 페이스업, 포스트업 훅슛 등이 들어가는 쿰보가 오늘의 모습인데 이번 파이널을 보면서 하프코트에서 가속을 안내는 쿰보가 더 위협적이라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초반 2패를 당하는 시점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멘탈적으로도 대단했는데 클러치에서의 활약만 모아봐도 비슷한 수준의 선수가 기억이 안날 정도로 압도적인 모습이었구요. 저게 가능한가 싶을 정도였던 블록들과 오늘 보여준 안정적인 자유투, 여러 자세에서 꽂은 점퍼,훅슛들은 오래 기억에 남을것 같네요.
우승까지 경험한 이상 몇년간 MVP레이스를 독주하지 않을까 합니다.
5. 축하합니다. 밀워키
부덴홀저 ERA 전까지 개인적으로 NBA에서 가장 어정쩡한 팀 중 하나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잘나갈때가 잠깐 있긴 했지만 쿰보의 커리어 초반까지도 항상 30~40승대 초반을 오가면서 중복스카웃으로 인해 출력을 못내는 느낌의 팀이었는데 (주전포가가 4년 내리 바뀐 구간도 있었을 정도) 토니스넬, 미들턴을 끼고 1번을 보던 쿰보가 무려 백투백 MVP가 되고 팀이 반 티어 내려온 시즌에 바로 우승할줄은 몰랐네요.
예전 댈러스의 우승과 느낌이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데 (댈러스는 67승-1라업셋 이후 침체기가 몇년 있었죠) 정통 빅맨처럼 뛰면서 우승을 경험한 쿰보의 플레이와 커리어가 어떻게 뻗어나갈지도 궁금하네요.
다시 한번 축하합니다.
쿤보의 위대한 시리즈였습니다. 미드레인지 자신감은 제가 알던 쿤보가 맞나 싶을 정도였으니..
즈루가 시리즈 마지막까지 방전되지 않고 공수 에너지를 유지해준 게 컸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미들턴은 새가슴이라고 생각했던 과거를 반성하게 되네요 -_-